나의 운동, 자주파, 그리고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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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창당을 지향했던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 그러나 종북주의 존재와 민주노동당의 사망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사진@오미아뉴스 이재덕


"정말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나요? 민주노동당에?"

반갑게 온 지역 위원장님의 전화를 받았을때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종북주의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소위 자주파였다. 10여년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말이다. 그때는 자주파라는 말도 없었다. NL이니 민족해방파니 했다.

물론 뭣 모르고 운동에 참여하게 될 때는 몰랐지만 1학년을 지날때쯤 운동권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그 때 열심히 조직하고 거리에 나서는 자주파가 좌파 이론가 족보나 따지기 좋아하는 평등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걔중 북을 유독 지나치게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문제삼진 않았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북정책 덕에 전쟁위기설이 심각하던 때라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그 때 였다.

나도 10여년 전, 대학생 시절엔 소위 '자주파'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순수하던 그 열정은 소중히 간직하고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에 이해하던 것처럼 미제와 그 앞잡이들만 때려잡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단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운동가로서 살기엔 운동의 지표가 될 대안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없는 사정에 어거지로 영국으로 유학길까지 올라 그렇게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의회 민주주의 산실이라는 이들의 정치를 보면서, 복지국가라고 하는 이들의 정책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우리사회의 대안을 내어보기위한 단초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영국사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순 없었다. 민주정부를 가졌다는 우리나라가 양극화, 고령화 등 새로운 수준의 사회문제에 직면하면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여 대안이 도출되기 보단 과거 권위주의적 틀에 갇혀 미봉책만 반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 가운데 방치된 서민들은 급증하는 사회문제를 홀로 개별적으로 감당하느라 더욱더 극심한 고통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민주정치를 이해조차 못한 구태의연한 정치권는 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허무한 다툼으로 절망만 안겨주는 것을 보아왔다.

그럴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명백하게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분명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가장 근대적인 정당 구조를 가진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가지고 명확한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권내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공부할 수록 소중하게 다가오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결국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공부를 마친후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보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운동권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변에서 손가락질 해도 그래도 희망의 근거는 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가야할 길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를 심각하게 느낀 것은 부유세 공약을 실현시키겠다며 입당했던 윤종훈 회계사가 탈당했을 때였다.
이미 자주파가 최고위원회를 싹쓸이 했다고 말이 많았었다. 그 때 윤종훈 회계사는 '선거때 써먹었으면 됐지 부유세 얘기를 왜 자꾸하느냐'는 최고위원회의 분위기에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10여년 전 투쟁에만 목 매던 학생 운동시절을 그대로 연상시켰다.

안그래도 2004년 국회 진출 후에 학교 급식 운동,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운동 등 활발하고 생동감 있었던 생활 정치가 오히려 실종되고 뻔한 정치투쟁에만 당이 휘말리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수의 조직력으로 당권을 장악한 자주파와 그런 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잘 몰랐었다.

그 때는 의원의 당직 겸직 금지 조항으로 정책을 실현시키는 공간인 의회와 대중과 호흡하는 공간인 당을 분리시킴으로서 생긴 병폐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2006년 부당한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선거로 나설 때, 의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됨으로서 이런 병폐가 풀릴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반겼다.

그런데 당대표 선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거법 위반으로 조승수 전 의원을 대표로 뽑아도 대표직을 수행 할 수 없다는 흑색선전이 선거를 뒤덥었고, 결국 인지도에서 한참 떨어졌던, 그러나 자주파가 지지한 문성현 대표가 선출되었다.

게다가 당이 정책 정당으로 발전은 고사하고 이상한 일만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선거 참패로 지도부가 총사퇴해봤자 선거를 하면 자주파 지도부가 또 당선 되었다. 종이당원, 대리 투표, 조직 동원 등 6, 70년대 독재정부를 연상시키는 부정행위 사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당은 매번 유야무야 넘어갔다.

당 회계는 공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엉망이 되고 당직자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당 책임자 입에서는 '헌신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헌신성은 10여 년전 지겹도록 들었던 자주파 운동가의 핵심 덕목이었다. 그 것이 고작 국가 보조금까지 받는 제도권 정당에서 월급도 제대로 안주면서 잠자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소리였단 말인가. 그런 아마추어적 사고로 다른 제도권 정당과 경쟁이 될리 만무했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도 모자를 판에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있는 사람도 몰아내고 있었다.

점차 퇴행적으로 변해 간 민주노동당, 드러나는 자주파 당권장악의 의미

그럴수록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갖는 의미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자주파 비판에만 안주한 상대 정파라는 평등파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은 자주파대 평등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수의 조직력으로 언제나 당권을 장악하는 자주파는 단지 평등파 뿐 아니라 다양한 당내 논의가 당 활동에 반영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이는 제대로된 제도권 정당으로 성장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한 운동권식 당 운영으로 민주노동당을 점점 추락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정점은 지난 대선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권영길 후보가 내세운 '백만 민중대회'였다.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이 몰락한 그때 새롭게 진보의 가치를 세울 수 있는 그 때, 진보적인 정책적 비전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그 때, 중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고작 판에 박힌 '대규모 집회' 였다.

이 역시 그 아득한 10여년전에 학생시절 들었던 계급혁명의 자주파 버전인 '전민항쟁'의 재판이었다. 기가 턱 막혔다. 산속에서 아직도 2차대전에 끝난지 모르고 숨어있었다던 일본 병사가 생각났다. 당원용 메일로 날아드는 그 10여년전 학생운동권 문건과 거의 다름없는 수준의 논리를 보면서 절망했다.

원내 3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당 해산에 가까운 3%의 지지에 멈춘 이후에야 당 혁신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종북주의를 말하면서 당을 일찌감치 떠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세운 당이었는데, 아무리 그렇게 당이 썩었을까 등등 아쉬운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심상정 의원이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간 정책적 비전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그러면서 가장 선명한 민주노동당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정치인 아니었던가. 그가 당대회에 제출할 혁신안을 제시했을 때 단호한 조치들에 다소 놀라웠지만 그간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의미했던 바들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수순으로 이해 되었다.

당대회 혁신안은 자주파가 반성과 혁신의지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즉, 최소한 그동안 극단적으로 드러났단 당권파의 폐단들을 자주파를 비롯한 당 자체내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청산하고자하는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당 혁신은 요원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 폐단들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당원에 대한 불분명한 조치였고, 평화지향 정당으로 용납될 수 없는 핵 자워권 발언이었고, 종이당원, 집단 당적이동, 대리 투표 등 추악한 부정행위로 당권을 장악해 온 패권주의 였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에 대한 제명 안건은 자주파가 당의 정체성을 기본적으로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원의 성향 분석 자료를 북한에 넘긴 스파이 행위는 당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단호한 조치 없는 당의 혁신이란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주파 인사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이를 '신념'의 문제라고 했다. 북한을 위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신념이라면 그것은 말그대로 종북주의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주파는 당대회에서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총공세를 펼쳐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조차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압도적 표차로 혁신안을 부결시켰다.

설마설마했던 종북주의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것이 얼마나 당을 썩게 만들어 놓았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종북주의가 아닌 패권주의라 생각했었지만 결국 '종북주의를 하기 위해 패권주의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진중권씨의 지적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순간이었다. 종북주의라는 퇴행적 사고에 젖은 이들이 이를 억지로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왔던 각종 부정행위들이었고, 그 외골수에 다양한 논의와 대안은 압살돼왔던 것이다.


이미 그 전에 자주파는 대선 참패를 평가한 안건에 대해서도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수정함으로서 참패를 인정할 뜻도, 그래서 이를 극복할 혁신을 받아들일 의사도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것도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혁신 불능정당이된 민주노동당이 이젠 진보정당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을 떠나고자 한다. 혹자는 민주노동당을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하지만 당 정체성 부터 부정하는 세력이 다수를 장악해 당전체를 좌주우지 한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무슨 재주로 당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이제 한국을 떠나온지도 5년째, 10여년전 학생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못한지 꽤 되었다. 생활인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운동한다고 현장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민주노동당 사태에서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썩어 문드러지고 무너지는데 일조를 했다면 정말이지 마음껏 원망하고 싶다.

이제 통일과 자주를 '자주파'와 분리하고 그들의 진보운동내 역할을 재평가 할 때

나는 통일 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사회 핵심 문제라고 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핵심 과제중 하나라는 점을 충분히 동의한다. 또한 나는 자주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반미에 매몰되는 단순한 사고를 거부하지만 외국에서 볼 수록 우리사회가 얼마나 미국에 편향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에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된 우리의 역할을 찾고 우리사회의 대안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통일과 자주의 가치를 운동권 세력인 '자주파'와 이제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와 분리하여 그동안 학생운동의 몰락과 노동운동의 쇄락과정 등에서의 '자주파'의 역할에 대하여 진보운동 전체가 재평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퇴행적 운동권 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자주파'가 그 특유의 조직력으로 또다른 진보운동을 망가트리는 것을 방치하기엔 우리에겐 이미 기회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과제와 자주의 가치가 '자주파'의 전유물이 되어 진보운동에서 함께 몰락하기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자주파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맹목적이리 만큼 쫓는 그 '자주'와 '통일'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퇴락시키고 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반성도, 혁신도 부정하는 당신들은 다른 이들이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 진보임을 부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몰락도, 심지어 지난 대선 문국현 후보의 출마까지 미 중앙정보부의 농간이라고 부르짓는 그대들은 심각할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경영과 형님 아우 할 소리일 뿐이다.

- 2008년 2월 10일 오마이뉴스 기고, 11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나는 왜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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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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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중권이 맞다 민주노동당내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2008/03/16 13:56
    삭제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에 대해 '그 사람들 절대 진보진영이 아니다'며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냈다(진중권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얘기 들어보면 가관"). 진중권은 기사에서 민주노동당내 자주파에 대해 '진보가 아닌 종교집단'이라고 잘라 말한다. '북한을 상전으로 모시고, 북한을 본사라 부르는' 등의 대북 종속성을 비판하면서다. 비민주적인 방식의 '쪽수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바른 지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비판받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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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치
    2008/02/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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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영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겠지요. 바로 이런 솔직함으로 좋은 세상 만듭시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뵙기를 빕니다.
  2. 장지영
    2008/04/17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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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데 글을 보니 참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직접 겪으신 건가요?
    마찬가지 이유로 종북으로 몰아가며, 민주노동당 죽이기에 나섰군요.
    저는 평등파 자주파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도 않고,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편가르는 그런 것도 솔직히 역겨운 평당원입니다.
    님이 말씀하신데로 운동가의 핵심덕목이라 하는 헌신하는 지역이 일꾼들을 보며
    새삼 저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당이 있구나
    내돈 만원이 아깝지 않겠다 여겨 당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팔짱끼고 지켜보다가 조금씩 함께 장애인 이동도우미나 푸른학교사업을 했고,
    이후에는 정치적인 활동까지 했습니다.
    이라크파병반대, 선거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투쟁, 뉴코아 이랜드 투쟁. FTA투쟁등
    지역사업부터 선거, 그리고 투쟁.
    후보로 나간 사람들이 평택에서 연행되어 가면서까지 몸사리지 않는 그들을 보며
    믿고 함께 해도 내청춘 아깝지 않겠다 여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얻어가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보는 아니, 제 지역에 사람들을 보면 지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저 역시 너무 힘들어 잠수도 몇번 타보고, 회피도 해봤습니다.
    그럴정도로 그들은 당신이 비꼬는 그 헌신.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가 된건지. 북을 상전으로 모신다구요? 참.....예전 독재시절 빨갱이로 몰아가던 때보다 더 무섭습니다.
    4년간 의정활동하며 동지라 하던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아가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아주 어렵고 외롭게 만들고, 어쩜 그리도 냉혹하고 무서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 지도부 두 정당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당원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고 상처준 점 무릎꿇고 사과해도 풀리지 않을 참입니다.
    대북종속성을 얘기하는 지역의 일꾼은 없습니다.
    그냥 6.15나 8.15 행사에 가서 통일을 얘기하고, 축제처럼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곤 했지요.
    저희는 평택과 이랜드 투쟁에 사활을 걸고, 싸웠습니다.
    평일에도 퇴근하고 가까운 야탑과 강남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눈물을 흘리고,
    평택에 어르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사무치기도 했습니다.
    명절에는 꼭 어르신들을 찾아가 마을잔치도 벌이고. 떠나가셨지만, 땅은 빼앗겼지만,
    미국때문이 아니라, 부당한 정부가 아니라, 정말 그 늙고 힘없는 어르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네들은 참 말도 잘하지요.
    저는 무식쟁이라서 저의 당을 옹호하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진보신당이라고 하는 곳은 연예인들도 다 가셨고, 평론가들 , 말씀 잘하시는 언변가들이
    넘쳐나서.....참 부럽기도 합니다.
    그곳에 계신분들. 저희 종북으로 몰고 마음이 어떠신지 묻고 싶네요.
    한나라당, 조선일보보다 더 무서운 당신들이 그래서 더 더 밉고 싫어집니다.
    언젠가는 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3. toakdmf
    2008/05/12 13: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여보시오...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를 쓰신분!!!평택의 어른들은 않지켜주어도 좋으니 당신식구들과 부모님부터 잘~~~모시길 바라오...정치는 꾼들한테 맏겨두고 제할일이나 잘하면 이것이 애국이요....(무실역행)!!!!!!!!!!!!!!!!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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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그러나 이미 통일만으로 절대선이던 시기는 지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역사적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제 두번째라는 점에서만해도 그렇다.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는 큰 차이가 있다. 첫번째는 반세기의 금기를 넘어 새로운 평화시대를 여는 하나의 굵직한 계기를 만들었다면 두번째는 첫번째 틀거리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보다는 첫번째 틀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쐐기밖기 성격이 강하다. 또 첫번째는 현직 대통령 중반기여서 합의사항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책임지고 추진할 여지가 많았지만 두번째는 임기말 대통령이니 상징적 의미 이상이기가 힘들다. 평화선언도 '선언'일뿐 중국과 미국의 사인없으면 실제 구속력있는 '혐정'이 되지 못하니 실질화시키는 것은 다음 정부에 달렸다. 지금 현재 미국 대통령과 면담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다가 사실무근이어서 망신당한 그런 후보가 그 자리를 꿰어찰 가능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곳 영국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주요뉴스라기보다는 단신이었다. 알자지라 영어방송에서는 첫머리 소식으로 장식했지만 회의적인 시각은 여전히 묻어났다. 내용(substance)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비중있게 등장했다. 앞서 얘기한데로 언론의 입장에서도 상징적인 그림 이외에 실질적으로 건질 내용이 없으니 이해못할 접근이 아니었다. 가디언에서는 어차피 정상회담이 진행중인 6자회담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미국 관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북한이 핵불능화 일정을 제시했다는 뉴스는 정상회담에서가 아니라 6자회담장에서 나왔다. 정상회담 둘째날 영국 현지뉴스에서 다룬 한국 뉴스에는 6자회담만 있었다.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을 정치적 쇼로 폄하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구태에 젖은 인식의 습관적 비난이다.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분명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첫번째 회담으로 연 평화시대를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더욱 쐐기를 밖는 실질적인 의미는 분명히 있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알자지라와 인터뷰한 한 재한 인사는 남한사람들의 반응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여기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상관 안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평화세력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현 집권세력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남한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었다.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이후 사람들 사이에 남북관계에서 가능한 가장 치명적인 결과인 '전쟁'에 대한 불안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핵위기로 나라밖에서는 전쟁나네 해도 한국은 외국언론이 이해하기 힘들만큼 차분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빨갱이로 지목되던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다보니 반공이데올로기는 아주 없어지진 않아도 겨우 존재감만 확인되는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 간첩사건이 터졌지만 바라보는 눈은 크게 달라졌다. 친북적이라는 낙인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일상적 공포에 기반하기 보다는 퇴행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아직 효과가 있다는 점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TV에 등장하는 인공기를 불태우고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을 찟는 사람들도 퇴행적인 이미지를 주기는 마찬가지다. 집권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어떠한 세력도 이들과 가까워지는데 부담을 느끼기는 친북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현 우리나라를 분단체제로 규정하는데 동의하기 어렵게 된다. 분단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 중 하나임은 증명하지만 더이상 반공이데올로기가 현재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니 듯이, 그리고 전쟁위기가 전처럼 사회를 공포에 휘몰리게 만들지 않듯이 분단은 더이상 우리사회에 지배적 요소는 아니다. 사람들에게도 잔혹하게 진행되는 밑도 끝도 안보이게 심화되는 극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치솟는 사교육 부담, 확장되는 비정규직, 양극화, 그에 따른 사회불안 등이 눈앞에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로 등장한지 오래이고 이러한 위기들과 분단이 갖는 함수관계 역시도 그렇게 지배적이지는 않다.

분단은 오히려 현재를 규정하기 보다는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남한사회가 가지고 있는 극심한 경쟁지배사회가 갖는 위기상황과 극에 다다르고 있는 한계 상황을 분단극복 과정에서 해소할 수 있는 여지들이 존재한다. 즉, 현재 극단적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기본 이데올로기가 세계화 이데올로기라면 무한 개방과 경쟁이라는 더욱 심화된 경쟁체제로 가기 보다 북한의 새로운 성격의 노동력, 확대되는 내수 시장, 대륙으로의 활로 등 새로운 경제적 요소와 결합함으로서, 긴장해소에 따른 새로운 군사적 전략을 통해 지금과 같은 상호의 과도한 군사적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서, 또 외교적으로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보다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서, 다른 성격의 발전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분단 극복이라는 조건의 변화가 대안적인 패러다임 구성요소의 전부일 순 없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통일 대 반통일'로서 우리나라 상황을 이해하고 통일지향은 선, 반통일은 악이라는 구도는 더이상 유용한 틀이 되기가 어렵다. 이미 반통일을 전제로 한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독재와 그 독재 밑에서 제한된 경제주체가 특혜를 누리던 때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많은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이 동의하듯이 이미 지난 10여년간의 진전으로 더이상 그 이전의 긴장과 대결 지향으로 돌아가기는 매우 힘들게 되었고, 그럴 매력도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 그 어떤 세력도 (과거 반통일이라고 취급되었던 세력 조차도) 대결과 긴장을 통해서 무슨 이득을 얻는 것이 한계가 명백하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남북관계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가 중요해 졌다. 오히려 경제주체들에게는 긴장과 대결이 바로 금전적 손해로 연결되는 것이 너무나 명백히 눈에 보이지 않는가.

따라서 이제 '통일 대 반통일'이 아니라 어떠한 통일을 지향하는 가가 정말 문제가 되는 셈이다. 앞서 말한데로 현 정부가 제시하는 것 처럼 남북FTA식으로 그저 남한이 북한을 끌어안고 무한경쟁지배의 세계로 뛰어들자는 물귀신식 통일 접근법은 적어도 남한 사회에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우리사회의 모순을 북한사회에 이식시키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대안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리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물론 당장 북한사회 입장에서는 먹고살기 좋아지겠지만 (이것이 인도적 차원에서 현재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현재의 북한의 모순에서 현재 남한의 모순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 와중에 한계점이 다다르는 남한 사회와 같이 증폭되는 사회불안 속으로 걷잡을 수 없게 빠져들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통일 모델 처럼 단순히 교류를 증진시키고 북한을 남한과 비슷한 경제수준으로 올리고 점차 통합수준을 높여나가는 과정만으로는 남한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을 뿐더러 북한에 남한 수준의 번영을 꼭 보장할 수는 없으면서 문제는 이식시키는 과정이 되기 쉽다. 현 남한 체제는 그대로 둔 채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대륙 진출로 등 남북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이득만을 챙기겠다는 접근 법 역시 북한을 동반자로 보다는 대상화 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남한 사회를 이상화하고 있기에 역시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고, 북한 사회도 그에 따라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통일 모델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런 출발은 아직까지 소위 '진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일 대 반통일'의 낡은 틀에서 벗어날때 시작될 수있을 것이다. 현재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가급적 일단은 화려하게 치장하기를 앞다투어 경쟁하고 회의적인 시작을 비칠라 치면 일단 '반통일'로 규정해 놓고 시작하는 고루한 태도로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다. 현재 정상회담 조건에서 가능치도 않고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의제를 꺼내라고 강변하는 개념없는 매체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들어가는 것이 덮어놓고 반통일 세력 운운하는 것 보다야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아직도 북한의 북자만 나와서 얼굴 벌게지고 실제로 불까지 내뿜는 반공 바이러스 중환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우리의 미래와 상관이 있기엔 너무나 구태의연한 종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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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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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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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레드컴플렉스나 분단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통일 대 반통일' 구도로 과대포장하는 일부 진보에는 저도 거부감이 있지만 그것들이 현재의 남한사회의 여타 모순에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만 해도 대통령은 북한에 가서 친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정통부는 친북한 게시물 삭제라는 낡은 칼을 들고 설치니까 말이죠. 청와대는 또 거기에 부화뇌동하고 있고요. 보다 근본적으로 국보법이 여전히 많은 진보운동을 억누르는 전가의 보도로 남아있는 한 분단이데올로기는 어느 한쪽이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해봐야 별무소용이 아닐까 싶네요.
  2. 기인숙
    2007/10/04 15: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한의 기업들을 몰고간 대통령이 어떻게 빨갱이인지 알 수가 없다...그리고 어느 기업이 단지 어느 곳에 공장을 건설한다고 무한정의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오래가지 못할 정책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결국 어떤 식으로든 북한내 기업들도 자본주의 체제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다만 예산에서 매년 일정액을, 소득 수준도 있으니 예를 들어 1%내에서 반찟 나누어 북한과 세계의 빈민국을 반반씩 지원하는 형태의, 북한 정부에 지원하여 스스로 건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그리고 스스로 북한 내부에 적합한 산업을 찾아 내도록 하는 것이 지역에도 부합되는 일이다...만약 북한이 무기 개발과 수출에 역량이 있다면 남한이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자율권을 주는 것, 지자체에 대한 중앙 정부의 자세이기도 하다...이것이 진정한 체제의 통일로 가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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