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이 귀금속 가게면 ‘좌파’는 채소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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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진보신당이 명동에서 벌인 "대국민 감사 인사와 진보신당 입당 캠페인" 모습. 지금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이름 타령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다. 사진@진보신당


안타까운 총선결과는 뒤로 하고 몇몇 언론들의 판에 밖힌 전망과는 별개로 진보신당에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논의가 곰비임비 일어나고 있다.

아직 자체 내에서 뚜렷한 일정이나 방향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니 벌써 어떻게 진전될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역사에 의미있는 작업일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큰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논의는 뜬구름 잡는 담론 다툼 같은 기존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과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별 근거없이 서로의 과거의 우상들이나 갖다 들이대며 누가 원조이니 정통이니 맛골목 순대집 다툼같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신당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말들 속에 이런 우려가 전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당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레디앙에도 "
'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에 글이 실렸다. 하지만 내용은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재미있지 못했다.

'진보'나 '좌우'에 대한 의미에 대한 주관적 주장에 처음의 반이상을 할애하더니, 진보라는 것을 내세우면 10%에 불과한 '구역'에 갇히는 것라고 했다가, 또 당 이름에 '초록'이나 '사회'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피해야

생태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까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여론 조사에서 진보, 중도, 보수가 통상 서로 30% 내외 나타나는 현실에서 '진보'라고 하면 10% 속에 갇히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다시 국민들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을 상징하는 '초록'이나 '사회'같은 단어를 당명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홍기표는 진보와 보수는 낡은 개념이어서 버려야 하고 '좌우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와 보수는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라면 좌우라는 개념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좌우라는 개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것이 기원이다. 결국 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안정적이어서 형평이냐 효율이냐, 증세냐 감세냐 같은 뚜렷한 해법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나는 왜 필자가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통 그런 개념들과 보수와 진보도 똑같이 연결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진보나 보수나, 좌파나 우파나 상대적이긴 마찬가지이고 현재적으로 논의되는 서로 상대적인 해법과 서로 연결되는 것에도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지금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뿐이어서 이런 '단어'에 집착하는 논의가 소모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보나 좌파나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일 뿐

당명을 지을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서구에서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발달해 왔지만 해방후 좌우대립이 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졌던 우리 역사에서는 부정적인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제 논의가 자유로와지자 좌우파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주로 쓰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언론들은 특정 대상에 감정적 비난을 가할 때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좌우대립의 기억과 반공주의를 자극하는 의도적인 단어 사용이다. 그것이 졸지에 노무현 정부가 족보도 없는 '좌파'가 되어버린 슬픈 사연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론조사 등 국민의 정치적 입장을 묻는 설문에는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단어가 현실적 정치구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족적 소수정당이 아니라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제도권 대중정당을 꿈꾸는 진보신당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한 것은 오히려 다행인 것이다. 그 다음 '진보'라는 것에 실질적인 가치를 연결시키는 것은 진보신당의 몫이다.

다시말해 진보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이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인 것이지 '진보'라는 단어를 바꾸고 안바꾸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서 구체적인 의석으로 얻진 못했어도 이후 '지못미' 열풍 등 총선 전후의 언론의 주목 덕에 벌써 의미있는 지지율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그토록 목말라 했던 인지도 자체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의 논의는 서민의 고통에서 시작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신당'이라는 임시정당 냄새가 나는 것을 조금 고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라는 단어까지 빼버리고 완전히 다른 당명으로 바꾸자는 것은 총선과정에서 힘들게 얻는 인지도조차 버리고 보자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럼 총선 전 왜 힘들게 창당해서 선거에 참여했는가.

정말 '진보의 재정립'을 위해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 왜 이런 소모적인 일을 벌이라고 강변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지금 수준의 인지도라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당력을 낭비해야 할 것인가.

전국단위 중앙정치 투표율이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대중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7대 총선과 비교하여 총 유권자수 대비 득표수를 계산한 각 정당의 실질 득표율을 보면 범보수계열의 득표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범진보계열로 분류되었던 정당들은 반토막이다. 즉, 대중이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제도권내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곧 그동안 범진보진영의 주류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와 거리가 멀었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산이자, 진짜 진보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던 과거 민주노동당의 패배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진보신당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단 급하게 '그릇'부터 만들었다면 이제 부터 그 그릇을 넓혀가면서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이 환멸을 느낀 그 지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부동산 거품 등 서민들이 고통받고 한숨짓는 바로 그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뜬구름잡기를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 하자

그러면서 또한 현재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현실적인 답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에 뿌리박고 진전되어야 뜬구름잡기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진보든 좌파든 보편적 인권, 평등한 사회, 생태적 삶 등 근본적 가치와 현재적인 실질적 의미를 연결지어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 처럼 '진보'냐 '좌파'냐 '초록'이냐 '사회'냐 같은 대중들의 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표면적 단어부터 따지는 시비는 건설적인 논의 방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름 딱지 붙이기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제도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왜 그 짓을 자꾸 또 하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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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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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 이제 정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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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나라를 보았니... 과반을 확보한 한나라당, 그러나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폭탄을 혼자 다 끌어안게 되었다.


다시 습관처럼 언론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석 숫자를 따지면서 열심히 정국 전망을 하고 있다. 과반도 안된 총선 투표율에는 '민주주의 위기'라는 형식적 수사만 붙이고 말았을 뿐이다.

다들 총선이 쟁점도 이슈도 없는 이상한 선거라고들 했다. 출범 100일도 안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벌써 급격하게 떨어진 가운데 공천 혁명 바람까지 일으켰던 민주당에게 돌아간 성과는 많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결국 보수정당끼리 나누어 먹었다. 친박연대니 하니 정치인지 장난인지 구분도 안되는 정치 행태에도 그들은 도합 200석이 넘는 의석을 휩쓸었다.

숫자를 따지는 언론은 보수중심의 정치권력의 재편이라고 진단하고 나섰다. 탄핵 역풍으로 도래했던 진보중심 정치가 뒤집힌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과반도 안되는 투표율에 민주주의적 대표성에서 부터 흠집을 안고 시작하는 이 보수 중심 정치에는 예전에 있었던 무언가 변화에 대한 바람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자기 세상이 다시 찾아왔다고 흥분하고 있을 보수 정치인 나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실제 이번 선거로 보수세력은 완벽하게 다가올 폭탄들을 혼자 꼼짝없이 다 껴안게 되었다.

오늘의 '압승'은 내일의 '재앙'이 될 가능성이 매우 짙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답답해 지는 이유는 그 재앙이 보수세력에게만 그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절망의 정치

우리 현대사가 부침을 많이 겪긴 했어도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래도 안정된 사회를 구축해 왔었다. 6~70년대에는 독재의 그늘 밑에서도 우리사회는 전반적으로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이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아래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로 보상을 받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간에 걸친 두자리수 경제성장은 독재로 인한 소외와 자유 억압의 문제를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는 정도 였다.

8~90년대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가 달성된 이 후로는 그동안 억압되었던 소외와 정치적 사회적 자유의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경제적 상황아래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은 이 방향으로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기대는 80년대 말 대규모 민주화 운동과 90년대 단계적 민주정부 이양과정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사회는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97년 경험한 IMF 경제위기는 실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은 그 이전과 문제의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경제 개발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진전되었던 사회적 욕망에 대한 실현 주기가 일단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어느정도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의 획득으로 이제 더욱 나아간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는데 되려 상당수 사람들에게 그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이 주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위기 극복에 대한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형성이 되었었고, 정부는 4인 가족 100만원 소득은 보장하겠다는 말로 유명했던 기초생활보장법 등 복지의 제도적 확장으로 어느정도 응답하였다.

또한 신용카드, 대출 촉진 등을 이용한 단기적 부양책으로 체감경기를 올려놓아 여전히 새로운 기대에 담긴 사회적 욕망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은 본격적인 문제가 점점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삶의 질의 향상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양극화는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노동인구의 반을 넘은 비정규직 문제 역시 날로 심각해 지고 일반적인 직장도 불안정해져 가계수입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었다. 그 반대로 일반 가정 가계 지출은 폭증하는 사교육비로 점차 심각하게 압박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7~80년대식 관료사회의 지배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는 개별적 개혁 지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정치와 거의 연결 시키지 못했으며 그 결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 사회적 위기에 전혀 의미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체감하는 삶의 질과 박탈감이 날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정부로 표출되었던 새로운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점차 분노와 실망으로 변해갔으며 그것은 이미 지난 대선으로 나타났다.

과거 회귀적 결과를 빚은 지난 대선은 그 이전 대선과 같은 사회적 기대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 필요없고 경제는 살리겠지'하는 자포자기적 투표 행위에 가까웠다.

혹자는 이를 철저한 계약적 투표라고도 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 듯 당선 후 이렇다할 성과는 보여주지 못한 채 영어 몰입교육 등으로 사교육을 부채질 하는 등 불안감만 높이자 지지율은 기다릴 것도 없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것이 지금 총선이었다. 새 정부에 대한 급격한 지지 철회가 상대당인 민주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 민주당 집권에 대한 체감이 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즉,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사회적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 아니 대안의 부재로 표출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겐 총선이 더이상 의미가 있는 것일 수가 없다. 선거가 자신의 삶과 별 관계가 없다는 반복적 학습이 된 국민들은 선거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계니 친박연대니 여야 중진들의 빅매치니 하는 정치연예뉴스들은 말 그대로 안방극장의 드라마 이상의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쟁점도 이슈도 살리가 없다. 그냥 사람들은 정치를 봐도 드라마 보듯하는 인식 이상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뢰와 폭탄이 즐비한 우리사회 현 상황

하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은 상황은 정말 만만치 않다. 우선 경제위기의 경우 위아래 안팍으로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엄습해 오고 있다. 당장 세계에서 신용위기로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암울한 경제 전망은 아마 베이징 올림픽 후에 제대로 그 위력이 나타날 것으로 국내외에서 많이들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바이오 연료, 중국과 인도의 소비 급증으로 인한 각종 곡물, 유제품 등 식품가격 상승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은 완화되기는 커녕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안그래도 악화된 우리나라 고용상황에 치명타를 안겨 줄 가능성이 크다. 식품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은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주어서 기형적으로 유지되었던 자영업의 고용 흡수 효과를 급격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인한 불안안 고용시장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 최장 시간을 자랑하는 장기노동과 맞벌이 등으로 어느정도 생활 유지를 할 수 있으면서 낮은 자영업으로 인한 서비스 가격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각종 가사노동) 비용과 시간 또한 상쇄 받을 수 있었지만 식품가격 상승은 이같은 고리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영업으로 인한 고용 흡수 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의 삶에도 단순 인플레 이상의 타격을 입힐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은 아직 그 깊이 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70년대 같이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의 조정으로 인한 위기가 아니라 달러화로 상징되는 그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해석들은 지금 다가오는 위기 상황이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피크 오일설(석유 최대 생산 시점이 지났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은 산업혁명이후 가장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에 비하면 가장 세계 정치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기후 변화 문제는 아직 불확실한 위기측에 속한다.

외부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사회적 욕망의 정치적 표출 경로가 차단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인 새로운 이행과정을 생각해 볼때 그 심각성은 매우 커진다.

즉,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을 지나면서 이전 사회 계급구조의 물적 기반이 거의다 붕괴되었엇다. 이러한 배경이 결국 최근까지, 경제수준에 비해 세계적으로 최악으로 평가 받는 열악한 분배구조나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어느정도 유지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던 셈인데 점증하는 양극화가 이런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급증하는 사교육비가 결국 일반 가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어느정도 사회 계층간 간극을 심리적으로나마 무마시켜 주었던 교육 제도의 의미마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교육의 일반화는 '용'은 커녕 '생존'을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을 치루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예전에 자식에 대한 교육의 열정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긴 것이었지만 이제는 자식을 생존 시키기 위한 절박한 의무 이상이 되지 못해 자식 교육을 통한 희생적 삶에 대한 보상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새롭게 계급화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전통적 의미의 생산수단 소유여부로 따지는 옛날의 그 '계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단 경제적 소득 뿐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에서의 소외까지 결부되어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의 붕괴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그동안 부자든 아니던 모두 한국 공동체의 일원이며 서로를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욕망이 정치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은 매우 혼돈스럽고 위험한 형태로 변질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구조의 전환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제도와 결부되어 '연착륙'으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간 또는 개인과 사회간의 격렬한 충돌로 표출되는 '경착륙' 또는 심할 경우 '사회적 붕괴현상'까지 경험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요즘 점점 문제가 되고 있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형 범죄, 어린이 등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 등으로 시작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더욱 심각해지만 예전에는 별로 생각지 못했던 수준의 폭력과 범죄가 단순히 불안감을 넘어 일상적 위험으로 넘어오게 될 수도 있다. 거리에서 이유없이 총맞아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남미 일부국가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제까지 정치적 집단적 의사 표현이란 노조나 사회단체 등에 의해 '조직'된 집회와 시위정도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에서 비조직적이고 극단적으로 폭력적 형태인 폭동과 약탈이 출현할 수도 있다.

사회적 위기 가속화시키는 정부와 대안없는 야당

 이미 현 정부는 이렇게 심화되어가는 상황에대한 대처 능력은 전혀 없을 뿐더러 가지고 있는 대책이란 족족 상황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을 몇달 채 되기도 전에 적나라 하게 보여주었다.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사회집단간 합의를 바탕으로한 위기관리체제를 준비해도 모자를 판에 가능하지도 않은 6% 경제 성장 수치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는 이명박 정부 머리에는 이자율 인하, 규제완화 등 각종 도박적 정책들만 즐비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민영화등 그나마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무장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안그래도 급속하게 다가오는 '경착륙'의 충격을 더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서민들이 위기상황에 맞는 충격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는 얘기고 이는 사회적 붕괴 현상을 더욱 극적으로 출현하게 만들 수 있다.

 총선으로 집권세력으로 등장한데 이허 입법기관까지 장악한 보수 세력은 점증하는 사회적 불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혼자 다 떠맡게 될 것이다. 누가 발목을 잡는다느니 하는 핑계거리마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어느정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발전하기 힘든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다른 표출경로도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대 야당인 민주당, 소위 '개혁세력'은 그 대응능력의 바닥을 노무현 정부에서 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싹수마저도 전혀 보여준바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개혁세력의 최대치가 노무현 정부 정도라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치명적 한계는 명사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데에 있다.

즉, 자체의 개혁적 '색채'만을 가지고 어떤 사회적인 근본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세력 기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구 유럽사회가 전후 복지국가로서의 체제개편을 이루어 낼때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세력 기반이 진보정당을 통해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었던 그런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개혁세력'이라는 정치 집단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어떤 사회문제에 대한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떤 혁신적인 안이 아니라 어느정도 '색채'를 내면서 기존 질서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어설픈 타협안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이런 한계는 현재와 같은 근원적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 전형적 예를 보여준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 였다.

그렇다면 그래도 의미있는 의석수는 확보한 민주노동당은 어떨 것인가. 그 한계역시 지난 국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 총선에서의 기반을 바탕으로 재창당을 포함한 혁신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장악해온 자주파 인사들이 하는 얘기의 핵심이란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하자'는 정도가 고작이다. 80년대에 묶여있는 그 사고는 재야 운동권과 제도권 정당의 역할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책임있는 정당 인사는 최근에 '개방형 경선'을 민주노동당 개혁안의 핵심인 것 처럼 이야기 했다. 개방형 경선이 구민주당에서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명사정당으로서 대중적 기반이 없는 한계를 그런 일종의 '편법'을 통해 보완하는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출발부터 대중정당으로 시작하여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당원제도를 갖춘 민주노동당에서 개방형 경선을 '개혁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가 기존 정치권과 무엇을 어떻게 차별하고자 했는지 하는 기본 문제와 방향의식 까지도 상실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유의미한 의석수 확보는 이런 수준의 '내부 혁신파'의 발언권을 높여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진보신당, 진짜 큰 그림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것은 뚜렷한 사회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자 하고 그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정확히 잡혀있는 진보신당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의 원내 진출 실패는 내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최소한의 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세력으로서의 운신의 폭이 협소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출발은 철저히 밑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지역을 다져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그것이 정공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얘기한 이러한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으로 확보해 놓고 있는 실력있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현실정치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아온 대표 정치인, 그리고 현장과 호흡했던 활동가들을 포괄하면서 실무 연구 인력까지 보강된 '진보 대안 위원회'같은 사업을 생각해 봄직하다.

당연히 이런 논의는 담론에 그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정말 몇년에 걸쳐 수회의 논의용 보고서와 연구보고서를 거쳐서 우리사회의 위기 현상황과 핵심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는 것에서 부터,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그에 이르는 전략적 방향과 실현가능성있는 전략적 정책 프로그램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강령수준의 비전수립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명분과 담론만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세력 재편을 주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또 그 논의 결과 생산된 단계적 정책들을 하나하나 지역사업으로 부터 현실화해내고, 동시에 중앙정치를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잠재적 실력을 입증 받을 수도 있을것이다.

진보신당은 책무는 단순히 명분상 '진보세력'으로서 한국 현실 정치에 자리잡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안전벨트도 없이 위기로 치닫는 한국사회에 그래도 남아있는 현실적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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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의 최대 패배자

    2008/04/1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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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규 / 정치평론가 이번 총선은 보수진영이 압승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수의 과반을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편하게 해줄 수 있도록 국민이 ‘견제론’ 보다는 ‘안정론’을 지지한 결과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현상적 분석이다. 내용은 반대이다. 이번 총선은 안정론을 지지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선거가 아니라,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영남의 맹주는 박근혜 한나라당은 영남이 최..
  2. 찝찝한 18대 총선 :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2008/04/1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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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찝찝한 18대 총선 :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민주주의'의 탈신비화를 말하다~ 우선 어제(9일) 있었던 18대 총선에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투표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권리를 교묘히 갈취해 국가와 기득권을 존속.유지시켜주는 선거.투표제도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번 총선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올바른 즐거운 투표(원더걸스의 선관위 광고도 조내 보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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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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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다가오는 내일이 참으로 걱정되는군요. 그냥 흘러가라고 두기에는 이번에는 정말 너무 위험한듯 합니다.
  2. 2008/04/10 15: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트랙백을 따라 왔습니다. 이번선거로 진보세력이 새로운 재편 논의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심도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암스테르다머
    2008/04/11 00:5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밑줄 쫙 긋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이 보여준 것 같은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정치에 사람들이 붙으면 됩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닫힌 정당이 아니라 열린 정당, 다양함을 인정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정당을 만들어야죠. 현대의 군주는 정당이란 명제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솔로몬 지혜도 안통하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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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이냐 수습이냐... 민주노동당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2008년 1월 1일 낮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 열린무자년 새해 단배식에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천영세, 심상정, 노회찬 의원)
ⓒ 황방열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대선 참패 이후 위기는 오히려 깊어가는 모양새다. 현 민주노동당으로서 상징적 의미에 가까웠던 대선보다 이제 실제 몇 석이냐는 성과를 얻어야 하는, 실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총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당의 존립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내노라하는 논객들의 민노당 분당 논란을 둘러싼 가시 돋친 설전까지 오가고 있다.


인물 중심의 구태정치가 반복되고 실제 정책 중심 정치의 기반이 되어야 할 정당구조가 취약한 우리 정치에서 제대로 된 근대적 정당구조를 갖춘 유일한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그동안 큰 기대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이번 대선의 경우 종파싸움에 얼룩져 참패가 오래 전부터 예고됐었지만, 그만큼 곪아터진 환부를 도려낼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희망 있던 '심상정 비대위'의 무산


선거 직후, 참패한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얻은 최대 성과인 심상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안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자주파 지도부에서 말하자면 상대 정파라 할 수 있는 심상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혁신기구를 제안했으니 스스로 책임을 자인한 셈이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얼굴 마담이 아닌 실질적 권한이 있는 비대위여야 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현 위기상황을 보자면 응당한 요구였고, 지역구 출마계획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심상정 의원으로서도 정치적 생명을 걸 수밖에 없는 만큼 합당한 요구였다. 개인적으로 '이 제안을 지도부가 받으면 그래도 활로가 열릴 텐데...' 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희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기대 속에 열린 중앙위는 비대위 구성에 실패했다. 한때 심상정 의원과 지도부 사이에 극적인 비대위 구성안이 합의되었지만, 평등파 측 중앙위원들이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고 자주파 측은 다시 합의된 비대위안을 거두어 들이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이 난 것이다.


대선 패배를 비롯한 현 민주노동당 위기의 1차적 책임이 자주파 지도부에게 있었다면, 현재 당 혁신을 가로막는 1차적 원인이 분당론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쪽에서 당을 깨자는 사람들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쪽이 당을 깨려고 명분 쌓기 한다는 의심이 있는 한 서로 양보하고 합의하는 혁신안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 민주노동당 혁신의 걸림돌은 '분당론'


그렇게 중앙위가 무산된 후, 그래도 위기는 극복하고 보자는 분위기보다는 분당론이 더 확산되는 모양이다. 분당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단합을 주장하던 쪽에서도 조기 당직선거를 강행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패권주의로 또 한 번 뻔한 결과를 낳을 당직선거를 주장하는 것은 또다른 분당론에 불과하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많은 이의 희망을 담아 드디어 현실 정치에서 자리잡았던 민주노동당의 몰골은 그만큼 처참하다. 매우 서글프게도 민주노동당은 솔로몬의 지혜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왔다. 아이를 반으로 자르겠다고 하는 마당에 두 부모가 자르면 어떠리 하고 있는 꼴이니 말이다.


해묵은 대동단결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선점(positioning)의 미학이란 말에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분당에 앞장서는 평등파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패권주의적 성향이 덜하여 향후 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현재 선점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는 세력인가는 아직 회의적이다.


평등파 최대 정파 '전진'의 현 집행위원장인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 시절 읊조렸던 '사회주의' 구호가 이번 대선에서 나온 '코리아연방공화국'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서울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당장 이야기해야 할 선거판에서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외친 것이나 민생경제가 핵으로 등장한 대선에서 난데없이 통일방안 같은 구호나 내세우며 '여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라고 외치는 자주파 인사나 서로 내용없고 엉뚱했긴 오십보 백보였다.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문래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성현 대표 등 참석자들이 지도부 총사퇴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한상균
민주노동당 총사퇴


진보신당 창당한들 사람들이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사람들은 분당론에 발언하는 인사들처럼 이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영국 정책 발달사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요지가 그것이었다. 대처리즘의 등장으로 좌우간 이념논쟁이 한참이던 1980년대 문헌이었는데, 국가 축소와 가족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당과 국가 책임과 국가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노동당의 싸움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정작 사람들은 가족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가의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대선 결과를 보더라도, 진보정치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민노당 지지자 중 권영길 후보를 찍은 사람이 23.5%에 불과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명박, 이회창 후보를 찍은 사람이 합쳐서 30%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우리가 진짜 진보고 노무현 정부는 보수정권이라고 외쳐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구 여권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민노당 지지율도 같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러한데 진보신당을 창당해 지금까지 이룩해온 진보정당의 자산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하다.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한들 지지층이나 당원이나 '와'하고 몰려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정치적 기반이 상당 부분 해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현실적이다. 보수여권과 민주노동당도 잘 구분 않던 사람들이 자주파 정당과 평등파 정당을 구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대중정당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대중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적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검증된 비례의원들이 지역구를 확보해야 하는 중대한 선거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을 넘어 '민주노동당'이란 이름으로 다져온 현실 정치의 지지기반은 더없이 소중하다. 더군다나 민주노동당은 지금 지난 선거에서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10석을 확보하여 실질적 정치력을 일부 확보한 데 이어 그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례 대표로 검증된 의원들 상당수가 지역구에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그 상당수는 당선을 기대할 만하다. 현실정치에서 더욱 의미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런데 분당을 하거나 분당론에 시달려 정당 자체가 흔들리고 자리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선을 맞이한다면 새로운 성과는커녕 있던 성과까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 공산이 크다. 진보정당운동의, 민주노동당의 가장 핵심적인 자산은 정당 그 자체인데 그 정당이 흔들린 상황에서 인물만 보고 표가 오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한 명이나 지역구에서 당선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결국 지금의 분당론은 현 정치상황에서는 현재까지 진보정당 운동의 성과를 일단 날려버리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안 그래도 비전과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 현실정치에서 퇴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쉽다. 희망이 없고 암울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고 희망의 근거를 다질 기반조차 보통사람들의 눈에선 사라지는 것이다. 식자들끼리 뒤에서 무슨 의미를 부여하든 말이다.


종북주의 청산보다는 '선거강령' 제정으로 건설적 극복을


물론 어설픈 단합론은 역시 똑같은 자멸의 길임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기에 중앙위에서 합의되었던 '심상정 비대위' 안이 현 상황의 최선의 답일 수밖에 없다. 종북주의 청산을 들고 나오는 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전 몇 번의 선거에서도 패배로 인해 책임질 세력이 다수파의 패권주의적 성향으로 인해서 선거에서 또 지도부를 차지하고 또 지도부를 차지해 버리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리조차 작동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네거티브적 방향으로 현 상황이 극복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비대위를 중심으로 '선거강령(election manifesto)' 제정을 추진해서 당의 정책방향을 선거에 맞춰 구체화하여 제시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는 해소될 수 있고, 오히려 더욱 건설적인 방향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당헌 당규 개정을 통해 이렇게 합의된 방향이 향후 당 활동에 구속력을 가지게끔 할 수도 있다.


물론 서로 영원히 같이하지 못할 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진보정당이 대선보다도 정치세력화에서 실질적으로 의미가 더 큰 총선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일단 쪼개고 보자는 주장은 생각보다 더욱 큰 것을 통째로 잃게 할 수 있다. 정말 그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긴 호흡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기 쉽다.


선거강령이란


선거강령(manifesto)은 그동안 이른바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예산까지 고려한 구체적 공약 정도로만 알려져 왔으나, 실제 그 모델이 된 서구 민주주의 정치에서 선거강령의 의미는 단순한 공약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강령은 경제, 교육, 보건, 복지, 치안 등 각 정책 영역별 정책 방향과 핵심 정책이 제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기반으로 포괄적인 비전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우선 순위까지 포함하는 그야말로 정당의 정치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선거는 궁극적으로 이 선거강령을 두고 선택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선거 후에도 정치적인 구속력을 발휘한다. 간단히 말해 선거 때 입에 발린 소리하고 선거 뒤에 딴소리하는 것이 그만큼 통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당이나 집권당은 물론이고 소수당이나 야당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즉 반대당도 선거 때 제시되었던 선거강령을 기반으로 선거 후에 정책 비판과 대안 논리를 지속적으로 펼치며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킨다.


인물 중심, 이미지 중심, 상호 비방 중심의 선거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수준의 정치행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 중 근대적 정당구조의 이점이 있는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이 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선거강령 제시 과정을 통해서 추상적인 구호나 이념을 정책과 입법안으로 구체화해 대중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고, 또한 이를 포괄적인 비전과 방향으로 묶어냄으로써 실질적인 의회 활동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당내의 갈등과 논란 역시 구체적 대안을 중심으로 건설적으로 해소하고 이를 명문화할 수 있을 것이다.


- 2008년 1월 4일 오마이뉴스 기고, 5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주장] 솔로몬 지혜도 안 통하는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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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사장
    2008/01/05 17: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마이뉴스에서 보고 들어옵니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는 명쾌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파도 아니고 평등파도 아닌 일반당원으로서 무척 공감합니다.
    선거강령이라는 구체적인 실천대안도 있고요.

    한 가지는, 선거강령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날 서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합의에 의해서 단일한 방향이 도출될 수 있을까요? 언급하신 외국의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네요.
    • 2008/01/05 19: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도 정파들끼리 감정들만 쌓여서 다투는 것이 답답하여 이성적으로 따져보자고 쓴 글인데 좀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저는 영국에 있어서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의회중심제를 채택하여 다수당 당수가 총리가 되는 영국 정치체제에서는 결국 총선이 총리를 뽑는 선거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수가 중심이 됩니다. 따라서 보통 당수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선거강령 작성을 하도록 하지요.

      그럼 그 위원회는 당의 중지를 모아서 선거강령을 소책자 형태로 출판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당권파의 의도가 많이 반영이 됩니다. 그 시행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수가되니까요. 또 그 당수는 이미 당내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며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 그 방향에 당의 동의를 거친 셈이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총선의 경우에는 입법활동을 중심으로 선거강령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금 민노당의 경우에는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한다면 비대위, 또는 비대위가 구성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결성해서 작성할수 있겠지요.

      실질적으로 따지면 이번 선거강령은 평등파가 좀 우위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인 만큼 양정파간의 갈등은 누가 더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느냐의 경쟁이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내용도 없이 감정적으로 다투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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