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이 귀금속 가게면 ‘좌파’는 채소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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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진보신당이 명동에서 벌인 "대국민 감사 인사와 진보신당 입당 캠페인" 모습. 지금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이름 타령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다. 사진@진보신당


안타까운 총선결과는 뒤로 하고 몇몇 언론들의 판에 밖힌 전망과는 별개로 진보신당에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논의가 곰비임비 일어나고 있다.

아직 자체 내에서 뚜렷한 일정이나 방향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니 벌써 어떻게 진전될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역사에 의미있는 작업일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큰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논의는 뜬구름 잡는 담론 다툼 같은 기존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과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별 근거없이 서로의 과거의 우상들이나 갖다 들이대며 누가 원조이니 정통이니 맛골목 순대집 다툼같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신당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말들 속에 이런 우려가 전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당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레디앙에도 "
'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에 글이 실렸다. 하지만 내용은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재미있지 못했다.

'진보'나 '좌우'에 대한 의미에 대한 주관적 주장에 처음의 반이상을 할애하더니, 진보라는 것을 내세우면 10%에 불과한 '구역'에 갇히는 것라고 했다가, 또 당 이름에 '초록'이나 '사회'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피해야

생태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까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여론 조사에서 진보, 중도, 보수가 통상 서로 30% 내외 나타나는 현실에서 '진보'라고 하면 10% 속에 갇히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다시 국민들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을 상징하는 '초록'이나 '사회'같은 단어를 당명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홍기표는 진보와 보수는 낡은 개념이어서 버려야 하고 '좌우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와 보수는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라면 좌우라는 개념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좌우라는 개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것이 기원이다. 결국 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안정적이어서 형평이냐 효율이냐, 증세냐 감세냐 같은 뚜렷한 해법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나는 왜 필자가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통 그런 개념들과 보수와 진보도 똑같이 연결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진보나 보수나, 좌파나 우파나 상대적이긴 마찬가지이고 현재적으로 논의되는 서로 상대적인 해법과 서로 연결되는 것에도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지금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뿐이어서 이런 '단어'에 집착하는 논의가 소모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보나 좌파나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일 뿐

당명을 지을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서구에서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발달해 왔지만 해방후 좌우대립이 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졌던 우리 역사에서는 부정적인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제 논의가 자유로와지자 좌우파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주로 쓰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언론들은 특정 대상에 감정적 비난을 가할 때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좌우대립의 기억과 반공주의를 자극하는 의도적인 단어 사용이다. 그것이 졸지에 노무현 정부가 족보도 없는 '좌파'가 되어버린 슬픈 사연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론조사 등 국민의 정치적 입장을 묻는 설문에는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단어가 현실적 정치구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족적 소수정당이 아니라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제도권 대중정당을 꿈꾸는 진보신당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한 것은 오히려 다행인 것이다. 그 다음 '진보'라는 것에 실질적인 가치를 연결시키는 것은 진보신당의 몫이다.

다시말해 진보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이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인 것이지 '진보'라는 단어를 바꾸고 안바꾸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서 구체적인 의석으로 얻진 못했어도 이후 '지못미' 열풍 등 총선 전후의 언론의 주목 덕에 벌써 의미있는 지지율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그토록 목말라 했던 인지도 자체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의 논의는 서민의 고통에서 시작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신당'이라는 임시정당 냄새가 나는 것을 조금 고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라는 단어까지 빼버리고 완전히 다른 당명으로 바꾸자는 것은 총선과정에서 힘들게 얻는 인지도조차 버리고 보자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럼 총선 전 왜 힘들게 창당해서 선거에 참여했는가.

정말 '진보의 재정립'을 위해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 왜 이런 소모적인 일을 벌이라고 강변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지금 수준의 인지도라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당력을 낭비해야 할 것인가.

전국단위 중앙정치 투표율이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대중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7대 총선과 비교하여 총 유권자수 대비 득표수를 계산한 각 정당의 실질 득표율을 보면 범보수계열의 득표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범진보계열로 분류되었던 정당들은 반토막이다. 즉, 대중이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제도권내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곧 그동안 범진보진영의 주류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와 거리가 멀었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산이자, 진짜 진보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던 과거 민주노동당의 패배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진보신당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단 급하게 '그릇'부터 만들었다면 이제 부터 그 그릇을 넓혀가면서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이 환멸을 느낀 그 지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부동산 거품 등 서민들이 고통받고 한숨짓는 바로 그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뜬구름잡기를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 하자

그러면서 또한 현재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현실적인 답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에 뿌리박고 진전되어야 뜬구름잡기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진보든 좌파든 보편적 인권, 평등한 사회, 생태적 삶 등 근본적 가치와 현재적인 실질적 의미를 연결지어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 처럼 '진보'냐 '좌파'냐 '초록'이냐 '사회'냐 같은 대중들의 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표면적 단어부터 따지는 시비는 건설적인 논의 방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름 딱지 붙이기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제도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왜 그 짓을 자꾸 또 하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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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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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정계개편 망친 건 노무현 자신

- 그의 꿈은 그에 의해서 무너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의 상심이 큰 모양이다. 노무현 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던 청와대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직접 '실패'를 거론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브리핑에 직접 올린 글에서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치인이었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실패는 대통령으로서의 실패보다 더욱 근본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좌절'의 원인으로 열린우리당의 분당 위기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이상으로 삼은 정계개편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 붕괴는 그 이상의 붕괴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분당의 책임을 당을 깨고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수록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그의 진정한 정계개편을 이미 산산이 부수어버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꿈꾸어온 정계개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이번 그의 글에서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이해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정치, 지역주의를 정치인의 권력욕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말 국민과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는 정치, 그래서 정말 건설적인 대안을 생산해내는 정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꿈꾸는 그런 정치.

그렇다면, 그런 정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은 그 대안을 선거를 통해 선택하고 선택받은 정치인은 그에 맞게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실천에 비추어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선택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런 상식에 비추어볼 때 지역주의 극복 방법도 명료하다. 즉 출신 지역이 아니라 정책과 대안이라는 실질적 선택기준이 제시될 때 지역주의는 비로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선택기준이 없는 한 아무리 제도적인 개혁을 한다 해도 지역주의라는 기존의 선택기준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지역주의 대체할 기준, 노무현 정부가 무너뜨렸다

▲ 노 대통령은 200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양극화 문제 해결 등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래도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은 아니더라도 '경향적'으로 가치와 대안에 기초한 선택기준이 있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권내 정치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반영되고 구체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보'는 대내적으로 소외계층과 서민의 사회적 권리를 더욱 중시하고, 복지를 지향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보수'는 대내적으로는 부의 집중에 관대하며 경쟁을 중시하고 성장을 우선시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런 경향적인 두가지 방향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서 '진보'적 방향에 대한 동의를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동안 이런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철저하게 무시함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던 '경향적' 선택 기준마저 철저히 붕괴시켰다.

예산 좀 증가했다고 복지정부? 미안하다, 틀렸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그래도 복지예산을 몇 퍼센트 늘렸다면서 이른바 '복지정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기준에서는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기반을 무너뜨렸다고 하는 대처정부도 '복지정부'가 될 수 있다. 대처 정부 아래에서도 어쨌든 복지예산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처 정부 때도 복지예산이 증가했던 것은 실업 증가, 고령화, 전통가족 해체 등등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예산 증가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노무현 정부도 복지정부가 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진행되는 양극화·고령화· 비정규직 증가에 비해 그나마 증가했다는 복지예산의 규모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급증하는 사회적 요구에 비해 초라한 복지예산은 국민의 고통의 총량이 증가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획기적 예산 증대가 어려웠다면 어떤 정책적 방향전환이라도 이루어 냈을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복지 정책'이란 고령화에 대한 유일한 대책인 국민연금을 더욱 깎고 국민의 권리여야 할 의료는 더욱 시장화시키는 것이었다. 복지정부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한미FTA, 결정적인 보수의 길로

▲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대표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밝게 웃고 있는 '죽음의 동맹' 사진을 해머로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전 참전은 어쩔 수 없다 백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북한 핵위기 등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일방적인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독자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해주고 이를 위한 미군 기지이전에는 국민을 쫓아내고 국고를 지원해주고 있다.

국민의 민주적 선택에 대한 결정적인 배신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한미FTA였다.

보통 설문에도 많이 사용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를 때 자주 사용되는 기준은 '유럽 북구형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하느냐'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하느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라는 미국과의 경제통합 협상을 강행함으로서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에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할 수 있는 길마저 아예 봉쇄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백여 가지의 법과 제도를 고쳐야하는 이 협정이 전면 시행된 이후 그 방향전환은 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출발부터 통상협정에 한정하는 한-EU FTA는 한미FTA와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당신이 배신한 것은 지지자 뿐이 아니다

▲ 지난 2003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이 때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를 배신하면서 국가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가 배신한 건 지지자 뿐이 아니었다. 국민의 선택, 나아가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선거를 통해 그나마 진보적 '경향'을 선택했던 국민에게 분명한 보수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한국 민주정치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정치적 선택 기준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니 '정계개편'의 꿈이 무너진다고 통탄한다. 이름부터 정치적 정체성이 매우 불분명한 그 정당 자체가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었는지부터 매우 의문스럽다. 게다가 그에게 다른 사람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꿈을 이미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 것은 노무현 바로 그 자신이다.

 

- 2007년 5월 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7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

 

* 원래 다른 의견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뜻하는 '틀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고, 노무현 대통령 자체가 실패했다는 얘기보다는 그가 꿈꾼 정계개편을 스스로 망쳤다는 것이 초점이었는데... 아무튼 오마이뉴스 편집진이 제목을 좀 선정적이고, 단정적으로 붙이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상당한 논란거리를 만들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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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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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이 노무현 때문이라고?

    2007/05/14 18:40
    삭제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이 노무현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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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 탓하면 집권행위 자체가 부정됩니다

안녕하세요. 당일날 아침에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보고 하도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2시간이 채 안걸려 써서 올린 글인데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고 또 이렇게 많은 반론을 받게되니 약간 당황스럽긴 합니다. 어쨋든 변변치 못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데 감사드립니다.

학술적 논쟁으로 받아주시길 원하신다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 신문 기사에 적합한 논쟁 형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안그래도 유학생은 공부나하라는 애정어린(?) 댓글들에 살짝 찔려오던 중에 반갑기도 합니다. 저도 한 수 많이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정계 개편 실패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1차적 책임을 묻는 저의 인식의 근원에는 '형성주의(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constructivism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국가 정책을 평가할때 그 평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크게 환경(context)을 중시하는 입장과 주체(agency)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학적 논쟁이 되겠습니다만 지나치게 복잡해질 것 같아 사회정책학의 수준에서 한정해서 논의하여 보겠습니다.

환경을 중시하는 입장은 대표적으로 실증주의(positivism)과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을 들수가 있겠고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은 최근 정치학 사회학 외교학 분야에서 부상하고 있는 언어학적 접근(linguistic approach)이나 신념주의(ideationalism에 대한 역시 나름의 번역입니다.)를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양측의 접근이 모두 현실 정치와 정책과정을 설명하는데 제한점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여 이 양측의 장점을 수용하되 변증법적 원칙을 적용한 형성주의가 가장 유용하여 이를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일단 실제가 아닌 언어만이 존재한다는 언어학적 접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객관적 환경요소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다만 인간이 모든 환경적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 역시 받아들입니다. 종합하면 모든 환경적 조건을 파악할 수는 없으되 주체(agency)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전략적으로 부분적 조건을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된 조건 위에서 주체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목표가 설정됩니다. 그리고 조건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정책)들이 도출 되지요.

하지만 앞서 말한데로 모든 조건이 완전히 이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략이 꼭 의도한 결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즉 ‘정책적 결과는 = 의도한 목표 + 의도하지 않은 조건의 영향’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주체는 가치와 신념이 있으되 전략적으로 사고하기에 그 정책적 결과는 다시 또하나의 조건으로서 이해되고 해석되어 다음의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동원이 됩니다. 결국 ‘조건-전략적 주체의 행위(정책)-정책 결과’ 사이의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론적 틀은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매우 기초가 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반론은 적극 환영하며 저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하자면 '최고 권력자로서의 주체'가 되겠지요. 님이 지적하신 떳다방 정치인이나 지역당들은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도 존재했던 '조건'입니다. 이를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이해하고 해석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계 개편'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집권 기간동안 '정책'을 펼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그 정책적 결과(지역주의의 부활)를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 대해서 계속 '조건' 탓을 하면 그것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행위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셈입니다. 속된말로 누가 몰랐습니까? 한국 정치 현실이 그런 것을? 허구헌 날 조건 탓만 하려면 집권은 왜 했습니까? 그런 '조건'에 의한 실패는 '파악되지 못했던 조건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뻔이 알고 인식하고 있는 조건에 대해 추진한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보수 언론을 탓하던, 야당을 탓하던 그것도 다 마찬가지 입니다. 그거 원래 있는 조건이었고 다 알고 있었던 조건 아닙니까? 그 조건 때문에 5년의 집권 기간 이후에도 여전히 실패 했다는 것은 그 집권 5년을 실패했다는 얘기입니다. 즉 그는 '실패'한 것입니다.

복지와 한미FTA가 진보와 보수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부분에서도 역시 '형성주의'적 입장에서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즉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노무현의 정치인의 실체가 아니라 그 정치인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었느냐가 현실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정말 노무현 개인이 어떠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제가 그가 아닌이상 알수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지점이긴 합니다만 말이죠.

그럼 지난 대선 당시로 돌아가 봅시다. 그당시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정치적 구도는 보수-진보, 권위주의-민주주의, 외세의존 외교-자주적 외교, 개혁회귀-개혁지속 뭐 이런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도는 노무현 후보측에서 적극적으로 설파한 프레임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당시 이회창 후보측이 주로 설파했던 경험있는 지도자-어설픈 지도자와 같은 프레임보다는 노무현 후보측의 프레임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 구도는 계속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공격하는 조선일보나 한나라당 등과 같은 요소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 덕에 여전히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옷을 입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집권 5년 이후 나타나는 결과는 그 반대입니다. 양극화는 확대되고, 비정규직 차별은 확대되어 왔으며 그 비중은 증가하였고, 사교육 비용도 계속 상승하고 서민들은 더욱 죽을 맛입니다.

그럼 이러한 결과는 올바른 전략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다른 환경요소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까요?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전략 자체가 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복지예산의 획기적인 확대까진 어렵다고 치겠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확대의 길은 IMF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도 어느 정도 이루어낸 사항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도 노무현 정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요. 한참 논의되던 근로소득공제제도(EITC)도 (개인적으로 크게 지지하진 않았지만 그나마도) 소리소문 없이 무산되었고,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하던 제도적 변화였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도 청와대의 무관심속에 제대로된 자원확보는 전혀 안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수준으로 껍데기만 도입되었습니다. 극심한 국가제도에 대한 불신 속에서도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이 너무나 크기에 국민의 70% 가까이가 지지했던 제도가 말입니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가를 통해 그 부담을 서로 분담하는 국민연금 제도는 미래세대 부담이 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냥 ‘깎았습니다.’ 그럼 국가를 통해 나눠주지도 않으면 그 부담은 어디로 사라진다는 얘기입니까? 마술이라도 부린답니까? 제도 안에서 개개인의 부담이 30%까지 치솟는다면 재원의 다양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부담이 덜어지지 국가가 발을 뺀다고 해결될 리는 없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요. 이 개혁이 그대로 진행되면 향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보일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처럼 말로만 복지를 들먹일 줄 알았지 개개별 구체적인 쟁점에서는 ‘생각’조차 있었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사교육비 급증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내내 시도했던 것들은 위성과외 등 기술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지요. 이른 점에서 그동안 수많은 이전 정부에서의 실패를 반복한 셈입니다. 이 부분은 그나마 아직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해가 되어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한미FTA입니다. 자꾸 옹호하는 분들을 이를 ‘개방’이라고 생각하는데 개방은 이미 WTO체제에서 7~80% 이루어졌습니다. 즉 FTA는 개방이냐 쇄국이냐라는 옹호자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나 한미FTA는 통상차원이 아니라 경제체제 통합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한미FTA를 통해 우리 경제제도를 개혁하겠다’라고 여러 번 강조 했던 노무현 자신의 발언에서도 여러 번 확인됩니다.

즉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 체제를 미국식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공공에 대한 시장의 철저한 우선주의입니다. 미국은 전국민 의료보험 조차도 없는 복지 후진국입니다. 공공보다는 개인이 우선하는 가치가 모든 시스템에 전제되어 있지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투자자의 이익이 공공정책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실제 패소해서 변상한 금액이 얼마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이 제도로 인해 정책 고려 과정에서부터 투자자의 이익을 고려하게 되는 잠재적이고 더욱 포괄적인 공공의 비용을 무시한 협소한 단견의 소치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제소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얘기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투자자의 이익을 매우 적극적으로 고려하시겠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제도가 전면 시행된 이후에 다른 대안을 추구할 공간이 협소해지는 새로운 ‘조건’이 형성됩니다. 단순한 제도적 시행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제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로서 보수-진보의 프레임에서 진보적 선택으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처럼 보수의 극단을 선택함으로서 그나마 존재하던 선택기준을 붕괴시켰기에 ‘적어도’ 정계개편을 원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은 그것을 열린 우리당이라는 ‘정당’으로 협소하게 보고 통탄하고 있다면 저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정치구도 측면에서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A에 대해 B를 가지고 비판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근본적인 정치구도는 당연히 열린 우리당이라는 개별 정당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매우 길어졌습니다. 끝까지 읽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전에 쓴 글과 걸린 시간이 똑같았네요. 길이는 배로 길어지고. 마치 전 기사의 해설판 같이 되어 버렸네요.

그럼 건승하십시오.

 
- 오마이뉴스에 2007년 5월 7일자에 기고한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의 반론 글 '실패한 노무현 비판, 당신이 틀렸다'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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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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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민국 진보의 위기는 노무현의 보수화가 아니라 불량의견과 불량정치의 만연

    2007/05/14 18:37
    삭제
    대한민국 진보의 위기는 노무현의 보수화가 아니라 불량의견과 불량정치의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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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는 여전히 중요한 기준입니다

정식으로 제기된 반론에는 답변하는 것이 예의인 듯하여 댓글로 남깁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라는 다소 단정적인 제목은 제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주목도는 상당히 높아진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논점에서 좀 벗어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면 편집진의 결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하는게 기자의 자세라 생각하여 별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보수와 진보는 여전히 국가정책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아무리 실용주의를 주장한다고 해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정해진 상황에 대한 대안은 정치적 가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의 정책적 방향은 집합주의적-개인주의적, 공공중심적-시장중심적, 보편주의적-선별주의적, 시민권적-소비중심적 등등 다양한 양분된 가치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양분된 가치지향은 특정한 교조적 정책형태로 고정되어 있기 보다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실용적인 변형된 형태를 띄게됩니다.

여기서 실용적이라고 함은 가치가 배제되어 실용적이는 의미라기 보다는 가치에 따라 설정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용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특정적으로 고정된 정책만을 특정한 가치에 연결시키는 태도를 '교조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치에 기반하여 생산된 정책을 그 처한 상황에 맞게 실현가능성, 효과성 등으로 다시 평가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평가의 기준은 그 정책적 가치에 의해 설정된,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1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가치에 입각한 정책은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니게 되고 기대하는 효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신노동당이 아무리 제3의 길을 간다고 해도 공공의 영역을 확장하되 시장의 원리를 적극 도입한 정책들은 선별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영향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영국의 대표적인 보편주의적 무상의료시스템인 NHS에 시장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지역별 의료 서비스 차이가 나타나고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급증하는 등의 보편주의 서비스내에서 조차도 시장주의적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끝났던 프랑스 대선이 여전히 보수와 진보가 중요한 기준으로 남아있는 좋은 예중의 하나입니다. 사르코지는 현 프랑스의 상황에서 개인주의적, 시장중심적, 선별주의적, 소비중심적 대안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했고 그를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그 반대 주자로 나섰던 세고렌 로얄은 그에 대척하는 보편주의적이고 집합주의적이며 시민권에 기반한 분명한 정체성과 명확한 대안을 보여주는데 다소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광범위한 사르코지에 대한 반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굳이 서구의 기준에 따를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우리 나름의 가치에 따른 정책방향은 정치권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주주의적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지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출신 지역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는 있지만, 심지어는 일부 소위 자칭 보수들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코메디가 여전히 펼쳐지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형성된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형성된 기준에 비추어 볼때 경향적으로 진보로 선택된 정부가 극단적인 보수적 정책적 선택을 함으로서 그 기반마저 크게 붕괴시켰다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그래도 노무현 정부가 좌파라고 박박 우기는 소위 자칭 보수들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보수가 없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또하나의 불행이지요)의 논법에서는 통할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 오마이뉴스에 2007년 5월 7일자에 기고 한 '실패한 노대통령, 당신이 틀렸다'의 반론 글 '국가의 정책을 진보-보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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