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자주파, 그리고 민주노동당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2 창당을 지향했던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 그러나 종북주의 존재와 민주노동당의 사망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사진@오미아뉴스 이재덕


"정말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나요? 민주노동당에?"

반갑게 온 지역 위원장님의 전화를 받았을때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종북주의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소위 자주파였다. 10여년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말이다. 그때는 자주파라는 말도 없었다. NL이니 민족해방파니 했다.

물론 뭣 모르고 운동에 참여하게 될 때는 몰랐지만 1학년을 지날때쯤 운동권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그 때 열심히 조직하고 거리에 나서는 자주파가 좌파 이론가 족보나 따지기 좋아하는 평등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걔중 북을 유독 지나치게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문제삼진 않았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북정책 덕에 전쟁위기설이 심각하던 때라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그 때 였다.

나도 10여년 전, 대학생 시절엔 소위 '자주파'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순수하던 그 열정은 소중히 간직하고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에 이해하던 것처럼 미제와 그 앞잡이들만 때려잡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단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운동가로서 살기엔 운동의 지표가 될 대안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없는 사정에 어거지로 영국으로 유학길까지 올라 그렇게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의회 민주주의 산실이라는 이들의 정치를 보면서, 복지국가라고 하는 이들의 정책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우리사회의 대안을 내어보기위한 단초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영국사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순 없었다. 민주정부를 가졌다는 우리나라가 양극화, 고령화 등 새로운 수준의 사회문제에 직면하면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여 대안이 도출되기 보단 과거 권위주의적 틀에 갇혀 미봉책만 반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 가운데 방치된 서민들은 급증하는 사회문제를 홀로 개별적으로 감당하느라 더욱더 극심한 고통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민주정치를 이해조차 못한 구태의연한 정치권는 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허무한 다툼으로 절망만 안겨주는 것을 보아왔다.

그럴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명백하게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분명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가장 근대적인 정당 구조를 가진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가지고 명확한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권내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공부할 수록 소중하게 다가오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결국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공부를 마친후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보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운동권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변에서 손가락질 해도 그래도 희망의 근거는 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가야할 길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를 심각하게 느낀 것은 부유세 공약을 실현시키겠다며 입당했던 윤종훈 회계사가 탈당했을 때였다.
이미 자주파가 최고위원회를 싹쓸이 했다고 말이 많았었다. 그 때 윤종훈 회계사는 '선거때 써먹었으면 됐지 부유세 얘기를 왜 자꾸하느냐'는 최고위원회의 분위기에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10여년 전 투쟁에만 목 매던 학생 운동시절을 그대로 연상시켰다.

안그래도 2004년 국회 진출 후에 학교 급식 운동,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운동 등 활발하고 생동감 있었던 생활 정치가 오히려 실종되고 뻔한 정치투쟁에만 당이 휘말리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수의 조직력으로 당권을 장악한 자주파와 그런 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잘 몰랐었다.

그 때는 의원의 당직 겸직 금지 조항으로 정책을 실현시키는 공간인 의회와 대중과 호흡하는 공간인 당을 분리시킴으로서 생긴 병폐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2006년 부당한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선거로 나설 때, 의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됨으로서 이런 병폐가 풀릴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반겼다.

그런데 당대표 선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거법 위반으로 조승수 전 의원을 대표로 뽑아도 대표직을 수행 할 수 없다는 흑색선전이 선거를 뒤덥었고, 결국 인지도에서 한참 떨어졌던, 그러나 자주파가 지지한 문성현 대표가 선출되었다.

게다가 당이 정책 정당으로 발전은 고사하고 이상한 일만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선거 참패로 지도부가 총사퇴해봤자 선거를 하면 자주파 지도부가 또 당선 되었다. 종이당원, 대리 투표, 조직 동원 등 6, 70년대 독재정부를 연상시키는 부정행위 사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당은 매번 유야무야 넘어갔다.

당 회계는 공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엉망이 되고 당직자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당 책임자 입에서는 '헌신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헌신성은 10여 년전 지겹도록 들었던 자주파 운동가의 핵심 덕목이었다. 그 것이 고작 국가 보조금까지 받는 제도권 정당에서 월급도 제대로 안주면서 잠자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소리였단 말인가. 그런 아마추어적 사고로 다른 제도권 정당과 경쟁이 될리 만무했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도 모자를 판에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있는 사람도 몰아내고 있었다.

점차 퇴행적으로 변해 간 민주노동당, 드러나는 자주파 당권장악의 의미

그럴수록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갖는 의미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자주파 비판에만 안주한 상대 정파라는 평등파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은 자주파대 평등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수의 조직력으로 언제나 당권을 장악하는 자주파는 단지 평등파 뿐 아니라 다양한 당내 논의가 당 활동에 반영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이는 제대로된 제도권 정당으로 성장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한 운동권식 당 운영으로 민주노동당을 점점 추락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정점은 지난 대선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권영길 후보가 내세운 '백만 민중대회'였다.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이 몰락한 그때 새롭게 진보의 가치를 세울 수 있는 그 때, 진보적인 정책적 비전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그 때, 중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고작 판에 박힌 '대규모 집회' 였다.

이 역시 그 아득한 10여년전에 학생시절 들었던 계급혁명의 자주파 버전인 '전민항쟁'의 재판이었다. 기가 턱 막혔다. 산속에서 아직도 2차대전에 끝난지 모르고 숨어있었다던 일본 병사가 생각났다. 당원용 메일로 날아드는 그 10여년전 학생운동권 문건과 거의 다름없는 수준의 논리를 보면서 절망했다.

원내 3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당 해산에 가까운 3%의 지지에 멈춘 이후에야 당 혁신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종북주의를 말하면서 당을 일찌감치 떠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세운 당이었는데, 아무리 그렇게 당이 썩었을까 등등 아쉬운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심상정 의원이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간 정책적 비전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그러면서 가장 선명한 민주노동당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정치인 아니었던가. 그가 당대회에 제출할 혁신안을 제시했을 때 단호한 조치들에 다소 놀라웠지만 그간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의미했던 바들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수순으로 이해 되었다.

당대회 혁신안은 자주파가 반성과 혁신의지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즉, 최소한 그동안 극단적으로 드러났단 당권파의 폐단들을 자주파를 비롯한 당 자체내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청산하고자하는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당 혁신은 요원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 폐단들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당원에 대한 불분명한 조치였고, 평화지향 정당으로 용납될 수 없는 핵 자워권 발언이었고, 종이당원, 집단 당적이동, 대리 투표 등 추악한 부정행위로 당권을 장악해 온 패권주의 였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에 대한 제명 안건은 자주파가 당의 정체성을 기본적으로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원의 성향 분석 자료를 북한에 넘긴 스파이 행위는 당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단호한 조치 없는 당의 혁신이란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주파 인사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이를 '신념'의 문제라고 했다. 북한을 위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신념이라면 그것은 말그대로 종북주의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주파는 당대회에서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총공세를 펼쳐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조차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압도적 표차로 혁신안을 부결시켰다.

설마설마했던 종북주의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것이 얼마나 당을 썩게 만들어 놓았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종북주의가 아닌 패권주의라 생각했었지만 결국 '종북주의를 하기 위해 패권주의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진중권씨의 지적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순간이었다. 종북주의라는 퇴행적 사고에 젖은 이들이 이를 억지로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왔던 각종 부정행위들이었고, 그 외골수에 다양한 논의와 대안은 압살돼왔던 것이다.


이미 그 전에 자주파는 대선 참패를 평가한 안건에 대해서도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수정함으로서 참패를 인정할 뜻도, 그래서 이를 극복할 혁신을 받아들일 의사도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것도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혁신 불능정당이된 민주노동당이 이젠 진보정당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을 떠나고자 한다. 혹자는 민주노동당을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하지만 당 정체성 부터 부정하는 세력이 다수를 장악해 당전체를 좌주우지 한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무슨 재주로 당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이제 한국을 떠나온지도 5년째, 10여년전 학생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못한지 꽤 되었다. 생활인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운동한다고 현장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민주노동당 사태에서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썩어 문드러지고 무너지는데 일조를 했다면 정말이지 마음껏 원망하고 싶다.

이제 통일과 자주를 '자주파'와 분리하고 그들의 진보운동내 역할을 재평가 할 때

나는 통일 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사회 핵심 문제라고 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핵심 과제중 하나라는 점을 충분히 동의한다. 또한 나는 자주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반미에 매몰되는 단순한 사고를 거부하지만 외국에서 볼 수록 우리사회가 얼마나 미국에 편향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에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된 우리의 역할을 찾고 우리사회의 대안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통일과 자주의 가치를 운동권 세력인 '자주파'와 이제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와 분리하여 그동안 학생운동의 몰락과 노동운동의 쇄락과정 등에서의 '자주파'의 역할에 대하여 진보운동 전체가 재평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퇴행적 운동권 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자주파'가 그 특유의 조직력으로 또다른 진보운동을 망가트리는 것을 방치하기엔 우리에겐 이미 기회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과제와 자주의 가치가 '자주파'의 전유물이 되어 진보운동에서 함께 몰락하기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자주파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맹목적이리 만큼 쫓는 그 '자주'와 '통일'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퇴락시키고 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반성도, 혁신도 부정하는 당신들은 다른 이들이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 진보임을 부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몰락도, 심지어 지난 대선 문국현 후보의 출마까지 미 중앙정보부의 농간이라고 부르짓는 그대들은 심각할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경영과 형님 아우 할 소리일 뿐이다.

- 2008년 2월 10일 오마이뉴스 기고, 11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나는 왜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하는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603 관련글 쓰기

  1. 진중권이 맞다 민주노동당내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2008/03/16 13:56
    삭제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에 대해 '그 사람들 절대 진보진영이 아니다'며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냈다(진중권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얘기 들어보면 가관"). 진중권은 기사에서 민주노동당내 자주파에 대해 '진보가 아닌 종교집단'이라고 잘라 말한다. '북한을 상전으로 모시고, 북한을 본사라 부르는' 등의 대북 종속성을 비판하면서다. 비민주적인 방식의 '쪽수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바른 지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비판받아야 하는...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까치
    2008/02/16 18:1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보영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겠지요. 바로 이런 솔직함으로 좋은 세상 만듭시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뵙기를 빕니다.
  2. 장지영
    2008/04/17 02: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어떻게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데 글을 보니 참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직접 겪으신 건가요?
    마찬가지 이유로 종북으로 몰아가며, 민주노동당 죽이기에 나섰군요.
    저는 평등파 자주파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도 않고,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편가르는 그런 것도 솔직히 역겨운 평당원입니다.
    님이 말씀하신데로 운동가의 핵심덕목이라 하는 헌신하는 지역이 일꾼들을 보며
    새삼 저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당이 있구나
    내돈 만원이 아깝지 않겠다 여겨 당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팔짱끼고 지켜보다가 조금씩 함께 장애인 이동도우미나 푸른학교사업을 했고,
    이후에는 정치적인 활동까지 했습니다.
    이라크파병반대, 선거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투쟁, 뉴코아 이랜드 투쟁. FTA투쟁등
    지역사업부터 선거, 그리고 투쟁.
    후보로 나간 사람들이 평택에서 연행되어 가면서까지 몸사리지 않는 그들을 보며
    믿고 함께 해도 내청춘 아깝지 않겠다 여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얻어가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보는 아니, 제 지역에 사람들을 보면 지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저 역시 너무 힘들어 잠수도 몇번 타보고, 회피도 해봤습니다.
    그럴정도로 그들은 당신이 비꼬는 그 헌신.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가 된건지. 북을 상전으로 모신다구요? 참.....예전 독재시절 빨갱이로 몰아가던 때보다 더 무섭습니다.
    4년간 의정활동하며 동지라 하던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아가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아주 어렵고 외롭게 만들고, 어쩜 그리도 냉혹하고 무서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 지도부 두 정당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당원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고 상처준 점 무릎꿇고 사과해도 풀리지 않을 참입니다.
    대북종속성을 얘기하는 지역의 일꾼은 없습니다.
    그냥 6.15나 8.15 행사에 가서 통일을 얘기하고, 축제처럼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곤 했지요.
    저희는 평택과 이랜드 투쟁에 사활을 걸고, 싸웠습니다.
    평일에도 퇴근하고 가까운 야탑과 강남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눈물을 흘리고,
    평택에 어르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사무치기도 했습니다.
    명절에는 꼭 어르신들을 찾아가 마을잔치도 벌이고. 떠나가셨지만, 땅은 빼앗겼지만,
    미국때문이 아니라, 부당한 정부가 아니라, 정말 그 늙고 힘없는 어르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네들은 참 말도 잘하지요.
    저는 무식쟁이라서 저의 당을 옹호하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진보신당이라고 하는 곳은 연예인들도 다 가셨고, 평론가들 , 말씀 잘하시는 언변가들이
    넘쳐나서.....참 부럽기도 합니다.
    그곳에 계신분들. 저희 종북으로 몰고 마음이 어떠신지 묻고 싶네요.
    한나라당, 조선일보보다 더 무서운 당신들이 그래서 더 더 밉고 싫어집니다.
    언젠가는 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3. toakdmf
    2008/05/12 13: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여보시오...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를 쓰신분!!!평택의 어른들은 않지켜주어도 좋으니 당신식구들과 부모님부터 잘~~~모시길 바라오...정치는 꾼들한테 맏겨두고 제할일이나 잘하면 이것이 애국이요....(무실역행)!!!!!!!!!!!!!!!!

결국 아기를 둘로 쪼갠 가짜 엄마들, 한국 정치에서 진보를 퇴장시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시 당대회 표결을 하는 민주노동당 대의원들. 이 대회에서 민주노동당은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대표진보정당으로서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 진보정치 정택용


역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자주파는 위대했다. 당내 정보를 외부세력에서 보고한 최기영, 이정훈 당원에 대한 제명을 삭제하는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묻자 주황색 기표가 회의장을 뒤덥혔다. 함성과 박수소리가 이어졌지만 그 것은 쪼개지는 아기의 마지막 비명소리로 들려왔다.
관련글: 솔로몬 지혜도 안통하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가 최선이다 - 2008/01/05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상당수의 대의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며 심상정 비대위원장도 퇴장했다. 이후에 그 역사적인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더이상 '당'대회가 아니었다. 차라리 우물안 승리에 우쭐한 개구리들의 합창대회가 더 어울리는 제목인 듯 했다.

'종북주의' 규정 선 그으며 '해당행위' 구분한 최소한의 혁신안도 부정

당을 쪼개느냐 아니냐는 극한의 갈림길에서 솔로몬의 지혜라도 발휘되는 듯 가까스로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결국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에서 그 존재는 완전히 부정되었다. 비대위는 그동안 당내 패권주의의 병폐에 대해 과감하게 손을 대려 했지만 패권주의적 다수파는 일말의 타협조차 거부하고 내처버렸다. 결국 마지막 기대와 희망으로 유일하게 유의미한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남아있던 민주노동당은 마지막 사망선고를 받고 말았다.

따져보자. 심상정 비대위의 현상황에서 최선의 안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동안 당내 극도의 불신의 원인이 되었던 다수파의 패권주의 폐해에 대해서 단호하게 집었으며 그것은 극에 달한 분열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에 한정되었다.

비대위는 대신 그간 당활동을 '종북주의'로 규정하는 과도한 비난엔 선을 그었다. 반면 극단적으로 드러났던 '행위'에 초점을 맞춰 단호한 처리를 주문했다.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던 최기영, 이정훈 당원에 대한 제명 결의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당대회에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점이 두각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 점에서는 당에서는 변호인단까지 꾸려 아낌없는 지원을 하지 않았던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이 시점에서는 확인된 '해당 행위'에 대해서 따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자들은 공안당국의 자료라는 점으로 해당 행위의 증거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본인들의 법정진술까지 포함되어있었다.

확인된 해당행위조차 구분 못하는 민주노동당, 결국 진보정당 운동으로서 마침표

무엇보다 압권은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다른 해외 진보정당과 교류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궤변이었다. 당의 공식 활동으로 하는 교류와 음성적으로 당내 정보를 외부세력에 '보고'한 것도 구분을 못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당원에 대한 그간 당의 모호한 입장이 분당위기를 불러올만큼 불신을 키워온 원인이었기에 이에 대한 분명한 정리 없이 당이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다들 너무나 잘 인식해온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수파는 다른 타협적 수정안도 배제시킨채 제명안 삭제를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아예 명시적으로 분당을 결의한 것이다. 결국 수많은 피와 땀이 서린 진보정당 운동이 가까스로 만들었던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파행과 분열은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당분간 한국정치에서 진보정치의 퇴장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을 지나는 동안 진보세력으로서는 형해화 되어버렸던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미 손학규를 대표 선출하면서 '우향우'를 선언해 버렸다. 그 대안으로 반짝했었던 문국현 전 후보는 결국 대선 후 '개인'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세력의 싸움이 되는 총선을 앞두고 내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우향우 민주신당에 이어 민주노동당 파행은 한국정치에서의 진보정치 퇴장

그나마 마지막 진보의 보루나 마찬가지 였으면서 또한 유일하게 현대 정당으로서 튼튼한 전국적 조직기반을 갖추었던 것이 민주노동당 이었다. 어쩌면 이번 논란은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 현실 정치에서 대안세력으로서 도약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가름 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실험대였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혼란이 지난 총선 의회 진출 이후 전례없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 편향적 폐단을 벗고 심상정 대표가 제시했던 전망대로 이미 불안한 여론을 지피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정책적 대안으로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선보인다면 전과 다른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기대해 봄직 했었다.

하지만 이번 당대회를 끝으로 명확히 입증된 것은 얼마나 민주노동당이 퇴행적 운동권 논리에 갖혀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대회에서 느껴지는 것은 대안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재창당은 고사하고 사상의 자유와 명백한 해당행위조차 구분 못하는 '의리'의 정서가 지배했다.

이로서 신당창당운동이 힘을 받겠지만 절름발이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드러났듯이 신당은 신당데로 '북한을 별도의 주권국가'로만 취급하겠다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에 묶여있다. 자주파를 배제한다는 편협한 기준에 눌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한과는 특수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애써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진보의 대표적 정당으로서 서는데 결정적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신당운동도 '반자주파' 논리에 묶여 있는 한 절름발이 피하기 어려울 것

그럼 민주노동당은? 일개 종파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만큼 이제 과거의 진보의 대표적 정당으로서의 위치는 이미 상실되었다. 다른 이가 낳아논 아이를 덥썩 받아안은 가짜엄마는 이거라도 어디냐 신날지 모르지만 반으로 갈라진 그 아이는 이미 죽어있다.

이제 나머지 세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정책적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정당으로서 선거를 앞두고 백만민중대회 같은 집회에나 온힘을 다 쏟는 퇴행적 운동권의 행태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인수위에서부터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의 독단적인 행태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지는 반면 그 반대 진보진영은 모두 혁신에 실패하고 대선 이후의 궤멸적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경제를 부르짖으면서 민생경제를 외면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기반은 향후 몇년 이내에 무너질 것은 더욱 분명해 보이지만 그 대안세력이 모두다 이토록 절망적이라면 암흑의 시대는 생각보다 더욱 길어질 것이다.


자주파와 국가보안법, 적대적 공생관계?

결국 자주파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켜 최기영, 이정훈 두 당원에 대한 제명안 철회를 밀어붙였다. 이는 제 3세력인 '다함께'의 지지까지 얻어 압도적 표차로 철회를 관철시키는 결정적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확인된 것은 자주파와 국가보안법의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자주파측 발언자들은 해당행위를 국가보안법 논란과 분리시키려는 비대위측 주장에 대해 '과연 이것이 국가보안법과 분리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맞 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국가보안법 덕분이다. 비대위측이 여러번 강조했듯이 한나라당에 자료를 유출했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제명이되고 깨끗하게 정리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당원을 끝까지 끌어안아 이를 제대로 처리 못했던 그간 당권파 폐해에 대한 청산을 끝까지 방어할 수 있었던 자주파의 명분 역시 국가보안법이 아니고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이미 질문이 필요없듯이 10여년간의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을 통해 남북관계가 전례없이 진전된 지금 서민들의 어려움과 이른바 남북분단의 '민족모순'은 거리가 그만큼 멀어졌다. 고령화, 양극화, 폭증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 문제 등 어느하나 남북관계나 반북논리로 설명되는 성격의 문제들이 아니다.

하지만, 한 자주파 대의원이 '국가보안법에 굴복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혁신안 쟁점을 규정해 버렸을때 진보정당이 대처해야할 이같은 한국사회 위기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채 당대회장 시계는 갑자기 80년대로 돌아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은 한쪽으로는 명분이 사라진 공안기관들이 자신의 존재를 그래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도 역시 여전히 편향된 시대인식을 정당화 시켜주는 마지막 명분이 되어 지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 2008년 2월 3일 오마이뉴스 기고, 4일 '버금'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민주노동당, 결국 사망선고 받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602 관련글 쓰기

  1. 민주노동당과 새로운 진보정당

    2008/02/04 09:36
    삭제
    어제 열린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를 통해, 이제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는 기반이 민주노동당 내에 형성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에따라 각종 언론에서는 이제 민주노동당이 분당의 수순을 밟게될 것 같다는 전망들을 내 놓고 있다.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 분당이라는 문제는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의 진보진영이 처해있는 정치적 구도를 파악해 본다면, 분당은 오히려 진보진영의 정치적인 영향력...
  2. 당대회 결과, 어떻게 볼 것인지.. 이후 어떻게 해야할지..

    2008/02/06 17:51
    삭제
    1. 비대위에게 요구된 역할과 과제, 비대위가 건설된 배경 11월 중앙위원회에서 비례후보 선출방식 결정(1인 6표제 - 다수파가 독식할 수 있는 방식이 통과), 분당-신당 이야기 시작 → 대선참패 → 지도부 전원사퇴 → 혁신해야 한다는 요구를 안고 심상정 비대위 출범 (탈당과 신당 건설 시작하여 계속 됨) → 정파 일부에서 ‘종북’이 핵심문제라고 제기 → 당대회 안건 ‘평가와 혁신안건’ 제출 → 이 안건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비대위 불신임으로 여길...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02/04 11: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차라리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당이 대체재가 될수도 있을 겁니다.
  2. 글쎄요
    2008/02/04 11: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북한에게 보고하는 자주파는 빨갱이인데.. 그게 진보라면 민노당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3. 지나가다
    2008/02/04 17:5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대가 말하는 '자주파'의 투표행위가 '일개 종파의 무소불위적인 권력'인지 대의원들의 투표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그런다고 해서 종료되지 않은 회의장에서 자신들의 안건이 부결되었다고 쪼로록 퇴장해버리는 심상정 비대위 이하 사람들은...참으로 딱합디다. 다른 어느 조직 어느 공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때(비단 정파 관련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에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 2008/02/04 20: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시는 내용이 참패한 대선 평가도 삭제시키고 핵심 쟁점이었던 징계안도 완전 삭제시켜서 비대위를 완전 송장으로 만드는 상황에서 심상정 의원을 향해 '그래도 비대위원장을 맡으셔야 한다'고 발언하고 그에 박수를 보내는 정말 철없는 얼굴들이 생각나게하는 군요.

      한 진보정당의 역사가 절단이 나는 상황에서 초딩수준의 예의범절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런 인식 수준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4. 2008/02/07 11: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엮인글을 해 주셔서 찾아뵙습니다.
    저 또한,..
    안타깝고.. 답답 합니다.

    우리 모두는..자주와 평등을 향한 진보운동이 멈출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진보운동을 하고자 나선 사람들 모두
    지금의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먼집 불구경하듯 할 것이 아니라
    진보운동, 통일운동 전체가 처한 현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함께 지혜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일로 외면하기에는 민주노동당은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민족 민중의 기대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해명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랫 글을 덧붙입니다.



    [김승교] 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는가?

    당대회가 산회하고 당의 혼란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당중앙위원이면서 총선예비후보이기도 하지만, 소위 '일심회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했고, 당대회에서 가족대책위와 변호인단의 입장에서 비대위안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여,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해명이 필요하겠다 싶어, 당대회에서 왜 저는 비대위안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지를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로써, 현 사태의 사실관계와 본질적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아래에서 평어로 서술함을 양해바랍니다.

    1. 비대위는 법원 판결문만을 근거로 결론(편향적 친북행위, 명백한 해당행위, 제명필요)을 내렸다고 밝혔다. 당사자들의 소명도 듣지 않았고 소명기회도 주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서둘러 내린 결론이었다. 이것을 제대로 된 조사이고, 제대로 된 결론이라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비대위는 부실조사, 편파조사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공당의 지도부가, 그것도 진보정당의 지도부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2. 당대의원들이 비대위 안을 그대로 받아주기에는 제대로 판단할 근거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비대위는 법원 판결문 중의 일부만을 그것도 전후맥락을 잘라버리고 내용 중 극히 일부만을 발췌하여 이것만보고 판단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두당원의 운명, 당의 중대문제를 결정하는데 판결문의 극히 일부내용만을 근거로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사자들의 소명도 들어야 하고 충분한 조사와 검토가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비대위가 내놓은 것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판결문일부내용이었다. 이것만 보고 이것만 믿고 어찌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3. 비대위는 국가보안법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찌 국가보안법과 무관하단 말인가. 국가보안법이 없었으면 수사도 처벌도 없었을 사건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었으면 비대위가 근거로 삼았다는 판결문 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 근거가 된 그 판결문은 국가보안법 판결문이 아닌가. 당과 모든 당원들이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에 근거해서 국가보안법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신봉하라는 말인가. 비대위는 당대위원들에게 국가보안법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판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진실이 바로잡히고 명예가 회복된 무수한 조작사건들 역시 법원 판결에 의해 결론내려진 사건들이었다. 그럼, 그러한 판결문, 진보당당수를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조봉암간첩사건의 판결문, 8명을 사법살인했다고 뒤늦게 밝혀진 인혁당재건위사건의 판결문, 5공치하 최대 고문조작사건인 아람회사건의 판결문, 강기훈유서대필 사건의 판결문... 이런 것들을 우리가 믿었어야 했고 그에 근거해 당사자들을 판단하고 배척했어야 했단 말인가. 이 안건은 결코 국가보안법과 무관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으로 수사,처벌된 사건이고, 그 법과 법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보안법판결문을 그대로 믿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찌, 국가보안법을 부정하는 정당이,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되어 고통받고 있는 당원을... 국가보안법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제명하려 할 수 있단 말인가.

    4. 비대위가 의도하든 않든 비대위 안은 국가보안법에 굴복하는 결과이고, 부정해야하고 죽어가고 있는 보안법을 인정하고 살려주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부정한다면 국가보안법판결문도 부정해야 함이 논리적이다. 국가보안법을 부정하면서도 그 판결문은 인정하겠다고 함은 이율배반이고 논리모순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내려진 판결문의 실체적 정당성을 부정해야 옳은 것이다. 그 정당성없는 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그에 따라 당사자들을 제명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보안법에 굴복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고, 국가보안법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며, 국가보안법이 의도하는 사상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당사자를 격리시키겠다는 논리에 동조하여 이를 지지,강화시켜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5. 당사자들은 일관되게 부인하였다. 최기영당원은 손oo씨와 개별적 관계를, 이정훈당원은 장oo씨와 개별적 관계를 가졌다고 인정하면서, 서로 간에 진보운동의 현황과 진로, 당의 현황과 진로에 대해 종종 만나 고민과 의견을 나누었다고 했다. 이것 뿐이다. 북한과 연계를 맺거나 북한인사에게 정보를 준 것이 아니다. 남한의 진보운동가들과 개인적 관계였을 뿐인 것이다. 북한과의 관련성은 알지도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부인했다. 북한에 정보를 준적도 없고, 주려고 해본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두 당원이 개인적으로 교류하던 상대방들(손oo, 장oo)이 북한인사와 연계되었는지 알지못했고 연계되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정말로 간첩질을 하려고 했다면, 그들의 신분상 지위상 인맥관계상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고급의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조작이라며 짝퉁간첩이라고까지 강변하였다. 그럼 국가보안법판결문보다는 당원의 말을 더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비대위의 안은 당원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이 배척하겠다는 것이고, 국가보안법판결문을 그대로 믿자는 것 아닌가. 그러함에도, 어찌 국가보안법판결문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6. 판결문 역시, 이정훈당원의 경우 국가기밀탐지수집전달죄 부분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하였다. 판결문 역시, 문제된 자료(문건)의 경우 최기영당원이 작성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1개는 작성자미상으로 당내에 떠돌던 정보가치도 없는 자료였고, 1개는 술자리 뒷다마 수준의 인물평으로 그나마 작성자는 손oo씨였다고 인정했다.

    7. 가사 백보를 양보해서 판결문을 그대로 믿더라도, 결코 ‘당의 기밀’이 아니다. ‘당원정보유출’이라고 평가되기 어렵다. 당의 문건, 당의 문헌은 하나도 없다. 그 내용상 ‘당의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고, ‘당원정보’라고 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다. 내용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당원정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고, 술자리에서 누구나 떠벌릴 수 있을 법한 작성자의 주관적 인물평에 불과하고 소설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것이 무슨 ‘당의 기밀’이고 ‘당원정보’라는 말인가. 그에 비해, 훨씬 더 고급의 당원정보가 인터넷, 특히 당게시판에 넘쳐나고 있다. 이것은 왜 문제삼지 않는가. 심지어 지난해 당총무실이 제작하여 배포한 700여명 당직자들의 연락수첩에 비하면 ‘새발에 피’ 수준인데, 왜 이것은 문제삼지 않는가. 인터넷에 올리고, 책자를 배포하는 것은 훨씬 더 전파력이 강한 외부유출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것만을 또 이정도를 어찌 당규상 의무위반인 ‘당기밀 유출’이라 평가하고, ‘해당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감정적으로 평가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사실관계를 객관적 종합적으로 조사,확인한 다음에 신중하게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다. 변호인으로서 자료를 충분히 확인하고 검토한 바로는 결코 ‘당의 기밀’이라고 볼 수 없었고 나아가 ‘해당행위로서의 당원정보유출’이라고 더더욱 인정하기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비대위의 결론 자체가 무리한 결론이고 부당한 평가였다는 것이다.

    8. 그럼, 비대위는 왜 부실조사임에도 서둘러 무리한 결론을 내린 것일까. 일심회사건은 핑계,빌미에 불과하고,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대위가 당내 다수파라고 생각하는 소위 자주파(?)에 대해 종북,친북이라 색칠하고 정치적으로 공격하려는 것, 이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두 당원은 비대위의 그러한 정치적의도를 위해 제물로 삼아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대단히 고약한 일이다. 하필이면, 국가보안법 피해자이고, 현재 투옥중이며 간경화로 투병중인 양심수를 제물로 삼으려고 했는가 말이다. 운동가로서의 예의상, 도의상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보운동의 도덕성과 생명선을 파괴하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대위의 정치적의도의 호불호를 떠나 부도덕하고 비열한 일이며, 비대위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변호인으로서의 입장을 떠나, 운동가로서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9. 비대위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새삼스레 ‘친북’을 문제삼는가. 그럼 지난 8년동안에는 몰랐다는 말인가. 알면서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8년을 함께 해왔다가, 이제와 갑자기 일방을 친북이라 매도하고 부정하며 공격하는 것 아닌가. 비대위가 찾고찾아 들추어낸 것이 고작 ‘일심회’와 ‘북핵문제’였다. 둘다 공감을 얻기 어려운 내용이었고 수긍하기 어려운 평가였다. 이에 비대위 역시, 혁신안이 사실상 ‘자주파에 대한 공격이 목적’이고 ‘일심회는 수단’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혁신안이 되려면, 공정해야 하고, 단합을 위한 방도를 찾아야 하며, 일방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통해 달성하려고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비대위안은 '싸움을 말려야' 할 판에 오히려 '싸움을 붙이는' 안이었다. 당지도부(비대위)로서는 분열을 막고 수습하며 단결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방향을 일방을 공격하는데서 찾으려고 했고, 어느 일방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공격적인 내용을 주문했다. 그것도 국가보안법수감자를 제물로 삼아서 말이다.

    10. 표결결과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표결결과는 정파간 대립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가 없다. 비대위는 극소수만이 공감하고 압도적 다수가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혁신안이라며 제출했다. 그러고도 부결시키면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결과는 압도적 다수(65%정도)가 반대했다. 그리고 ‘잘못된 혁신안 인줄 알면서도 다른 이유로 찬성’한 당대의원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 혁신안이라는 것은 거의 80%이상이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진보정당의 지도부(비대위)가 이렇게 압도적 다수(80%이상)가 반대하는 것을 혁신안이라고 어찌 내놓을 수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런 것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어찌 배수진을 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압도적 다수가 반대할지를 비대위가 몰랐다면 참으로 무능하고 한심한 일이며, 알면서도 그랬다면 이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억지이고 떼쓰기다. 단언컨대, 그 반대에는 소위 평등파당원들 상당수도 함께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압도적 다수의 반대표결이 나올 수가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어찌 이것을 정파대립의 결과이고 자주파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 결과일 뿐이다.

    11. 표결직후 보여준 비대위의 모습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비대위가 보여준 모습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비민주성과 분열주의가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던 65%가 압도적으로 잘못된 안이라고 평가했다(나아가 분열을 막기위해 받아들이자는 당대의원 상당수를 합치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80%이상일 것이다). 그럼,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또한, 수정안이란 것은 원안이 문제있으면 누구라도 낼 수 있고 동의하는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가결될 수 있는 법이다. 또 이것이 우리 당의 오랜 전통이었고 역사였다. 그러나,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은 부결결과가 발표되자마자 회의중임에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로써 정족수미달(8명부족)로 당대회가 중도반단되고 누구나 예측하듯이 혼돈과 파국으로 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만인만색의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연합정당이다. 이런 연합정당에서는 더더욱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미덕이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초보적 소양이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그러질 못했다. 따라서 이 사태의 근본원인은 종북주의니 패권주의니 하는 논란거리에 있다기보다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반민주성과 정치적의도를 앞세운 분열주의에 있다고 지적할 수 밖에 없다. 결정은 이견이 있어서 하는 것이고 승복을 전제로 한다. 승복하지 않을거라면, 결정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의견이 다수인지를 확인하고, 차이를 확인하고, 서로 간의 감정의 골만을 키울 결정이라면, 아니한 만 못할 것이다. 결정은 승복을 전제로 해야 하고, 이것은 민주주의 초보적 소양이다. 당연히 당지도부(비대위)로서는 결과를 겸허히 수용했어야 하고 반성했어야 한다. 그리고 당을 깨는 길이 아니라, 당을 살리는 길에 적극 나섰어야 하고, 당원들에게도 그렇게 호소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비대위가 보여준 마지막 뒷모습은 너무나 아쉬었고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끝)

한국정치, 아직도 외국에선 해외토픽감? - 우린 진정 민주주의를 보았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국의 저명한 방송뉴스제작사인 ITN 에 '웃긴' 뉴스로 걸린 한국 국회의 난투극, 키워드란의 마지막의 단어가 '웃긴(funny)'이다. 이 들에겐 우리의 정치란 아직도 우스게감인 셈이다.


영국에서 즐겨보는 채널4뉴스의 제작사일 뿐만아니라 또다른 공중파 채널인 ITV 뉴스도 제작하는 방송뉴스제작사인 ITN에 들어가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우리나라 국회의 난투극 장면이 말하자면 '해외 토픽'란 쯤에 해당하는 섹션의 머릿기사로 걸린 것이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머릿글로 시작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발전했다는 나라에서 벌어진 혼돈의 몇장면
A few brief moments of chaos in one of the world's most scientifically and technologically advanced countries.

수많은 국민의 피와 땀의 결과 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이른바 민주 정부를 10여년동안 가져온 나라의 정치는 여전히 외국의 조롱거리였다. 여전히 민주주의 꽃이라 하는 선거를 앞두고 유력후보의 과거 행각이 계속 의문을 남기면서 급기야 후보들로 부터 이구동성 사퇴하라는 소리를 듣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물론 이 우스개가 된 장면도 그 혼돈 덕이기도 하다. 바로 그 며칠 후 국회본관에서는 또다시 해외토픽이 될만한 양당 지지자와 당직자 간의 집단 난투극이 또 벌어졌단다.

선거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유력 후보의 치명적 과거행적을 무혐의라고 하는 검찰의 발표가 국민의 과반수 이상에게서 불신을 받고 급기야 본인이 한입으로 두말하는 장면이 공중파 뉴스로 생생히 방송되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후보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될 기세이다.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특검이 끝날때 까지 인정되지 못하는 혼돈이 계속될 듯 싶다. 가장 우려스러운 경우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결론인데 가장 가능성이 큰 결론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파행을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반복되는 혼돈과 파행, 우리가 이뤘다는 민주주의는 무엇이었나

이 것은 누가 당선되느냐 누구를 떨어뜨리냐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쟁취해 왔다는 민주주의 자체에 깊은 회의를 품게 만든다. 말그대로 우리는 국민의 손으로 나라의 대표를 뽑는 선거과정에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법적 수사에 선거가 휘둘리고, 민의 대변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서로 말그대로 치고받고 싸우며, 선거의 결론마저도 새로운 정부의 시작이라기 보다 새로운 혼란을 시작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상황은 지금 특별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쭉 봐왔고, 그리고 이후에도 쭉 계속될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냥 염증을 느끼게 하는 이 추악한 상황이라기 보다는 수많은 심각한 사회적 도전 속에서 아무런 뚜렷한 장기적 방향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위기만 심화될 미래이다.

뻔하게 보이는 그림은 고령화는 계속 진행되고,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법시행에 따라 해소되기 보다는 대량해고와 또다른 갈등으로 비화되고, 사교육비는 계속 천정부지 오르고, 정부가 바뀌면 또 손댈 가능성이 큰 부동산 정책은 또한번 대 혼돈속으로 빠지고, 양극화는 계속 벌어져서 계층간의 갈등은 심화되는 가운데 서민들의 고통은 깊어지고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는 데도 정치권은 무슨 해결책을 제시하여 지지를 끌어오려 하기 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흔들어서 조금이라고 권력에 유리한 위치에 올라볼까 피튀기는 설전과 난투극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장면이다.

이쯤되면 대선 이후 총선에서 누가 몇석을 얻고 말고의 문제는 실제 서민의 이해관계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누가 몇석을 얻고 말고 간에 실제 국가 정책은 목소리만 높여 진흙탕 정치를 국민의 이름으로 개탄하면서 여전히 이를 부추기는 자극적이고 경마식 보도만으로 뒤덥힌 신문 찌라시 뒤에서 관료들과 치밀하게 달려드는 몇몇 로비집단들의 손에서 기업과 기득권 집단의 이해에 관계에 따라 결정되거나 그냥 적당히 사탕발림 수준에서 대책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될 수록 심화되는 사회문제는 또다른 문제로 비화되어 더욱 막대한 고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이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원래 민주주의가 이런가. 예전이라면 나도 세상에 인간들이 다 이기적이고 X 같아서 정치라고 다를 것없이 다 그런 것이라고 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5년째 영국 정치와 정책을 연구하고 바라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영국 정치가 이상적이지 않다. 우리랑 규모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이 곳에서도 정치 스캔들이 벌어진다(그러나 우리는 직접 뇌물을 주고 받는 것이라면 여기는 당에 기부한 후원자의 이름을 법대로 바로 기제했느니 안했느니 뭐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법안들이 입법되기도 하고 다 알다시피 남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각자 구체적 정책과 논리를 제시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반영된다. 선거 과정은 각 당이 얼마나 신뢰성있고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집권비전을 얼마나 일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제시하는가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물론 이는 이를 심도 있게 보도하고 무엇이 정말 어떤지를 책임있게 검증해내고, 매일 뉴스 시간마다 격렬한 논점을 가지고 때로는 양당 담당자끼리 때로는 뉴스 진행자가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여 직접 정책 담당자와 살벌할 정도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이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된다. 국회에서는 매일 같이 양당간에 구체적 근거와 수치를 가지고 드러나는 모든 쟁점 사항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는 또한 매일 정치 프로그램과 뉴스시간을 통해 전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은 그대로 정치권에 반영되고 이를 어느당이 더 구체적인 정책과 내용을 가지고 대응하는가가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주거면 주거, 환경이면 환경, 보건이면 보건, 교육이면 교육 할 것 없이 여당이건 야당이건 서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앞다투어 발표하면서 아젠다를 서로 주도하려는 쟁탈전이 수시로 벌어진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곧바로 지지도로 연결되기에 그만큼 치열하다. 지난 가을 일년 정치를 총 결산하는 각 당 전당대회 시즌이 조기선거설과 겹치면서 벌어진 노동당과 보수당의 한판 승부는 영국 민주정치가 작동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 바 있다.

관련글 보기: 영국, 때 아닌 선거열기에 후끈했던 정책대결 - 2007/10/05

이렇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의 국민의 삶은 당연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도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IMF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인 부침이 심했지만 또한 그만큼 대처리즘이나 제3의 길 등 위기 때마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비전이 등장하면서 자국의 위기를 극복해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즉, 사회문제가 없진 않아도 그리고 정치인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똑같이 욕을 해도 어느정도 선을 넘기전에 민주주의적인 정치기제를 통하여 결국 잘 해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 민주정부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뤘다는데 이게 왜 안되는가. 역사가 짧아서?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제도가 들어선지 20년이다. 그리고 실제 정권교체까지 이루어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한지 10년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혼돈의 수준은 거의 변함이 없다. 여전히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가.

그런데 이를 다시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민의가 반영되는 선거 제도 등 장치 뿐 아니라 이 장치를 통해 실제 민의가 반영이 될때 비로서 그게 민주주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민주정부를 가져본적이 없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독재시절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고있다.

되집어 보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열망했을 때,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두자리수 성장율을 꾸준히 달성하고 있을 때 여전히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이유는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민주주의가 되면 정말 서민들이 바라는데로 풀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민들이 삶의 고통을 겪을 때 기본적으로 외면하고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일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화 되었다는 정부가 그랬었던가.

특히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찼던 노무현 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개혁적 인사들이 정부에 참여하여 복지서비스도 확대하고 새로운 사업도 벌이고 복지예산도 증가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사회적 문제를 대처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여 해결하려는 정말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할 수준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서비스도 독재시절 습관이었던 전시행정적 수준을 크게 넘지 않았고, 복지예산 증가도 여전히 OECD 꼴찌수준에 맴돌 정도로 획기적이지 않았다. 그 증가 폭만 보더라면 여전히 군사정부였던 노태우 정부와 조차도 질적인 차이를 주장하기 민망한 것이었다. 즉 정책이나 개혁은 명목적 수준에서 머물고 정작 문제에 대응하는 수준에 모자라니 양극화니, 비정규직 문제니, 사교육비 문제니 하는 것들은 여전히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

이는 집권 직후 공공서비스에서 가장 불만이 높았던 보건의료부분에서 유럽최저수준의 예산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세율의 증가없이도 실제 정부 예산의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서 보건의료 서비스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영국의 현정부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것이었다. 또한 영국내 아동 빈곤을 근절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하여 실제 60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 시킨 모습과도 매우 거리가 멀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세금 못올린 탓, 적대적 보수언론 탓이다. 당연히 현행 국가예산 체계를 민주정부에 맞게 공공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지 않았으니 현 세금으로도 혜택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세금 인상에 대한 여론이 좋을리가 없다. 조세제도에 불신이 높아서라면 왜 강도높은 조세개혁은 못했는가. 또 설득력있는 새로운 대책을 정부가 일관성있고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당연 아젠다를 주도하지 못하고 그러니 맨날 적대적 보수언론에 질질 끌려다닐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정작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민주주의를 철저히 무시했다. 특히 한미 FTA는 그중 정점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나는 농민이라는 일군의 국민을, 일부 이익의 양보를 양해하는 수준도 아니고 아주 대놓고 포기하는 정책적 결정을 하고서도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해서 항의를 틀어막고 사람까지 죽게해놓고 민주정부인양 행세하는 것이 과연 어떤 제대로된 민주국가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책 입안 과정에 대해서도 연구결과 조작등 수많은 의혹은 불문에 붙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정부가 가장 핵심적 근거로 삼은 수치에 대한 근거를 '사적 재산권'을 들이대며 공개를 거부한 것에 대해 제발 자기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를 적어도 인식하고 하는 짓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또한 협상과정에서는 FTA 반대집단은 물론이거니와 찬성광고에 동원까지 되었던 기업집단까지도 배제되었다. 협정문에 서명된 이후에도 정확한 내용을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이는 기업집단은 물론이거니와 농민과 노동자까지도 협상과정에서 긴밀하게 참여하여 협상단에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꾸준히 압력을 행사한 미국의 매우 '민주주의'적인 과정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현재는 자칭 '민주개혁세력'이 민주주의를 못했던 결과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셈이다. 국가 중대사에 정작 이해관계자들이 배제되고, 반대세력은 경찰력이 동원되고 결정은 집권자가 독단적으로 내리고 각종 정부광고와 언론을 동원해 정당화하는 모습은 독재정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권위주의를 해체해서 민주정치를 강화했다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명백한 착각이다. 그가 개인적인 성품상 탈권위주의적이었는지 몰라도 집권기간동안 그는 점차 독재적 정치를 강화해 왔다.

이처럼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집단이 집권해놓고 정작 '민주주의'를 하지 못했으니 우리 정치는 계속 체바퀴 돌듯이 독재정권 수준의 정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상태에서 백날 이들이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반민주세력'으로 몰아 붙인 들 듣는 사람 눈에는 우습고 뻔뻔한 뿐이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그나마 딴놈은 뭔가 기대할 여지라도 있겠지하는 일반적인 정서가 낮은 투표율과 요지부동인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노망든 것이 아니라 이 척박한 상황에서 달리 이를데가 없는 결론인 것이다.

대선은 어떻게 든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예상되는 결과속에 지속적인 혼돈과 파행을 피할 것 같진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시민사회까지 나서서 이 혼돈과 파행에 깊숙히 개입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나름대로 도덕성을 바로 세우고, 부패세력의 집권을 막거나 약화시킨다는 명분이 있겠지만 전반적인 정치에 대한 염증이 깊어진 서민들의 눈에는 진흙탕에 발을 담그면 다 진흙색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민주정부를 제대로 한번도 갖지 못해 깊어진 염증이라면 이젠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넘어서 내용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 운동을 준비해야 할 때다. 단순히 부패 스캔들에 대응하고, 개악을 반대하는 소극적이고 단편적인 시민운동을 넘어서 정작 서민들이 직면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구체적 비전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정치과정에 반영시킬 포괄적인 운동이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 세력은 현재의 진흙탕에 발 담그기 보다 새로운 '비전형 운동'을 개발해야

이는 이전에 벌였던 특정 법안의 입법운동 수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런 수준의 대응으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위기가 깊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영국에서의 베버리지 위원회나 시봄위원회, 그리고 최근에 터너 위원회와 같이 큰 수준의 정책 영역 또는 전체적인 국가비전 영역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모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시민사회 운동 버전으로 보다 광범위한 시민참여 모델(정책연구 비용 모금에서 시민 정책 배심원까지)을 복합시켜 새로운 이른바 '비전형 운동'을 개발해낼 필요가 있다.

더이상 시민운동에서 그냥 모두에게 쉽게 박수 받을 수 있는 반부패 운동이나 시민권 운동은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정치권이 민주주의를 못하고, 그래서 정말 서민의 고통이 해소될 길이 없다면 시민사회라도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그러면서 전문적으로 고안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대안을 포괄적으로 확립하고 이를 실제 정치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세력을 모아 아젠다를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 것이 민주주의 실질화를 위한 새로운 민주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우리가 이 진흙탕에서 아니, 이 가짜 민주주의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폭넓은 새로운 수준에서 아젠다를 주도 하지 않고서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보수언론의 자극적 선동의 휘둘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점점 갈 수록 가관인 자칭 '민주개혁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9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가자미의 시선으로
    2007/12/17 11: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 정도면 괜찮아요. 그런 사태를 야기한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세계 진기록감의 국가망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가자미의 시선으로
      2007/12/17 18: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거기다가 이번 공직자 재산 신고 때 본인 명의의 주식 몇백억을 누락 신고. 이것만으로도 대통령되도 쫓겨나게 되어있음.
  2. 2007/12/17 12: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무얼 이야기하고 싶으신지는 알겠지만.. 독재정권과 현 노무현 정권을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는 말씀하시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견해에 대한 생각이 우선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
    • 2007/12/17 20: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응하기 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전시행정적으로 대처하는 정책, 중요 정책 결정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의견수렴과 결국 귀결되는 독단적인 결정행태 등등 정부 운영에 있어 근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정부의 성격이 바뀌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 입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재정부에 대하여 민주정부로서 차별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지요.
  3. 씁슬합니다
    2007/12/17 13: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나가다가 중간에 어이없는 발언이 있군요.
    현 정부가 독재정권이라니...
    이런 말을 맘대로 쓸수있는 것 자체가 적어도 독재정권은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말 그대로의 독재정권 의미로 쓴것이 아니겠지만 이런식으로 자극적으로 써야지만 그 의미가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 지는군요.


    그리고 특정 부분에 대한 예산 증가와 관련된 개혁 또한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에서 맘대로 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지난 5년간 줄기차게 발목잡은게 누구였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고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 2007/12/17 20: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현정부가 독재정부가 라는게 아니라 민주정부라고 하면서 정부운영에 있어 성격상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뭐 그말이 그말 같겠지만 말이죠.

      뭐든 것이 대통령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 권한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도 대통령입니다. 오히려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이 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이었지요. 그것이 소위 '탈권위주의'라는 명문이었는데 그러면서 정작 반개혁적인 정책에는 독재정치로 회귀했으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2007/12/17 14: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독재정권과 노무현 정부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말,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신게 아닐런지요?
    • 2007/12/17 20: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극단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해석이라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이런 결론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5. 나원참
    2007/12/17 15: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극단적비약에 너네가 뭐 참여정부냐 독재정부지 이런식의,
    세금못올린탓,보수신문탓하는 이런식의 문장들 너무 식상하고 지겹네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대변인들이 자주하는말 같은데요.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길래 자칭 민주개혁세력을 독재세력으로
    말하시는지..우리모두의 책임이지 정치인들의 책임이라고 말못하지요.
    그놈이 그놈이라고 하면서 그놈을 뽑아주는 우리가 문제죠.

    우리나라 민주주의정부는 사실상 15년밖에 안되었습니다.
    여타 국가들도 민주주의초창기때
    의사당안에서 국회의원들이 총들고 싸웠던적도있는데
    올챙이적생각못하고 비웃고 앉았네.
    • 2007/12/17 20:2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말하는것입니다. 그 놈들을 뽑은 우리 모두 책임이라는 아무 의미없는 형식적 주장 역시 매우 지겹습니다. 선택할 여지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그것은 정치인으로 나섰다는 인간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지요.
  6. kimdongpal
    2007/12/17 15:1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래도 저게 어디야. 지난번 대선결과 보도는 고작 3초 나왔는데...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7. jenghi
    2007/12/17 15: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시스템을 바꾸면 바뀌는 동안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옛날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죠. 사람들의 기억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과거보다는 현재가 어렵고 힘든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겐 이성이 있죠. 일의 선과 후,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론이죠. 대통령 후보도 처벌맏지 않는 일인데 나라고 못하겠느냐 라는 도덕 불감증이 문제입니다. 어려서부터 경쟁만 어떻게든 남을 누르고 일어서야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있죠. 게다가 기독교의 잘못된 영향으로 나아니면 안돼 또는 나만이 진리라는 가치관을 가지게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게 안타깝습니다.
  8. 대통령이 힘이 있나요
    2007/12/17 16: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대통형이 힘이 있었는지요..

    탄핵당하고,

    모든 법안에 있어서 국회에서 저지 당하고 누더기 되버린 정책

    언론은 정부를 씹고 있으니.. 잘해도 잘한게 보이지 않고 못한것만 보이죠..

    왜.. 이것밖에 못했냐는 말보다 무엇때문에 이것밖에 못했냐고 물어보는게 필요 하다고 생각됩니다.
    • 2007/12/17 20: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모두 장악해놓고 대통령이 '힘이 없었다'는 변명은 정도가 있습니다. 그걸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에는 스스로의 정치력의 문제가 없을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놓고 정작 가장 반개혁적인 정책에는 권위주의로 회귀하여 공권력까지 동원하여 반대파를 진압했으니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9. 꼬라쥐
    2007/12/17 17: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회내에서 작태는 어느 정권의 문제는 아니고, 정치꾼들의 자질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탕에 있는 질서의식에 문제입니다.
  10.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2007/12/17 17: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옛날 운동권에서 "독재타도"를 외칠때 난 왜 현실문제을 먼저 생각하지 저리 큰 이상만을 쫓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 이였습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려면 가리워진 면을 보아야합니다. 님의 글이 맞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의 독재정권과의 비교, 반민주세력과의 비교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2007/12/17 22: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도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이뤄내고 정권교체만 이뤄내면 무언가 되리라 생각했던 우리가 순진했던 것이죠.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도 보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1. 123
    2007/12/17 18: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게 다 땅박이 때문이다.
  12. 아닌데요
    2007/12/17 18: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회의 난투극이 우리나라만 그러신 줄 아십니까?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대부분의 국가는 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님께서 예를 든 영국같은 경우에도 서로 다른 정당간의 거리를 두었죠. 그 옛날, 싸울땐 칼까지 이용되었기 때문에.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대만 등등 네거티브 정책을 쓴다든지, 국회에서 난투극을 한다든지, 웃지못할일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거 아닙니다.
    • 2007/12/17 22: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무엇을 얼마나 보고 말씀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수준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본인 자유이시겠지요.
  13. 원~
    2007/12/17 19: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장 큰 웃음거리는 명박씨같은 자가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것과 그가 지지울 1위라는 겁니다. 정말 해외에 나가 대한민국 사람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요. 정말 역겨운 상황 입니다.
  14. 푸훗
    2007/12/17 21:5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난 5년간 본 것은 부패로 획득한 기득권층의 처절한 발목잡기 였던 것 같아요.
  15. 조중동 양아치 언론 해체를 못한게
    2007/12/17 22: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실수죠.
  16. 꿰뚤어보는눈
    2007/12/17 22: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결국 말하고 싶은것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이야기군요
    그냥 솔직하게 밝히지 뭐 민주주의가 어떻고 정권이 어떻고 그럽니까?
    정치를 더 어렵고 추접스럽게 만드는것이 바로 나의 정치성향을 숨기고
    절대객관과 절대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대중을 상대로 사기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떠벌이는것은 내자신이 아니라 나의교만입니다 그냥 주워듣고 이해한내용 나의 논리대로 짜깁기한 시간지나거나 나의 이권이 바뀔떄 가치없이 버려질 사상없는 교만일뿐입니다
    • 2007/12/17 23:50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님의 국어 독해력이 문젠지 제글이 문젠지 아무튼 둘중 하나는 문제가 있나 보네요.
  17. 동감합니다
    2007/12/17 23:4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역시 좀 떨어진 곳에서, 정말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는곳에서 보신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특히 소위 사회운동가들의 편협한 안목과 행위에 대한 따꼼한 일침은 좋은 약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많은것 보고 배워와 조국 건설의 한 초석이 되시기를....
    • 2007/12/17 23:5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18. ㅋㅋ
    2007/12/18 00: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쓴이가 한나라당정권하에서도 저런류의 글을쓸수 있을지.. 몇년후에 전과범이 한국을 차지한이후에 님이 그때도 지금같은 글을 쓸수있기 바랄뿐입니다..
    • 2007/12/19 07: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보다 더 극단적인 전망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 군요.
  19. 글쎄여...
    2007/12/18 00: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회에서 벌어진 활극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탄하는데, 그 탓은 노무현 '정부'가 다 뒤집어 쓰는 군요 ㅎㅎㅎ
    • 2007/12/18 19: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그 중심에 있는 현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듯 하네요
  20. 독재 ? 박정희가 살아 있다면,
    2007/12/18 01: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최소한 탈세한 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을 장담한다. 오히려 안기부에서 끌고 가서 반쯤 죽여 놓을 것이다. 지금의 근혜씨를 아버지께서 많이 안타까워 할 듯.
    • 2007/12/19 07: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그 시절에는 그래도 투명해진 지금보다 더 탈세범이 많지 않았을까요.
  21. 정말 어의없다...
    2007/12/18 01:5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런 인간들이 배웠다는 인간들인가?

    예전부터 돈있는 인간들이 나중에 권력을 얻기위해 정치권에 뛰어들었지.

    깡패짓하고 부동산 부도덕적으로 돈벌던 인간들이 말이지.

    그런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것이다.

    정치권이 저렇게 된것도 국민과 언론의 책임이다.

    부패와 타협하는 언론과...

    먹고 살기 바뻐서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면 범죄자도 대통령으로

    뽑는 어리석은 국민들이 문제인것이다.

    도덕적인것보다 잘먹고 잘살게 해줄 사람을 뽑는다고.

    바로 앞만 보고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매한 국민들의

    멍청한 소리라는 것이다...

    정치하는 인간들 선거때는 국민들한테 허리 굽신거리며 간 쓸게

    다 빼줄거처럼 말하지만 막상 당선되고 보면 굽신거리던 목과

    허리는 기브스를 하게 되지.

    그 인간들 선거때 목 허리 굽신거리며 뭐라 할까?

    아마 조삼모사 생각할것이다.

    자신은 조련사 국민은 원숭이들...

    국민들이여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도덕적인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뒷심이 없다고? 웃지기마라. 처음에는 힘이 없겠지만

    한번 두번 세번 계속 힘이 없어도 도덕적인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아준다면. 자연 힘은 도덕적인 사람에게

    몰리게 되어있는것이다.

    우매한 국민들이여 바로 앞만보지말고 자신의 후세를 위해서

    라도 먼 미래를 보고 대통령을 뽑아야하지 않을까?
  22. 2007/12/18 02: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공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교육이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민주 시민"을 길러내지 못하고 "옆길로 빠지는 방법" 만을 가르치고 있는 이 왜곡된 사회 구조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겠지요.

    벼락치기 (crash course) 40년의 세월이 남겨놓은 빚, 이 짐을 다음 세대는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 2007/12/19 07:07
      댓글 주소 수정/삭제
      현재 교육구조 자체가 살벌한 경쟁과 남을 누른 생존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가 걱정이 되긴 합니다.
  23. capho
    2007/12/18 03: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전 제시라니 어이가 없네요. 현상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데 심각한 곡해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민의가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는게 비전제시되고 계몽되면 저절로 이루어 집니까? 권력에 얼룩진 역사는 외면하는건가요? 독재라는게 결과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 겁니까? 떡검, 재벌, 사학재단, 부동산 투기세력을 보면서 비전이 필요하다고 느끼나요? 끝없는 권력과 기득권의 암투는 민의만 반영되면 저절로 사라지는군요? 참... 어리다고 해야하나요.. 꿈꾸고 있으신건가요....
  24. capho
    2007/12/18 03: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달리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조롱거리인 저 정치인들 틈에 합류하고 안달이 나신듯 보이기도 하네요. 그럴듯한 정책연구가? 정치인? 사회문제와 민주주의 정책이란 것들이 고결한척 거대 비전이나 제시하고 험험~ 이런게 민주주입네~ 하면 척척척 문제가 해결될거 같죠??? 탁상공론이란게 무슨말인지 아실겁니다. 사회문제는 교과서에 나오던 내용으로 뜬구름 잡듯이 대충 싸잡아 비전이 필요합네 하는식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랍니다. 그런식으로 뭉뚱그려서 척척되면 좋게요. 사회문제는 골치아픈 돌연변이 생물과도 같아서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겁니다. 뭉뚱그려 어림잡아 잘~ 흘러가는게 아니라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으로 진화와 파괴를 거듭하는겁니다. 요즘 사람들 영악해져서 영국에서 사회 정책 공부합네~ 한다고 오오오~ 떠받들어 주지는 않을걸요? 아니.. 앞에서는 입에 발린소리 해주고 뒤에서는 킥킥 비웃는지도 모르죠.
  25. capho
    2007/12/18 03: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민주개혁세력이 민주주의를 못했다? 범죄자로 교도소를 갔다오고 거액의 추징금까지 맞아도 전재산 29만원이란 사람에게 대통령후보가 찾아가 굽신거리는데 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뭐하나요? 뿌리깊은 독재정권 60년후에 10년 민주개혁세력이 정권 잡으면 하루아침에 민주주의가 실행되나보죠?
    시민사회단체가 정책반영될 비전이 없었나요? 언제나 실효성 가득한 정책을 너무 많이 쏟아내던데? 아젠다? 3개 재벌 친일독점 언론이 시민단체 아젠다 잘도 잡아주겠습니다? 노무현이 독제나 다름없는 행정부를 운영했다다구요? 그와는 비교도 안되게 강력하고 거대한 권력이 사돈, 친인척 관계로 단단히 얽힌 정치,재벌,사학,언론재단입니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부패권력층이 서로를 받쳐주는 거대한 부패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이 부패집단이 어디서 연루된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근대사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은 다 압니다. 그런사람은 김구선생님이 얼마나 선구자이고 훌륭하신 애국자인지도 알죠.
    백보 양보해서 말씀하신 대로 정책 비전이 제시되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떠받들어 그 비전을 향해 열심히 정책 입안이 되도록 했다고 합시다. 국개우언 놈들이 잘도 척척 받아서 입법해주겠습니다? 신문에서는 날마다 시민단체 국민위에 군림하려 국회 압박. 시민단체의 도를 넘어선 정치간섭. 신나게 씹어댈텐데?
    노무현이 언론핑계를 대었다구요? 인터넷이 되실테니 조선일보 만평인지 쓰레기인지 검색해 보시죠. 역대정권중에 신문만평이 집중적으로 대통령만 그렇게 비난한적이 있던지. 정상적인 비판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야비한 비난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이런데도 언론 이야기가 핑계? 허참... 부동산 투기와 재벌과 언론의 끈끈한 관계를 모르는건가요,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건가요?
    뭐 어쨌든 또 백보 천보 양보해서 정책 입안도 되었다고 합시다. 앞서 언급한 부패권력집단이 저절로 스러진댑니까?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을 좀 갈음해 보시죠. 먼곳에서 공부하셔서 잘 모르시나?
  26. capho
    2007/12/18 04: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회문제에 대해 공부하신다니, 정말 정책과 비전이 필요한 안건 몇가지 꼽아볼테니,
    정말 비전이라고 부를만한 대안을 제시하실 수 있을까요?

    친일활동으로 성장해 3개사가 독점해온 기형적인 신문 언론 시장의 정상화 방안

    중소기업육성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재벌의 처리방안(재벌도 해외에서 조롱감인거 아시죠?)

    재벌사학과 폐쇄적 기득권으로 점철된 교육시장을 개방적 권력구조로 개편하는 방안

    지역이기주의의 팽배로 부패하고 기득권이 있는(소위 돈좀있고 힘좀쓴다는)인물이 고정적으로 재선되는 국회의원 선거 개선안

    입법부 집단과 정당의 이익만 앞세운 입법활동, 의정활동을 벌이는 입법부에 대한 현실적 견제방안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한 검찰의 현설적이고 효과적인 견제방안

    진정 비전이라면 이렇게 골치아픈것들 부터 명쾌하게 해결해나가야 겠죠? 재벌이 잘한일이 더많다는 식의 궤변인 공과론은 사양합니다.
    • 2007/12/18 19: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말씀이 왔다갔다 하시니 요점을 잘 모르겠네요. 자칭 민주개혁세력이 잘했다는 것인지 잘못했다는 것인지...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필요없다는 것인지...

      비전이 제 혼자 머리에서 그렇게 뚝딱 나올 것이라면 우리나라 벌써 좋은 나라 되었겠죠.
  27. qaz
    2007/12/18 07: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맞소이다. 전적으로,,,,
    정치인들 무급직으로 하고 임기를 1년으로 해서 매년평가를 받게 하여야 그버르장머리를 고칠수 있을 거여요.
    돈받는 정치인, 국록으로 일안하고 놀고 유희하는 정치인, 그런사람 만아요. 요행수로 대통한번해볼라고, 전임 대통령들 예산 한푼지원하면 않돼요.
  28. Qjrrksek
    2007/12/18 08: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부 운영에 있어서 독재자들과 동일?
    어떤 것이 정부 운영이요?
    박정희, 전두환이 정부 운영을 노무현처럼 했소?
    아마 그 시절에 당신이 이런 식으로 글을 썼다면
    빨갱이로 몰리고 고정 간첩으로 몰려 당신 뿐만 아니라 당신하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 까지
    간첩이 되어서 당신 자식들까지 빨갱이 자식이란 이름표로 살고 있을거요.
    뭐 좀 알고나 하소.
    • 2007/12/18 19: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전 미국방장관 럼스팰드가 이라크전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퍼붇는 기자들에게 '사담치하였으면 다 감옥갔을 것들이'하면서 중얼거리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쩝...
  29. 2007/12/18 09: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전 다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저들의 저 열정을 돈으로 치환 가능할까도 합니다.

    YOUTUBE에서 보니 저 사건과 관련한 포스트도 많고, 일부 미국애들은 미국에서는 저런 열정도 없다고 놀라더군요....

    저들을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각나라별로 순회공연 시키고 돈벌이 하는게 어떨까 하네요....

    해외연수 무지들 좋아하시던데, 그 좋아하는 해외도 내보내고 돈도 벌게 하고, 그 좋아하는 쌈박질도 하게 하고
    • 2007/12/18 19: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는 방법도 있었군요... ^^
  30. 허헛
    2007/12/18 10: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건 뭐...글 좀 길게 쓰면 잘 쓰는 건 줄 아시나 보네.
    독재와 민주의 구분도 못하는데 무슨 글을 쓰십니까?
    현 정부가 독재였으면 님은 지금 남영동 지하실에서 고문 받고도 남았습니다.
    진정 독재를 안 겪어보셨군요.
    민주주의라는 것은 과정 자체지 결론이 아닙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다보면 부딪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님은 어릴 때 친한 친구하고 싸움박질 안해보셨습니까? 그리고 더 친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가는게 민주주의인데, 15년 만에 이 정도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를 님은 좀 많이 모르시는군요.

    글 쓰신 폼새에 비해 천박한 의식수준을 접하는 것 같아서 아침부터 상쾌하게 웃고 갑니다.
    • 2007/12/18 19: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협소한 수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벗어나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인데요. 뜻이 잘 전달이 안된 것 같네요.
  31. 김선
    2007/12/18 11: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이렇지 않겠지요.
    현재 눈 앞에 보이는 민주주의는 힘의 전쟁입니다.
    숫자로 결정될 것으로 보일 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자기 개인의 체면이나 행복은 일단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이런 힘은 자기의 장래가 달려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날 때 강해집니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인들에게는 자기 나라 또는 자기 가족의 운명이 걸린 사태라는
    인식은 없겠지요. 그러니 이론에 충실한 민주 절차를 따를 여유가 있겠지요.
    아직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한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현실적인 민주주의인 싸움의 민주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아직 더 피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의 피와 희생을 작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정치세력이 넘치고 있는 한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우리는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열심히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자랑거리로 여겨도 됩니다.
    • 2007/12/18 19: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도 정치인들이 권력의지에 대한 절박함 보다는 우리사회 문제에 대한 절박함에서 그러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32. 샤워
    2007/12/18 12: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당신 너무 무식해요.
    저런 장면도 연출되지 못하던 시기보다 민주화 된겁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동안 영국에서 정치를 봐 왔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언론 틀어막고 정치인들 집밖으로도 못나오게 하거나 잡아 가둔게 겨우 20년 전입니다.

    참 무식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나라의 정치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봤었다면 감히 무식하게 그런 소리도 못했겠지만, 전 세계에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 많지 않습니다.

    무식한 글 써놓고 반박글 힘겹게 쓰는 모습이 안스럽습니다.
    독재 정권 아래서 이런 글 쓰시다니 스스로 대단하시죠?
    정말 총 칼 아래서 썼다면 소신있고 용감하네 란 생각이라도 했겠지만 옹졸하고 좁은 시야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란 말 밖에 안떠오릅니다.
    • 2007/12/18 19: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자기보다 못한 상황을 보면서 현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관점이겠지요. 제 생각엔 그런 관점이 정작 발전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지만요.

      그런데 그게 무식한 것이랑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네요. 덮어놓고 의견이 다른 상대방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그 태도가 무식한 것이랑 더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저야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그러기에 또 찾아와 읽고 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다는 것일 뿐입니다.
  33. 샤워
    2007/12/19 02: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기보다 못한 상황보며 긍정적이라뇨?
    당신은 자기보다 잘된 사람 보며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인가보죠?
    영국 민주주의 역사가 몇년입니까?
    비교할걸 비교하란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수준 비슷한 나라와 비교해서 괜찮다는게 자기보다 못한 상황을 보란건가요?
    세계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민주화 속도가 빨랐던 나라가 얼마나 있습니까?
    이게 우리보다 100년 이상 민주주의 역사가 있는 나라와 비교해 부정적으로 보는것보다 훨신 제대로 된 시각같군요.

    제가 보기엔 당신의 관점은 패배주의만 나을 뿐이에요.
    어린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김연아 반에 반도 못따라간다, 하고 말하는게 당신 생각엔 그 아이의 발전을 위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싶으시겠죠. 김연아도 너 같은 시절이 있었다 하는건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여기시니.

    나열된 단어들을 보고 기대 수준만 높아서 쓴 단어네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글 쓰는 방법이라 좀 흥분했습니다.

    가장 발전된 나라의 시각이나 그 나라와 비교하는 말로 시작하는걸 싫어합니다.
    뒤에 어떤 나라가 나오던지 다 끼워 맞춰지는 글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말로 당신의 주장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은 없고 비판만 있습니다.
    그냥 그동안 들어온 말 짜집기 하면서 단지 민주주의, 독재란 단어 첨가해 사람 시선 끌어보려고 한 것처럼 밖에 안보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의 시선을 빌려 뭔가 새로운 글인양 포장만 해 놨습니다.
    그래서 좀 과격한 표현을 썼습니다.

    무식이란 표현 쓴건 사과드립니다만, 반대할만한 당신 의견이 없는 글입니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못해서 이번 정권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전개될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기서부터 민주주의구나 하고 정할건가요?
    마치 내용이 제목에 끼워맞춰 썼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꽤 발전해온 민주주의에 독재하고 다를게 없다는 끼워맞추기는 무리한 전개니까요.
    • 2007/12/19 06: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어린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계속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김연아 같은 선수의 비디오를 보여주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집어주어야 겠지요.

      그리고 이 나라 정부가 어린아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정부가 잘못하면 그 피해를 집권자가 아니라
      힘없는 서민들이 다 뒤집어 쓰게 되니
      제대로 못하면 매섭게 비판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도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를 자랑스러워 합니다만
      생각해보십시오.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 할때 항상 우리의 민주화 역사를
      자랑해왔는데 정작 이 나라 뉴스에서 우리 정치현실이
      조롱거리로 등장할 때의 자괴감을 말입니다.

      그 많은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화 이후에도
      왜 이같은 파행이 계속 반복될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형식적 민주주의에 집착했을 뿐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를 실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하는 결론에서 쓴 글입니다.

      현 정부가 사회문제를 대처하는 데 있어
      전시행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대가 극심한 사안에 대해서는
      투명한 논의과정을 통해 민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보다 공권력을 동원하는 모습에서
      권위주의 정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반복적 파행에서 벗어나려면
      정치권이 못한다면 시민사회라도
      같이 진흙탕에 발을 담그기 보다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를 견인해 낼 수 있는
      움직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마지막 부분에 썼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이 없다고 하시니
      끝까지 글을 안 읽으신 듯 하네요... -.-;;;
  34. 샤워
    2007/12/19 15: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의외군요, 민주주의 아니라면서 외국 친구들에게 민주화 역사를 자랑했을줄이야.
    제가 글만 읽고 잘 못 생각했었군요. 죄송합니다.

    저 모습이 부끄러우면 부끄러운거지, 그게 왜 현정부의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으로 가는 첫 단계가 되는 겁니까?
    영국 의회 민주주의 발전 잘 아시겠지만, 너무 살벌하지 않았나요?
    그 사람들이 우리 모습보고 조롱한다는 것도 좀 우습습니다.
    당신은 동남아나 중남미에서 민주화 운동 일어나는것 보면 우위에 선 느낌이라도 드나요?
    그저 우리가 더 일찍 실천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도 님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잘 되었으면 하는 맘도 같습니다.

    김연아도 처음에는 그랬다는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줘 스케이트 재능을 살리기 바라지 김연아보고 너 보면 한숨밖에 안나와, 넌 안돼 하는 생각을 심어줘 스케이트 관두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님의 의견을 보면 영국의 예를 하나 들었는데 아시겠지만, 여건이 조성되었을때나 가능한 겁니다. 여건이 안돼 있는 상태에서 불가능한걸 바란다는것 아시지 않습니까?
    7,80년대 대학생들에게 불만있으면 민원 넣고 합법적으로 하지 왜 데모를 하냐? 하는 형태 아닐까요?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기에 상상보다 더 빨리 다가갈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정권 기간 하나 가지고 아직 멀었다 하시는 분이 5년안에 여건조차 조성되지 않을걸 비전이라고 제시한거라고 봅니다.

    님은 현정부가 민주주의라고 스스로 칭하지만 독재라고 하시지만
    일부 우리나라 국민들은 현 정부가 좌파라고 하니까요.

    아무튼 답글은 잘 읽었습니다.
    민주주의 위해서 많은 생각하시고 혹시나 또 님의 글 읽을 기회가 된다면
    더 신경써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
  35. 참..
    2007/12/21 16: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샤워/

    글쓴님의 "비전제시형 운동모델"이 꼭 영국정도의 여건이 되어야만 시작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현실을 토대로 생산적인 정책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사회적
    운동이 선진국 여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패배주의적이네요.

    그리고 글쓰신분이 영국의 정치현실을 거론할때 "너희들은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셨을까요? 발전된 정치현실의 국가들은 하나의 참고사례로서 우리가 앞으로 나갈 좋은 모델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거론되는 것이죠. 그것을 꼭 무슨 패배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식으로 과잉반응 하는 것 정말 보기 안좋습니다.
    • 그렇죠
      2007/12/22 08: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여건이 안되어도 시작이야 할 수 있죠.
      뭔들 시작은 못하겠습니까.
      적극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사회 구조상 학생이 아닌 일반 직장인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근무시간이 긴 세계 최장 근무시간 등으로 인해 자기 가정과 함께 할 시간도 최하인데 사회 운동을 할 여건이 모든 연령대로 퍼지기는 아직은 무리라는 말인데 무슨 패배주의입니까? 그들만의 시민운동이 될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물론 계속 좋아지겠죠, 아직 힘들뿐이지.

      그리고, 제가 패배주의란 단어를 쓴건 제 글에 대한 해석을 우리보다 못한 나라 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발전에 도움 안되는 것이라는 답글을 보고 내 글을 그렇게 보면 위의 글도 읽는 사람 입장에선 패배주의가 될 수 있다고 한 말이지 저 글을 보고 바로 한 말은 아닙니다.
  36. 참..
    2007/12/24 15: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럼 모든 사회운동 가운데 여건 좋았던 적에 시작했던 것 있으면 대보세요.
    거의 모든 사회운동은 다 나름대로 안 좋은 여건에서 출발하게 되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도 안좋은 여건 가운데 이끌어내야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거지
    여건 안좋은데 무슨 적극적인 시민참여냐..
    이게 패배주의지 뭡니까..
    물론 그들만의 시민운동이 될 확률이 높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 샤워
      2007/12/26 13: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좀 제대로 읽으세요
      누가 못한데요?
      노무현 정부 몇년안에 못바꿨다고 독제때하고 달라진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내세운 대안은 기간이 아주 여유있길래 쓴 글이잖아요.
      뭐 그렇게 글을 못읽어요?
      당장 안되는건 안되는거잖아요? 빠른 시간내에 결과가 안나온다는거지
      뭐 저렇게 글을 못읽어요? 제대로 못하니 누가 하지 말라는건가

      글쓴이는 그런 생각으로 안썼을거라는 말 썼길래 꽤나 사려깊은가보다 했더니만 전혀 아니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적어줘야 되나

      지금 우리나라의 시민 운동단계는 이익단체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순서이고요.
      적극적인 참여가 왜 중요한지까지 적어줘야겠죠?
      시민운동이 공짜로 됩니까?
      이것역시 돈이 필요합니다.
      참여가 없으면 아예 할 돈도 없거나 일반적인 시민의 참여에 의한게 아닐경우 그 돈을 낸 사람이나 집단의 이익을 어느정도 반영하게 됩니다. 이게 이익단체라면 이익단체겠죠.

      이토피아에서나 가능한 공산주의 체제, 언젠가는 그게 가능할거라고 해서 지금 못한다고 하는게 패배주의입니까?
      소규모로 실험적으로 조금씩 해 나갈수는 있겠지만 여건이 안되면 안됩니다.
      또 못알아들을까봐 쓰는 글이지만, 제시된 대안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못알아 들을까봐 하는 얘기지만 영국 뉴스를 외국에선 이라고 시작해(보통 사람이 이렇게 적었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뉴스에 나온 의원들의 행동을 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와 연결시키고 대안을 내놓은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7. 2007/12/27 15: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전반적인 논지에 동의합니다

    반부패, 반독재를 기치로 내건 민주개혁세력 그리고 그들을 기반으로 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형식민주주의의 진전과 시민사회 영역의 신장이라는 점에서 분명 그 의의가 있습니다.
    확실히 권위주의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보다 시민들의 발언권이 보다 강화되었고 그 때문에
    보다 다양한 논의가 공적인 장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진보로 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을 강조하는 민주개혁세력, 그들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한계는 어찌보면 거기까지라고 생각됩니다. 시장화 흐름에서 불리한 집단과 계층의 권익은 민주개혁세력이 내세우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 이것만으로 담아내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죠. 이러한 한계를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정권재창출에 적절하게 이용했다 할 수 있고요.

    보다 근본적인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위해서는 말씀하신대로 시장화 흐름에서 소외되기 쉬우면서 사회의 광범위한 대중을 형성하고 있는 계층들의 이해관계와 권리를 민주개혁세력이 제대로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현실지점으로 내려가야 하겠죠. 반독재, 반부패 투쟁은 먹고살기니즘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구름 위에서 벌이는 신선놀음으로 여겨지니까요.
    • 2007/12/28 06: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저도 형식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신장등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명분에 매몰되어 정작 진짜 민주주의로 이뤄야할 내용이 상실된 것을 지적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성장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이고요. 빠른 시일내에 의미있는 움직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38. 2007/12/28 15: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NHS를 유지하는데 어느정도 재정이 소요되나요?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보험의 건강보험 대체 문제를 놓고 넷상에서는 상당히 시끄럽습니다만.. 민영보험 도입의 논리가운데 하나는 보험재정이 고갈되니 민영보험과 건강보험으로 이원화 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국의 전체 국민소득 대비 재정규모와 우리나라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 2007/12/29 10:50
      댓글 주소 수정/삭제
      영국 NHS 재정규모는 120조원 정도 되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 영국간의 단순 재정수준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영국간 보건의료 서비스 수준과 정책 차이는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보건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접근부터가 다릅니다. 그래서 영국 NHS에 대해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면서 섣부르게 말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최근 건강보험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경험으로 NHS에 대한 심층분석 시리즈 기사를 기고 할 생각은 굴뚝같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시간이 없어 못하고는 있습니다. 급한 일만 끝내면 1월정도에는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단순히 당연지정제 폐지 반대를 넘어서 우리가 정말 만들어가야하는 의료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지요.

      우리나라 상황에서 민영의료로 이원화하자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지가 무슨 소리를 떠드는지 모르거나 안다면 기본 인간적 양심도 없는 놈들입니다. 잘못된 의료제도가 죽지 않아도 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죽게 만드는지를 알지도 못하거나 상관을 안하는 것이지요. 지옥이 있다면 이런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지요.

      영어에 두려움이 없으시다면 보건의료에 대한 기본적 자료들은 oec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영국비교도 괜찮지만 너무 기본 여건의 차이가 크니까 공공의료의 맏형격인 영국과 민간의료의 맏형격인 미국을 비교해보는 것이 보다 간단명료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마이클 무어의 식코도 보진 않았지만 민간의료체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말 생생하고 섬뜩하게 보여준다고들 하더군요.
  39. ?
    2007/12/30 23: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제가 알기로는 영국에서도 부분적으로는 민영화 움직임 있지 않은가요?
    공공의료가 가지는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민영화로 부분적으로 대체하려는 것 아닌가요?
    솔직히 영국도 그 큰 재정문제 때문에 말썽이지요.
    • 2007/12/31 06: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우선 공공의료가 비효율적이라는 것부터가 근거없는 가정이며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진실입니다. 1인당 총의료지출이 완전한 민간의료체제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공공무상의료체제를 가진 영국의 두배가 넘지만(미국 6,543달러, 영국 3,065달러) 기대수명, 영아사망율, 출산사망율 등 주요 보건지표에서 영국과 비슷하거나 조금씩 뒤쳐집니다. 공공의료가 돈이 많이들어간다는 것은 국가 예산만 따져도 사실이 아닙니다(미국 정부 총지출 당 보건의료지출 비중이 19.2%, 영국 16.1%).

      그리고, 영국 NHS 개혁은 공공의료를 민간에게 팔아치우는 식의 민영화를 추진하진 않습니다. 대신 공공의료체제를 유지하면서 공공 병원을 짓는데 민간자본을 이용한다든지, NHS 환자가 민간 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든지, 공공 병원 끼리라도 경쟁체제를 만든다든지 하는 식의 개혁입니다. 즉 공공체제 안에서 경직성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간자본을 활용하거나, 시장원리를 활용하는 것이죠.

      이처럼 한국에서 대단히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습니다.

100만 민중대회와 우리 민주주의의 초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은 전경버스 600대를 동원, 집회예상지역 차도와 주변 인도를 차량으로 막아 통행을 원천 봉쇄했다. 정부가 집회를 불허했을 때부터 경찰과의 대치는 예견돼 있었고 교통혼잡은 피할 수 없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집회의 원천봉쇄가 도심 교통도 봉쇄한 것이다. 사진@경향신문, 글@이정환닷컴


예상된 결과였지만 예상보다 비참했다. 선거판도를 확 뒤집어 놓겠다던 민주노동당의 "핵심전략"이었던 100만 민중대회는 진압뒤의 풍경 만큼이나 스산했다. 무엇을 위해 모였는지, 무엇을 외쳤는지는 전달되지 않았고 언론들은 구태의연한 데모질로 매도했다. 한 경제지는 한걸음 더나아가 최근 노사분규까지 싸잡아 노동자의 '떼 병'이 도졌다고 비난했다. 그 보도수준의 유치함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정도는 예정된 수준 아니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대선때의 촛불시위와 농민대회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때는 감히 이런 유치한 수준의 매도는 보이지 않았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참석하니 마니 했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후퇴했다'는 말이 또다시 아프게 파고든다. 도데체 언제쩍 원천봉쇄냐. 이젠 버스회사에 협박편지를 보내 집회에 협조하면 운전자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협박한다. 관계장관이 모여서 담화문을 발표한다. 군사독재시절의 대한뉴스를 다시 돌리는 듯하다. 사회혼란과 교통혼잡이 이유라는데 그간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집회를 보장하는 쪽이 덜 혼란스럽고 덜 혼잡스러운 것은 명백하다. 혈기좋은 학생들이나 울분에 받친 노동자나 농민들이 경찰과 충돌하긴 하지만 원천봉쇄처럼 전면적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허용된 집회에서 한두차선으로 행진하는 풍경은 이미 한참 익숙해진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원천봉쇄를 하는 한 도심에 걸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집회를 하려는 쪽도 심심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못내게 한다면 결국 격렬한 충돌만이 남을 뿐이다. 며칠전 아직도 한국을 독재체재로 알고 있는 외국 친구들과 대거리를 했었다. 나는 단호하게 지금은 오히려 민주주의가 넘친다고 단언했다. 본의아니게 그것이 거짓말이 되었다.

언론들은 툭하면 선진국 시위문화를 운운하지만 무얼 보고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선진국에서는 이정도로 사람들의 불만이 폭증할 땐 폭동이 일어난다. 물론 왠만하면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통해 요구가 해소되니 그리 흔하진 않지만 한번 터지면 우리나라 처럼 조직된 시위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몇년전 시도된 노동개악은 격렬한 폭력적인 충돌을 나았고 작년인가는 소수인종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파리 근교에서 대대적인 폭동이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불과 몇년 전 왕당파(loyalist)들의 폭동이 북아일랜드 수도에서 며칠밤동안 지속되어 화염병과 돌팔매질이 밤거리를 점령했다. 뉴욕경찰을 운운하나본데 얼마전 뉴욕에서는 교통노조가 전면파업을 해서 전 도시가 끔찍한 교통대란을 경험했다.

선진국에서 한참 멀은 것은 시위문화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와 같이 농촌은 아주 대놓고 정책에서 집단적으로 배제되고 아직도 산재로 사람이 노동현장에서 죽어나가고, 비정규직 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고, 강제철거가 존재할 정도로 사회적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이에 대한 항의가 여전히  폭동이나 소요사태로 발전하지 않고 조직된 시위로만 나타나는 것이 솔직히 놀랍다. 언젠가 부터 시위나 파업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청구할 대상이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폭동이나 소요사태에서는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겠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그 대상부터가 대단히 모호해질 것이니 말이다.

선진국에서 정작 한참 멀은 것은 정치이고, 정책이고, 언론이다. 정치가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정책이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언론이 이를 소통하지 않으면 걱정해야 할 것은 조직적 시위 따위가 아니다. 폭동이나 소요사태도 재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위 6~70년대만 하더라도 제3세계의 새로운 모델로서 떠올랐었던 남미국가들의 지금을 바라보라. 브라질이나 멕시코에서 온 친구들이 얘기하는 자기들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심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갱들이 활보하고 길거리 가다가 이유없이 총맞아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인구의 절반이상이 빈곤층인데도 7~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식 경제체제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 시민들의 일상 자체가 재앙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렇다. 우리사회는 민주화가 되었다. 하지만 어제의 모습은 현재의 대선과 겹치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에서 각종 사회적 요구와 대안이 경쟁해야할 대선은 가면 갈수록 진흙탕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증가하는 양극화, 급증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 등등 과도한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가 부른 것들임에도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를 주장하는 후보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무언가 달라질까하고 표를 던졌던 소위 '개혁세력'의 집권 끝에 삶이 더욱 팍팍해졌으니 다른 쪽에 희망이나 걸어볼까 하는 것이 작금의 분위기인듯 하다. 지난 대선에서 부패와 특권으로 인해 낙마했던 후보가 고개를 내밀자 마자 20%의 지지를 훌쩍 가져가는 현상은 현 집권세력쪽만 아니기만 하면 된다는 '묻지마 지지' 현상이 아니고는 설명이 잘 안된다.

그럼 제3의 대안인듯했던 민주노동당은? 어제 민중대회에서 잘 들어났듯이 이들이 자신이 정당인지 운동단체인지부터 구분이나 할 줄 아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자신의 입장대로 민중대회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이 것이 대통령선거의 '핵심전략'이라니? 사람들은 시위나 데모는 충분히 지난 대선때 경험했다. 그리고 이는 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철저한 그에 대한 배신이다. 탄핵때도 그렇게 모여봤지만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적 고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이고 보자'는 전혀 통할리가 없다. 원하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고 외쳐도 도대체 무얼 위해서 모여야 하는지가 불분명 한 것이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도대체 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저렇게 모여서 난리들인지 쉽게 납득이 안되니 지금 벌어지는 헌법적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도, 유치찬란한 매도조차도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집권을 얘기하는 '정당'이라면, 그리고 합법적인 선거공간에 '후보'로서 참여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일단의 우선 순위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서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 운동단체들이 힘을 모은다고해도 '무엇을 위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하면 하는 소리가 '데모합시다'라면 그는 더이상 대통령 후보도 아니다. 불행히도 진보'정당'의 후보로 나온 사람이 기껏 전달한 메세지 라는 것이 그것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핵심 메세지 하나도 없이 진보적인 것 같은 정책을 줄줄이 나열한다고 해서 정책선거 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사람들에게는 그림이 안그려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정책을 꿰뚫는 핵심적 기조와 비전이 제시되지 않으면 메세지도 전달될리도 없고, 공약들도 서로 따로노는 무의미한 장식물일 뿐이다. 핵심메세지만 있고 정책은 없는 문국현 후보도 또하나의 극단이다. 새정치를 말하는 그도 인물을 중심으로 정당 하나 급조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현 구도대로 대선이 진행된다면 지금껏 깊어온 사회적 위기와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소식만 들려오는 현실이 갑갑할 뿐이다. 정말 희망의 증거가 잘 안보이는 이 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위기가 '위험한 기회'라는 말을 믿어볼 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88 관련글 쓰기

  1. "유신정권 때도 없던 일"

    2007/11/13 12:50
    삭제
    2007 범국민행동의 날을 마친 영길씨는 12일 WBStj원음방송 '손석춘의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어제 집회를 막기 위한 정부의 대응이 "유신정권때도 없던 일"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집회에서의 연설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에 대해 "후보의 일상적인 활동"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별셋그룹 비자금 문제에 관해선 특검 도입의 입장을 거듭 피력했습니다. 이에 관해 정동영, 문국현 후보와 만날 뜻이 있고 상대쪽에서도 긍정적..
  2. 김경준 귀국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

    2007/11/17 09:42
    삭제
    코미디야.. 코미디 ! 김경준 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입국하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심사다. 공항에서 입장을 달리하는 두 세력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무엇이 수갑을 차고 호송당하는 죄인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저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5년 전 대통령선거를 마지막으로 아 이제 비로소 우리가 선거다운 선거를 치를 수 있겠구나 하는 진한 감동과 희망을 느꼈다. 환하게 웃으면서 입국하는 김경준 씨(사진 오마이뉴스) "국민이 대통령 입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ㅉㅉ
    2007/11/13 08: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사진 아주 오래전 사진인데 그저께 있었던 일이마냥... 올리다니. 요즘엔 저런방패 안씀
    • 2007/11/13 20: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지적하신 내용을 보고 저도 의문이 들어 출처를 찾아갔는데 다시 찾아 확인할 수가 없군요. 그래서 다른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행태는 여전했었다는 것이지요. 군사독재시절이나 민주정부시절이나 장면은 여전히 재탕되고 있습니다. 쩝...
  2. 타조알
    2007/11/13 09: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혹여나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민중대회에 대한 오독으로 읽힐까 염려스럽기까지 합니다. 대선 공약이라는것이 "데모 합시다"라는 촌스런(?)공약으로 많은 사람들을 선동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이 진심어렸다는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 2007/11/13 20: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비판한 것은 민중대회 자체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본분을 잊고 그걸 선거전략이라고 삼은 민주노동당입니다. 당연히 국민은 시위를 할 권리가 있고 지금과 같이 언로가 막히고 제도적으로 소외당하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시위는 피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를 제도 안에서 풀어내겠다고 제도정당이된 민주노동당의 대선핵심전략이 '시위'라는 것은 무언가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3. 플라토닉
    2007/11/13 10: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역사적으로 돈있는 자는 돈으로 돈없는 자들은 폭동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쟁취했다. 민주주의라는게 서로의 이익을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이 협상의 장에서 배제된 농민 비정규직들이 폭동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쟁취하는건 당연한거다. 시위문화 말하기 전에 사회적 이익배분에 있어서 힘없는 자들의 이익도 챙겨준다면 시위같은건 일어나지도 않는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야 로비라는 우아한 방법이 있지만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은 폭력 밖에 없다.
  4. 참새알
    2007/11/13 12: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민주주의=자유로운시위 이고 폭동이나 소요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님의 글은 그다지 호소력있어보이지 않네요. 시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시위권이 중요한 만큼 동일하게 중요한건 다른사람의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이죠. 님의 뜻이 어떠하든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점이고 100만명의 찬성이 있으면 침묵하는 100만명의 반대도 있습니다. 그 의견은 무엇이 되든 중요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고 도로점거로 이어진다면 그건 단지 다른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됩니다. 만약 제가 제의견이 옳다하여 님의 집앞에 시위신청을 하고 확성기를 틀어대고 집에서 못나가게 집앞을 봉쇄하면 님은 좋겠습니까? 민주주의에도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정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님들의 주장이나 의견 존중되어야 하고 받아들여져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님들이 좋은 주장 옳은 주장을 하더라도 남의 기본권은 무시한채 자신의 시위권만을 강조한다면 공허한 메아리 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왜 님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해도 동조하지 못하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 2007/11/13 20: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시위는 정치사회적인 현상입니다. 집단의 욕구가 제도안에서 해소가 되지 않으면, 그 정도가 일정한계를 벗어나면 제도밖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조직적인 시위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철저한 소외와 배제속에서도 서구 '선진국'과 같은 폭동이나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같은 조직적 시위문화가 유지가 되니 한가하게 '시위문화' 타령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와같은 정책적 배제와 소외의 심화가 일정 한계를 넘으면 이같은 '조직적 시위'가 그리워 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5. 참새알
    2007/11/13 12:1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리고 돈있고 힘있는 사람은 로비를 하고 돈없는 사람은 폭력밖에 없다는 플라토닉님.. 우리가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는 촛불시위는 뭐죠? 87년 자유화가 결정적으로 성공한게 폭력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민중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권력 그런거 아무리 있어도 민중이 등돌리면 끝입니다. 우린 그것을 촛불시위에서 보았습니다. 소리없는 외침이 얼마나 힘이 크고 얼마나 동조를 얻는지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어도 폭력이라는 수단이 개입하면 그걸로 민중은 돌아섭니다. 만약 이번 민중대회에서 100만명이 모여 불허된 모임이라는 불만과 농민과 노동자의 주장을 폭력이나 도로점거와 행진로 나타내지 않고 조용히 모여앉아 촛불시위를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언론에서 그렇게 씹었을까요? 경찰이 촛불시위하는데 방패로 찍었을까요? 아무리 불허된 시위였다해도 그렇게 했다면 경찰도 아무말 못했을꺼고 언론도 함부로 떠들지 못했을 겁니다. 사회적으로 이익배분의 논의가 불충분하고 장소가 부족한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폭력과 폭동을 정당화시키는 님의 말씀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 2007/11/13 20: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 정부탄생에 기여한 촛불시위는 원천봉쇄가 안됐었죠. 쩝... 촛불시위도 원천봉쇄가 되면 무슨 재간으로 한답니까? 그때도 도로점거도 했는데요. 탄핵반대 집회도 엄청나게들 도로를 점거했지요. 그래도 원천봉쇄의 'ㅇ'자도 들어본일 없었고...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집회와 시위에 '원천봉쇄'라는 것 자체가 위법적인 것이지요. 무조건 폭력을 주장하는 것도 동의하진 않지만 참새알님의 논리는 앞뒤가 한참 바꿔어 있는 듯 하네요.
  6. 2007/11/13 13: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노대통령, 기자실 폐쇄한 것 하나는 맘에들지만
    노동자농민들에 대한 대책을 보면...영 아니올시다!

    민초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막으려고만 하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군사독재정권과 다를바가 뭐요?
  7. 부천댁
    2007/11/13 13: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놈현~ 뭐했나??

    노동자,농민,노점상,학생.....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시위할 때,
    아무런 잘못없는 전경들과 싸울 때,
    놈현은 머했나~??
    물대포 쏘아대고~ 방패로 찍어대는 정책 내놨나-_-^

    전경들 불쌍해 죽~겠다....
    그에 앞서, 우리나라 농민들, 노동자들, 노점상들....등등등
    모두 불쌍해 죽~겠다!!!
  8. 남궁정
    2007/11/13 13: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민주노동당의 핵심전략은 '데모'맞습니다. 지금같은 대선정국에 15만에서 20만 정도(관광버스 2800대가 예약되었을 정도이니.. x40 해보세요. 그것도 수도권은 제외입니다) 사람들을 모을수 있는 후보가 과연 누구일까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데모 한번 하자고 자기 돈들여서 휴일에 온게 아닙니다. 권영길 후보가 지방에 '만인보'하러 가신건 바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너무 권영길만 찬양하는게 아닐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 현실에 수긍하고 살지만말고 분노도 터뜨려볼줄 알아야합니다!!
  9. 변자영
    2007/11/13 13: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무엇을 위해 모이는지 무엇을 외치려는지를 들어보기도 전에 방패와 곤봉으로
    이들의 목과 숨통을 조이는게 누군지는 혹시 생각해봤나요?
    태어났기에.. 사는것보다 죽는게 어렵기에 살고 있는 노동자,농민,서민,빈민 등이
    11월 11일,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자기네들의 삶의 고통을 허공에다라도 대고 외치고 싶어 없는 돈 만들어, 빚이라도 내어 한군데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는거.. 단지 자기 목소리를 내고싶어 모인다는거 자체가 노무현 정권은 그렇게 무서웠던건가요?
    모여서 누구를 죽이겠다는것도, 부수겠다는 것도 아닌데
    맨몸인 국민들 앞에 경찰,전경 앞세워 곤봉,방패를 앞세워 소화기를 이용해 살수차를 이용해 헬기를 이용해 힘으로 공격하는것이 총칼을 들이댔던 박정희,전두환때와 뭐가 다르다고 할 수 있나요.
    무법자들로 인해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는 뉴스들로만 가득찬 이 세상...
    서울로 올라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던 노동자,농민,서민,빈민,극빈자들의 길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며 타이어를 펑크내고 협박했던 경찰,전경과 노무현 정권이며 바로 이들이 진정한 무법자이며 무법천지를 만든 장본인이라는것을 당당히 말하고 싶네요.

    이걸 "데모"로 승화시키는 그들이 무섭습니다.
  10. 라디오스타
    2007/11/13 13: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윗쪽 부분의 문단의 의견은 님과 의견을 같이 합니다..

    근데, 뒤에서 부터 3번째 문단 부터는 님과 의견이 같지 않습니다.

    시위,집회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우리나라는 집회,시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입니다....

    민주노동당이 폭력시위를 한것이 아니라, 노무현정부의 경찰이 평화적인 시위
    를 할 수 없게, 폭력적으로 시위을 진압하고, 시위자체를 안받아주고,,,,

    시민들과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책임은 노무현정부에게 있는 것이지, 시위를 기획하고 참여한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지적대로,,,, 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부터 저항으로 통해 발전된 우리 민주주의가

    노무현에 의해 후퇴된 것에 대해,, 서글픔과 우울함을 넘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 나그네
    2007/11/13 16: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민주노동당은 민주란 말을 빼주기 바란다.
  12. 귀거래사
    2007/11/15 11: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힘이 될까 하여 그날 현장에 참가했는데 실망스러웠습니다. 오늘 신문 보니 당 대변인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전략 전술 부재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전 쯤부터 생각한 비현실적인 기대인데, 지금이라도 권영길 후보가 사퇴의 용단을 내리고 다른 후보로 분위기를 반전하는 파격적 결단을 내릴 수 없을까요?
    • 2007/11/15 20: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대안의 마지막 보루인데 아직 스스로에 대한 개념조차 잡지못하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비극이지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참 마음만 복잡합니다.
  13. 주도
    2007/11/16 22:0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 장소에 당신의 아들이 있음 달리 생각이 들것이요. 그 아들은 정치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그저 성인이 되어가는 중간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네 어른이나 형들께 욕을 먹고 매를 맞기도 하고 있어요. 왜 의무경찰 전경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가요....
    그들도 세상을 알고 있으니 일부만의 주장을 위해 방법은 중용하다고,별론한다는 생각마시오, 우리가 학교 윤리시간에 배운데로 결과가 옳기 위해 과정도 중용해야죠. 그점을 간과하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죠. 이제는 집회도 다른 방법으로...
    • 2007/11/17 01: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 아들이 전경이어도 생각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직시위가 발달해서 이정도지, 현재와 같이 사회적 불안요인들이 제도안에서 해소되지 못하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시위문화'를 주장할 대상조차 사라지겠지요. 폭동같은 사태에 지금과 같은 '단체'가 있을리 없으니까요. 다른 현상들을 보진 못하고 자꾸 '시위문화'타령만 하면 이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을지 만무하지요.
  14. 신희성
    2007/11/19 11: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나친 시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긴하나 원천봉쇄는 옳고 그름을 떠나 민주사회에 웬말이냐?
    난 민노당 지지자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입장을 편드는 사람도 아니지만 원천봉쇄는 분명 잘못되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경찰이 수사권 달라고하니... 허~어!!
  15. 김대영
    2007/11/23 15: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참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입니다만... 문국현에 대한 평가는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명박 대항마로 시작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장기적 로드맵과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과정에 돌입한 듯 하니 지켜보죠... 여튼 민주개혁세력의 수장노릇을 정동영세력이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입니다. 민노당도 권영감과 엔엘이 잡으면서 맛이 간 건 마찬가지이지요... 조승수가 그나마 제대로 보고 있더군요.
    • 2007/11/23 20: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라고 문국현에게 희망을 걸고 싶지 않겠습니다만은 이 곳 영국땅에서 어떻게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나를 보면 인물이 아닌 정당구조에 그 핵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창당과정을 보면 한국정치의 고질 적인 병폐였던 개인중심의 정당구성의 병폐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더군요. 그래서는 이 이전 '여당'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하게 되는 것이지요.

영국에서 본 블레어 4년, 블레어를 말하다

- 블레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 AP=연합뉴스


블레어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3일 채널4에서 방영된 '특별한' 다큐멘터리 <토니 블레어의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 of Tony Blair)>은 블레어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생생하게 불러들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The State We're in)>이라는 책을 써서 이해당사자주의(stakeholderism)를 주창해 초기 신노동당(New Labour)과 블레어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윌 휴턴(Will Hutton) 전 <가디언> 편집장이 블레어 전 총리와 집권 마지막 100일을 동행하면서 '블레어 10년'을 짚어본 다큐멘터리였다.

총리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끼친 언론인과 총리의 허심탄회한 만남이란 것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만남의 성격에 맞게 보건, 교육,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블레어 10년' 집권 후 정치사상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오간 것도 다른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이었다. 윌 휴턴도 세간의 비판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질문했고 블레어도 그 비판에 대해 공격적인 반론을 펼쳤다.

블레어의 영국에서 보낸 4년

2003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블레어가 총리였으니, 난 블레어 집권 후반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셈이다.

한국에는 '블레어'하면 무슨 노동당의 배신자쯤으로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오기 전까진 어설프게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직접 블레어의 영국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지금 난 블레어가 정치에 대한 내 사고 자체를 뒤집어놓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블레어의 정치적 방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새로운 사회적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의제를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 전체 정부가 체계적 전략에 따라 각 부분마다 일관성 있는 정책적 실행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해가는 이들의 정치력은 예전에 한국에서는 전혀 목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준의 것이었다.

특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대처 때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국가무상의료서비스(NHS)와 관련, 유럽 평균 이하였던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현재 모든 지역 의원(GP)에서 이틀 안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NHS 최대 문제로 꼽히던 대기 시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또한 '우리 세대에서 아동 빈곤을 없애버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블레어 정부는, 아직 그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그 전략에 따라 여러 해 동안 정책적으로 노력한 결과 60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고질적이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잡센터플러스'라는 고용 전략의 핵심 기관을 지역마다 배치하고 신고용협약(New Deal)이라는,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대상집단별 고용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그 후에도 낮게 유지했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시장정책에 바탕을 두고 처음으로 전 성인고용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노동당 정부는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실업률을 높이지 않았다.


▲ 지난달 10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27일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세지필드 선거구의 트림든 노동당 클럽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정치에 대한 사고 자체를 변화시킨 블레어의 정치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영국 내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신노동당 집권 기간 동안 3분의 1 정도(35%) 낮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심장질환 관련 지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반시설과 서비스 확대를 비롯해 직접적으로 사망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로, 노동당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다.

이 모든 주요 전략과 정책을 블레어를 필두로 한 신노동당 세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이들은 국민을 복지 급여에 의존하게 하기보다는 고용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통해 노동급여를 보장하는 노동연계 복지 전략을 채택했다. 아울러 결과적 평등보다는 모든 이를 위한 기회(opportunity for all)를 주창하면서 교육정책에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이들의 핵심 전략은 정책으로 실행됐고 더 나은 의료, 더 나은 고용, 더 나은 교육 등으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결국 영국은 블레어의 10년을 거치며 더 나은 곳이 됐다. 블레어를 끊임없이 비판했던 <옵저버>(<가디언> 일요판)지도 전면 사설을 통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노동당 비판자였던 <가디언>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도 블레어를 다룬 특별판 칼럼에서 같은 말을 남겼다.

총리로서 임한 마지막 대정부 질문(Prime Minister Question Time, 매주 수요일 1시간 동안 총리와 국회위원들 간에 진행되는 문답 시간)이 끝나고 블레어가 퇴장할 때, 기립박수를 보낸 노동당 의원들을 따라 보수당 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의 영국 의회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이 장면은 '통 크게 일어나 함께 하자'고 손짓한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 덕분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발전적이었던 10년을 이끌었던 총리에 대한 의회의 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시장주의 맹신과 이라크 침공의 과오

물론 블레어 정부의 전략에는 비판할 거리가 많이 있다. 블레어는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축소에 열을 올렸던 대처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를 공공 부문에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공공영역의 시장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효율화로 이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은 공공서비스 예산의 전폭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자부심인 NHS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수가 오른 데 비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자본계획(PFI)에 따라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병원을 사상 최대 규모로 증설했지만, 민간자본에 연 예산의 20~30%를 수십 년 동안 환급함으로써 결국 공공자본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고 이 같은 예산 부담은 서비스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 총리. ⓒ Whitehouse



뭐니뭐니 해도 블레어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이라크였다. 아무리 블레어가 빈곤률과 실업률을 떨어뜨려도, 나라를 잘못 이끈 지도자란 오명은 어딜 가나 끝까지 따라다녔다. 사회 자체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인의 고통은 영국 내에서 블레어가 어떤 업적을 남겼든 간에 씻길 리 없다.

윌 휴턴이 이 대목을 묻자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된 지금 어떤 국가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벌일 때 다른 문명국가들은 이에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후세인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현재 더 나은 상황이었겠냐고 블레어는 반문한다.

'개입'에 대한 이 같은 블레어의 신념은 집권 초기 '윤리(ethical) 외교'를 주창할 때부터 드러났다. 또한 이전에 보스니아·코소보·동티모르·시에라리온 등에 개입한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은 블레어 자신을 과도한 개입주의로 몰아갈 법도 했다. 특히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무장단체를 몰아냈던 시에라리온에서 블레어는 아직도 영웅이다.

흔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들 하지만 블레어에겐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셈이다(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블레어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오히려 부시보다 더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미국에서 설득력 있게 설파한 것에 고마워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같은 신념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깔려있다. 외국의 무력 개입이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뿌리깊은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의 씨앗이 됐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 나라의 복잡한 상황을 외국에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훈련된 군대의 무력을 활용해 안정된 정치상황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모순이다.

중동특사 블레어의 모순,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블레어가 이제 중동특사로 활동한다고 한다. 최근 중동을 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 평화협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마스를 서구 국가들이 배제하고, 그 때문에 생긴 수많은 갈등 끝에 이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타운동의 수반 아바스만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도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아무리 블레어를 비판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블레어의 업적과,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딛고 신구교도 공동정부 구성과 평화 정착을 이뤄낸 블레어의 정치력은 블레어가 아예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 대정부 질문 시간에 북아일랜드 공동 정부의 첫 총리가 블레어의 중동사절 활동에 희망을 품는다고 직접 이야기한 장면도 그러했다. 그저 개인적으로 블레어가 너무나도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온 그곳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그래서 이라크전의 과오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 2007년 7월 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당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블레어 시대가 끝난 뒤의 블레어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6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진정한 정계개편 망친 건 노무현 자신

- 그의 꿈은 그에 의해서 무너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의 상심이 큰 모양이다. 노무현 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던 청와대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직접 '실패'를 거론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브리핑에 직접 올린 글에서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치인이었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실패는 대통령으로서의 실패보다 더욱 근본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좌절'의 원인으로 열린우리당의 분당 위기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이상으로 삼은 정계개편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 붕괴는 그 이상의 붕괴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분당의 책임을 당을 깨고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수록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그의 진정한 정계개편을 이미 산산이 부수어버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꿈꾸어온 정계개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이번 그의 글에서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이해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정치, 지역주의를 정치인의 권력욕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말 국민과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는 정치, 그래서 정말 건설적인 대안을 생산해내는 정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꿈꾸는 그런 정치.

그렇다면, 그런 정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은 그 대안을 선거를 통해 선택하고 선택받은 정치인은 그에 맞게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실천에 비추어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선택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런 상식에 비추어볼 때 지역주의 극복 방법도 명료하다. 즉 출신 지역이 아니라 정책과 대안이라는 실질적 선택기준이 제시될 때 지역주의는 비로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선택기준이 없는 한 아무리 제도적인 개혁을 한다 해도 지역주의라는 기존의 선택기준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지역주의 대체할 기준, 노무현 정부가 무너뜨렸다

▲ 노 대통령은 200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양극화 문제 해결 등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30여년간 운영해온 이종순씨가 TV 생중계화면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래도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은 아니더라도 '경향적'으로 가치와 대안에 기초한 선택기준이 있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권내 정치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반영되고 구체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보'는 대내적으로 소외계층과 서민의 사회적 권리를 더욱 중시하고, 복지를 지향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보수'는 대내적으로는 부의 집중에 관대하며 경쟁을 중시하고 성장을 우선시하며, 대외적으로 북한과의 화해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런 경향적인 두가지 방향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서 '진보'적 방향에 대한 동의를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동안 이런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철저하게 무시함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던 '경향적' 선택 기준마저 철저히 붕괴시켰다.

예산 좀 증가했다고 복지정부? 미안하다, 틀렸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그래도 복지예산을 몇 퍼센트 늘렸다면서 이른바 '복지정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기준에서는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기반을 무너뜨렸다고 하는 대처정부도 '복지정부'가 될 수 있다. 대처 정부 아래에서도 어쨌든 복지예산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처 정부 때도 복지예산이 증가했던 것은 실업 증가, 고령화, 전통가족 해체 등등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예산 증가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노무현 정부도 복지정부가 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진행되는 양극화·고령화· 비정규직 증가에 비해 그나마 증가했다는 복지예산의 규모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급증하는 사회적 요구에 비해 초라한 복지예산은 국민의 고통의 총량이 증가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획기적 예산 증대가 어려웠다면 어떤 정책적 방향전환이라도 이루어 냈을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복지 정책'이란 고령화에 대한 유일한 대책인 국민연금을 더욱 깎고 국민의 권리여야 할 의료는 더욱 시장화시키는 것이었다. 복지정부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한미FTA, 결정적인 보수의 길로

▲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대표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밝게 웃고 있는 '죽음의 동맹' 사진을 해머로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전 참전은 어쩔 수 없다 백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북한 핵위기 등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일방적인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독자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해주고 이를 위한 미군 기지이전에는 국민을 쫓아내고 국고를 지원해주고 있다.

국민의 민주적 선택에 대한 결정적인 배신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한미FTA였다.

보통 설문에도 많이 사용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를 때 자주 사용되는 기준은 '유럽 북구형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하느냐'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하느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라는 미국과의 경제통합 협상을 강행함으로서 미국형 자유시장 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에 사민주의 국가를 지향할 수 있는 길마저 아예 봉쇄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백여 가지의 법과 제도를 고쳐야하는 이 협정이 전면 시행된 이후 그 방향전환은 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출발부터 통상협정에 한정하는 한-EU FTA는 한미FTA와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당신이 배신한 것은 지지자 뿐이 아니다

▲ 지난 2003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이 때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를 배신하면서 국가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그가 배신한 건 지지자 뿐이 아니었다. 국민의 선택, 나아가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선거를 통해 그나마 진보적 '경향'을 선택했던 국민에게 분명한 보수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한국 민주정치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정치적 선택 기준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니 '정계개편'의 꿈이 무너진다고 통탄한다. 이름부터 정치적 정체성이 매우 불분명한 그 정당 자체가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었는지부터 매우 의문스럽다. 게다가 그에게 다른 사람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꿈을 이미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 것은 노무현 바로 그 자신이다.

 

- 2007년 5월 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7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

 

* 원래 다른 의견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뜻하는 '틀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고, 노무현 대통령 자체가 실패했다는 얘기보다는 그가 꿈꾼 정계개편을 스스로 망쳤다는 것이 초점이었는데... 아무튼 오마이뉴스 편집진이 제목을 좀 선정적이고, 단정적으로 붙이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상당한 논란거리를 만들어버림...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49 관련글 쓰기

  1.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이 노무현 때문이라고?

    2007/05/14 18:40
    삭제
    정책정당의 소멸과 지역주의 부활이 노무현 때문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조건만 탓하면 집권행위 자체가 부정됩니다

안녕하세요. 당일날 아침에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보고 하도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2시간이 채 안걸려 써서 올린 글인데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고 또 이렇게 많은 반론을 받게되니 약간 당황스럽긴 합니다. 어쨋든 변변치 못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데 감사드립니다.

학술적 논쟁으로 받아주시길 원하신다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 신문 기사에 적합한 논쟁 형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안그래도 유학생은 공부나하라는 애정어린(?) 댓글들에 살짝 찔려오던 중에 반갑기도 합니다. 저도 한 수 많이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정계 개편 실패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1차적 책임을 묻는 저의 인식의 근원에는 '형성주의(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constructivism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국가 정책을 평가할때 그 평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크게 환경(context)을 중시하는 입장과 주체(agency)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학적 논쟁이 되겠습니다만 지나치게 복잡해질 것 같아 사회정책학의 수준에서 한정해서 논의하여 보겠습니다.

환경을 중시하는 입장은 대표적으로 실증주의(positivism)과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을 들수가 있겠고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은 최근 정치학 사회학 외교학 분야에서 부상하고 있는 언어학적 접근(linguistic approach)이나 신념주의(ideationalism에 대한 역시 나름의 번역입니다.)를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양측의 접근이 모두 현실 정치와 정책과정을 설명하는데 제한점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여 이 양측의 장점을 수용하되 변증법적 원칙을 적용한 형성주의가 가장 유용하여 이를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일단 실제가 아닌 언어만이 존재한다는 언어학적 접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객관적 환경요소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다만 인간이 모든 환경적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 역시 받아들입니다. 종합하면 모든 환경적 조건을 파악할 수는 없으되 주체(agency)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전략적으로 부분적 조건을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된 조건 위에서 주체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목표가 설정됩니다. 그리고 조건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정책)들이 도출 되지요.

하지만 앞서 말한데로 모든 조건이 완전히 이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략이 꼭 의도한 결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즉 ‘정책적 결과는 = 의도한 목표 + 의도하지 않은 조건의 영향’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주체는 가치와 신념이 있으되 전략적으로 사고하기에 그 정책적 결과는 다시 또하나의 조건으로서 이해되고 해석되어 다음의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동원이 됩니다. 결국 ‘조건-전략적 주체의 행위(정책)-정책 결과’ 사이의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론적 틀은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매우 기초가 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반론은 적극 환영하며 저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하자면 '최고 권력자로서의 주체'가 되겠지요. 님이 지적하신 떳다방 정치인이나 지역당들은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도 존재했던 '조건'입니다. 이를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이해하고 해석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계 개편'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집권 기간동안 '정책'을 펼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그 정책적 결과(지역주의의 부활)를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 대해서 계속 '조건' 탓을 하면 그것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행위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셈입니다. 속된말로 누가 몰랐습니까? 한국 정치 현실이 그런 것을? 허구헌 날 조건 탓만 하려면 집권은 왜 했습니까? 그런 '조건'에 의한 실패는 '파악되지 못했던 조건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뻔이 알고 인식하고 있는 조건에 대해 추진한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보수 언론을 탓하던, 야당을 탓하던 그것도 다 마찬가지 입니다. 그거 원래 있는 조건이었고 다 알고 있었던 조건 아닙니까? 그 조건 때문에 5년의 집권 기간 이후에도 여전히 실패 했다는 것은 그 집권 5년을 실패했다는 얘기입니다. 즉 그는 '실패'한 것입니다.

복지와 한미FTA가 진보와 보수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부분에서도 역시 '형성주의'적 입장에서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즉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노무현의 정치인의 실체가 아니라 그 정치인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었느냐가 현실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정말 노무현 개인이 어떠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제가 그가 아닌이상 알수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지점이긴 합니다만 말이죠.

그럼 지난 대선 당시로 돌아가 봅시다. 그당시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정치적 구도는 보수-진보, 권위주의-민주주의, 외세의존 외교-자주적 외교, 개혁회귀-개혁지속 뭐 이런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도는 노무현 후보측에서 적극적으로 설파한 프레임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당시 이회창 후보측이 주로 설파했던 경험있는 지도자-어설픈 지도자와 같은 프레임보다는 노무현 후보측의 프레임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 구도는 계속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공격하는 조선일보나 한나라당 등과 같은 요소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 덕에 여전히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옷을 입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집권 5년 이후 나타나는 결과는 그 반대입니다. 양극화는 확대되고, 비정규직 차별은 확대되어 왔으며 그 비중은 증가하였고, 사교육 비용도 계속 상승하고 서민들은 더욱 죽을 맛입니다.

그럼 이러한 결과는 올바른 전략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다른 환경요소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까요?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전략 자체가 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복지예산의 획기적인 확대까진 어렵다고 치겠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확대의 길은 IMF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도 어느 정도 이루어낸 사항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도 노무현 정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요. 한참 논의되던 근로소득공제제도(EITC)도 (개인적으로 크게 지지하진 않았지만 그나마도) 소리소문 없이 무산되었고,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하던 제도적 변화였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도 청와대의 무관심속에 제대로된 자원확보는 전혀 안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수준으로 껍데기만 도입되었습니다. 극심한 국가제도에 대한 불신 속에서도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이 너무나 크기에 국민의 70% 가까이가 지지했던 제도가 말입니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가를 통해 그 부담을 서로 분담하는 국민연금 제도는 미래세대 부담이 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냥 ‘깎았습니다.’ 그럼 국가를 통해 나눠주지도 않으면 그 부담은 어디로 사라진다는 얘기입니까? 마술이라도 부린답니까? 제도 안에서 개개인의 부담이 30%까지 치솟는다면 재원의 다양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부담이 덜어지지 국가가 발을 뺀다고 해결될 리는 없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요. 이 개혁이 그대로 진행되면 향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보일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처럼 말로만 복지를 들먹일 줄 알았지 개개별 구체적인 쟁점에서는 ‘생각’조차 있었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사교육비 급증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내내 시도했던 것들은 위성과외 등 기술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지요. 이른 점에서 그동안 수많은 이전 정부에서의 실패를 반복한 셈입니다. 이 부분은 그나마 아직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해가 되어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한미FTA입니다. 자꾸 옹호하는 분들을 이를 ‘개방’이라고 생각하는데 개방은 이미 WTO체제에서 7~80% 이루어졌습니다. 즉 FTA는 개방이냐 쇄국이냐라는 옹호자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나 한미FTA는 통상차원이 아니라 경제체제 통합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한미FTA를 통해 우리 경제제도를 개혁하겠다’라고 여러 번 강조 했던 노무현 자신의 발언에서도 여러 번 확인됩니다.

즉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 체제를 미국식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공공에 대한 시장의 철저한 우선주의입니다. 미국은 전국민 의료보험 조차도 없는 복지 후진국입니다. 공공보다는 개인이 우선하는 가치가 모든 시스템에 전제되어 있지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투자자의 이익이 공공정책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실제 패소해서 변상한 금액이 얼마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이 제도로 인해 정책 고려 과정에서부터 투자자의 이익을 고려하게 되는 잠재적이고 더욱 포괄적인 공공의 비용을 무시한 협소한 단견의 소치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제소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얘기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투자자의 이익을 매우 적극적으로 고려하시겠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제도가 전면 시행된 이후에 다른 대안을 추구할 공간이 협소해지는 새로운 ‘조건’이 형성됩니다. 단순한 제도적 시행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제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로서 보수-진보의 프레임에서 진보적 선택으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처럼 보수의 극단을 선택함으로서 그나마 존재하던 선택기준을 붕괴시켰기에 ‘적어도’ 정계개편을 원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은 그것을 열린 우리당이라는 ‘정당’으로 협소하게 보고 통탄하고 있다면 저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정치구도 측면에서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A에 대해 B를 가지고 비판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근본적인 정치구도는 당연히 열린 우리당이라는 개별 정당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매우 길어졌습니다. 끝까지 읽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전에 쓴 글과 걸린 시간이 똑같았네요. 길이는 배로 길어지고. 마치 전 기사의 해설판 같이 되어 버렸네요.

그럼 건승하십시오.

 
- 오마이뉴스에 2007년 5월 7일자에 기고한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의 반론 글 '실패한 노무현 비판, 당신이 틀렸다'에 대한 답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48 관련글 쓰기

  1. 대한민국 진보의 위기는 노무현의 보수화가 아니라 불량의견과 불량정치의 만연

    2007/05/14 18:37
    삭제
    대한민국 진보의 위기는 노무현의 보수화가 아니라 불량의견과 불량정치의 만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보수와 진보는 여전히 중요한 기준입니다

정식으로 제기된 반론에는 답변하는 것이 예의인 듯하여 댓글로 남깁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노 대통령, 당신이 틀렸다'라는 다소 단정적인 제목은 제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주목도는 상당히 높아진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논점에서 좀 벗어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면 편집진의 결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하는게 기자의 자세라 생각하여 별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보수와 진보는 여전히 국가정책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아무리 실용주의를 주장한다고 해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정해진 상황에 대한 대안은 정치적 가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의 정책적 방향은 집합주의적-개인주의적, 공공중심적-시장중심적, 보편주의적-선별주의적, 시민권적-소비중심적 등등 다양한 양분된 가치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양분된 가치지향은 특정한 교조적 정책형태로 고정되어 있기 보다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실용적인 변형된 형태를 띄게됩니다.

여기서 실용적이라고 함은 가치가 배제되어 실용적이는 의미라기 보다는 가치에 따라 설정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용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특정적으로 고정된 정책만을 특정한 가치에 연결시키는 태도를 '교조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치에 기반하여 생산된 정책을 그 처한 상황에 맞게 실현가능성, 효과성 등으로 다시 평가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평가의 기준은 그 정책적 가치에 의해 설정된,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1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가치에 입각한 정책은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니게 되고 기대하는 효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신노동당이 아무리 제3의 길을 간다고 해도 공공의 영역을 확장하되 시장의 원리를 적극 도입한 정책들은 선별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영향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영국의 대표적인 보편주의적 무상의료시스템인 NHS에 시장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지역별 의료 서비스 차이가 나타나고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급증하는 등의 보편주의 서비스내에서 조차도 시장주의적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끝났던 프랑스 대선이 여전히 보수와 진보가 중요한 기준으로 남아있는 좋은 예중의 하나입니다. 사르코지는 현 프랑스의 상황에서 개인주의적, 시장중심적, 선별주의적, 소비중심적 대안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했고 그를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그 반대 주자로 나섰던 세고렌 로얄은 그에 대척하는 보편주의적이고 집합주의적이며 시민권에 기반한 분명한 정체성과 명확한 대안을 보여주는데 다소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광범위한 사르코지에 대한 반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굳이 서구의 기준에 따를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우리 나름의 가치에 따른 정책방향은 정치권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주주의적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지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출신 지역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는 있지만, 심지어는 일부 소위 자칭 보수들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코메디가 여전히 펼쳐지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형성된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형성된 기준에 비추어 볼때 경향적으로 진보로 선택된 정부가 극단적인 보수적 정책적 선택을 함으로서 그 기반마저 크게 붕괴시켰다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그래도 노무현 정부가 좌파라고 박박 우기는 소위 자칭 보수들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보수가 없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또하나의 불행이지요)의 논법에서는 통할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 오마이뉴스에 2007년 5월 7일자에 기고 한 '실패한 노대통령, 당신이 틀렸다'의 반론 글 '국가의 정책을 진보-보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에 대한 답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4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노무현 대통령과 친일파의 닮은 꼴

- 그들의 변절은 신념이었다

 

한미FTA가 기어이 타결됐다. 개방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둥, 새로운 통상시대가 열렸다는 둥 장밋빛 수사들이 쏟아진다. 몇 천억이니 몇 조니 벌써 우리 손에 금은보화가 들어온 양 큼직한 숫자들이 언론에 난무한다. 그러나 기실 산업별 전망들을 찬찬이 살피다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숫자들이 튀어 나왔는지 그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최대 수혜 분야가 자동차와 섬유라지만 오히려 <블름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실질 수혜자는 이미 미국 내 공장에서 수출차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현대가 아닌, 미국에서 생산한 차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데 혜택을 누릴 도요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는다. 대부분의 원사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섬유분야에서는 달랑 5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중국산으로 취급받아 FTA에 따른 혜택도 못 받을 전망이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서는 이런 당장의 손익계산 보다 더 큰 뜻이 있는 듯 보인다.

주요 외신에는 볼 수 없는 한국 언론의 장밋빛 환상

노 대통령과 정부관계자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한미FTA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미국과의 적극적 결합을 통해 우리사회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대국 일본과 적극적 결합을 통해 우리도 일본처럼 될 수 있다던 친일의 논리, 바로 그것이었다. 동시에 대통령 선거 때도, 탄핵 때도 노 대통령의 우군이었으나 지금 배신에 치를 떠는 사람들을 볼 때 일제 강점기, 소위 민족주의자들을 따르다가 그들의 변절에 치를 떨던 우리네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전 출간된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를 보면서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변절'했다고 말해왔던 그 친일파들도 스스로의 논리에서는 변절이 아닐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즉 개화파들이 일본의 철학자에 의해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자신의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소위 '민족개조론자'들의 최종 결론은 '내선일체' 즉, 일본과의 합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미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 논리인 양육강식의 철학을 받아들인 그들은 일시적으로는 우리도 '강자'가 되자면서 계몽운동이니 실력양성 운동이나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강자가 되긴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땐 강자와의 결합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겉으로 보면 용납될 수 없는 '변절'이지만 그것은 그들 철학 속에서는 신념에 따른 '선택'일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을 배신한 민족개조론자들과 민주주의를 배신한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이 이전에 마치 진보의 표상인 것처럼 떠올랐던 것은 민주화 운동 당시 인권 변호사의 경력이었다. 그리고 지역감정 해결을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알았던 그 결단력이었다.

노 대통령의 민주화 경력은 그가 나은 사회를 위해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거기까지였다. 자신이 싸워왔던 권위주의와 지역감정을 없애는 것까지가 목표였다.

그 빈 공간을 채운 것은 미국이었다. 권위주의가 해체되다 못해 공공의 영역까지 해체되어버린 살벌한 경쟁의 세계, 그래서 살아남은 자가 화려한 독식을 즐기는 세계의 이상이 그의 빈 철학을 채웠다. 국가는 그 경쟁의 공간만 잘 만들어 주고 너무 잔인하지 않을 만큼 패자들만 챙겨주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철학은 노 대통령이 FTA 타결 후 대책과 관련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지자들이 보면 변절이요 배신이겠지만, 민주주의의 형식적 완성에 집착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역할을 제도적 민주주의 보장과 시장제도 확립에만 제한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철학과의 결합이 자연스러운 결론인 것이다.

그 결합 속에 미국식 시장제도를 완벽히 이식시키는 것을 정권의 사명처럼 여기는 생각은 스스로에게 모순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었고 그래서 그는 특유의 결단력으로 추진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도 없다.

일제 말기 소위 민족주의자라고 했던 친일파들은 결국 우리네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모는데 앞장섰다. 그들 스스로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확신범들이었지만 민족의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앞장설 만큼 스스로 병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병든 눈에서는 망해가는 일제의 마지막 발악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병든 친일파의 눈에 일제 최후의 발악이 안보였던 것처럼...

민주화 경력을 자랑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신념을 추진하면서 기초적 민주주의 절차조차 무시하고 기본적인 정보부터 봉쇄한 채 철저하게 독단으로 일관했다.

그가 그렇게 닮고 싶은 미국도 다양한 이해집단의 수많은 논의와 압력을 뒷심으로 두고 협상할 때, 노무현 정부는 다른 목소리에게는 기본적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마저도 간단히 짓밟아 버렸다. 그만큼 그의 민주주의도 그렇게 병들어 버린 것이다.

미국과의 완전한 결합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강한 신념에 사로잡힌 그의 눈에는 그동안 미국과 FTA를 체결한 개발도상국 중 선진국 된 나라가 단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시장이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단 하루의 중국발 주가폭락이 세계경제를 크게 흔들리게 만들었었다. 그 원인은 정작 중국이 아니라 중국발 쇼크가 미국의 거품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세계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었다는 것은 가디언, 타임즈 등 세계 주요 언론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자신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도 잊은 채 자신의 독선적 신념에 따라 달려가는 대통령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4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서구 '자유의 덫'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덫'

- 아담 커티스의 새 BBC 다큐와 한국의 민주주의

 

▲ 아담 커티스의 화제의 새 다큐멘터리 시리즈 '덫: 우리의 자유의 꿈에 무슨일이 있었는가'의 제목 화면
ⓒ BBC
이미 칸 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악몽의 권력(The Power of Nightmares)>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아담 커티스(Adam Curtis)가 새로 만든 화제 다큐멘터리 시리즈 <덫: 우리의 자유의 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The Trap: What happened to our dream of freedom)>가 지난 일요일 BBC2에서 3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미 <악몽의 권력>에서 테러의 위협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유발된 환상(politically driven fantasy)으로 성립되었는가를 심도 있는 분석으로 보여준 바 있는 커티스는 이번 다큐에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상을 바탕으로 한 협소화된 자유주의 철학이 어떻게 사회정치적으로 확산되어 결국 우리의 자유를 도리어 옥죄고 있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서구사회의 '자유의 덫'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덫'

물론 이 다큐멘터리는 주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유사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추어볼 때 어떻게 민주화된 정부가 왜 오히려 불평등을 촉진시키는 신자유주의에 철저히 복속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커티스의 분석은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 대전 등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겪은 서구 사회는 2차 대전 이후 더 이상 똑같은 혼란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유럽의 복지국가와 같이 국가가 사회에 적극 개입하는 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양분된 세계에서 공산권을 예로 들어 국가 개입은 결국 폭정을 나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하이에크 등 일련의 학자로부터 제기 되기 시작된다. 공공의 개입보다는 자유로운 개인의 이성적 선택을 신뢰하는 이 같은 주장은 냉전으로 인한 갈등과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 될수록 점차 힘을 얻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무기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게임 이론'이다. 이기적이고, 격리되어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전제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는 게임 이론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여 극단적인 상황을 막아야 했던 핵전략 분야에서 큰 권위를 얻게 된다.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내시(John Nash)는 이를 전 사회에 적용 시켜 이기적인 인간의 자유가 혼란을 주기 보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설파한다.

또한 철학자 벌린(Berlin)은 '자유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란 강연에서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와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란 개념을 정립시키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소극적 자유'임을 천명한다. 소비에트 혁명을 경험하고 피신한 그는, 사회적 정의, 평등 등 무언가 이상을 가지고 추구하는 '적극적 자유'는 결국 정치적 지도자가 설정한 이상을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폭정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억압과 제약으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소극적 자유'를 추구할 때만이 이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같은 철학이 신보수주의 세력 등을 통하여 정치, 외교, 사회 전반에 침투되면서 신뢰와 연대, 이타주의 등에 기초한 사회 체제는 이기심, 경쟁, 의심, 상호감시 등을 전제로 한 체제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같은 체제는 시장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조화와 안정을 이룰 것으로 기대가 되었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난다.

▲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이자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존 내시. 내시는 이 다큐멘터리의 2부 인터뷰에서 '인간의 합리성에 너무 의존하면 안된다. 이것이 나의 깨달음이다'라는, 인간의 이기적 합리성에 기초한 자신의 게임이론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발언을 한다.
ⓒ BBC
'소극적 자유'에 의한 개혁, 오히려 권위주의 부활시킨다

제프리 삭스 등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러시아에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투입이 되었지만 일시에 각종 국가 규제와 개입을 철폐 시켰던 '충격 요법(shock therapy)'은 극심한 혼란을 불러왔고 결국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라는 권위주의적 통치자를 선택했다.

냉전시절부터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제 3세계 혁명이 확산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소극적 자유' 진영은 벌린이 적극적 자유의 재앙이라고 지적했던 '폭력'을 사용하여 '소극적 자유'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소극적 자유'의 적대세력 만을 양산시키고 테러위협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이를 막기 위해 오히려 자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들이 양산된다.

'소극적 자유'에 물든 정치인들은, 좌파 정치인 조차 정부의 역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더 이상 적극적인 공공정책은 추구하지 않으면서 공공 서비스 내에 각종 경영 관리 기법을 도입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한 이 관리 기법들은 더욱 촘촘한 통제와 감시를 부르고 만다. 시장의 확산에 따라 불평등은 확산되고 결국 인간의 자유는 그토록 자유롭고자 했던 계급과 통제와 감시의 '덫'에 갇히고 만다.

▲ 인간은 언제나 당신을 배신할 것이다.
아담 커디스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기적이고 의심하고 배신하는 인간의 본성을 전제로한 협소한 자유의 개념은 잘못되었으며 이것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 BBC
서구의 '소극적 자유'와 우리나라의 '절차적 민주화'

이 다큐는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주로 재야 민주화 세력은 근본적인 사회 경제적 개혁을 동반하여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데 반하여 제도권내 민주화 세력은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화를 주장해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주적 제도만 성립되면 나머지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간들이 합당한 선택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즉, 90년대 초반부터 집권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형식적 민주화 세력'이 초반부터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소극적 자유'에 기초 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경제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어떠한 지향과 이상을 제시하는 '적극적 자유', 즉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달리 '소극적 자유', 즉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유일한 지향이 있다면 '형식적 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는 왜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 이후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기보다 그토록 탈권위주의, 지역감정 해소 등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에만 집착을 해왔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후퇴한 민주주의의 꿈

이처럼 형식적 민주주의 개념에 갇혀 있는 집권 민주화 세력이 종국에 소극적 자유의 본산인 미국과의 완전한 결합, 즉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그 들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덫에 갇혀 있는 동안 시장은 전면화되면서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등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어 국민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박탈되어가고 있다.

결국 민주화의 과실은 특권층에게 돌아가고 삶이 더욱 팍팍해진 서민에게 더 이상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 의미조차 상실되어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목격되었던 민주주의의 후퇴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토록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우리 사회가 협소한 민주주의에 갇혀 결국 민주주의 후퇴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민주주의 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 2007년 3월 27일 오마이뉴스 기고, 29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덫에 빠진 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

 

* 밑의 글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 내용이 잘 요약된 서론부를 번역문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3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사회, 정치, 정책, 영국에 대한 늘 신선한 보고서 :: 더불어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며 영국땅에서 사회정책 공부 중인 김보영의 글과 생각과 자료들의 모음 by 보롱이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0)
세상 이야기 (70)
영국 이야기 (29)
학술 자료실 (49)
Total : 188,184
Today : 1 Yesterday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