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명박 이후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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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에 모인 20만 인파. 이제 촛불은 저항을 넘어 새로운 창조로 전환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한 달이 넘은 촛불은 꺼져가긴 커녕 매번 새로운 단계로 진화를 거듭하며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집단지성의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기반과 제도 정치권의 철저한 무능력, 그리고 무지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용감한 현 집권세력의국민에 대한 역린이 만나서 최대 규모의 완벽한 수평적 네트워크가 빚어낸 최고 수준의 집단 지성을 발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보수언론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시민단체 조차도 감히 움직임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중들의수평적 의사소통의 자연스러운 집단적 합의과정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동물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논의 자체도 쇠고기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대운하, 공교육 파괴,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등 현 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으로 확대되고있다.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인 상호정보교환과 토론을 통해 그 어떤 보수언론이나 시민단체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광범위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유례도 찾아보기 힘든,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한 집단 지성의 예술


이렇게 빚어지는 집단지성의 예술은 관찰하는 사람 조차 소름이 돋게 할 지경이다. 이러한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국민적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역시 상상을 초월하도록 무능력한 정부의 덕을 부인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국민을 무시했던 정부가 들끓어 오르는 저항의 움직임을 진정 시키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불을 지르는 실책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반작용으로 촛불은 그 때마다 한 단계, 더 한단계 더 진화해 갔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력이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바닥을 드러낼 수록 촛불의 회의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면 쇠고기 문제 그 다음은 무엇인가, 아니 이명박 정부 아니라면 그 다음은 무어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와 같은 광범위한 대중의 집단 지성이 수평적 네트워크로 발현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이끄는 지도부가 없어도 단일한 움직임으로 결집이 가능했던 것은 자연스로운 구심의 역할을 해주는 단일한 대상, 즉 이명박 정부가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와 이명박 정부라는 집단적 구심이 사라진다면...


그럼 그 단일한 상대가 이제 촛불에 무릅꿇고 없어진다면? 전경의 군화발도 살인적인 물대포도 끄지 못했던 촛불은 상대를 잃어버리고 속절없이 무너져가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운하, 각종 민영화 바람과 같은 현 정권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했던 서민 경제의 어려움은 해결 되기는 커녕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 무작정 버틸 경우 쇠고기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하고 저항은 지쳐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정치권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무작정 물러나라고 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의 기록적인 지지율 하락에도 민주당은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민주노동당 조차도 10%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제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새롭고 더욱 큰 위기는 줄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결국 대처하지 못한다면 상상가능한 최고수준의 집단 지성의 희열은 오히려 그 만큼 더욱 극심한 집단적 좌절과 회의로 급격하게 빠져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부르짓은 결과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조금 찾아온다고 해도 그 이후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에도, 4.19 혁명 이후에도,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똑같이 기득권 집단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주었던 그 분통한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힘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적이 없는 '완전한 승리' 없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비극은 또다른 역사적 후퇴를 반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4.19, 6월 항쟁이후 다시 기득권에게 권력 주었던 역사 반복되는가


이제는 그래서 민주화와 같은 절차적 문제를 뛰어넘은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지 않으면 안된다. 저항의 에너지는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힘으로 이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는 또다른 패배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촛불의 저항이 하나의 단일한 상대(지금의 이명박 정부)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에 의해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만들어 간다면, 저항을 넘어 대안을 생산하는 움직임은 이를 독점하거나 지도하지 않지만 든든히 뒷받침하고 모여진 에너지를 구체적 대안으로 치환해 내는 분명한 지도력의 역할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립적 ‘국민대안위원회’를 제안한다. 독립적이라 함은 무능력과 불신의 상징이 된 기존 정치세력과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뜻한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현재 대책위원회나 참여 단체 중 신망받는 시민단체가 주도해되 국민적 신뢰와 실력은 인정받는 학계, 시민단체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참여시키고, 정치, 경제쪽 인사를 참여시킨다 하더라도 역시 개인적으로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 개인을 개별 자격으로 참여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성 절차들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수평적 에너지를 활용하여 인터넷 등을 통한 국민적 추천과정과 선임과정을 거치는 등, 저항의 에너지에서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수평적 참여와 소통에 의해 대안 만들 독립적 ‘국민대안위원회’를 제안한다


물론 지금까지 양심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대안을 제시하려는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어떤 총체적 비전이라기 보다 개별적인 정책과제들을 제안하는데 그쳐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우 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개별 정책들의 나열이 아니라 경제, 고용, 교육, 복지 등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총제적인 그림이다. 지난 대선때 지식인들이 모여 각 분야 개혁과제를 열거한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보다 문국현이 내세운 '사람중심 진짜경제'라는 한마디의 구호가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결국 허망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사회적 과제를 아우르는 새로운 메세지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현재 서민들이 고통받는 근본 문제와 원인을 규명하고, 현재 현실화 되고 있는 세 계적 위기들과 국내의 위험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총체적인 대안 모델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각 분야별 전략적 정책을 생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구체적 그림을 던져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위원회가 논의를 일방적으로 주도하게 하고 여론은 ‘수렴’하는 그런 일방적인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위원회는 수평적 네트워크로 표출되는 국민적인 집단적 지성이 최대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방법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수평적 참여와 권한 위임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 모델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보여지는 배심원제를 정책 논의에 적용시켜,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시민들이 직접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 배심원'도 그 중 하나이다.


신망받는 이들로 구성하되, 수평적 참여와 결정 안내하고 총합하는 역할 부여


이같은 시민에 의한 직접적인 결정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2000년 낙선 운동 과정에서 낙선 대상자를 최종 선정했던 100인 유권자 위원회 사례 등 시민단체들도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오프라인 방식 뿐 아니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통한 더욱 광범위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역시 극대화 시켜야 한다. 각 분야별 온라인 포럼부터 시작해서 각종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논의과정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고 동시에 진행되는 온라인상 논의와 결론 역시 별도로 반영되는 장치 등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위키피디아로 잘 알려진, 집단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위키(Wiki) 기술과 같은 웹2.0의 새로운 영역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 조차도 다양한 수평적 참여를 통해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안위원회는 이러한 국민적 논의과정을 진행하면서 이것이 점차 심도있는 논의로 발전되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구심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근본 문제와 원인을 진단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들을 집어내며 이를 극복하고 모두에게 공평하면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총체적이면서 구체적 대안을 포괄적 논의과정을 통해 한단계 한단계 구체적인 성과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1년이 걸릴 수도, 2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는 얼핏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1992년, 대처에 대한 환멸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대안이 부재한 상항에서 보수당의 재집권을 허용한 이후 영국 노동당이 만들었던 독립적인 ‘사회정의 위원회(Commission for Social Justice)’의 사례는 실질적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래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이렇게 정말 대중의 참여와 합의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 진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이명박 정부의 대안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데로 이를 책임있게 현실정치에서 실현시킬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집단적 지성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열어놓고 논의과정에 포함 시킬 수 있다. 이 거대한 대안 모색과정이 이루어만 진다면 정말 새로운 대안 정치 모델이 새롭게 창출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기존에 말로만 '개혁세력'이고 '진보세력'인 기존 정치권의 역겨운 이합집산보다는 백배 천배 더욱 나은 희망적인 모습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처의 영국을 끝내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도출했던 ‘사회정의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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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위원회 최종보고서

이명박 정부가 추종하는 신자유주의의 전형으로 잘 알려진 대처정부는 10여년 집권 끝에 여전히 심각한 실업, 경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에다가 민영화에 복지 축소로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 악화될 데로 악화되어 국민의 불만은 높을 데로 높아있었다.


기어이 1990년, 무리한 인두세(Poll tax) 정책이 민심에 불을 질러 수만명의 군중이 총리관저로 몰려가는 사태로까지 벌어지자 '철의 여인' 대처수상은 결국 눈물을 보이며 밀려나게 되었다. (☞ 관련기사)


그 이후에 맞이한 1992년 선거에서 누구나 노동당의 재집권을 예상했었다.노동당은 선거 전전당대회에서 집권에 대한 성급한 기대에 잔뜩 들떠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노동당은 '대처가 바꿔놓은 사회정책을 모두 되돌려놓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영국 국민은 대처에게 환멸했다고 해서 그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대처도, 옛 노동당도 거부한 영국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 사회정의 위원회


그러자 그 해 12월 노동당 당수 존 스미스는 과거의 노동당도 아니고 대처도 아닌 새로운 근본적이면서 구체적인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당과 독립된 '사회정의 위원회'를 구성한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에는 경영학자, 사회심리학자, 사회정책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등 학자 뿐 아니라 기업인, 사회단체 인사, 노조 관계자까지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잘 알려진, 전후 영국사회의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노동당이 국민영웅 처칠의 보수당을 이기고 처음으로 단독 집권을 가능케한 '베버리지 보고서' 50주년에 결성된 이 위원회는 이 위원들로 구성된 '노동과 임금(work and wages)', '돈과 부(money and wealth)', '서비스와 공동체(services and communities)' 세개의 패널로 나뉘어 구체적인 작업을 2년여에 걸쳐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 위원회가 끼리끼리 논의를 진행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위원회에 자문과 자료를 제공한 각종 인사와 단체의 명단은 수백에 이르러 최종 보고서 12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 그 범위는 학자, 정치인, 사회단체, 이익단체, 연구기관, 기업, 해외 인사, 국제 단체까지 포괄하고 있다.


2년에 걸친 연구, 전국을 순회한 공개 포럼, 최대의 지혜를 모아 새로운 비전 제출


이 위원회가 새로운 대안을 위해 지혜를 모아간 과정은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1년여 동안 전국 11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각종 연구 기관, 사회 단체를 방문하고 각 도시별로공개된 포럼을 연속적으로 개최하여 일반 시민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이 과정에서 13개의 각 쟁점별 보고서(issue report)와 2개의 중간 보고서를 내놓으며 점차 논의를 심화시켜 갔다.


결국 1994년 7월 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승인했다.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이 보고서, '사회정의: 국가재건을 위한 전략(Social justice: strategies for national renewal)'은 당시 영국 사회문제와 세계적 변화의 흐름을 집고, 이에 공평한 기회에 기초로한 새로운 발전전략에 따른 새로운 국가모델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분야별 구체적인 정책 전략까지 담겨져 있다. 이 보고서 출판본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집권) 보수당 정책 혼돈 속에서 상대당은 신뢰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지금, (이 보고서) '사회정의'는 올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최종 보고서의 중요성은 그 해에 그치지 않았다. 이 최종 보고서 출판과 같은해 당권을 장악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New Labour) 세력은 이 보고서의 전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며 1997년 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둔데 이어 3연속 집권이라는 노동당의 역사적 기록을 이루었다. 실제로도 10년여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개혁정책의 핵심 기조는 상당부분 이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 보고서가 제시한 비전과 전략, 그리고 현재 10년 집권 이후 노동당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라는 최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신노동당 10년 집권 기간이후 신노동당의 비판자들 조차도 '영국은 더욱 나은 곳이 되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을 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정의 보고서를 받아 압승한 신노동당, 10년 집권에 더나은 영국을 만들어내다


신노동당 집권 10년동안 8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하였고, 교육과 보건 예산은 소득세율 인상 없이도 획기적으로 증액되었으며, 무상의료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대기기간등의 문제들 역시 상당 수준 해결하고 영국인의 가장 큰 사망원인이었던 심장 질환 사망자를 30%를 감축시키는 구체적인 성과도 얻어 내었다.


그러면서 최초로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물가에 따라 인상시키면서도 실업율은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영국 현대사에서 최장기에 걸친 경제적 안정 성장도 달성해 내었다.


게다가 현재 노동당의 몰락을 가능케했던 상대 보수당의 부활도 다시 대처 시절로 돌아가서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새 젊은 당수 데이비드 카메런은 철저히 신노동당의 전략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면서 국민들의 신임을 다시 찾아갔다.


신노동당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신노동당 개혁의 새로운 적임자임을 강조하면서 무상의료(NHS)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야 말로 새로운 수호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즉, 전후 베버리지 보고서가 영국 복지국가에 대한 노동당과 보수당의 정치적 합의를 이루게 했다면 사회정의 보고서로 집권한 신노동당의 전략은 또다른 합의정치를 형성시킨 것이다. 사회정의 보고서 이후 영국 정치는 80년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주도에서 분명 더욱 왼쪽으로 이동한 새로운 합의 정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집단 지성이 표출되는 지금 우리는 더욱 획기적인 모델도 가능하다


물론 지금 이 보고서가 제시한 비전과 전략을 우리나라가 지금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과 조건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대 그시절 영국의 비전이 우리나라에 맞을 리도 없으니 그걸 베껴보려는 시도는 결코 타당하지도 않다.


정말 중요한 함의를 제시하는 것은 집권당의 정책이 철저한 실패로 나타남에도 이를 대처할 새로운 비전도 없어 재집권을 허용했던 그 암울한 상황에서 당시 그 사회적 지혜를 집단적으로 모아 새로운 대안을 도출해내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의 집권을 이끌어 냈던 그 '과정'이다.


이 과정 역시 그대로 따라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아나로그 시대였던 그 과정과는 또다른 전혀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는 밑으로 부터 끓어오르는 그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수평적 네트워크의 집단적 지성의 힘을 목도하고 있다.



- 2008년 6월 8일 오마이뉴스 기고, 9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독립·수평적인 '국민대안위원회'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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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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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

    2008/06/09 19:43
    삭제
    200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우연히 우라사와 나오키 작품 <몬스터(Monster)>라는 만화를 봤다. 만화방이었던 것 같다. <몬스터> 1권을 한두시간이나 걸려 봤다. <몬스터>가 그렇게 대하소설같은 ‘망가’였다는 걸 알았다면 선뜻 첫권에 손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무심결에 본 1권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높으신 양반과 조그만 소년 둘 중 한 명의 뇌수술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하다 원칙을 지키는 의사. 하지만 그 소년..
  2. 이명박 정부를 부를 '별명'이 필요해.

    2008/06/18 15:43
    삭제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어에 '슬픔'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
  3. 이명박의 진면목 - 영성심리학적 관점에서.

    2008/06/27 02:45
    삭제
    영성 심리학으로 바라 본 이명박 요즘 한창 관심을 끌고 있는 이명박님을 영성 심리적 관점으로 정리를 해봅니다. 이 글은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그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특히 이명박을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참고; 영혼수업(www.lightworker.kr) / 작성; 신업공동체(www.synai.net)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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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ㅈㅈㅏ부
    2008/06/13 02: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야당내에서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것도 문제이고 야당이 국민의 지지를 무시하고 계속 장외투쟁으로 나가니까 야당을 무시하는 것이겠지요,,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싸워야 합니다
    이명박씨는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었고 최단기간 최고속도 지지율 하락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참으로 많은거 같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길 우리는 갈구하고 있습니다
    광우병뿐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엔 산적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2. 2008/06/16 18: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보네요.(라고 썼는데 다시 보니 예전에 서평에도 짧은 댓글을 달았었네요. ㅎ)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특히 영국의 전례는 아주 획기적이네요. 저런 경로로 지금의 저항이 발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제안을 좀 더 공론화 시킬 방법은 없을까요? 오마이 뉴스에 기고하는 방법 말고도.

    아무튼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 2008/06/16 23: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마이뉴스에 띄워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wiki를 이용한 집단적인 기획안을 짜보는 등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메인탑에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냥 소수의 긍정적인 반응에 그쳐 그냥 묻혀놓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 제안을 혼자서 더욱 밀어붙이기가 좀 그런 것이 사실입니다. 좀 아쉽긴 하죠.

보수 지배? 진보 분열? 지금 이런 것이 정말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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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개표가 완료된 10일 새벽 여의도 한나라당사 상황실의 종합상황판에 한 당직자가 당선이 확정된 후보 이름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남소연
한나라당

총선 이후 언론이며 논객들이며 저마다 총선 이후 정국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10년 진보 체제에 대한 심판"이라느니, "장기 보수 지배체제의 등장"이라느니, "진보정당이 분열 탓에 대가를 치렀다"느니, "향후 민주노동당이 진보 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느니 다양한 관점에 다양한 전망들이다.


하지만 서로 의견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당장 드러난 의석수와 득표수같은 수치들에 기대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작 우리 사회와 우리 정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진단을 찾아 보기 어렵다.


왜 투표율은 대표성에 의문을 가질 정도로 과반 이하로 떨어졌는지, 왜 아무런 쟁점도 없는 이상한 선거가 되어 가는지, 10년 만에 일어난 행정권력에 이은 입법권력의 교체에도 왜 이렇게 분위기는 그 이전의 권력교체와는 다른지, 이런 질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에 가려 실종되었다.


낮은 투표율과는 다르게 개표방송 시청율은 높았다는 뉴스가 들린다. 정장 사람들에게는 이제 정치란 정말 자신의 삶과는 별 상관없는 안방극장 드라마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친박연대'같은 코미디 같은 정당이 득표를 할 수 있는 이유도 투표 행위조차 죽어가는 드라마 주인공 살리라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는 안방 드라마로 전락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삶속에서 부딪치는 사회 문제란 점점 그 도가 넘어가고 있다. 당장 오르고 있는 물가도 일시적인 상승이 아니라 그 뒤엔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인도와 중국의 급성장 등 굵직굵직한 변화들이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신용 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침체는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주기적 침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소로스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되어온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 자체의 위기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에너지 위기, 기후 변화는 또 어떤가. 국내 언론들이 국제 문제에 소홀한 사이 이미 여러 번 식량과 식수 대란,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 석유의 급속한 고갈 등 치명적이고 암울한 위기에 대한 전망들이 다양한 근거들과 함께 출현하고 있다.


이런 위기들이 당장 어떤 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이러한 깊이조차 가늠하기 힘든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심각한 경제 혼란을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들어 있다. 세계는 그렇게 점차 불안해지고 있다.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투표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투표소

내부는 어떤가. 이미 최근 환율파동은 현재 우리나라가 얼마나 외부 충격에 취약한지 보여주었다. 현 정부는 70년대 독재시절 때도 잘 통하지 않던 관 주도 물가통제를 해법으로 내놓는가 하면 위기관리도 모자랄 이 때에 6% 성장론에 묶여 금리인하, 각종 규제완화 등 도박성 경제정책들을 쏟아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의 복지수준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사회 동질성으로 인해 그나마 유지되던 사회통합은 바닥에서부터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다. 97년 경제위기 때부터 심화하기 시작한 양극화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확산된 비정규직, 각종 고용 불안으로 일반적인 가계의 수입구조는 매우 불안해졌으며 최근 물가 상승은 고용의 상당수를 흡수하던 자영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나마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서 믿음이 있던 교육은 치솟는 사교육비로 인해 더이상 사회통합 기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속된 말로 이젠 있는 놈이 더 공부도 잘하고 없는 놈은 죽다살아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이는 현실 삶의 어려움이 자식에 대한 교육으로 해소되던 통로도 상실되고 있음을 뜻한다.


안팎에서 벌어지는 '위기'들... 탈출구는?


이렇게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전례없이 '있는 놈'과 '없는 놈'이 분리되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이는 전례없는 사회 계층 간 갈등이나 적대감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이러한 분리현상과 심리적 박탈감이 결부될 경우 어떤 새로운 사회 문제로 표출될지는 솔직히 가늠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지난 10여 년간 민주화되었다는 정치조차 이렇게 심각해지는 삶의 어려움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점들을 몸소 체험하였다. 그래서 점점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욕구가 제도 안에서 정치적으로 표출되는 길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 지방선거도 보궐선거도 아닌 전국단위 중앙정치 선거 투표율이 과반 이하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 쟁점도 의미있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몇석을 더 얻고, 박근혜가 무슨 발언권을 가지고, 민주당이 얼마나 선전을 했고 따위의 일들은 우리 사회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말 그대로 '정치연예' 뉴스거리에 가깝다. 안 그래도 다가오는 위기를 더욱 부채질 하는 현 정부가 그 '삽질'을 얼마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3월 8월 자양동 골목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도너츠를 사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물가인상

정작 문제는, 점증하는 사회 위기에 대한 해법은커녕 인식이라도 하고 있는 현실 정치세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획득해 봐야 보수지배체제는커녕 현존하는 무력한 한국 정치 전체와 함께 빠르게 몰락해갈 가능성이 크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과 깊이의 사회 위기 앞에서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국 제도정치 전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급증하는 사회 불만과 욕구가 제도 정치로 표출되는 길이 상실되고 만다면 그 통제하지 못하는 혼돈과 불안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현재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없이 폭력적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는 범죄들이 어떤 전조일 수도 있다.


뜬구름 잡는 담론이 아니라 포괄적 대안을 찾아라


진보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단순히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넘어, 더욱 크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담론 수준에 그쳐서도 안 되지만 개별적인 진보적 정책들의 나열로 그쳐서도 안된다.


현재 우리가 처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냉철히 파악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분석을 거쳐 핵심적이고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방향과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부터 차근히 다져나가며 정치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이다.


정작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이런 것이다. 단순한 몇 석과 특정 정치인의 발언권이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마저 그런 습관적이고 표면적인 논의에 머무르는 한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의 암울한 전망은 점차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2008년 4월 11일 오마이뉴스 기고, 12일 '으뜸'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정치연예 코미디' 속에서 진실을 보자

*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 썼던 아래의 글을 다시 정리해서 기고한 것입니다.

2008/04/10 - [주저리 주저리/적어본 생각들] - 총선 후, 이제 정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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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 이제 정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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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나라를 보았니... 과반을 확보한 한나라당, 그러나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폭탄을 혼자 다 끌어안게 되었다.


다시 습관처럼 언론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석 숫자를 따지면서 열심히 정국 전망을 하고 있다. 과반도 안된 총선 투표율에는 '민주주의 위기'라는 형식적 수사만 붙이고 말았을 뿐이다.

다들 총선이 쟁점도 이슈도 없는 이상한 선거라고들 했다. 출범 100일도 안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벌써 급격하게 떨어진 가운데 공천 혁명 바람까지 일으켰던 민주당에게 돌아간 성과는 많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결국 보수정당끼리 나누어 먹었다. 친박연대니 하니 정치인지 장난인지 구분도 안되는 정치 행태에도 그들은 도합 200석이 넘는 의석을 휩쓸었다.

숫자를 따지는 언론은 보수중심의 정치권력의 재편이라고 진단하고 나섰다. 탄핵 역풍으로 도래했던 진보중심 정치가 뒤집힌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과반도 안되는 투표율에 민주주의적 대표성에서 부터 흠집을 안고 시작하는 이 보수 중심 정치에는 예전에 있었던 무언가 변화에 대한 바람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자기 세상이 다시 찾아왔다고 흥분하고 있을 보수 정치인 나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실제 이번 선거로 보수세력은 완벽하게 다가올 폭탄들을 혼자 꼼짝없이 다 껴안게 되었다.

오늘의 '압승'은 내일의 '재앙'이 될 가능성이 매우 짙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답답해 지는 이유는 그 재앙이 보수세력에게만 그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절망의 정치

우리 현대사가 부침을 많이 겪긴 했어도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래도 안정된 사회를 구축해 왔었다. 6~70년대에는 독재의 그늘 밑에서도 우리사회는 전반적으로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이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아래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로 보상을 받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간에 걸친 두자리수 경제성장은 독재로 인한 소외와 자유 억압의 문제를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는 정도 였다.

8~90년대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가 달성된 이 후로는 그동안 억압되었던 소외와 정치적 사회적 자유의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경제적 상황아래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은 이 방향으로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기대는 80년대 말 대규모 민주화 운동과 90년대 단계적 민주정부 이양과정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사회는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97년 경험한 IMF 경제위기는 실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은 그 이전과 문제의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경제 개발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진전되었던 사회적 욕망에 대한 실현 주기가 일단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어느정도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의 획득으로 이제 더욱 나아간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는데 되려 상당수 사람들에게 그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이 주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위기 극복에 대한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형성이 되었었고, 정부는 4인 가족 100만원 소득은 보장하겠다는 말로 유명했던 기초생활보장법 등 복지의 제도적 확장으로 어느정도 응답하였다.

또한 신용카드, 대출 촉진 등을 이용한 단기적 부양책으로 체감경기를 올려놓아 여전히 새로운 기대에 담긴 사회적 욕망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은 본격적인 문제가 점점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삶의 질의 향상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양극화는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노동인구의 반을 넘은 비정규직 문제 역시 날로 심각해 지고 일반적인 직장도 불안정해져 가계수입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었다. 그 반대로 일반 가정 가계 지출은 폭증하는 사교육비로 점차 심각하게 압박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7~80년대식 관료사회의 지배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는 개별적 개혁 지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정치와 거의 연결 시키지 못했으며 그 결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 사회적 위기에 전혀 의미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체감하는 삶의 질과 박탈감이 날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정부로 표출되었던 새로운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점차 분노와 실망으로 변해갔으며 그것은 이미 지난 대선으로 나타났다.

과거 회귀적 결과를 빚은 지난 대선은 그 이전 대선과 같은 사회적 기대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 필요없고 경제는 살리겠지'하는 자포자기적 투표 행위에 가까웠다.

혹자는 이를 철저한 계약적 투표라고도 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 듯 당선 후 이렇다할 성과는 보여주지 못한 채 영어 몰입교육 등으로 사교육을 부채질 하는 등 불안감만 높이자 지지율은 기다릴 것도 없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것이 지금 총선이었다. 새 정부에 대한 급격한 지지 철회가 상대당인 민주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 민주당 집권에 대한 체감이 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즉,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사회적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 아니 대안의 부재로 표출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겐 총선이 더이상 의미가 있는 것일 수가 없다. 선거가 자신의 삶과 별 관계가 없다는 반복적 학습이 된 국민들은 선거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계니 친박연대니 여야 중진들의 빅매치니 하는 정치연예뉴스들은 말 그대로 안방극장의 드라마 이상의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쟁점도 이슈도 살리가 없다. 그냥 사람들은 정치를 봐도 드라마 보듯하는 인식 이상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뢰와 폭탄이 즐비한 우리사회 현 상황

하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은 상황은 정말 만만치 않다. 우선 경제위기의 경우 위아래 안팍으로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엄습해 오고 있다. 당장 세계에서 신용위기로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암울한 경제 전망은 아마 베이징 올림픽 후에 제대로 그 위력이 나타날 것으로 국내외에서 많이들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바이오 연료, 중국과 인도의 소비 급증으로 인한 각종 곡물, 유제품 등 식품가격 상승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은 완화되기는 커녕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안그래도 악화된 우리나라 고용상황에 치명타를 안겨 줄 가능성이 크다. 식품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은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주어서 기형적으로 유지되었던 자영업의 고용 흡수 효과를 급격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인한 불안안 고용시장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 최장 시간을 자랑하는 장기노동과 맞벌이 등으로 어느정도 생활 유지를 할 수 있으면서 낮은 자영업으로 인한 서비스 가격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각종 가사노동) 비용과 시간 또한 상쇄 받을 수 있었지만 식품가격 상승은 이같은 고리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영업으로 인한 고용 흡수 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의 삶에도 단순 인플레 이상의 타격을 입힐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은 아직 그 깊이 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70년대 같이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의 조정으로 인한 위기가 아니라 달러화로 상징되는 그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해석들은 지금 다가오는 위기 상황이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피크 오일설(석유 최대 생산 시점이 지났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은 산업혁명이후 가장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에 비하면 가장 세계 정치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기후 변화 문제는 아직 불확실한 위기측에 속한다.

외부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사회적 욕망의 정치적 표출 경로가 차단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인 새로운 이행과정을 생각해 볼때 그 심각성은 매우 커진다.

즉,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을 지나면서 이전 사회 계급구조의 물적 기반이 거의다 붕괴되었엇다. 이러한 배경이 결국 최근까지, 경제수준에 비해 세계적으로 최악으로 평가 받는 열악한 분배구조나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어느정도 유지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던 셈인데 점증하는 양극화가 이런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급증하는 사교육비가 결국 일반 가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어느정도 사회 계층간 간극을 심리적으로나마 무마시켜 주었던 교육 제도의 의미마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교육의 일반화는 '용'은 커녕 '생존'을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을 치루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예전에 자식에 대한 교육의 열정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긴 것이었지만 이제는 자식을 생존 시키기 위한 절박한 의무 이상이 되지 못해 자식 교육을 통한 희생적 삶에 대한 보상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새롭게 계급화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전통적 의미의 생산수단 소유여부로 따지는 옛날의 그 '계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단 경제적 소득 뿐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에서의 소외까지 결부되어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의 붕괴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그동안 부자든 아니던 모두 한국 공동체의 일원이며 서로를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욕망이 정치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은 매우 혼돈스럽고 위험한 형태로 변질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구조의 전환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제도와 결부되어 '연착륙'으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간 또는 개인과 사회간의 격렬한 충돌로 표출되는 '경착륙' 또는 심할 경우 '사회적 붕괴현상'까지 경험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요즘 점점 문제가 되고 있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형 범죄, 어린이 등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 등으로 시작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더욱 심각해지만 예전에는 별로 생각지 못했던 수준의 폭력과 범죄가 단순히 불안감을 넘어 일상적 위험으로 넘어오게 될 수도 있다. 거리에서 이유없이 총맞아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남미 일부국가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제까지 정치적 집단적 의사 표현이란 노조나 사회단체 등에 의해 '조직'된 집회와 시위정도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에서 비조직적이고 극단적으로 폭력적 형태인 폭동과 약탈이 출현할 수도 있다.

사회적 위기 가속화시키는 정부와 대안없는 야당

 이미 현 정부는 이렇게 심화되어가는 상황에대한 대처 능력은 전혀 없을 뿐더러 가지고 있는 대책이란 족족 상황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을 몇달 채 되기도 전에 적나라 하게 보여주었다.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사회집단간 합의를 바탕으로한 위기관리체제를 준비해도 모자를 판에 가능하지도 않은 6% 경제 성장 수치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는 이명박 정부 머리에는 이자율 인하, 규제완화 등 각종 도박적 정책들만 즐비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민영화등 그나마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무장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안그래도 급속하게 다가오는 '경착륙'의 충격을 더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서민들이 위기상황에 맞는 충격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는 얘기고 이는 사회적 붕괴 현상을 더욱 극적으로 출현하게 만들 수 있다.

 총선으로 집권세력으로 등장한데 이허 입법기관까지 장악한 보수 세력은 점증하는 사회적 불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혼자 다 떠맡게 될 것이다. 누가 발목을 잡는다느니 하는 핑계거리마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어느정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발전하기 힘든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다른 표출경로도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대 야당인 민주당, 소위 '개혁세력'은 그 대응능력의 바닥을 노무현 정부에서 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싹수마저도 전혀 보여준바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개혁세력의 최대치가 노무현 정부 정도라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치명적 한계는 명사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데에 있다.

즉, 자체의 개혁적 '색채'만을 가지고 어떤 사회적인 근본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세력 기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구 유럽사회가 전후 복지국가로서의 체제개편을 이루어 낼때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세력 기반이 진보정당을 통해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었던 그런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개혁세력'이라는 정치 집단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어떤 사회문제에 대한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떤 혁신적인 안이 아니라 어느정도 '색채'를 내면서 기존 질서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어설픈 타협안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이런 한계는 현재와 같은 근원적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 전형적 예를 보여준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 였다.

그렇다면 그래도 의미있는 의석수는 확보한 민주노동당은 어떨 것인가. 그 한계역시 지난 국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 총선에서의 기반을 바탕으로 재창당을 포함한 혁신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장악해온 자주파 인사들이 하는 얘기의 핵심이란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하자'는 정도가 고작이다. 80년대에 묶여있는 그 사고는 재야 운동권과 제도권 정당의 역할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책임있는 정당 인사는 최근에 '개방형 경선'을 민주노동당 개혁안의 핵심인 것 처럼 이야기 했다. 개방형 경선이 구민주당에서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명사정당으로서 대중적 기반이 없는 한계를 그런 일종의 '편법'을 통해 보완하는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출발부터 대중정당으로 시작하여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당원제도를 갖춘 민주노동당에서 개방형 경선을 '개혁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가 기존 정치권과 무엇을 어떻게 차별하고자 했는지 하는 기본 문제와 방향의식 까지도 상실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유의미한 의석수 확보는 이런 수준의 '내부 혁신파'의 발언권을 높여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진보신당, 진짜 큰 그림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것은 뚜렷한 사회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자 하고 그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정확히 잡혀있는 진보신당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의 원내 진출 실패는 내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최소한의 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세력으로서의 운신의 폭이 협소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출발은 철저히 밑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지역을 다져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그것이 정공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얘기한 이러한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으로 확보해 놓고 있는 실력있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현실정치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아온 대표 정치인, 그리고 현장과 호흡했던 활동가들을 포괄하면서 실무 연구 인력까지 보강된 '진보 대안 위원회'같은 사업을 생각해 봄직하다.

당연히 이런 논의는 담론에 그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정말 몇년에 걸쳐 수회의 논의용 보고서와 연구보고서를 거쳐서 우리사회의 위기 현상황과 핵심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는 것에서 부터,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그에 이르는 전략적 방향과 실현가능성있는 전략적 정책 프로그램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강령수준의 비전수립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명분과 담론만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세력 재편을 주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또 그 논의 결과 생산된 단계적 정책들을 하나하나 지역사업으로 부터 현실화해내고, 동시에 중앙정치를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잠재적 실력을 입증 받을 수도 있을것이다.

진보신당은 책무는 단순히 명분상 '진보세력'으로서 한국 현실 정치에 자리잡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안전벨트도 없이 위기로 치닫는 한국사회에 그래도 남아있는 현실적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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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의 최대 패배자

    2008/04/10 19:16
    삭제
    최동규 / 정치평론가 이번 총선은 보수진영이 압승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수의 과반을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편하게 해줄 수 있도록 국민이 ‘견제론’ 보다는 ‘안정론’을 지지한 결과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현상적 분석이다. 내용은 반대이다. 이번 총선은 안정론을 지지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선거가 아니라,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영남의 맹주는 박근혜 한나라당은 영남이 최..
  2. 찝찝한 18대 총선 :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2008/04/10 19:46
    삭제
    찝찝한 18대 총선 :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민주주의'의 탈신비화를 말하다~ 우선 어제(9일) 있었던 18대 총선에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투표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권리를 교묘히 갈취해 국가와 기득권을 존속.유지시켜주는 선거.투표제도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번 총선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올바른 즐거운 투표(원더걸스의 선관위 광고도 조내 보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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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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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다가오는 내일이 참으로 걱정되는군요. 그냥 흘러가라고 두기에는 이번에는 정말 너무 위험한듯 합니다.
  2. 2008/04/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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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백을 따라 왔습니다. 이번선거로 진보세력이 새로운 재편 논의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심도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암스테르다머
    2008/04/1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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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밑줄 쫙 긋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이 보여준 것 같은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정치에 사람들이 붙으면 됩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닫힌 정당이 아니라 열린 정당, 다양함을 인정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정당을 만들어야죠. 현대의 군주는 정당이란 명제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그러나 이미 통일만으로 절대선이던 시기는 지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역사적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제 두번째라는 점에서만해도 그렇다.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는 큰 차이가 있다. 첫번째는 반세기의 금기를 넘어 새로운 평화시대를 여는 하나의 굵직한 계기를 만들었다면 두번째는 첫번째 틀거리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보다는 첫번째 틀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쐐기밖기 성격이 강하다. 또 첫번째는 현직 대통령 중반기여서 합의사항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책임지고 추진할 여지가 많았지만 두번째는 임기말 대통령이니 상징적 의미 이상이기가 힘들다. 평화선언도 '선언'일뿐 중국과 미국의 사인없으면 실제 구속력있는 '혐정'이 되지 못하니 실질화시키는 것은 다음 정부에 달렸다. 지금 현재 미국 대통령과 면담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다가 사실무근이어서 망신당한 그런 후보가 그 자리를 꿰어찰 가능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곳 영국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주요뉴스라기보다는 단신이었다. 알자지라 영어방송에서는 첫머리 소식으로 장식했지만 회의적인 시각은 여전히 묻어났다. 내용(substance)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비중있게 등장했다. 앞서 얘기한데로 언론의 입장에서도 상징적인 그림 이외에 실질적으로 건질 내용이 없으니 이해못할 접근이 아니었다. 가디언에서는 어차피 정상회담이 진행중인 6자회담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미국 관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북한이 핵불능화 일정을 제시했다는 뉴스는 정상회담에서가 아니라 6자회담장에서 나왔다. 정상회담 둘째날 영국 현지뉴스에서 다룬 한국 뉴스에는 6자회담만 있었다.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을 정치적 쇼로 폄하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구태에 젖은 인식의 습관적 비난이다.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분명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첫번째 회담으로 연 평화시대를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더욱 쐐기를 밖는 실질적인 의미는 분명히 있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알자지라와 인터뷰한 한 재한 인사는 남한사람들의 반응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여기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상관 안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평화세력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현 집권세력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남한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었다.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이후 사람들 사이에 남북관계에서 가능한 가장 치명적인 결과인 '전쟁'에 대한 불안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핵위기로 나라밖에서는 전쟁나네 해도 한국은 외국언론이 이해하기 힘들만큼 차분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빨갱이로 지목되던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다보니 반공이데올로기는 아주 없어지진 않아도 겨우 존재감만 확인되는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 간첩사건이 터졌지만 바라보는 눈은 크게 달라졌다. 친북적이라는 낙인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일상적 공포에 기반하기 보다는 퇴행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아직 효과가 있다는 점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TV에 등장하는 인공기를 불태우고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을 찟는 사람들도 퇴행적인 이미지를 주기는 마찬가지다. 집권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어떠한 세력도 이들과 가까워지는데 부담을 느끼기는 친북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현 우리나라를 분단체제로 규정하는데 동의하기 어렵게 된다. 분단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 중 하나임은 증명하지만 더이상 반공이데올로기가 현재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니 듯이, 그리고 전쟁위기가 전처럼 사회를 공포에 휘몰리게 만들지 않듯이 분단은 더이상 우리사회에 지배적 요소는 아니다. 사람들에게도 잔혹하게 진행되는 밑도 끝도 안보이게 심화되는 극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치솟는 사교육 부담, 확장되는 비정규직, 양극화, 그에 따른 사회불안 등이 눈앞에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로 등장한지 오래이고 이러한 위기들과 분단이 갖는 함수관계 역시도 그렇게 지배적이지는 않다.

분단은 오히려 현재를 규정하기 보다는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남한사회가 가지고 있는 극심한 경쟁지배사회가 갖는 위기상황과 극에 다다르고 있는 한계 상황을 분단극복 과정에서 해소할 수 있는 여지들이 존재한다. 즉, 현재 극단적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기본 이데올로기가 세계화 이데올로기라면 무한 개방과 경쟁이라는 더욱 심화된 경쟁체제로 가기 보다 북한의 새로운 성격의 노동력, 확대되는 내수 시장, 대륙으로의 활로 등 새로운 경제적 요소와 결합함으로서, 긴장해소에 따른 새로운 군사적 전략을 통해 지금과 같은 상호의 과도한 군사적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서, 또 외교적으로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보다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서, 다른 성격의 발전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분단 극복이라는 조건의 변화가 대안적인 패러다임 구성요소의 전부일 순 없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통일 대 반통일'로서 우리나라 상황을 이해하고 통일지향은 선, 반통일은 악이라는 구도는 더이상 유용한 틀이 되기가 어렵다. 이미 반통일을 전제로 한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독재와 그 독재 밑에서 제한된 경제주체가 특혜를 누리던 때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많은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이 동의하듯이 이미 지난 10여년간의 진전으로 더이상 그 이전의 긴장과 대결 지향으로 돌아가기는 매우 힘들게 되었고, 그럴 매력도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 그 어떤 세력도 (과거 반통일이라고 취급되었던 세력 조차도) 대결과 긴장을 통해서 무슨 이득을 얻는 것이 한계가 명백하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남북관계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가 중요해 졌다. 오히려 경제주체들에게는 긴장과 대결이 바로 금전적 손해로 연결되는 것이 너무나 명백히 눈에 보이지 않는가.

따라서 이제 '통일 대 반통일'이 아니라 어떠한 통일을 지향하는 가가 정말 문제가 되는 셈이다. 앞서 말한데로 현 정부가 제시하는 것 처럼 남북FTA식으로 그저 남한이 북한을 끌어안고 무한경쟁지배의 세계로 뛰어들자는 물귀신식 통일 접근법은 적어도 남한 사회에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우리사회의 모순을 북한사회에 이식시키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대안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리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물론 당장 북한사회 입장에서는 먹고살기 좋아지겠지만 (이것이 인도적 차원에서 현재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현재의 북한의 모순에서 현재 남한의 모순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 와중에 한계점이 다다르는 남한 사회와 같이 증폭되는 사회불안 속으로 걷잡을 수 없게 빠져들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통일 모델 처럼 단순히 교류를 증진시키고 북한을 남한과 비슷한 경제수준으로 올리고 점차 통합수준을 높여나가는 과정만으로는 남한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을 뿐더러 북한에 남한 수준의 번영을 꼭 보장할 수는 없으면서 문제는 이식시키는 과정이 되기 쉽다. 현 남한 체제는 그대로 둔 채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대륙 진출로 등 남북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이득만을 챙기겠다는 접근 법 역시 북한을 동반자로 보다는 대상화 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남한 사회를 이상화하고 있기에 역시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고, 북한 사회도 그에 따라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통일 모델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런 출발은 아직까지 소위 '진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일 대 반통일'의 낡은 틀에서 벗어날때 시작될 수있을 것이다. 현재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가급적 일단은 화려하게 치장하기를 앞다투어 경쟁하고 회의적인 시작을 비칠라 치면 일단 '반통일'로 규정해 놓고 시작하는 고루한 태도로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다. 현재 정상회담 조건에서 가능치도 않고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의제를 꺼내라고 강변하는 개념없는 매체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들어가는 것이 덮어놓고 반통일 세력 운운하는 것 보다야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아직도 북한의 북자만 나와서 얼굴 벌게지고 실제로 불까지 내뿜는 반공 바이러스 중환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우리의 미래와 상관이 있기엔 너무나 구태의연한 종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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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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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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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레드컴플렉스나 분단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통일 대 반통일' 구도로 과대포장하는 일부 진보에는 저도 거부감이 있지만 그것들이 현재의 남한사회의 여타 모순에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만 해도 대통령은 북한에 가서 친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정통부는 친북한 게시물 삭제라는 낡은 칼을 들고 설치니까 말이죠. 청와대는 또 거기에 부화뇌동하고 있고요. 보다 근본적으로 국보법이 여전히 많은 진보운동을 억누르는 전가의 보도로 남아있는 한 분단이데올로기는 어느 한쪽이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해봐야 별무소용이 아닐까 싶네요.
  2. 기인숙
    2007/10/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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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의 기업들을 몰고간 대통령이 어떻게 빨갱이인지 알 수가 없다...그리고 어느 기업이 단지 어느 곳에 공장을 건설한다고 무한정의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오래가지 못할 정책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결국 어떤 식으로든 북한내 기업들도 자본주의 체제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다만 예산에서 매년 일정액을, 소득 수준도 있으니 예를 들어 1%내에서 반찟 나누어 북한과 세계의 빈민국을 반반씩 지원하는 형태의, 북한 정부에 지원하여 스스로 건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그리고 스스로 북한 내부에 적합한 산업을 찾아 내도록 하는 것이 지역에도 부합되는 일이다...만약 북한이 무기 개발과 수출에 역량이 있다면 남한이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자율권을 주는 것, 지자체에 대한 중앙 정부의 자세이기도 하다...이것이 진정한 체제의 통일로 가는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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