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자주파, 그리고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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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창당을 지향했던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 그러나 종북주의 존재와 민주노동당의 사망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사진@오미아뉴스 이재덕


"정말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나요? 민주노동당에?"

반갑게 온 지역 위원장님의 전화를 받았을때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종북주의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소위 자주파였다. 10여년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말이다. 그때는 자주파라는 말도 없었다. NL이니 민족해방파니 했다.

물론 뭣 모르고 운동에 참여하게 될 때는 몰랐지만 1학년을 지날때쯤 운동권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그 때 열심히 조직하고 거리에 나서는 자주파가 좌파 이론가 족보나 따지기 좋아하는 평등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걔중 북을 유독 지나치게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문제삼진 않았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북정책 덕에 전쟁위기설이 심각하던 때라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그 때 였다.

나도 10여년 전, 대학생 시절엔 소위 '자주파'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순수하던 그 열정은 소중히 간직하고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에 이해하던 것처럼 미제와 그 앞잡이들만 때려잡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단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운동가로서 살기엔 운동의 지표가 될 대안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없는 사정에 어거지로 영국으로 유학길까지 올라 그렇게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의회 민주주의 산실이라는 이들의 정치를 보면서, 복지국가라고 하는 이들의 정책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우리사회의 대안을 내어보기위한 단초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영국사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순 없었다. 민주정부를 가졌다는 우리나라가 양극화, 고령화 등 새로운 수준의 사회문제에 직면하면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여 대안이 도출되기 보단 과거 권위주의적 틀에 갇혀 미봉책만 반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 가운데 방치된 서민들은 급증하는 사회문제를 홀로 개별적으로 감당하느라 더욱더 극심한 고통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민주정치를 이해조차 못한 구태의연한 정치권는 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허무한 다툼으로 절망만 안겨주는 것을 보아왔다.

그럴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명백하게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분명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가장 근대적인 정당 구조를 가진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가지고 명확한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권내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었다.

공부할 수록 소중하게 다가오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결국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공부를 마친후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보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운동권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변에서 손가락질 해도 그래도 희망의 근거는 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가야할 길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를 심각하게 느낀 것은 부유세 공약을 실현시키겠다며 입당했던 윤종훈 회계사가 탈당했을 때였다.
이미 자주파가 최고위원회를 싹쓸이 했다고 말이 많았었다. 그 때 윤종훈 회계사는 '선거때 써먹었으면 됐지 부유세 얘기를 왜 자꾸하느냐'는 최고위원회의 분위기에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10여년 전 투쟁에만 목 매던 학생 운동시절을 그대로 연상시켰다.

안그래도 2004년 국회 진출 후에 학교 급식 운동,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운동 등 활발하고 생동감 있었던 생활 정치가 오히려 실종되고 뻔한 정치투쟁에만 당이 휘말리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수의 조직력으로 당권을 장악한 자주파와 그런 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잘 몰랐었다.

그 때는 의원의 당직 겸직 금지 조항으로 정책을 실현시키는 공간인 의회와 대중과 호흡하는 공간인 당을 분리시킴으로서 생긴 병폐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2006년 부당한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선거로 나설 때, 의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됨으로서 이런 병폐가 풀릴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반겼다.

그런데 당대표 선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거법 위반으로 조승수 전 의원을 대표로 뽑아도 대표직을 수행 할 수 없다는 흑색선전이 선거를 뒤덥었고, 결국 인지도에서 한참 떨어졌던, 그러나 자주파가 지지한 문성현 대표가 선출되었다.

게다가 당이 정책 정당으로 발전은 고사하고 이상한 일만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선거 참패로 지도부가 총사퇴해봤자 선거를 하면 자주파 지도부가 또 당선 되었다. 종이당원, 대리 투표, 조직 동원 등 6, 70년대 독재정부를 연상시키는 부정행위 사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당은 매번 유야무야 넘어갔다.

당 회계는 공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엉망이 되고 당직자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당 책임자 입에서는 '헌신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헌신성은 10여 년전 지겹도록 들었던 자주파 운동가의 핵심 덕목이었다. 그 것이 고작 국가 보조금까지 받는 제도권 정당에서 월급도 제대로 안주면서 잠자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소리였단 말인가. 그런 아마추어적 사고로 다른 제도권 정당과 경쟁이 될리 만무했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도 모자를 판에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있는 사람도 몰아내고 있었다.

점차 퇴행적으로 변해 간 민주노동당, 드러나는 자주파 당권장악의 의미

그럴수록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갖는 의미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자주파 비판에만 안주한 상대 정파라는 평등파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은 자주파대 평등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수의 조직력으로 언제나 당권을 장악하는 자주파는 단지 평등파 뿐 아니라 다양한 당내 논의가 당 활동에 반영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이는 제대로된 제도권 정당으로 성장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한 운동권식 당 운영으로 민주노동당을 점점 추락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정점은 지난 대선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권영길 후보가 내세운 '백만 민중대회'였다.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이 몰락한 그때 새롭게 진보의 가치를 세울 수 있는 그 때, 진보적인 정책적 비전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그 때, 중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고작 판에 박힌 '대규모 집회' 였다.

이 역시 그 아득한 10여년전에 학생시절 들었던 계급혁명의 자주파 버전인 '전민항쟁'의 재판이었다. 기가 턱 막혔다. 산속에서 아직도 2차대전에 끝난지 모르고 숨어있었다던 일본 병사가 생각났다. 당원용 메일로 날아드는 그 10여년전 학생운동권 문건과 거의 다름없는 수준의 논리를 보면서 절망했다.

원내 3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당 해산에 가까운 3%의 지지에 멈춘 이후에야 당 혁신 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종북주의를 말하면서 당을 일찌감치 떠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세운 당이었는데, 아무리 그렇게 당이 썩었을까 등등 아쉬운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심상정 의원이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간 정책적 비전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그러면서 가장 선명한 민주노동당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정치인 아니었던가. 그가 당대회에 제출할 혁신안을 제시했을 때 단호한 조치들에 다소 놀라웠지만 그간 자주파의 당권장악이 의미했던 바들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수순으로 이해 되었다.

당대회 혁신안은 자주파가 반성과 혁신의지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즉, 최소한 그동안 극단적으로 드러났단 당권파의 폐단들을 자주파를 비롯한 당 자체내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청산하고자하는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당 혁신은 요원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 폐단들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당원에 대한 불분명한 조치였고, 평화지향 정당으로 용납될 수 없는 핵 자워권 발언이었고, 종이당원, 집단 당적이동, 대리 투표 등 추악한 부정행위로 당권을 장악해 온 패권주의 였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에 대한 제명 안건은 자주파가 당의 정체성을 기본적으로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원의 성향 분석 자료를 북한에 넘긴 스파이 행위는 당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단호한 조치 없는 당의 혁신이란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주파 인사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이를 '신념'의 문제라고 했다. 북한을 위해 당에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신념이라면 그것은 말그대로 종북주의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주파는 당대회에서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총공세를 펼쳐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조차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압도적 표차로 혁신안을 부결시켰다.

설마설마했던 종북주의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것이 얼마나 당을 썩게 만들어 놓았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종북주의가 아닌 패권주의라 생각했었지만 결국 '종북주의를 하기 위해 패권주의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진중권씨의 지적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순간이었다. 종북주의라는 퇴행적 사고에 젖은 이들이 이를 억지로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왔던 각종 부정행위들이었고, 그 외골수에 다양한 논의와 대안은 압살돼왔던 것이다.


이미 그 전에 자주파는 대선 참패를 평가한 안건에 대해서도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수정함으로서 참패를 인정할 뜻도, 그래서 이를 극복할 혁신을 받아들일 의사도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것도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혁신 불능정당이된 민주노동당이 이젠 진보정당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을 떠나고자 한다. 혹자는 민주노동당을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하지만 당 정체성 부터 부정하는 세력이 다수를 장악해 당전체를 좌주우지 한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무슨 재주로 당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이제 한국을 떠나온지도 5년째, 10여년전 학생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못한지 꽤 되었다. 생활인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운동한다고 현장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민주노동당 사태에서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썩어 문드러지고 무너지는데 일조를 했다면 정말이지 마음껏 원망하고 싶다.

이제 통일과 자주를 '자주파'와 분리하고 그들의 진보운동내 역할을 재평가 할 때

나는 통일 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사회 핵심 문제라고 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핵심 과제중 하나라는 점을 충분히 동의한다. 또한 나는 자주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반미에 매몰되는 단순한 사고를 거부하지만 외국에서 볼 수록 우리사회가 얼마나 미국에 편향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에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된 우리의 역할을 찾고 우리사회의 대안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통일과 자주의 가치를 운동권 세력인 '자주파'와 이제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와 분리하여 그동안 학생운동의 몰락과 노동운동의 쇄락과정 등에서의 '자주파'의 역할에 대하여 진보운동 전체가 재평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퇴행적 운동권 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자주파'가 그 특유의 조직력으로 또다른 진보운동을 망가트리는 것을 방치하기엔 우리에겐 이미 기회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과제와 자주의 가치가 '자주파'의 전유물이 되어 진보운동에서 함께 몰락하기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자주파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맹목적이리 만큼 쫓는 그 '자주'와 '통일'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퇴락시키고 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반성도, 혁신도 부정하는 당신들은 다른 이들이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 진보임을 부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몰락도, 심지어 지난 대선 문국현 후보의 출마까지 미 중앙정보부의 농간이라고 부르짓는 그대들은 심각할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경영과 형님 아우 할 소리일 뿐이다.

- 2008년 2월 10일 오마이뉴스 기고, 11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나는 왜 민주노동당이 죽었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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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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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중권이 맞다 민주노동당내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2008/03/16 13:56
    삭제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에 대해 '그 사람들 절대 진보진영이 아니다'며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냈다(진중권 "자주파는 진보 아니다. 얘기 들어보면 가관"). 진중권은 기사에서 민주노동당내 자주파에 대해 '진보가 아닌 종교집단'이라고 잘라 말한다. '북한을 상전으로 모시고, 북한을 본사라 부르는' 등의 대북 종속성을 비판하면서다. 비민주적인 방식의 '쪽수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바른 지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비판받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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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치
    2008/02/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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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영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겠지요. 바로 이런 솔직함으로 좋은 세상 만듭시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뵙기를 빕니다.
  2. 장지영
    2008/04/17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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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데 글을 보니 참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직접 겪으신 건가요?
    마찬가지 이유로 종북으로 몰아가며, 민주노동당 죽이기에 나섰군요.
    저는 평등파 자주파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도 않고,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편가르는 그런 것도 솔직히 역겨운 평당원입니다.
    님이 말씀하신데로 운동가의 핵심덕목이라 하는 헌신하는 지역이 일꾼들을 보며
    새삼 저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당이 있구나
    내돈 만원이 아깝지 않겠다 여겨 당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팔짱끼고 지켜보다가 조금씩 함께 장애인 이동도우미나 푸른학교사업을 했고,
    이후에는 정치적인 활동까지 했습니다.
    이라크파병반대, 선거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투쟁, 뉴코아 이랜드 투쟁. FTA투쟁등
    지역사업부터 선거, 그리고 투쟁.
    후보로 나간 사람들이 평택에서 연행되어 가면서까지 몸사리지 않는 그들을 보며
    믿고 함께 해도 내청춘 아깝지 않겠다 여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얻어가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보는 아니, 제 지역에 사람들을 보면 지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저 역시 너무 힘들어 잠수도 몇번 타보고, 회피도 해봤습니다.
    그럴정도로 그들은 당신이 비꼬는 그 헌신.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가 된건지. 북을 상전으로 모신다구요? 참.....예전 독재시절 빨갱이로 몰아가던 때보다 더 무섭습니다.
    4년간 의정활동하며 동지라 하던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아가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아주 어렵고 외롭게 만들고, 어쩜 그리도 냉혹하고 무서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 지도부 두 정당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당원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고 상처준 점 무릎꿇고 사과해도 풀리지 않을 참입니다.
    대북종속성을 얘기하는 지역의 일꾼은 없습니다.
    그냥 6.15나 8.15 행사에 가서 통일을 얘기하고, 축제처럼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곤 했지요.
    저희는 평택과 이랜드 투쟁에 사활을 걸고, 싸웠습니다.
    평일에도 퇴근하고 가까운 야탑과 강남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눈물을 흘리고,
    평택에 어르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사무치기도 했습니다.
    명절에는 꼭 어르신들을 찾아가 마을잔치도 벌이고. 떠나가셨지만, 땅은 빼앗겼지만,
    미국때문이 아니라, 부당한 정부가 아니라, 정말 그 늙고 힘없는 어르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네들은 참 말도 잘하지요.
    저는 무식쟁이라서 저의 당을 옹호하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진보신당이라고 하는 곳은 연예인들도 다 가셨고, 평론가들 , 말씀 잘하시는 언변가들이
    넘쳐나서.....참 부럽기도 합니다.
    그곳에 계신분들. 저희 종북으로 몰고 마음이 어떠신지 묻고 싶네요.
    한나라당, 조선일보보다 더 무서운 당신들이 그래서 더 더 밉고 싫어집니다.
    언젠가는 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3. toakdmf
    2008/05/12 13: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여보시오...역사가 판단해줄겁니다 "를 쓰신분!!!평택의 어른들은 않지켜주어도 좋으니 당신식구들과 부모님부터 잘~~~모시길 바라오...정치는 꾼들한테 맏겨두고 제할일이나 잘하면 이것이 애국이요....(무실역행)!!!!!!!!!!!!!!!!

솔로몬 지혜도 안통하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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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이냐 수습이냐... 민주노동당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2008년 1월 1일 낮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 열린무자년 새해 단배식에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천영세, 심상정, 노회찬 의원)
ⓒ 황방열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대선 참패 이후 위기는 오히려 깊어가는 모양새다. 현 민주노동당으로서 상징적 의미에 가까웠던 대선보다 이제 실제 몇 석이냐는 성과를 얻어야 하는, 실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총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당의 존립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내노라하는 논객들의 민노당 분당 논란을 둘러싼 가시 돋친 설전까지 오가고 있다.


인물 중심의 구태정치가 반복되고 실제 정책 중심 정치의 기반이 되어야 할 정당구조가 취약한 우리 정치에서 제대로 된 근대적 정당구조를 갖춘 유일한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그동안 큰 기대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이번 대선의 경우 종파싸움에 얼룩져 참패가 오래 전부터 예고됐었지만, 그만큼 곪아터진 환부를 도려낼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희망 있던 '심상정 비대위'의 무산


선거 직후, 참패한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얻은 최대 성과인 심상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안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자주파 지도부에서 말하자면 상대 정파라 할 수 있는 심상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혁신기구를 제안했으니 스스로 책임을 자인한 셈이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얼굴 마담이 아닌 실질적 권한이 있는 비대위여야 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현 위기상황을 보자면 응당한 요구였고, 지역구 출마계획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심상정 의원으로서도 정치적 생명을 걸 수밖에 없는 만큼 합당한 요구였다. 개인적으로 '이 제안을 지도부가 받으면 그래도 활로가 열릴 텐데...' 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희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기대 속에 열린 중앙위는 비대위 구성에 실패했다. 한때 심상정 의원과 지도부 사이에 극적인 비대위 구성안이 합의되었지만, 평등파 측 중앙위원들이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고 자주파 측은 다시 합의된 비대위안을 거두어 들이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이 난 것이다.


대선 패배를 비롯한 현 민주노동당 위기의 1차적 책임이 자주파 지도부에게 있었다면, 현재 당 혁신을 가로막는 1차적 원인이 분당론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쪽에서 당을 깨자는 사람들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쪽이 당을 깨려고 명분 쌓기 한다는 의심이 있는 한 서로 양보하고 합의하는 혁신안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 민주노동당 혁신의 걸림돌은 '분당론'


그렇게 중앙위가 무산된 후, 그래도 위기는 극복하고 보자는 분위기보다는 분당론이 더 확산되는 모양이다. 분당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단합을 주장하던 쪽에서도 조기 당직선거를 강행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패권주의로 또 한 번 뻔한 결과를 낳을 당직선거를 주장하는 것은 또다른 분당론에 불과하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많은 이의 희망을 담아 드디어 현실 정치에서 자리잡았던 민주노동당의 몰골은 그만큼 처참하다. 매우 서글프게도 민주노동당은 솔로몬의 지혜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왔다. 아이를 반으로 자르겠다고 하는 마당에 두 부모가 자르면 어떠리 하고 있는 꼴이니 말이다.


해묵은 대동단결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선점(positioning)의 미학이란 말에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분당에 앞장서는 평등파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패권주의적 성향이 덜하여 향후 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현재 선점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는 세력인가는 아직 회의적이다.


평등파 최대 정파 '전진'의 현 집행위원장인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 시절 읊조렸던 '사회주의' 구호가 이번 대선에서 나온 '코리아연방공화국'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서울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당장 이야기해야 할 선거판에서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외친 것이나 민생경제가 핵으로 등장한 대선에서 난데없이 통일방안 같은 구호나 내세우며 '여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라고 외치는 자주파 인사나 서로 내용없고 엉뚱했긴 오십보 백보였다.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문래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성현 대표 등 참석자들이 지도부 총사퇴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한상균
민주노동당 총사퇴


진보신당 창당한들 사람들이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사람들은 분당론에 발언하는 인사들처럼 이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영국 정책 발달사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요지가 그것이었다. 대처리즘의 등장으로 좌우간 이념논쟁이 한참이던 1980년대 문헌이었는데, 국가 축소와 가족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당과 국가 책임과 국가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노동당의 싸움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정작 사람들은 가족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가의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대선 결과를 보더라도, 진보정치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민노당 지지자 중 권영길 후보를 찍은 사람이 23.5%에 불과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명박, 이회창 후보를 찍은 사람이 합쳐서 30%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우리가 진짜 진보고 노무현 정부는 보수정권이라고 외쳐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구 여권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민노당 지지율도 같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러한데 진보신당을 창당해 지금까지 이룩해온 진보정당의 자산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하다.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한들 지지층이나 당원이나 '와'하고 몰려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정치적 기반이 상당 부분 해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현실적이다. 보수여권과 민주노동당도 잘 구분 않던 사람들이 자주파 정당과 평등파 정당을 구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대중정당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대중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적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검증된 비례의원들이 지역구를 확보해야 하는 중대한 선거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을 넘어 '민주노동당'이란 이름으로 다져온 현실 정치의 지지기반은 더없이 소중하다. 더군다나 민주노동당은 지금 지난 선거에서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10석을 확보하여 실질적 정치력을 일부 확보한 데 이어 그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례 대표로 검증된 의원들 상당수가 지역구에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그 상당수는 당선을 기대할 만하다. 현실정치에서 더욱 의미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런데 분당을 하거나 분당론에 시달려 정당 자체가 흔들리고 자리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선을 맞이한다면 새로운 성과는커녕 있던 성과까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 공산이 크다. 진보정당운동의, 민주노동당의 가장 핵심적인 자산은 정당 그 자체인데 그 정당이 흔들린 상황에서 인물만 보고 표가 오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한 명이나 지역구에서 당선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결국 지금의 분당론은 현 정치상황에서는 현재까지 진보정당 운동의 성과를 일단 날려버리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안 그래도 비전과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 현실정치에서 퇴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쉽다. 희망이 없고 암울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고 희망의 근거를 다질 기반조차 보통사람들의 눈에선 사라지는 것이다. 식자들끼리 뒤에서 무슨 의미를 부여하든 말이다.


종북주의 청산보다는 '선거강령' 제정으로 건설적 극복을


물론 어설픈 단합론은 역시 똑같은 자멸의 길임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기에 중앙위에서 합의되었던 '심상정 비대위' 안이 현 상황의 최선의 답일 수밖에 없다. 종북주의 청산을 들고 나오는 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전 몇 번의 선거에서도 패배로 인해 책임질 세력이 다수파의 패권주의적 성향으로 인해서 선거에서 또 지도부를 차지하고 또 지도부를 차지해 버리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리조차 작동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네거티브적 방향으로 현 상황이 극복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비대위를 중심으로 '선거강령(election manifesto)' 제정을 추진해서 당의 정책방향을 선거에 맞춰 구체화하여 제시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는 해소될 수 있고, 오히려 더욱 건설적인 방향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당헌 당규 개정을 통해 이렇게 합의된 방향이 향후 당 활동에 구속력을 가지게끔 할 수도 있다.


물론 서로 영원히 같이하지 못할 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진보정당이 대선보다도 정치세력화에서 실질적으로 의미가 더 큰 총선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일단 쪼개고 보자는 주장은 생각보다 더욱 큰 것을 통째로 잃게 할 수 있다. 정말 그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긴 호흡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기 쉽다.


선거강령이란


선거강령(manifesto)은 그동안 이른바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예산까지 고려한 구체적 공약 정도로만 알려져 왔으나, 실제 그 모델이 된 서구 민주주의 정치에서 선거강령의 의미는 단순한 공약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강령은 경제, 교육, 보건, 복지, 치안 등 각 정책 영역별 정책 방향과 핵심 정책이 제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기반으로 포괄적인 비전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우선 순위까지 포함하는 그야말로 정당의 정치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선거는 궁극적으로 이 선거강령을 두고 선택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선거 후에도 정치적인 구속력을 발휘한다. 간단히 말해 선거 때 입에 발린 소리하고 선거 뒤에 딴소리하는 것이 그만큼 통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당이나 집권당은 물론이고 소수당이나 야당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즉 반대당도 선거 때 제시되었던 선거강령을 기반으로 선거 후에 정책 비판과 대안 논리를 지속적으로 펼치며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킨다.


인물 중심, 이미지 중심, 상호 비방 중심의 선거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수준의 정치행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 중 근대적 정당구조의 이점이 있는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이 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선거강령 제시 과정을 통해서 추상적인 구호나 이념을 정책과 입법안으로 구체화해 대중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고, 또한 이를 포괄적인 비전과 방향으로 묶어냄으로써 실질적인 의회 활동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당내의 갈등과 논란 역시 구체적 대안을 중심으로 건설적으로 해소하고 이를 명문화할 수 있을 것이다.


- 2008년 1월 4일 오마이뉴스 기고, 5일 '오름'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주장] 솔로몬 지혜도 안 통하는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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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사장
    2008/01/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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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서 보고 들어옵니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는 명쾌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파도 아니고 평등파도 아닌 일반당원으로서 무척 공감합니다.
    선거강령이라는 구체적인 실천대안도 있고요.

    한 가지는, 선거강령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날 서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합의에 의해서 단일한 방향이 도출될 수 있을까요? 언급하신 외국의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네요.
    • 2008/01/05 19: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도 정파들끼리 감정들만 쌓여서 다투는 것이 답답하여 이성적으로 따져보자고 쓴 글인데 좀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저는 영국에 있어서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의회중심제를 채택하여 다수당 당수가 총리가 되는 영국 정치체제에서는 결국 총선이 총리를 뽑는 선거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수가 중심이 됩니다. 따라서 보통 당수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선거강령 작성을 하도록 하지요.

      그럼 그 위원회는 당의 중지를 모아서 선거강령을 소책자 형태로 출판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당권파의 의도가 많이 반영이 됩니다. 그 시행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수가되니까요. 또 그 당수는 이미 당내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며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 그 방향에 당의 동의를 거친 셈이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총선의 경우에는 입법활동을 중심으로 선거강령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금 민노당의 경우에는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한다면 비대위, 또는 비대위가 구성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결성해서 작성할수 있겠지요.

      실질적으로 따지면 이번 선거강령은 평등파가 좀 우위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인 만큼 양정파간의 갈등은 누가 더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느냐의 경쟁이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내용도 없이 감정적으로 다투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지겠지만요.

3년 이내에 극심한 레임덕 올 수도...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전망해보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선 인사를 하는 이명박 당선자. 그러나 그를 당선시킨 경제가 그를 몰락시킬 수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최윤석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출구조사에서 점쳤던 과반수 득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위 후보를 거의 두배차로 따돌리는 압도적 승리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이 같은 압승을 바탕으로 그는 새정권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기도 했지만 그는 이미 특검 피의자이기도 하다. 당분간 당내 수습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달려들 각종 야당들의 공세에 쉽지만은 않은 출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련따위는 그 이후 기다리는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갖은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끄떡없는 지지율을 과시하며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바로 그 요인이 몇 년이내에 바로 이명박 당선자에게 그대로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철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그럴까. 하나하나 차근차근 따져보자.

'경제' 화두가 만든 이명박 대통령, 그 것이 몇년 후에 철퇴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 대선은 모두가 동의하다시피 '경제'가 화두였다. 이명박 당선자가 제 아무리 심각한 비리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더라도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그 강력한 메세지가 모든 것을 방어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명박 개인의 성공신화와 서울시장 재직시절의 강한 추진력이 '무언가 해줄 것이다'란 강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저에는 고매한 가치를 따지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물러서 상황을 바라보면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치상으로 나쁘지 않았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하기 시작한 1997년 이전의 평균 8%의 경제성장률에 비해 현재 잠재성장율이 4%대로 반토막 났다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기서 이들이 무시하고 있는 것은 IMF외환 위기를 맞은 1997년 이전과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대외 경제적 여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분석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나라가 이미 고속성장단계를 넘어서 안정성장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중론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선진국의 선례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재와 비교할 수 있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초반에서 후반으로 진전되는 80년대 초반 또는 후반 기간의 성장률을 보면 작게는 2%에서 커야 4%수준이니 우리나라의 현재 성장률은 성장단계를 고려할 때 그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이다.

문제는 국가수준의 경제성장률이 아닌 그 혜택을 받지 못한 서민경제가 핵심

그럼 국가 경제가 나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성장단계상 괜찮은 성장을 했다면 왜 '경제'가 대선의 핵으로 등장했을까. 정작 문제는 말하자면 이른바 '서민경제'가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말해 국가수준에서 경제가 원만히 발전을 해도 그 혜택이 서민 개개인에게 이르지 못한 것이다.

국가 경제가 성장을 할때 개개인의 국민은 고용을 통한 수입을 통해서든지,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서든지, 공공복지 정책을 통한 사회보장을 통해서든지 그 혜택을 내려받게 된다. 먼저 고용부분을 보면 '고용없는 성장'이란 단어가 말해주 듯 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거기다가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절반을 넘고, 그 임금도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청년실업율은 8%에 이르고, 사오정, 오륙도가 말해주듯 중장년층도 고용불안에서 떨고있다. 이렇게 임금에 따른 수입이 적으니 전체취업자의 30%수준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잘 풀릴리가 없다.

노무현 정부가 말끝마다 복지, 복지 했지만 이러한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급증하는 양극화 현상에 어떠한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여전히 사회지출 수준은 OECD국가의 절반인 꼴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자식이 있는 집에서는 살인적인 사교육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가계를 압박해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07년 현재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50만 2300원으로 지난 5년간 35%가 증가했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월평균 사교육비가 100만원대를 훌쩍 넘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장율 내세우며 서민경제 무시한 노무현 정부, 이명박 당선자 인식도 동일하다는 역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체감경제와 관계없이 성장율만 들먹이며 우린 잘했다 잘했다 하니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집권세력 전체에 대한 사무친 염증이 '이들이 망친 경제 내가 살리겠다' 나선 성공신화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도덕성 논란에도 끄떡없는 철갑지지가 형성된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명박 당선자는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의 심각한 역설은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에 대한 인식과 공약을 보면 국가수준의 경제성장율에만 집착하고 정작 이 혜택이 서민에게 이르는 그 서민경제에는 대책이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 정부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선거운동 이전부터 몇번을 강조했듯이 경제성장율만 끌어올리면 그 혜택은 자연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주장해왔다. 이는 박정희시절의 개발독재에서 절대빈곤을 탈출해 본 역사적 경험과 겹치면서 별다른 의문을 받고 있진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낮은 임금이나마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에 비정규직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그 시절과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고 고용불안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은 지금과는 일단 조건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국가중심의 개발주의(developmentalism) 전략을 따른 반면 이명박 당선자는 그 정반대인 국가축소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략이 경제수치는 살릴지 몰라도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불평등 심화가 불가피 하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럼 그의 747공약 처럼 7%의 고속성장이라도 가능한 것인가. 이미 우리나라가 안정성장단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는 앞서 했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제 더이상 우리나라에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가능할 때는 지났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한국은행등 주요 경제기관은 물론 여러 경제 연구기관들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 성장할 수 있는 한계치를 말하는 잠재성장률은 보통 4%, 최대한 잡아봐야 5%를 넘지 않는다.

안정성장단계인 경제가 갑자기 고속성장한다더라도 고용상황 개선 대책없어

이에 이명박 후보는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어쩌고 했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잠재성장률 계산이 이미 들어가 있는 요소들이고, 특이할만한 것 하나는 한반도 대운하지만 지금이 30년대 대공황 시절도 아니고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가 없는 잠재성장률 2~3%를 끌어올린다는 것을 솔직히 어떤 경제 전문가가 진지하게 믿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는 전국적 수준의 지역개발 공약으로 득표전략에 불과했지, 정말 이게 7% 성장율 특효약이라고 얼마나 믿고 주장 했던 것일까.

7% 성장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300만 일자리 등등 부수적 경제공약들은 다 성립이 안되지만 7% 성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고용없는 성장 구조 하에서 어떻게 그것이 일자리로 연결되고 그것도 제대로된 정규직 일자리 이거나 차별없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될지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즉 장미빛 헛공약이란 소리다.

이명박 대통령을 맞아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지만 이는 오히려 내 집을 갖지 못한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이른 다는 점을 등을 볼 때 상대적 박탈감과 계층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기 쉽다. 이는 이미 지난번 부동산 폭등 때 전에 없이 험악했었던 민심이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특히 보육 부분에서 5세까지 영유아에게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조금 획기적인 공약들을 내걸긴 했지만 감세를 안한 현 정부에서도 못한 복지정책을 각종 세금 인하 공약으로 가득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행되도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 지뢰밭 투성이인데 지속적 민영화 등으로 국가 대응능력 잠식 예정

물론 이때문에 단기적 부양책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세계 경제가 상당기간의 호황기를 마감하고 각종 지뢰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용 위기(Credit crunch)도 그렇고, 장기화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도 그렇고, 곡물가격 급등에 따른 에그플래이션도 그렇다.

또한 며칠전 합의된 발리 로드맵도 우리나라가 탄소배출량 의무감축대상 국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데도 아무런 준비는 커녕 인식도 없다는 측면에서 감축량 합의가 이루어질 2년후에 대형 폭탄으로 돌아올 위험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을 민영화 한다니 시장실패나 위기상황시 국가가 개입할 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소리다. 현 정부에서 이어 받을 한미 FTA, 한유럽 FTA 등 적극적 개방화 정책도 세계 경제 위기를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대로 받아안게 되는 악재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더더군다나 이명박의 교육정책은 가뜩이나 심각한 사교육비 증가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자사고를 100개를 더 만드는 등 그나마 명목상으로 유지되던 평준화 정책을 무너뜨리겠다는데 그것은 곧 더욱 극심한 학생간 경쟁을 낳고 극심해진 경쟁이 더 극심한 사교육을 낳는 다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교육정책에 있어 명백한 착각은 우리나라 교육문제가 교육의 질이나 경쟁력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얼마전도 결과가 나왔듯이 OECD가 주최하는 세계 학력평가 프로그램인 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최상위급을 차지한다. 의무교육 참여율, 대학 진학율 등 교육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지표상으로도 역시 우리나라는 세계최고 랭킹을 자랑한다. '높은 교육수준이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나라밖에서의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명박 교육정책, 사교육비 되려 증가시켜 가계 압박 악화될 것

문제는 교육의 질이 아니라 교육이 사회적으로 갖는 기능이다. 경쟁력과 상관없이 과도하게 교육제도에 집중된 극심한 경쟁이 사교육 급증으로 나타나니 부모들이 그 돈들을 대느라 죽어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공교육내 원어민 교사 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영어가 정말 필요해서 그 많은 돈을 쓴다기 보다 영어가 경쟁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이 늘어난다 해도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학생이 잘하게 되는 만큼 자기 자식은 더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 더 사교육 줄이기는 커녕 더욱 늘릴 가능성이 크다.

즉,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 당선자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착각과 실책을 반복할 것이다. 결국 서민 경제를 개선시키기는 커녕 급격하게 악화시키기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그동안 갖은 도덕성 문제에도 '경제를 살릴 것이다'란 그 하나의 기대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 집권 중반기를 넘기는 2~3년 후 쯤에 나오는 결과가 더욱 악화된 서민경제라면 그 정치적 기반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무현 대통령이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당선이 되었으나 서민경제에 실패하여 가랑비에 옷젖듯이 느리지만 강하게 반대정서가 형성되었다면 경제 그 단 하나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가 무너지는 순간 그대로 바닥까지 바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가운데 안그래도 도덕성 문제가 따라다니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측근이 꼭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부패나 비리에 둔감한 한나라당 인사들이 10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흥분 속에 대형사고들을 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경제로 당선된 대통령, 경제 무너지면 끝. 그러면 그 다음은?

그럼 그 다음 상황은 무엇일까. 역시 변수는 상대 정치 세력이다. 현재까지 소위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전 범여권집단은 개인적으로 싹수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광범위하게 진보진영 전체로 본다면 현재 일고 있는 싱크탱크 운동 등을 밑둥 삼아 심기일전하여 정말 서민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대안을 들고 아젠다를 선도할 능력을 갖춘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붕괴시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BBK 같은 이슈에 매몰되는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 네가티브성 캠페인에만 그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민심은 다른 별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극우적 민족주의 등 더욱 악화된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보수언론이야 이명박 정부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겠지만 일방적 변호로만으로 한계에 봉착할 경우 그 책임을 인접국이자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중국으로 떠넘기는 논리를 설파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극우적 민족주의 캠페인을 전략적으로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와 노동자들도 극우적 민족주의를 가능케하는 사회적 배경을 제공 할수도 있다.

마지막 전망은 사회전체가 재앙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러한 진단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개탄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어떠한 움직임에 주목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2007년 12월 20일 프레시안 기고, 21일 첫화면 상단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이명박 시대'를 맞으며] "이명박, 서민경제 되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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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사히(?) 끝난 대통령 선거, 좀 헷깔리네요.

    2007/12/21 11:49
    삭제
    12월 중에 한국에 다니러 올 일이 있어서 일정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일정을 좀 조정 하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밤 비행기에 좌석이 있다고 하네요. 바로 예약을 하고 좀 서둘러 퇴근을 한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12월 18일의 이야기 입니다. 그렇게 마닐라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인천공항은 눈감고도 찾아다닐 만큼 제..
  2. 선거에서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는 이유

    2007/12/22 14:03
    삭제
    그동안 여러번의 각종 선거에서 투표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구의원조차도 찍은 후보는 당선이 안 되더군요.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다음 선거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낙선 되었으면 좋을 후보에게 표를 줘야 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독특한 정치성향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위해 그동안의 대선 결과를 가지고 모든 정치,사회적인 문제는 죄다 무시하고..
  3. 경제대통령 당선, 국민의 삶은 나아질까?

    2007/12/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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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사연 이슈해설] 경제대통령 당선, 국민의 삶은 나아질까? 2007-12-24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2007년도 저물어간다. 역대 가장 재미없는 선거라고 했던 대통령 선거도 끝나고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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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단일화 주장, 미래까지 저당 잡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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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종교계 7인 모임 기자회견 장면, 단일화 주장이 심정적이나마 이해하기엔 도가 넘어선 듯 하다.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결과에 대한 예측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악몽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대선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검찰의 입만 바라보던 서글픈 처지들이 더욱 비참하게 드러났는데 오히려 아쉬운 미련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제는 미련을 넘어 협박까지 등장했다. 범여권 단일화를 거부하는 세력은 '거짓 민주화 세력'으로 규정하겠다는 엄포가 뒤따랐다. 또다시 민주화의 '원로'라는 분들이 또 나서 단일화를 부정하는 것은 또하나의 무능이고 오만이라고 밀어붙였다.

솔직히 말하자. 이미 지난 10여년간의 소위 민주정부에 대한 성적표는 이미 나와있었다. 소위 제도권내 개혁진영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드러냈었다. 이름부터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을 외친지 오래지만 별다른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것은 이미 오래다. 이제와서 누구를 '거짓'이라는 둥 특별히 탓할 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단일화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야 심정적으로 이해는 갈 수 있다. 민주대 반민주라는 이미 그 유효기간이 지난 명분에 반드시 동의하지 못해도 이명박 집권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공감하기에 이를 막기위한 어떠한 방법에도 쉽사리 외면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 이상은 좀 도가 지나치다.

관련글: 문국현을 들어 이명박을 막으랴 - 2007/12/04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것이 개혁진영 지지자에 대한 도리라고? 이건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아니다. 5년동안 제대로 공부를 안한 학생이 이제 입시를 코앞에 두고 이리저리 요행수에 머리를 굴려보는 꼴이다. 그러면서 명분은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위해서'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꼴이다. 공부를 안했으면 성적이 안나오는 것이 순리고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미래다. 현재 당연한 결과에 요행수를 굴리다가 미래까지 저당잡는 어리석음은 적어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소위 '원로'의 지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모양은 5년동안 제대로 공부도 안한 학생에게, 그에 대한 반성조차도 제대로 안한 학생에게 성적을 몰아주자는 꼴이고, 시험결과에 대한 책임을 안몰아준 다른 학생에게 묻겠다는 꼴이다.

정동영 후보는 현재의 소위 개혁진영의 궤멸적 상황에 분명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정부내 1차적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었다면 여당내 1차적 책임선에 정동영 후보는 빠지기 힘들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운동 내내 과거를 반성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과거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어떠한 메세지 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몰아주자는 주장은 현재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망각하고 불문에 붙이자는 것과 무엇이 크게 다른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것은 점점 명확해 지는 실패의 책임을 그 책임주체가 아닌 타인에게 돌리려는 듯한 분위기이다. 개혁진영은 이미 단일화를 주장하기에 앞서 무너졌다. 그런데 현재 도가 넘은 단일화 주장에 마치 이에 '협조'하지 않은 세력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울 기세이다. 이것 명백히 미래까지 저당잡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현재의 궤멸적 상황에 대한 책임소재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면 당장 총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시 일어설 기반까지 철저히 붕괴시키는 행위에 다름아닌 것이다.

단연코 현재의 소위 제도권의 여권 세력으로는 미래의 희망은 없다. 행정권력, 의회권력은 다 획득하고서도 그걸 가지고 철저히 스스로를 붕괴시킨 세력이 그대로 있는한 다시 일어설 수 있을리 만무하다. 현재 도가 넘은 단일화 주장은 이마저 덮어버리고 책임소재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미래까지 저당잡는 위험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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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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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선에 미련을 버려야 미래가 보일듯...

    2007/12/1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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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넘은 단일화 주장, 미래까지 저당잡힐라 보롱이 님의 글. 정치적으로 깔끔한 해석이다. 이제와서 이명박 집권을 막을 수는 없다. '단일화'가 안 되는 것이 소수정파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상황인식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경제'라는 SF괴수물 이택광 님의 이 글은 지금의 우리가 염려해야 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아...이명박이 되는 거야?? 미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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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을 들어 이명박을 막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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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불교계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문국현과 정동영, 단일화에 희망을 걸어야 하나? 걸수 있는가? 사진@오마이뉴스 유성호



대통령 선거가 거의 2주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등록이 끝난 지금도 후보가 확정이 안된 형국이다. 특히 범여권, 또는 개혁진영이라고 하는 쪽에서의 단일화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다가도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한순간 돌아서는 듯 하다가도 다시 단일화 끈을 잡으니 이에대한 기대와 아쉬움은 생각보다 큰듯하다.

이는 꼭 그 진영 후보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닌 듯이 보인다. 오히려 목이 타들어가는 이들은 정치권외의 '개혁진영'인 듯 하다. 이른바 민주화 원로들이 하나둘 일어서 단일화를 외치더니 이어서 이른바 '진보진영' 학자들이 목소리를 보탠다.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니 정치권 안팍의 압력은 가히 그 정점에 다다르는 듯 하다.

조만간 가타부타 결론은 날 것이다. 그러나 이 촉박한 시간에도 단일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지난 대선 막판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대선구도를 반전시켰던 기억일 터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외치는 이들에겐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이뤄온 민주정부인데 다시 독재잔당에게 정권을 돌려주는 것은 민주화에 몸바쳐온 이들에겐 다시 꿈꾸기 싫은 악몽일 터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사회를 민주대 반민주로 규정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그렇게 이룩되었다는 민주정부의 대통령도 그 독재잔당과의 연정을 제안할 정도로 스스로 근본적 차이를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도 정치권내의 소위 '개혁세력'은 더이상 '민주화'를 자기 소임으로 삼지도 않는다. 민주적 선거제도, 지역감정 해소, 부패청산 등 가장 협소한 범위의 '민주주의' 인식을 가진 현 제도권 '개혁세력에게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민주화'로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더이상 '민주화'할 거리도 남아있지도 않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집권을 한 들 이들 집권 '민주화 세력'이 구축해 놓은 정치적, 제도적 수준의 민주화가 당장 후퇴할 것이라는데도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현 대통령 후보은 거의 부정비리 백화점을 차릴 수준이지만, 그리고 그러한 배경이 결국 집권후 권력형 비리에 휘말릴 가능성을 크게 하지만 그런 비리와 부정이 벌어지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될지는 다른 문제이다. 검찰도 독립적 자기 권한에 맛들려 통제가 쉽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의 비리라도 터져나오는 순간 다시 우리사회가 권력형 비리가 만연한 사회로 돌아가기 보단 집권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급속하게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 평화가 무너지고 전쟁위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주장도 고개를 끄덕이진 않게 된다. 이미 지난 10여년 간의 남북관계 진전으로 어느정도 안정화를 이룬 이 상황에서 섣불리 남북관계를 건드려 긴장을 높였다간 당장 경제부터 타격 받을 것이 뻔한 걸 두고 가뜩이나 경제에 국민들이 민감한 이 판국에 쉽사리 현재의 안정을 건드릴 정신나간 집권세력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때문에 이명박이 전향적 자세를 취했다가 원조보수를 주장하는 후보가 출현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말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의 뒷배경에는 집권을 바라보는 세력의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존재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새로운 조건에서 새로운 단계의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양극화와 고령화가 그것이고 국외적으로는 국제관계의 다극화, 기후변화, 자원고갈 등이 그것이다. 그나마 가장 정치적으로 인식되어 있고, 내재적 위기의 핵심인 양극화만 살펴봐도 이 것이 가져올 사회적 타격이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국가주도 경제개발 패러다임이 97년 경제위기를 마지막으로 종말을 고하고 세계화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급격히 전환된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양극화는 그 이전까지 불평등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해방과 전쟁이후 황폐화로 비교적 동등한 조건에서 모두 출발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한반도 체재경쟁 덕에 가능했던 철저한 보호주의 속에 추진할 수 있었던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구도에서는 제아무리 독재체재 아래이고, 사회복지가 열악했더라도 불평등 정도가 오히려 계급사회가 정착된 서구 복지국가에 비해 결코 질적으로 나쁘지 않을 정도 였다. 그것이 또한 교육으로 인한 계급상승의 기대를 가능하게 했고 경제가 성장함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욕구도 전계급에 걸쳐 덩달아 상승하여 불평등에 대한 불안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사회적 완충장치는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아래 경쟁은 심화됨에 따라 교육에 대한 사적인 지출도 덩달아 상승하지만 이제는 계급상승의 기대라기 보다는 생존의 몸부림이 되어가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 정점에 다다라 보통 중산층 가정이 맞벌이에 투잡 쓰리잡을 하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비용을 초과하기에 이르렀다. 더더군다나 전체 노동시장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등 차별이 더욱 극심하고 보편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이 세대가 가정을 꾸리기고 상대적 안정을 누렸던 부모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할 때 쯤이면 계급분화는 더욱 고착화되고 이젠 자녀교육으로 인한 사회적 생존의 기대마저 박탈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복지수준은 OECD최저 수준으로 열악하여 어느정도의 재분배 및 사회보장 등 다른 대체적인 사회적 완충장치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을 중심으로한 전통적인 완충장치가 붕괴시점에 이르게 된다면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불안은 여과없이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시점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사회적 계급화가 고착화되었지만 이로 인한 사회불안을 완충시킬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은 남미에서 벌어지는, 만연한 마약거래, 일상화된 총격사고, 폭동, 국지적 게릴라전 등등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사회적 재앙은 이제 실질적인 문제들로 다가오게 될 수도 있다.

설마 설마 하지만 최근에 한국에서 방문한 친구, 친지들과 이런 얘기를 나눌 수록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된다. 양극화 진행에 따른 폭력의 일상화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을 때 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데요"라는 대답이 거의 입을 맞춘 듯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에서 드러나듯이 현 집권세력조차 이러한 사회문제 앞에서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이상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경제위기때는 IMF가 있어 강제적이었다지만 OECD국가들 중에서는 미국 주변국밖에 맺지않은 미국과 FTA를 자발적으로 맺고 현재 한나라당이건 범여권이건 모두 이를 찬성하는 상황에서 누가 집권하던 이와 같이 심화되는 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는 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 당선이 그나마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인 이유는 그의 교육 정책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육 교육 하는 것은 앞서 말했 듯 그나마 최후의 완충장치로 남아있기 때문인데 300여개의 특수학교를 세우는 등 가뜩이나 감당 수준의 넘은 사교육 비용에다가 그나마 남아있던 평준화 체제마저 붕괴시킨다면 한세대 걸쳐 직면할 사회적 붕괴 위기를 단 5년안으로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교육이 위기의 핵심고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범여권 후보가 되면 달라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기의 징후는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동영 후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하고, 사람중심 경제를 주장하는 문국현 후보 조차도 패러다임을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향후에라도 보완할 조직적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범여권에 누가 되던 현 노무현 정부의 운명과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말과 이미지가 앞서되 내용과 세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은 매 한가지 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에 그토록 기대를 모았던 문국현 후보가 여전히 저조한 지지율을 벋어나지 못하는 것도 일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한번 속지 두번 속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되던 상관없나? 이른바 '개혁진영'의 단일화 외침에 마냥 고개를 돌리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범여권이 어떤 새로운 변화의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가져올 사회적 위기의 가속 효과가 너무나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제대로 내용을 갖춘 정치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 전체적으로 내용이 달리는 것의 반증이기도 한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될 수 있는 시간조차 벌지못하고 사회적 위기의 임계점을 맞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상황이 절망적이 될 수 있다.

그럼 단일화에 희망을 걸어야 하나? 그러기도 힘든 것은 이명박을 막는 다는 네가티브한 의미의 단일화로는 이 구도를 뒤집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계하길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BBK가 심각히 터진다 한들 다른 대안이라는 포지티브한 것을 범여권이 보여주지 않는 한 현 집권세력과 같은 부류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범여권으로 표가 돌아오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그래도 희망이라 생각했던 민주노동당은 자기 정체성에서부터 헤매고 있으니 도대체 표를 던지기 조차 민망해진다. 이래저래 마음만 괴로운 대선이다. 외국에 나와 있어 투표장에 갈 부담이 없다는 것을 위안이라고 삼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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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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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국현이 그냥 '단일화' 했다면, 나는 지지를 철회한다

    2007/12/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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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글에서 문국현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한 제안을 전했습니다. 부패한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을 뽑기 위한 토론회를 제안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 글에서 저는 이런 문국현 후보의 선택이 "현재 시점에서 문국현 후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퍼즐맞추기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국현 후보의 제안은 '단일화'가 아니라, '대표선수'를 뽑자는 제안인데요. 여기에 정동영 후보의 동행 블로거께서 "문국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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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멍구
    2007/12/04 17: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김경준씨가 검찰 수사를 받던 과정인 11월23일 검찰청 조사실에서 장모(이보라씨의 어머니)에게

    써준 메모지를 단독으로 긴급 입수했다. 여기에는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김씨의 형량을 낮춰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서툰 한글로 쓰여 있다

    www.blddong.com 에서 정확한 개요를 확인해보세요~!
  2. 2007/12/04 18: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늦게 인사드립니다만, 올려주시는 글 늘상 잘 읽고 있습니다. :)
    • 2007/12/04 20:14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국땅에서 혼자 답답한 마음에 말그대로 주절주절 쓰는 글인데 관심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
  3. 우리아빠
    2007/12/17 19: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거가 이틀남은 오늘 명바기가 될꺼 같다는 두려움에... 애혀...
    하여간 잘 보았습니다.

100만 민중대회와 우리 민주주의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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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전경버스 600대를 동원, 집회예상지역 차도와 주변 인도를 차량으로 막아 통행을 원천 봉쇄했다. 정부가 집회를 불허했을 때부터 경찰과의 대치는 예견돼 있었고 교통혼잡은 피할 수 없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집회의 원천봉쇄가 도심 교통도 봉쇄한 것이다. 사진@경향신문, 글@이정환닷컴


예상된 결과였지만 예상보다 비참했다. 선거판도를 확 뒤집어 놓겠다던 민주노동당의 "핵심전략"이었던 100만 민중대회는 진압뒤의 풍경 만큼이나 스산했다. 무엇을 위해 모였는지, 무엇을 외쳤는지는 전달되지 않았고 언론들은 구태의연한 데모질로 매도했다. 한 경제지는 한걸음 더나아가 최근 노사분규까지 싸잡아 노동자의 '떼 병'이 도졌다고 비난했다. 그 보도수준의 유치함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정도는 예정된 수준 아니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대선때의 촛불시위와 농민대회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때는 감히 이런 유치한 수준의 매도는 보이지 않았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참석하니 마니 했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후퇴했다'는 말이 또다시 아프게 파고든다. 도데체 언제쩍 원천봉쇄냐. 이젠 버스회사에 협박편지를 보내 집회에 협조하면 운전자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협박한다. 관계장관이 모여서 담화문을 발표한다. 군사독재시절의 대한뉴스를 다시 돌리는 듯하다. 사회혼란과 교통혼잡이 이유라는데 그간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집회를 보장하는 쪽이 덜 혼란스럽고 덜 혼잡스러운 것은 명백하다. 혈기좋은 학생들이나 울분에 받친 노동자나 농민들이 경찰과 충돌하긴 하지만 원천봉쇄처럼 전면적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허용된 집회에서 한두차선으로 행진하는 풍경은 이미 한참 익숙해진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원천봉쇄를 하는 한 도심에 걸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집회를 하려는 쪽도 심심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못내게 한다면 결국 격렬한 충돌만이 남을 뿐이다. 며칠전 아직도 한국을 독재체재로 알고 있는 외국 친구들과 대거리를 했었다. 나는 단호하게 지금은 오히려 민주주의가 넘친다고 단언했다. 본의아니게 그것이 거짓말이 되었다.

언론들은 툭하면 선진국 시위문화를 운운하지만 무얼 보고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선진국에서는 이정도로 사람들의 불만이 폭증할 땐 폭동이 일어난다. 물론 왠만하면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통해 요구가 해소되니 그리 흔하진 않지만 한번 터지면 우리나라 처럼 조직된 시위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몇년전 시도된 노동개악은 격렬한 폭력적인 충돌을 나았고 작년인가는 소수인종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파리 근교에서 대대적인 폭동이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불과 몇년 전 왕당파(loyalist)들의 폭동이 북아일랜드 수도에서 며칠밤동안 지속되어 화염병과 돌팔매질이 밤거리를 점령했다. 뉴욕경찰을 운운하나본데 얼마전 뉴욕에서는 교통노조가 전면파업을 해서 전 도시가 끔찍한 교통대란을 경험했다.

선진국에서 한참 멀은 것은 시위문화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와 같이 농촌은 아주 대놓고 정책에서 집단적으로 배제되고 아직도 산재로 사람이 노동현장에서 죽어나가고, 비정규직 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고, 강제철거가 존재할 정도로 사회적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이에 대한 항의가 여전히  폭동이나 소요사태로 발전하지 않고 조직된 시위로만 나타나는 것이 솔직히 놀랍다. 언젠가 부터 시위나 파업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청구할 대상이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폭동이나 소요사태에서는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겠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그 대상부터가 대단히 모호해질 것이니 말이다.

선진국에서 정작 한참 멀은 것은 정치이고, 정책이고, 언론이다. 정치가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정책이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언론이 이를 소통하지 않으면 걱정해야 할 것은 조직적 시위 따위가 아니다. 폭동이나 소요사태도 재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위 6~70년대만 하더라도 제3세계의 새로운 모델로서 떠올랐었던 남미국가들의 지금을 바라보라. 브라질이나 멕시코에서 온 친구들이 얘기하는 자기들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심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갱들이 활보하고 길거리 가다가 이유없이 총맞아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인구의 절반이상이 빈곤층인데도 7~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식 경제체제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 시민들의 일상 자체가 재앙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렇다. 우리사회는 민주화가 되었다. 하지만 어제의 모습은 현재의 대선과 겹치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에서 각종 사회적 요구와 대안이 경쟁해야할 대선은 가면 갈수록 진흙탕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증가하는 양극화, 급증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 등등 과도한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가 부른 것들임에도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를 주장하는 후보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무언가 달라질까하고 표를 던졌던 소위 '개혁세력'의 집권 끝에 삶이 더욱 팍팍해졌으니 다른 쪽에 희망이나 걸어볼까 하는 것이 작금의 분위기인듯 하다. 지난 대선에서 부패와 특권으로 인해 낙마했던 후보가 고개를 내밀자 마자 20%의 지지를 훌쩍 가져가는 현상은 현 집권세력쪽만 아니기만 하면 된다는 '묻지마 지지' 현상이 아니고는 설명이 잘 안된다.

그럼 제3의 대안인듯했던 민주노동당은? 어제 민중대회에서 잘 들어났듯이 이들이 자신이 정당인지 운동단체인지부터 구분이나 할 줄 아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자신의 입장대로 민중대회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이 것이 대통령선거의 '핵심전략'이라니? 사람들은 시위나 데모는 충분히 지난 대선때 경험했다. 그리고 이는 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철저한 그에 대한 배신이다. 탄핵때도 그렇게 모여봤지만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적 고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이고 보자'는 전혀 통할리가 없다. 원하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고 외쳐도 도대체 무얼 위해서 모여야 하는지가 불분명 한 것이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도대체 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저렇게 모여서 난리들인지 쉽게 납득이 안되니 지금 벌어지는 헌법적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도, 유치찬란한 매도조차도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집권을 얘기하는 '정당'이라면, 그리고 합법적인 선거공간에 '후보'로서 참여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일단의 우선 순위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서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 운동단체들이 힘을 모은다고해도 '무엇을 위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하면 하는 소리가 '데모합시다'라면 그는 더이상 대통령 후보도 아니다. 불행히도 진보'정당'의 후보로 나온 사람이 기껏 전달한 메세지 라는 것이 그것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핵심 메세지 하나도 없이 진보적인 것 같은 정책을 줄줄이 나열한다고 해서 정책선거 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사람들에게는 그림이 안그려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정책을 꿰뚫는 핵심적 기조와 비전이 제시되지 않으면 메세지도 전달될리도 없고, 공약들도 서로 따로노는 무의미한 장식물일 뿐이다. 핵심메세지만 있고 정책은 없는 문국현 후보도 또하나의 극단이다. 새정치를 말하는 그도 인물을 중심으로 정당 하나 급조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현 구도대로 대선이 진행된다면 지금껏 깊어온 사회적 위기와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소식만 들려오는 현실이 갑갑할 뿐이다. 정말 희망의 증거가 잘 안보이는 이 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위기가 '위험한 기회'라는 말을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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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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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신정권 때도 없던 일"

    2007/11/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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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범국민행동의 날을 마친 영길씨는 12일 WBStj원음방송 '손석춘의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어제 집회를 막기 위한 정부의 대응이 "유신정권때도 없던 일"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집회에서의 연설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에 대해 "후보의 일상적인 활동"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별셋그룹 비자금 문제에 관해선 특검 도입의 입장을 거듭 피력했습니다. 이에 관해 정동영, 문국현 후보와 만날 뜻이 있고 상대쪽에서도 긍정적..
  2. 김경준 귀국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

    2007/11/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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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야.. 코미디 ! 김경준 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입국하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심사다. 공항에서 입장을 달리하는 두 세력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무엇이 수갑을 차고 호송당하는 죄인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저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5년 전 대통령선거를 마지막으로 아 이제 비로소 우리가 선거다운 선거를 치를 수 있겠구나 하는 진한 감동과 희망을 느꼈다. 환하게 웃으면서 입국하는 김경준 씨(사진 오마이뉴스) "국민이 대통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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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ㅉㅉ
    2007/11/1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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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사진 아주 오래전 사진인데 그저께 있었던 일이마냥... 올리다니. 요즘엔 저런방패 안씀
    • 2007/11/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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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하신 내용을 보고 저도 의문이 들어 출처를 찾아갔는데 다시 찾아 확인할 수가 없군요. 그래서 다른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행태는 여전했었다는 것이지요. 군사독재시절이나 민주정부시절이나 장면은 여전히 재탕되고 있습니다. 쩝...
  2. 타조알
    2007/11/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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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혹여나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민중대회에 대한 오독으로 읽힐까 염려스럽기까지 합니다. 대선 공약이라는것이 "데모 합시다"라는 촌스런(?)공약으로 많은 사람들을 선동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이 진심어렸다는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 2007/11/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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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비판한 것은 민중대회 자체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본분을 잊고 그걸 선거전략이라고 삼은 민주노동당입니다. 당연히 국민은 시위를 할 권리가 있고 지금과 같이 언로가 막히고 제도적으로 소외당하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시위는 피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를 제도 안에서 풀어내겠다고 제도정당이된 민주노동당의 대선핵심전략이 '시위'라는 것은 무언가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3. 플라토닉
    2007/11/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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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돈있는 자는 돈으로 돈없는 자들은 폭동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쟁취했다. 민주주의라는게 서로의 이익을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이 협상의 장에서 배제된 농민 비정규직들이 폭동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쟁취하는건 당연한거다. 시위문화 말하기 전에 사회적 이익배분에 있어서 힘없는 자들의 이익도 챙겨준다면 시위같은건 일어나지도 않는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야 로비라는 우아한 방법이 있지만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은 폭력 밖에 없다.
  4. 참새알
    2007/11/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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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자유로운시위 이고 폭동이나 소요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님의 글은 그다지 호소력있어보이지 않네요. 시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시위권이 중요한 만큼 동일하게 중요한건 다른사람의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이죠. 님의 뜻이 어떠하든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점이고 100만명의 찬성이 있으면 침묵하는 100만명의 반대도 있습니다. 그 의견은 무엇이 되든 중요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고 도로점거로 이어진다면 그건 단지 다른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됩니다. 만약 제가 제의견이 옳다하여 님의 집앞에 시위신청을 하고 확성기를 틀어대고 집에서 못나가게 집앞을 봉쇄하면 님은 좋겠습니까? 민주주의에도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정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님들의 주장이나 의견 존중되어야 하고 받아들여져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님들이 좋은 주장 옳은 주장을 하더라도 남의 기본권은 무시한채 자신의 시위권만을 강조한다면 공허한 메아리 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왜 님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해도 동조하지 못하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 2007/11/1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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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시위는 정치사회적인 현상입니다. 집단의 욕구가 제도안에서 해소가 되지 않으면, 그 정도가 일정한계를 벗어나면 제도밖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조직적인 시위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철저한 소외와 배제속에서도 서구 '선진국'과 같은 폭동이나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같은 조직적 시위문화가 유지가 되니 한가하게 '시위문화' 타령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와같은 정책적 배제와 소외의 심화가 일정 한계를 넘으면 이같은 '조직적 시위'가 그리워 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5. 참새알
    2007/11/13 12:1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리고 돈있고 힘있는 사람은 로비를 하고 돈없는 사람은 폭력밖에 없다는 플라토닉님.. 우리가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는 촛불시위는 뭐죠? 87년 자유화가 결정적으로 성공한게 폭력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민중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권력 그런거 아무리 있어도 민중이 등돌리면 끝입니다. 우린 그것을 촛불시위에서 보았습니다. 소리없는 외침이 얼마나 힘이 크고 얼마나 동조를 얻는지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어도 폭력이라는 수단이 개입하면 그걸로 민중은 돌아섭니다. 만약 이번 민중대회에서 100만명이 모여 불허된 모임이라는 불만과 농민과 노동자의 주장을 폭력이나 도로점거와 행진로 나타내지 않고 조용히 모여앉아 촛불시위를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언론에서 그렇게 씹었을까요? 경찰이 촛불시위하는데 방패로 찍었을까요? 아무리 불허된 시위였다해도 그렇게 했다면 경찰도 아무말 못했을꺼고 언론도 함부로 떠들지 못했을 겁니다. 사회적으로 이익배분의 논의가 불충분하고 장소가 부족한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폭력과 폭동을 정당화시키는 님의 말씀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 2007/11/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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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부탄생에 기여한 촛불시위는 원천봉쇄가 안됐었죠. 쩝... 촛불시위도 원천봉쇄가 되면 무슨 재간으로 한답니까? 그때도 도로점거도 했는데요. 탄핵반대 집회도 엄청나게들 도로를 점거했지요. 그래도 원천봉쇄의 'ㅇ'자도 들어본일 없었고...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집회와 시위에 '원천봉쇄'라는 것 자체가 위법적인 것이지요. 무조건 폭력을 주장하는 것도 동의하진 않지만 참새알님의 논리는 앞뒤가 한참 바꿔어 있는 듯 하네요.
  6. 2007/11/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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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대통령, 기자실 폐쇄한 것 하나는 맘에들지만
    노동자농민들에 대한 대책을 보면...영 아니올시다!

    민초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막으려고만 하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군사독재정권과 다를바가 뭐요?
  7. 부천댁
    2007/11/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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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현~ 뭐했나??

    노동자,농민,노점상,학생.....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시위할 때,
    아무런 잘못없는 전경들과 싸울 때,
    놈현은 머했나~??
    물대포 쏘아대고~ 방패로 찍어대는 정책 내놨나-_-^

    전경들 불쌍해 죽~겠다....
    그에 앞서, 우리나라 농민들, 노동자들, 노점상들....등등등
    모두 불쌍해 죽~겠다!!!
  8. 남궁정
    2007/11/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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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핵심전략은 '데모'맞습니다. 지금같은 대선정국에 15만에서 20만 정도(관광버스 2800대가 예약되었을 정도이니.. x40 해보세요. 그것도 수도권은 제외입니다) 사람들을 모을수 있는 후보가 과연 누구일까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데모 한번 하자고 자기 돈들여서 휴일에 온게 아닙니다. 권영길 후보가 지방에 '만인보'하러 가신건 바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너무 권영길만 찬양하는게 아닐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 현실에 수긍하고 살지만말고 분노도 터뜨려볼줄 알아야합니다!!
  9. 변자영
    2007/11/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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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위해 모이는지 무엇을 외치려는지를 들어보기도 전에 방패와 곤봉으로
    이들의 목과 숨통을 조이는게 누군지는 혹시 생각해봤나요?
    태어났기에.. 사는것보다 죽는게 어렵기에 살고 있는 노동자,농민,서민,빈민 등이
    11월 11일,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자기네들의 삶의 고통을 허공에다라도 대고 외치고 싶어 없는 돈 만들어, 빚이라도 내어 한군데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는거.. 단지 자기 목소리를 내고싶어 모인다는거 자체가 노무현 정권은 그렇게 무서웠던건가요?
    모여서 누구를 죽이겠다는것도, 부수겠다는 것도 아닌데
    맨몸인 국민들 앞에 경찰,전경 앞세워 곤봉,방패를 앞세워 소화기를 이용해 살수차를 이용해 헬기를 이용해 힘으로 공격하는것이 총칼을 들이댔던 박정희,전두환때와 뭐가 다르다고 할 수 있나요.
    무법자들로 인해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는 뉴스들로만 가득찬 이 세상...
    서울로 올라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던 노동자,농민,서민,빈민,극빈자들의 길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며 타이어를 펑크내고 협박했던 경찰,전경과 노무현 정권이며 바로 이들이 진정한 무법자이며 무법천지를 만든 장본인이라는것을 당당히 말하고 싶네요.

    이걸 "데모"로 승화시키는 그들이 무섭습니다.
  10. 라디오스타
    2007/11/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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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쪽 부분의 문단의 의견은 님과 의견을 같이 합니다..

    근데, 뒤에서 부터 3번째 문단 부터는 님과 의견이 같지 않습니다.

    시위,집회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우리나라는 집회,시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입니다....

    민주노동당이 폭력시위를 한것이 아니라, 노무현정부의 경찰이 평화적인 시위
    를 할 수 없게, 폭력적으로 시위을 진압하고, 시위자체를 안받아주고,,,,

    시민들과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책임은 노무현정부에게 있는 것이지, 시위를 기획하고 참여한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지적대로,,,, 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부터 저항으로 통해 발전된 우리 민주주의가

    노무현에 의해 후퇴된 것에 대해,, 서글픔과 우울함을 넘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 나그네
    2007/11/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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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민주란 말을 빼주기 바란다.
  12. 귀거래사
    2007/11/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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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힘이 될까 하여 그날 현장에 참가했는데 실망스러웠습니다. 오늘 신문 보니 당 대변인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전략 전술 부재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전 쯤부터 생각한 비현실적인 기대인데, 지금이라도 권영길 후보가 사퇴의 용단을 내리고 다른 후보로 분위기를 반전하는 파격적 결단을 내릴 수 없을까요?
    • 2007/11/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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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대안의 마지막 보루인데 아직 스스로에 대한 개념조차 잡지못하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비극이지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참 마음만 복잡합니다.
  13. 주도
    2007/11/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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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장소에 당신의 아들이 있음 달리 생각이 들것이요. 그 아들은 정치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그저 성인이 되어가는 중간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네 어른이나 형들께 욕을 먹고 매를 맞기도 하고 있어요. 왜 의무경찰 전경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가요....
    그들도 세상을 알고 있으니 일부만의 주장을 위해 방법은 중용하다고,별론한다는 생각마시오, 우리가 학교 윤리시간에 배운데로 결과가 옳기 위해 과정도 중용해야죠. 그점을 간과하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죠. 이제는 집회도 다른 방법으로...
    • 2007/11/1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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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아들이 전경이어도 생각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직시위가 발달해서 이정도지, 현재와 같이 사회적 불안요인들이 제도안에서 해소되지 못하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시위문화'를 주장할 대상조차 사라지겠지요. 폭동같은 사태에 지금과 같은 '단체'가 있을리 없으니까요. 다른 현상들을 보진 못하고 자꾸 '시위문화'타령만 하면 이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을지 만무하지요.
  14. 신희성
    2007/11/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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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시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긴하나 원천봉쇄는 옳고 그름을 떠나 민주사회에 웬말이냐?
    난 민노당 지지자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입장을 편드는 사람도 아니지만 원천봉쇄는 분명 잘못되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경찰이 수사권 달라고하니... 허~어!!
  15. 김대영
    2007/11/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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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입니다만... 문국현에 대한 평가는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명박 대항마로 시작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장기적 로드맵과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과정에 돌입한 듯 하니 지켜보죠... 여튼 민주개혁세력의 수장노릇을 정동영세력이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입니다. 민노당도 권영감과 엔엘이 잡으면서 맛이 간 건 마찬가지이지요... 조승수가 그나마 제대로 보고 있더군요.
    • 2007/11/2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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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라고 문국현에게 희망을 걸고 싶지 않겠습니다만은 이 곳 영국땅에서 어떻게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나를 보면 인물이 아닌 정당구조에 그 핵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창당과정을 보면 한국정치의 고질 적인 병폐였던 개인중심의 정당구성의 병폐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더군요. 그래서는 이 이전 '여당'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 대선, 나의 답은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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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람이 분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결선투표에 진출한 심상정 후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이번 대선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하지만 나름으로는 고민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겠지만 도무지 대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백부터 하자만 지난 대선까지 나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자'였다. 하지만 소위 민주화된 정부의 실체가 바닥까지 드러난 노무현 정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정말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시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정당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정치가 출현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계층적 대표성을 가지고, 그 대표성이 조직적 연계로 나타나고, 유의미한 당원제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근대 정당의 모습을 갖춘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치를 실험한다고 나섰던 열린우리당의 처참한 실패를 보면서, 그리고 현재 소위 범여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리멸렬한 합종연횡과 아무런 내용도 없이 도토리 키재기로 진행되고 있는 경선을 보면서 이러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통합을 부르짓지만 나는 이처럼 '통합'이란 단어가 추잡해 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민주노동당 역시 대안 세력으로 제대로 성장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답할 수가 없다는데에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택은 현재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의미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회적 요구를 정치적으로 끌어안아 정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그래서 한국정치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오올릴 수 있는 조건은 혼자 다 가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내용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내용을 갖출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아닌가.

가장 큰 원인이 당내 종파주의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주도하기 전에는 껍데기에 불과한 '당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극히 편협하고 비생산적인 계파싸움과 조직놀음이 민주노동당을 갉아먹는 제1의 적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누구는 이들을 '의견 그룹'이라 부르고 이들간의 논쟁과 경쟁이 생산적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현재까지 스스로의 자기 내용 혁신에는 무척 게으른 이들 집단에게서 그런 여지를 발견한 적이 없다. 정말 생산적인 정파구도는 현재의 종파주의적 구도를 극복함으로서 비로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에게 권영길 후보는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는 지리멸렬한 모습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지난 10여년간의 당의 '얼굴'로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으로는 당 혁신의 제1의 적인 종파주의와 결합하여 '대세론'의 강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 대세란 우리 사회에서의 대세가 아닌 당내 대세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이는 그간 악습의 반복이었다. 당장의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발목잡은 셈이다.이는 본선에서 몇표를 더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심상정 후보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대선후보로 출마선언을 하면서 부터이다. 안그래도 그 때는 민주화 이후의 정부가 얼마나 준비가 안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손쉽게 관료들의 포로가 되어버리는가를 목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관료 집단 중의 핵심인 재경부 관료들과 상대하면서 명성을 얻은 심상정 후보가 그 자산을 기반으로 정책적 선도성을 보이면서 등장한 것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라면 무언가 가능할 수 있겠다 생각해지만 그 때 까지만도 여전히 권영길 후보가 '대세'였고, 1강1중1약 구도에서 1약으로 구분되는 시기라 이번 대선 본선까지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심상정 후보에 대한 기대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경선이 시작되지 마자 마음을 정했던 나는 심상정 후보에게 주저없이 표를 던지면서도 기대를 안했지만 날이 갈 수록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마음들이 '대세론' 속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을을 확인해게 된 것이다. 결국 1약이었던 후보가 권영길 후보와 결선투표 진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몇표를 더 얻어내기 위한 '대세'가 아니라 변화를 통한 '미래'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미리부터 대선구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던 민주노동당을 다시 관심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있다. 따라서 권영길 후보가 더욱 알려져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선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심상정 후보보다 본선에서 더 많은 득표를 할 것이라는 주장은 매이 김빠진 것에 불과하다. 권영길 후보에 대한 인지라는 것은 아직까지 제대로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재 이미지와 맞닿아 있을 뿐이다.

또한 심상정 후보는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가능성과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공약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비전과 방향 또한 가장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제시하고 있는 사회공공체제론에는 여전히 헛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위기를 대처하는 데에 있어 '공공성' 확대가 그 중심이 있다는 것은 관련된 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제대로 할 수 있는 세력은 민주노동당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우리사회의 전진을 위해서 해야할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단 여전히 그 공공성의 주체를 '국가(state)'에 한정하고 있어 과거의 한계로 부터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 심상정 후보가 경제에 강하지만 정작 대안적 경제전략이 잘 잡히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씩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구체적 정책화를 통하여 새로운 수준의 정치를 선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현재 저급한 수준의 한국 정치에서 떠올라 수권정당으로 가는 올바른 방향임은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심상정 후보의 당 대선후보로의 선출로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상정 후보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대선 후보들 중에서 당선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본선에서 정말 가치있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현재 문국현 후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소위 범여권까지 뿌리깊이 물들어버린 '개발지상주의'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대선후보로 나선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업가'로서의 비전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는 또다시 인물중심 정치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현재 그는 그냥 '개인'에 불과하다. 그가 의미있는 계층적 사회적 정치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그가 정당을 창당한다 한들 결국 이후 그 한 개인에 따라 정당의 운명이 춤추는 전근대적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정치적 대표성과 축적된 조직적 역량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한들 다시 관료의 포로가 되고 결국 말과 정책이 따로노는 현 노무현 정부의 운명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번 대선에서 나의 답은 심상정이다. 그가 본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제로라고 해도 그의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의 당선 자체 부터가 민주노동당의 혁신에 있어, 그리고 이를 통해 한발 전진의 기회를 가지게 될 한국 사회 정치에 있어서 이번 대선에 건질 수있는 최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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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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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영길 후보와 함께 하는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합니다.

    2007/10/08 17:48
    삭제
    안녕하세요. 태터앤미디어팀 정윤호입니다. 17대 대선을 맞아 블로고스피어에서도 대선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터앤미디어에서는 대선후보들과 블로거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소 후보에게 궁금했던 점이나 대선공약 등에 대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상 그리고 언론사상 초유의 실험이라고 평해주셔서 더욱 열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오는 10월 15일 월요일에는 대선 후보 릴레이 간담회 두번째로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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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1 16: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보롱이 회원님의 포스트가 금일 오후 05:00에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될 예정입니다. 익일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정책선거 주장 유시민, 장관 시절 정책은?

수십 년간의 독재의 터널을 지나온 우리나라에 있어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까지도 정치권의 구태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나마 시민사회의 발전과 민주의식의 성장으로 구태 정치인마저 옛날처럼 쉽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진보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들 구태 정치인들보다 더욱 위험한, 새로운 종류의 정치인들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낸다. 말로는 온갖 신선함과 개혁적인 것이 자기 것인 양 하고, 소외계층을 생각하는 척 하고, 구태세력에게 시비를 걸어 대치하는 듯하지만, 정작 권력을 잡았을 땐 구태세력과 다름없는 정책을 더 과감하게 추진하고는 또 다른 말의 성찬으로 안 그런 척 하는, 그런 부류들 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인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지난 주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그가 장관시절 '국정 브리핑'에 기고 한 글의 일부를 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는 대한민국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안고 나온 아기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의지할 자식도 재산도 돈도 없는 노인들, 원인조차 모르거나 원인을 알아도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린 이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장애를 얻은 어른들, 자신에게 닥친 크고 작은 시련과 삶에 대한 회의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 일해도 일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보건복지부의 이른바 '정책고객' 또는 '정책수요자'들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빛과 그늘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주로 그늘을 살피는 일을 맡고 있기에, 과천 청사 보건복지부 장관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눈물과 회한, 슬픔과 절망으로 넘쳐 흐른다...' - 지난 3월 6일, 국정브리핑 공직자 칼럼 기고문 중

필력이 좋은 그의 글에선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낸 그가 장관시절 정작 한 일은 무엇이었나. 그가 장관 시절 앞장 서 추진했던 의료급여 본인 부담금 부과, 무상 예방접종 사업 무산, 국민연금 개정안 등 하나씩 짚어보자.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급여제도, 무상원칙 무너뜨린 유시민

사회복지 지출은 OECD 최하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그나마 오랫동안 잘 자리 잡은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제도가 있으니 그것이 의료 급여제도다. 의료 급여 제도는 유시민 전 장관 표현대로 소득이나 재산이 매우 적거나 희귀 난치성 질환에 걸린 국민이 돈 없어서 죽는 일이 없도록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참여정부 들어 이 제도의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방치되었다 싶었던 희귀성 난치병 질환자 등을 급여 대상자에 새로 포함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발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 유시민 전 장관이다.

지원 대상을 늘리니 자연히 재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책임이 '의료 쇼핑'을 즐기는 등 혜택을 남용하는 소외계층에게 있으니 병원 갈 때마다 돈을 내라며 이른바 ‘본인 부담금’을 도입한 것이다. 당연 질병이 많은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등 건강상 취약한 이들이 주로 많은 의료급여 수급자가 일반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병원 이용이 많은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가 건강보험 환자의 3.3배나 많다'는 복지부가 ‘의료쇼핑’의 증거로 제시한 통계는 이 같은 병의 중증도가 제대로 고려 안 된 엉터리였다.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드러나 열흘 만에 뒤집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다시 내놓은 통계에서 수치는 반 토막(1.48배)이나 났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그래도 유시민 전 장관은 직접 현란한 '국민 보고서'까지 써가며 직접 정책을 밀어붙였다. 겉으로는 '반성문' 같이 치장한 이 글 속에서 자기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극히 일부의 자극적인 극단적 사례를 들어 '정책 고객'에 대한 도덕적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았다.

유시민 전 장관 스스로도 절대다수의 의료급여 수급자가 선량한 이용자임을 잘 알진데 일부 남용사례를 핑계로 전체 이용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일말의 합리성이라도 있는가. 국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권고도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본인 부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건강유지비를 지급하겠다고 하더니 사이버 머니로 지급한다며 다른 건강보험 환자와 구분되는 플라스틱 카드를 도입하였다. 의료급여 환자임이 너무 드러나면 암암리에 차별이 있다며 보험증을 같은 색깔로 바꾼 지가 언젠데 이젠 아예 대놓고 드러나는 플라스틱 카드를 도입한 것이다.

몇 천원, 몇 만원 하는 본인 부담금이 유시민 전 장관에게는 푼돈일지 모르지만 한 푼이 아쉬운 어려운 이들에게는 발길을 잡는 장벽이 된다. 플라스틱 카드가 얼마나 행정적 편의를 안겨줄 진 모르지만 다른 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것은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차별의 낙인이 된다.

소외계층에 마음아파 하던 글 속의 유시민 장관은 어디 갔는가. 그의 정책에서 삶이 어려운 이들은 혜택을 남용하는 부도덕 집단이자 관리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2세를 위한 무료 예방접종 사업, 앞장서 무산시키고서 남 탓?

결핵, B형 간염, 홍역, 풍진, 파상풍, 백일해, 일본뇌염 등등 아이에게 맞춰야 하는 수많은 국가 필수 예방접종이 보건소뿐만 아니라 일반 의원에서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 될 뻔 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발의로 입법화된 이 사업을 앞장서 철회시킨 사람도 바로 유시민 전 장관이었다.

이유는 담뱃값 인상 무산이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무상 예방접종을 주도한 민주노동당이 예산을 마련하려는 담뱃값 인상에 반대했다면서 민주노동당이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비판의 근거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승인된 사업 예산을 국회 예결산특위에 전액 삭감을 요청하여 정작 사업을 무산시킨 것이 본인이면서도 말이다.

더욱이 그가 국민건강 증진시키는 무상 예방접종 사업 예산을 국민건강을 해치는 담배 판매에서 마련하려는 기본 발상부터가 코미디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놀랍다. 결국 담뱃값 인상에 있어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복지부의 명분은 거짓이었고 정작 관심 있었던 것은 흡연자의 호주머니였다는 것을 장관이 스스로 자랑하고 다니는 셈이다.

그리고, 국가 예산의 0.025% 정도밖에 안 되는 500억원이 삭감되었다고 66억원 들여 시범사업까지 한 사업을 무산시킨 것은 장관의 의지 부족 또는 능력 부족이 아닌가. 자신의 눈의 대들보를 남의 비난 근거로 사용하는 그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연금, 정부내 합의기구 논의도 무시하고 일방삭감 강행

참여정부의 복지에 대한 의지, 동시에 유시민 전 장관의 복지에 대한 의지가 말 뿐임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국민연금 개정안에서였다. 국민연금 하면 무슨 당장 난리가 날 것 같이 정부나 언론이나 이야기 하지만 우리나라가 현재 OECD 평균 연금 지출 수준인 GDP 7%에 이르려면 2050년이나 돼서야 이다.

하지만 나는 복지를 강조하기 마다 않는 현 정부의 진정한 복지에 대한 의지는 국민연금 문제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고령화가 현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분명하고 가장 큰 사회적 위험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기에 얼마나 사회적인 투자를 할 용의가 있느냐가 2030년에야 무엇을 얼마나 하겠다는 백 권의 보고서 보다 직접적인 의지의 시험대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에 의해 급증하는 노후불안을 연금, 수당, 노동시장정책 등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 얼마나 어떻게 사회가 공정하게 분담할 것인가이다. 현재 유일한 사회적 노후소득 보장 장치인 국민연금을 대책 없이 일단 깎고 보는 것이 '복지'를 생각하는 장관의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시민 전 장관은 이를 '장관직을 걸고' 추진했다. 처음부터 그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기구로 설치한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에서의 논의조차 거부하고 일방적인 연금 삭감만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여성, 시민, 노동, 농민 단체는 물론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단체들까지 한 목소리로 이 같은 장관의 전횡을 막아달라고 청와대에 '읍소'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이같이 유시민 전 장관은 권위주의적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후소득보장 제도인 국민연금 제도를 국민의 복지 차원이 아닌 국가 재정 문제로밖에 볼 줄 모르는 그의 편협한 시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유 전 장관의 주장처럼 국민연금을 삭감하기만 하면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지 모른다. 하지만 고령화가 지속되는 한 늘어나는 노후불안은 사회적 분담의 몫이 줄어드는 만큼 그대로 힘없는 서민들의 몫으로 늘어날 뿐이다.

그의 개혁적 이미지는 정책 비판능력 부족한 언론 때문

이 모든 것이 지극히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구시대적인 관료주의의 관행에 젖어있는 결과물 들이다. 그럼에도 유시민 전 장관이 여전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발언엔 쌍심지를 켜다가도 조금만 복잡한 정책적 사안이면 제대로 된 분석이나 비판은 고사하고 정부 발표를 받아 적기 바쁜 언론들 덕이 크다. 결국 개혁적 이미지에 의한 열광적 지지는 허상에 기반해 있을 뿐이다.

유시민 전 장관이 정말 본인의 생각에 의해서 장관 시절 그런 정책들을 추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 십년 보수정권에 익숙한 관료들이 갖다 주는 정책을 졸졸 따른 결과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수많은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단 구태 정치인들도 여론의 눈치라도 보고, 시민사회의 비판을 의식한다. 한나라당 정치인은 원래 그렇다고 알기라도 한다. 하지만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이 스스로의 정책적 이해력에 비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한 정치인들은 관료주의적, 구시대적 정책에선 제대로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그 것을 마치 애초의 진보적 신념이었던 마냥 행세하며 앞뒤 안보고 밀어붙인다.

그 결과 그나마 있었던 공공의 기반이나 어렵게 이뤄낸 정책적 발전도 과감히 무너뜨려 버린다. 그러고서도 무엇을 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말의 성찬으론 자신은 여전히 개혁적인 양, 마치 구태 세력과 싸우고 있는 양 치장하니 안 그래도 취약한 합리적인 정치적 논의의 기반마저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이들이 여타 다른 구태 정치인들 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 같은 이유이다. 선택의 실패는 노무현 한 번으로 족하고도 남는다. 유시민, 그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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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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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7 19: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쎄...

    위의 글쓴이의 좁은 판단의 한 부분만 보여지는 듯...

    결국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선한척하기 위해

    세상을 악에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야만 만족하는 글인듯...

    뭐 본인은 아니라고 최면하지만 본인의 행동은 그런 결과로 몰아간다는 거지...

한국 정치인이여, 진짜 정치를 생각하라

- 정책 주도권 가진 영국 정치 역량과 한국 정치의 현주소

 

 

97년 이후 2번의 대패를 포함하여 3번 연속 총선에서 패배한 영국 보수당은 요즘 한껏 고무되어 있다. '뉴 키즈 온더 블록'으로 불리는 젊은 새 당수 데이비드 카메론의 바람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지지율에서 뒤져오던 보수당은 작년 카메론의 당수 선출 이후 노동당을 계속 앞서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차이가 여전히 그 차이가 매우 근소하다는 데에 있다. 최근 노동당에서는 사퇴압력 파문으로 토니 블레어가 1년내 사임을 약속한 상황에서 강력한 차기주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버티고 있는 터라 이러한 수준은 여전히 보수당에게 차기 집권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카메론 보수당 당수는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당수 선출 이후부터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카메론은 환경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온 데 이어 최근 전당대회에서는 국가 무상 보건의료 서비스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보수당 최우선 정책 순위로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공공 예산 삭감에 매우 집착했던 이전 보수당 정부였던 대처 정부를 생각하면 매우 획기적인 변화다. 이제 관심은 이를 어떻게 보수당의 정체성과 결합시킬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그의 차기 선거의 승리 여부는 기본적으로 얼마나 자신의 국가 비전을 선명하고 일관성 있게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 정치

이처럼 영국 정치에서 스캔들성 사건들이 터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큰 정치적 흐름은 정책을 따라 움직인다. 정책이란 말만 들었지 정작 정치에서 정책이 제대로 논의되는 것을 본적이 없었던 한국인의 눈으로는 그저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특히나 사회정책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영국 정치권의 정책 실행 능력에는 혀를 내두루지 않을 수가 없다. 선거 때 제시된 각 분야의 강령과 정책(매니패스토)은 집권 시 정책 녹서(Green Paper)와 백서(White Paper)를 거치면서 구체화 된다. 이는 각종 시행계획들과 실천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이를 측정하는 지표들이 제시되어 이를 통해 매년 그 성과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부처별로 각 정책 분야마다 장관을 비롯하여 수명씩 배치되는 정책 차관(Minister)들은 집권당 국회의원으로 채워져 이같은 정책들을 주도한다. 분야별 정책 이슈가 제기될 때 마다 방송뉴스에서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민망하리만치 집요하게 질문하는 진행자와의 인터뷰에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며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그저 자리를 채우는 정치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베버리지 보고서로 상징되는 새로운 복지 국가의 비전을 전면적으로 실현시켰으며, 그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지고 경제가 침체되었을 때 신자유주의를 제시하고 나왔다.

이로 인해 공공 서비스가 무너져 불만이 높아지자 다시 제3의 길이란 새로운 기치를 내놓아 10여년 가까이 다양한 개혁을 쉼 없이 밀어붙여온 영국 정치의 역동성은 방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진짜 정치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재생산을 포기한 한국 공동체의 위기

한국 사회는 분명 심각한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 세계 최고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고용 없는 성장,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격화되는 경쟁 속에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사교육비, 그로인해 날로 악화되는 서민들의 삶, 여유라도 좀 있는 계층에서 나타나는 해외 탈출 러시 등…. 그 중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가장 상징적인 징후이다. 스스로의 재생산을 거부하는 공동체에서 어떻게 희망을 말할 것인가.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노무현 정부 이후 민주화는 분명 질적으로 나빠졌다. 80년대 말 이후에 군사정부도 한국 사회복지가 처음 대폭 확장기를 맞을 정도로 여론에 민감했다. 김영삼 정부도 그나마 금융실명제등 그동안의 개혁의제를 시행했으며 김대중 정부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흡하나마 재벌개혁과 복지개혁을 꾸준히 추진했다.

그 후에도 국민은 지속적인 개혁을 원했고 노무현 정부를 선택했다. 하지만 최초로 개혁세력만으로 집권한 이 정부는 도덕적 결백성에 파묻혀 귀를 닫아 버렸고, 개혁은커녕 되레 사회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한미FTA를 부여잡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좌절과 배신감이 깊숙하게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정치권이 존재에 대한 이유부터 되물어야 하는 이유

재보선의 완패로 또다시 뿌리 깊은 국민의 좌절과 배신감을 확인한 소위 집권당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새로운 비전도, 새로운 정책 모색도 아닌 구태의연한 이합집산 이야기뿐이다.

아직도 아무도 사회적 위기에 대한 인식도, 정치인으로서의 깊은 책임도 인식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남은 권력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 수준으로는 집권은커녕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자체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지율의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도 별반 다를 바는 없다. 개혁 세력에 대한 배신과 좌절에 대한 반사이득과 그나마 무언가를 했던 과거 정권에 대한 막연한 기억 그리고 청계천 복개와 같은 상징적 정책으로 인해 생긴 정책 추진력에 대한 이미지가 그들을 받쳐줄 따름이다.

현 집권 세력에 비해 별다른 능력이야 과거의 경험정도인 그들에게서 현재 심화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대처할 능력은커녕 이에 대한 인식조차 보여준 적이 없다.

진짜 암울한 미래는 그 다음이다. 만약 개혁 세력에 이어 보수 세력까지 위기에 대한 무능력이 명료하게 확인 된 후에 스스로의 지속성까지 상실하고 있는 공동체의 다음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권력에 대한 습관적인 이해관계에 앞서 정치권이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06년 10월 30일 오마이뉴스 기고, 31일 메인서브로 보도

 

보도본 보기: 한국정치, 영국과 달라도 진짜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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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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