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제3의 길과 신노동당, 오독과 베끼기를 넘어

책 표지 사진@인간사랑

기든스 저, 김연각 역,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인간사랑, 2007

영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만 하더라도 나에게 제 3의 길이니, 신노동당(New Labour)이니 하는 것들은 그냥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쯤일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신노동당이 집권한 영국의 현실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영국 정치와 정책에 대한 나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결국 영국에 대한 나의 논문 주제도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정치사상 영역까지 확장되는 등 신노동당의 존재가 지난 5년간의 나의 유학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물론 미리부터 밝혀두지만 그렇다고 내가 제3의 길과 신노동당의 열렬한 신봉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처음에 마냥 신기했던 그들의 정치와 정책방향도 수년간 관찰과 연구를 하면서, 그 한계 역시 목도하게 되어 이젠 그걸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제 3의 길을 주창하여 신노동당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안서니 기든스의 신서,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은 당연 남다른 의미로 다가 온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의미는 나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부쩍 영국식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늘은 것도 사실이다. 새롭게 헤쳐모인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직접 영국 사례를 거론하며 제3의 길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지향한다고 선언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도 말기에도 제3의 길의 한식구격인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의원은 이 개념을 가지고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책도 펴냈다.

하지만 이 들이 과연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신노동당은 그냥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90년대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맞서 새로운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낸 매우 정교하게 짜인 정치사상일 뿐만 아니라 그 일관된 논리와 원리는 지난 10여 년간 신노동당 정부 정책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있으며 이는 실제로 공공 서비스와 사람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다.

손학규 대표가 신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이야기 했지만, 글 쓰는 현재 총선 공식 선거운동까지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논란이 되어 왔던 ‘대운하’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어떠한 정책적 이슈를 만들거나 제기한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학계에서 논의가 된 ‘사회투자국가’는 더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거론된 ‘사회투자국가’의 논의 수준은 의문의 대상이다.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도 책에서 무슨 언변을 펼쳤던 간에 의료보호나 국민연금 등 그가 장관 시절 정책은 당면했던 복지 쟁점들에 대한 그의 대책이란 그 혜택을 줄이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보면 수사적인 유사점 때문에 자주 동종으로 취급받는 대처리즘에서의 복지와 사회투자국가에서의 복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3의 길이 글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대처가 표방한 신자유주의도 아닌 ‘제 3의’무엇인 것도 아니다. 신노동당은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노동당 정부의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고, 부정한 적도 없다. 오히려 핵심은 그 정신을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맞춰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노동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구노동당(Old Labour)은 구체적으로 따지면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애틀리(Attlee) 정부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래서 대처에게 정부를 뺏긴 6~70년대의 윌슨(Wilson) 정부와 카라한(Callaghan) 정부이다.

영국식 제3의 길을 마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표방하는 이른바 ‘개혁세력’이나, 옛 노동당이 추구했던 사회 정의에 대한 배신쯤으로 취급하는 ‘진보’쪽의 해묵은 비판 역시 이 점을 흔히 소홀히 하고 있다. 이 책에도 1장에 서술했지만 지난 신노동당 10년 집권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경제는 영국 현대사 사상 최장 안정 성장을 이뤘으면서 대처시절 상당부분 손상되었던 무상의료 등 공공 정책을 복원시켰을 뿐 아니라 대기기간 등 고질적 문제들 까지도 상당 수준으로 해결 해온 것이 사실이다. 아동 70만 명을 포함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 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기든스의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위치하고 있다. 즉 10년간의 신노동당의 성과와 한계를 들여다보면서 10년 전과는 또 다른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쟁점들에 대하여 새로운 혁신의 방향과 구체적 정책 대안들을 새로운 총리가 되는 (그래서 현재 영국 총리인) 또 다른 신노동당의 대표주자인 고든 브라운에게 보내는 고언 형식의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든스가 시의성 있게 가볍게 쓴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고민과 논의 깊이는 상당한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그런 면이 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점은 철저하게 영국적 상황, 그리고 책이 출판된 그 시점에 매우 충실하게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영국 정치 상황과 정책적 쟁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경우 오독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런 이 책의 약점은 번역을 통해 더욱 두각 되기도 한다. 몇몇 구절과 개념들에 대한 오역은 영국 정책에 대한 역자의 이해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번역 상 문제는 영국의 무상의료서비스 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건강보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NHS는 일반 조세를 기반으로 무상의료제도로 일반의원과 병원뿐 아니라 각종 보건 정책 기구들을 모두 포괄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공적 재원 수단으로 주로 한정되어있으며 보험료 납입에 의해 수급자격이 주어지는 사회보험방식인 우리나라 건강보험과는 개념부터가 전혀 다르다.

또 보건의료 부분에 대한 구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재단 병원(foundation hospital 또는 foundation trust)은 NHS에 속한 병원 중 평가가 우수한 병원을 중심으로 그 운영기구(trust)에 사설 병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율권과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NHS에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노동당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없이 번역이 되다보니 이런 시장적 성격을 고든 브라운이 약화시켰다(water down)는 말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전혀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경우도 있다. 교통정책(transport policy)이라고 하면 무난했을 법한 단어를 ‘수송정책’으로 번역한 것도 대중적 공공서비스로서의 원래 의미가 아닌 무슨 물류정책쯤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자의 영국 정책 쟁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정치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양해는 조금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와 영국 간 ‘정치’개념 차이를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즉, 이 책 자체는 새로운 수상에게 어떻게 성공적 정치를 해서 노동당이 또 집권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를 조언한 매우 ‘정치적’인 책이지만 내용은 정책적 논의로 빼곡히 차 있다. 이는 기든스가 일부러 정책 정치를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내용을 채운 게 아니라 이미 영국 정치에서는 정책에서 정치적 승부가 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 산실인 영국 정치가 보여주는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 정치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책이 주는 최대의 미덕은 그 역동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적 고민과 제안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고민은 물론 비단 영국적 현실에 국한하지 않은, 진보의 혁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대안을 고민하는 한국 독자가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공공(public)'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기하고, 보증국가(ensuring state, 본 책에는 ‘확신을 주는 국가’로 번역)의 개념을 제시하는 ‘4장 공공 서비스: 사람을 맨 앞에 두기’와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의 개념을 보여주는 ‘6장 생활양식 바꾸기: 새로운 의제’가 아닌가 싶다.

대처정부는 공공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민영화 시키거나 시장적 경쟁 요소를 도입한 것은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지만 일정부분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 독점 복지 모델의 문제점을 집은 것이기도 했다. 즉 그 당시 공공 서비스들은 대단히 관료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시민들의 요구는 종종 무시당하거나 이유 없이 주구장창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에 복지 감축으로 공공 서비스는 줄었어도 서비스 공급과정에 있어 국가의 독점적 지위를 깨뜨림으로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만족도는 높아진 사례들이 있다.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무엇이 진정 ‘공공성’인가에 대한 재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물린 보증국가라는 개념에서 국가는 공공 서비스 공급에 있어 더 이상 독점적 주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진정 효과적이고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보증하는’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이 구체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적극적 복지 역시 시장 기능 실패에 따른 사후적 개입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복지가 되어야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개인 책임과 선택권을 강조하는 복지 축소논리와 닮은 듯하다. 하지만 기든스가 제시하는 적극적 복지 개념은 개인의 책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적합한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장애인의 경우 가능한 사회에 참여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립성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율성을 꺾는 방식을 벗어나 한 개인에게 동원되는 공공 재원 통합해 개인 통장처럼 따로 계좌를 만들어 개인이 스스로 독립적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 예산제(Individual budget)같은 정책이 적극적 복지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딛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희망과 대안을 찾아 제시하기 위한 개혁 진영과 진보진영의 노력으로 점점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나도 영국 유학생활을 어떻게 하게 되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다른 사회를 깊숙이 체험하고 공부하면서 발견하게 된‘다른 사회에 대한 가능성’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다른 사회’가 영국도 아니고 그 ‘다른 사회’를 위한 길이 ‘제3의 길’도, ‘신노동당’인 것도 아니다.

나는 우리사회의 대안을 찾는데 있어 다른 나라에 주목할 때, 그 나라에서 제기되는, 그래서 그 나라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그 ‘무엇(what)'이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특정 정책이었던 어떤 정치사상이었던 간에 말이다. 오히려 그 ‘무엇’을 이해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작 얻어야 할 것은 ‘어떻게(how)'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떨어진 결과물만 달랑 물고 들어와 그 나라 성공사례를 권위삼아 써먹어 보려는 시도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 나라의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어떤 원리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기반을 통해 그 대안이 도출 된 것이며 또 그 결과물이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실천되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어떤 점들이 어떻게 문제가 되어 한계로 들어났는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의 제대로 된 함의를 찾는 다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이 책과 같이 다른 나라의 고민을 들여다 볼 때 항상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시민과 세계>에 기고하여 4월 12일 13호에 게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도 축약본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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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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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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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특히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이 부분은 많이 공감하게 되네요. 대처 정부가 기여한 바에 대해서도 동의하고요. 특히 유니버셜테스팅이라는 개념은 괜찮은 것 같아요. 결국은 그마저도 정치가 동원되기는 하지만요.
    • 2008/04/26 22: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공감하시며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원칙은 지키되 변화하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연해지고, 그래서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실에서 쉽지만은 않고 그러다가 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지만 말입니다.
  2. 라인
    2008/05/29 14: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서평을 읽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 비록 영국 실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영국, 때 아닌 선거열기에 후끈했던 정책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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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의 반격! 지지율 동률을 보도한 가디언 5일자

영국에 아직 현 고든 브라운 총리임기가 2년정도 남았건만 때아닌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었다. 결국 일요일 브라운 총리가 조기선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해 근 한달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같은 때아닌 선거 논란은 총리가 언제든 선거를 여왕에게 요청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의 독특한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열기는 지난해 블레어 말기 내내 보수당 새당수 카메론에게 뒤쳐지던 노동당 지지율이 고든 브라운 새총리 등장이후 줄곧 앞서자 이 분위기를 틈타 얼른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이 내내 제기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 들어 노동당과 정부 고위 정치인 사이에서 조기 선거설이 심상치 않게 흘러나오자 언론의 관심은 '언제 선거냐'에 쏠리기 시작했다.

얼핏 대단히 불공정하고 이상한 선거제도지만 이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아무도 없다. 오히려 발끈 할 것 같았던 보수당 측에서는 '할테면 어서 해라'라고 되레 강공을 펼쳤다. 소문만 흘리지 말고 정정 당당하게 나서서 얼른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다. 이같은 양당간의 접전은 전당대회 시즌에 맞춰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전당대회 시즌에 흘러나온 조기선거설에 달아오른 정책경쟁

전당대회. 우리나라에서야 흔히 잔뜩 흥을 돋우고 시끌벅적한 하루치기 행사를 연상하지만 여기서는 가히 전당정치의 꽃이라 할만 하다. 수백명의 대의원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며칠동안 매일같이 다양한 주제와 정책영역에서 토론하고 담당 정치인의 연설이 이어진다. 때로 당내 논란이 되는 사안은 표결에 붙여져서 당 지도부와 반대 결론이 나오는 일도 종종 있다. (이번에 노동당에서 이를 없애고, 정책차관과의 개별 면담과 당 선거정책 표결 등으로 대체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당대회에서 지난 한해동안의 정당 활동이 결산될 뿐만 아니라 향후 1년동안 굵직한 아젠다가 설정되고, 주요 추진 정책들이 발표되기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이어지는 장관(의원 내각제에서는 다수당 국회의원이 장관이므로)과 예비 장관(집권당이 아닌 경우도 집권당 장관에 대응하는 예비 장관들이 포진해 있다)의 연설이 그 역할을 하며 그 백미는 당수(집권당의 경우 총리) 연설이다. 이 연설은 다음날 종합지의 첫머리 기사를 장식 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난 달 25일, 포문을 먼저 연 것은 총리로서 전당대회 첫 연설을 한 고든 브라운이었다. 이 때 고든 브라운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주거, 치안, 보건의료 부분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 보따리를 쏟아냈다. 주거 부분에서는 ∆ 1997년 대비 2010년까지 집소유자 200만명 증가, ∆ 10개의 새로운 생태마을 건설을 약속했고, 치안부분에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예방을 강조하면서 ∆ 최근 심각성을 더해가는 총기범죄를 막기위한 경찰의 검문권한 강화를 예로 들었다.

노동당 새총리 고든 브라운, 전통 보수당 의제 선점으로 선공

또한 보건의료 부분에서는 ∆ 병원내 감염 감축을 위한 연내 병원 청결 계획수립 ∆ 병원 감독관을 두배로 5000명으로 증가시키고 기준미달한 병원청결업체 계약무효권한을 부여 하는 등 현재 문제점을 대처함과 동시에 ∆ 47세에서 73세까지 유방암검진 확대, ∆ 지역 보건소(GP) 접근권 확대와 모든성인을 위한 건강검진으로 보건의료서비스 개인화를 새로운 서비스 강화 방안으로 내놓았다.

그동안 신노동당 정부에게 비난의 초점이 되어 왔던 대외 정책 부분에서는 ∆ 이라크와 아프칸에 안보, 정치적 화해, 경제재건 추진, ∆ 다푸어 사태 정의 실현 등을 강조했다. 이미 외무장관이자 신노동당의 차기주자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밀리반드는 자신의 연설에서 '왜 세계 무슬림들이 영국에 등을 돌리는지 지난 10년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다'라고 수차례 강조하면서 이전 블레어와는 외교정책에 있어 분명한 선을 그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브라운은 자신의 연설에서 특이하게도 '보수당'이나 당수 '카메론'을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보수당이 전통적으로 강한 치안부분이나 카메론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보건의료 부분에 새로운 강력한 대책들을 쏟아냄으로서 그 다음주에 예정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카메론이 설 땅을 선점해 버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힘을 받았는지 전당대회 이전 4~5%를 앞서던 브라운 지지율은 40%를 넘기면서 가장 크게는 보수당 당수 카메론과의 격차를 11%로 벌려놓았다.

보수당 젊은 당수 카메론, 원고없는 한시간 격정 연설로 대대적 반격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어진 주말에는 브라운이 선거일 결정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방송과 신문을 장식했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도착한 데이비드 카메론이 '반격(fight back)'을 선언하며 오히려 조기 선거를 발표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단호한 모습으로 연단에 오른 카메론은 장장 한시간에 걸쳐 원고 한장 없이 열정적인 연설을 펼쳐 그 으름장이 허장성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카메론은 보수당의 전통영역을 선점하려 했던 브라운의 정책들에 대해 '나는 좌와 우를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브라운의) 낡은 정치를 벗어나 신념에 의한 정치를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를 풀어놓았다. 우선 보수당 전문 영역인 조세 영역에서 ∆ 상속세는 백만장자(약 자산 18억 이상 소유자) 이상부터만 적용 ∆ 첫 주택구매자에게 인지세 면제 등을 통해 주거부분까지 포괄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더불어 가족가치를 복원하겠다며 ∆ 결혼가정에게 세금공제 혜택 확대, 자녀 양육을 위해 유연한 근무시간 등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감세 정책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감세분은 환경관련 조세로 대체할 것임을 여러차례 이야기 한바 있다. 이번 연설에서도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했다. 그리고 보건과 교육 영역에 있어서도 많은 시간을 할예하면서 불필요한 행정절차 간소화를 통해 효율화 시키고 복잡한 규범보다는 전문적 역량을 강화시킬 것임을 역설했다.

결국 선거발표 안 한 브라운 1패, 진짜 진검승부는 누가 통합적 비전을 제시하는가에

카메론의 열정적 연설과 자신감 넘친 모습이 통했는지 지난 금요일자 뉴스에서는 다시 3%차로 줄어든 지지도 수치들이 일제히 보도 되었다. 가디언의 조사에서는 심지어 노동당과 보수당이 38%로 동률의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각 당의 전당대회가 주목을 받는 만큼 전당대회 기간과 직후 해당 정당 지지율 상승 현상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4~5%의 다시 전당대회전 격차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고든 브라운이 조기 선거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모양상 선거도 하기전에 브라운 촐리가 카메론에게 1패를 당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연이은 전당대회로 벌어진 불꽃튀는 정책대결은 보는 이로서는 이미 100일도 안남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보다도 흥미진진했다.

물론 현재의 두 정당 간 대결은 아직 진검승부에 다다르진 않았다. 블레어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브라운도, 이에 도전하는 카메론도 아직까지 정책 나열 수준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비전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 곳 언론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향후 언제 선거가 치루어지던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누가 확고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과 통합적인 정책을 제시하느냐가 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치수준에서는 아직 꿈에 불과한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은 심도있는 분석과 객관적인 비교를 충실하게 제공해주는 가디언이나 타임즈 같은 고급지(quality paper, 선이나 데일리 미러 같은 여성의 살색이 곧잘 뒤덥는 이런 신문은 대중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종합일간지의 보도 수준은 대충 이곳 대중지에 견줄만 하다)와 BBC나 채널4 뉴스 같은 방송뉴스들이 있기에 또한 가능한 것일 것이다.

브라운이 망신당한 사연은? (클릭)


- 2007년 10월 7일 오마이뉴스 기고, 8일 '으뜸'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영국 총리, 칼도 못꺼내고 보수당에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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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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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7 21: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물론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치수준에서는 아직 꿈에 불과한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은 심도있는 분석과 객관적인 비교를 충실하게 제공해주는 정론지(quality paper)와 방송뉴스들이 있기에 또한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한국 언론을 이렇게 만든 것도 유권자겠지만 정론지라면 선도하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 전통이 오랜 영국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최소한 상식은 통하는 언론이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영국에서 본 블레어 4년, 블레어를 말하다

- 블레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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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 AP=연합뉴스


블레어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3일 채널4에서 방영된 '특별한' 다큐멘터리 <토니 블레어의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 of Tony Blair)>은 블레어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생생하게 불러들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The State We're in)>이라는 책을 써서 이해당사자주의(stakeholderism)를 주창해 초기 신노동당(New Labour)과 블레어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윌 휴턴(Will Hutton) 전 <가디언> 편집장이 블레어 전 총리와 집권 마지막 100일을 동행하면서 '블레어 10년'을 짚어본 다큐멘터리였다.

총리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끼친 언론인과 총리의 허심탄회한 만남이란 것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만남의 성격에 맞게 보건, 교육,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블레어 10년' 집권 후 정치사상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오간 것도 다른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이었다. 윌 휴턴도 세간의 비판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질문했고 블레어도 그 비판에 대해 공격적인 반론을 펼쳤다.

블레어의 영국에서 보낸 4년

2003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블레어가 총리였으니, 난 블레어 집권 후반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셈이다.

한국에는 '블레어'하면 무슨 노동당의 배신자쯤으로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오기 전까진 어설프게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직접 블레어의 영국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지금 난 블레어가 정치에 대한 내 사고 자체를 뒤집어놓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블레어의 정치적 방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새로운 사회적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의제를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 전체 정부가 체계적 전략에 따라 각 부분마다 일관성 있는 정책적 실행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해가는 이들의 정치력은 예전에 한국에서는 전혀 목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준의 것이었다.

특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대처 때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국가무상의료서비스(NHS)와 관련, 유럽 평균 이하였던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현재 모든 지역 의원(GP)에서 이틀 안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NHS 최대 문제로 꼽히던 대기 시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또한 '우리 세대에서 아동 빈곤을 없애버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블레어 정부는, 아직 그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그 전략에 따라 여러 해 동안 정책적으로 노력한 결과 60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고질적이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잡센터플러스'라는 고용 전략의 핵심 기관을 지역마다 배치하고 신고용협약(New Deal)이라는,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대상집단별 고용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그 후에도 낮게 유지했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시장정책에 바탕을 두고 처음으로 전 성인고용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노동당 정부는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실업률을 높이지 않았다.


▲ 지난달 10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27일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세지필드 선거구의 트림든 노동당 클럽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정치에 대한 사고 자체를 변화시킨 블레어의 정치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영국 내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신노동당 집권 기간 동안 3분의 1 정도(35%) 낮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심장질환 관련 지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반시설과 서비스 확대를 비롯해 직접적으로 사망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로, 노동당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다.

이 모든 주요 전략과 정책을 블레어를 필두로 한 신노동당 세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이들은 국민을 복지 급여에 의존하게 하기보다는 고용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통해 노동급여를 보장하는 노동연계 복지 전략을 채택했다. 아울러 결과적 평등보다는 모든 이를 위한 기회(opportunity for all)를 주창하면서 교육정책에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이들의 핵심 전략은 정책으로 실행됐고 더 나은 의료, 더 나은 고용, 더 나은 교육 등으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결국 영국은 블레어의 10년을 거치며 더 나은 곳이 됐다. 블레어를 끊임없이 비판했던 <옵저버>(<가디언> 일요판)지도 전면 사설을 통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노동당 비판자였던 <가디언>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도 블레어를 다룬 특별판 칼럼에서 같은 말을 남겼다.

총리로서 임한 마지막 대정부 질문(Prime Minister Question Time, 매주 수요일 1시간 동안 총리와 국회위원들 간에 진행되는 문답 시간)이 끝나고 블레어가 퇴장할 때, 기립박수를 보낸 노동당 의원들을 따라 보수당 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의 영국 의회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이 장면은 '통 크게 일어나 함께 하자'고 손짓한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 덕분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발전적이었던 10년을 이끌었던 총리에 대한 의회의 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시장주의 맹신과 이라크 침공의 과오

물론 블레어 정부의 전략에는 비판할 거리가 많이 있다. 블레어는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축소에 열을 올렸던 대처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를 공공 부문에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공공영역의 시장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효율화로 이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은 공공서비스 예산의 전폭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자부심인 NHS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수가 오른 데 비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자본계획(PFI)에 따라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병원을 사상 최대 규모로 증설했지만, 민간자본에 연 예산의 20~30%를 수십 년 동안 환급함으로써 결국 공공자본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고 이 같은 예산 부담은 서비스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 총리. ⓒ Whitehouse



뭐니뭐니 해도 블레어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이라크였다. 아무리 블레어가 빈곤률과 실업률을 떨어뜨려도, 나라를 잘못 이끈 지도자란 오명은 어딜 가나 끝까지 따라다녔다. 사회 자체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인의 고통은 영국 내에서 블레어가 어떤 업적을 남겼든 간에 씻길 리 없다.

윌 휴턴이 이 대목을 묻자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된 지금 어떤 국가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벌일 때 다른 문명국가들은 이에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후세인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현재 더 나은 상황이었겠냐고 블레어는 반문한다.

'개입'에 대한 이 같은 블레어의 신념은 집권 초기 '윤리(ethical) 외교'를 주창할 때부터 드러났다. 또한 이전에 보스니아·코소보·동티모르·시에라리온 등에 개입한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은 블레어 자신을 과도한 개입주의로 몰아갈 법도 했다. 특히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무장단체를 몰아냈던 시에라리온에서 블레어는 아직도 영웅이다.

흔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들 하지만 블레어에겐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셈이다(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블레어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오히려 부시보다 더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미국에서 설득력 있게 설파한 것에 고마워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같은 신념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깔려있다. 외국의 무력 개입이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뿌리깊은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의 씨앗이 됐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 나라의 복잡한 상황을 외국에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훈련된 군대의 무력을 활용해 안정된 정치상황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모순이다.

중동특사 블레어의 모순,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블레어가 이제 중동특사로 활동한다고 한다. 최근 중동을 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 평화협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마스를 서구 국가들이 배제하고, 그 때문에 생긴 수많은 갈등 끝에 이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타운동의 수반 아바스만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도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아무리 블레어를 비판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블레어의 업적과,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딛고 신구교도 공동정부 구성과 평화 정착을 이뤄낸 블레어의 정치력은 블레어가 아예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 대정부 질문 시간에 북아일랜드 공동 정부의 첫 총리가 블레어의 중동사절 활동에 희망을 품는다고 직접 이야기한 장면도 그러했다. 그저 개인적으로 블레어가 너무나도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온 그곳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그래서 이라크전의 과오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 2007년 7월 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당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블레어 시대가 끝난 뒤의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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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과장된 '철의 여인' 신화

- 영국 보수당도 벗어난 '대처', 한국에선 환영?

 

 

▲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 Margaret Thatcher Foundation
참 흥미로운 일이다. 정작 대처가 당수였던 영국 보수당은 대처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오히려 국가 무상의료 시스템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 건강 서비스)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겠다는 카메론이라는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대처 이후 지난 10여 년간의 암흑기를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선주자 사르코지가 대처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애쓰더니 이젠 우리나라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이미지 차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 느낀 것은 대처의 신화가 한국에서 무척 과장되었다는 점이었다. 영국 사람과 이야기해 보면 대처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서비스의 기반이 대처시절로 인해 매우 심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대처에 이 가는 영국인 쉽게 찾을 수 있어

이는 비단 복지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처 시절 전폭적인 민영화 정책 끝에 (결국은 그 뒤를 이은 보수당 메이저 수상 때) 민영화 됐던 철도의 경우, 최악의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안 지켜지거나 취소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열차표를 당일 날 사려고 하면 10만원 20만원이 우습다. 그나마 서비스가 나아진 것은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나 대처 집권 막바지에는 지방정부 예산까지 통제하여 공공 지출을 줄이려는 집착에 인두세 성격의 불공평한 지방세를 강제로 도입하자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나 대처는 1992년 영국 국민에게서 '쫓겨났다'.

그럼 경제는 나아졌을까? 대처 집권시기였던 1979년, 위기의 원인이던 인플레이션은 8.4%, 실업은 130만명이었던 반면 대처 집권 말기였던 1990년, 인플레이션은 10.5%, 실업은 200만명에 다다라 오히려 악화되었다.

경제를 살린다며 공공 서비스를 망쳐놓고는 경제조차 살리지 못했으니 대처 시절을 악몽처럼 기억하는 영국인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선거 때 노동당의 이라크전 정책 실패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한 전략적 투표, 즉 보수당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해 보수당에 투표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러자 노동당은 런던 도심에 대처의 캐리커처가 담긴 선전물을 뿌리고, TV엔 대처를 겨냥한 광고를 내보냈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남편이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전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어제 선택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내용의 광고였다. 한마디로 그러다가 다시 대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영국 국민을 '협박'한 셈이다. 물론 이는 노동당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대처 시절이 영국 국민 기억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처 수상은 처음으로 3번 연속 총선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수치를 보면 그 당시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대단한 지지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처가 당수로 처음 선거에서 이기고 집권한 1979년 득표율은 43.9%로, 이는 2차 대전 이후 보수당의 5번째 승리였지만 득표율은 그 중 가장 낮았다.

79년 대처 정부 등장 때 득표율은 역대 보수당 집권 중 최저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12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위기의 대한민국! 대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997년 현 노동당 정부의 첫 집권 때도 유사한 득표율을 얻었지만 다수당 의석차(Majority, 다수당 총 의석수와 나머지 당 의석수 합계 간 격차)로 따져 보면 대처가 처음 얻은 의석차는 44석에 불과했다. 노동당이 97년에 획득한 178석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처 시절 얻은 최대 의석차인 143석(1983년, 포클랜드 전쟁 후)도 현 노동당 정부가 두 번째 선거(2001년)에서 얻은 166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은 보수당 3연속 승리의 주역은 대처 수상 자신이라기보다는 지리멸렬했던 야당인 노동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패배 후 내전(Civil war)라고 불리는 심각한 노선 갈등에 빠져들었던 노동당은 노동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갈라졌다. 그런가 하면 선거에서 제시된 정책집(Manifesto)은 '세계에서 가장 긴 유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었다.

현재 영국 정치에서 아무도 대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92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선거 승리 전망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전폭적인 세금 인상에 해당하는 복지 확대안을 내세우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승리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수당은 10년여간 집권 가능성조차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 그 반대의 색깔을 분명하게 내세우면서 신노동당의 이미지를 차용한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국가 축소 주장한 대처가 국가 책임 방기로 위기인 한국에 맞을까?

지금 그렇다면 국가역할 축소를 주장했던 대처가 현재 우리나라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양극화, 사교육비 폭증, 보육 대란, 부동산 대란, 비정규직 확산 등등은 모두 국가가 역할을 방기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무엇보다 그 당시 대처정부가 축소했다는 공공지출 수준도 현재 우리나라의 열악한 수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또한 대처 시절에도 복지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박정희정부처럼 대처 정부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워서 영국 경제를 살린 것도 아니다. 대처 수상은 단지 국가 소유 기업을 팔아 치우고, 국민임대주택을 팔아치우는 등 과도하게 비대한 국가를 축소하는데 집중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현재 대처를 우리나라에서 찾는 집단들은 주소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셈이다. 그들이 찾는 대처에는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과장된 신화가 있을 뿐이다.

 

- 2007년 3월 12일 오마이뉴스 기고, 13일 메인탑으로 보도 (당일 인기기사 2위까지 랭크 ㅋ)

 

보도본 보기: '대처' 말하면 이를 가는 영국인 '대처' 벤치마킹 혈안된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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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민참여 모델? 영국, ‘연금의 날’ 전국 토론

 

전국 6개도시 1000여명 시민, 연금대안 토론 후 투표

 

우리나라 못지 않게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영국 정부가 전국 규모의 시민 참여 행사를 열었다. 지난 토요일(18) 전국 6개 도시 1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연금의 날전국 토론회가 그 것. 이날 각 계층을 대표해 참가한 시민들은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다양한 대안에 대해 투표를 했다.

 

영국은 80년대 대처의 보수당 정부를 거치면서 대폭 축소되어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이 위협 받고 있다. 2004년 재계, 노동계, 학계를 대표하는 1인씩 구성된 연금 위원회의 첫번째 보고서에서 이러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연금은 영국 사회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작년 11월 이 연금 위원회는 현행 국가기초연금의 상향조정과 함께 장기적인 연금제도 안정을 위해서 연금수급 연령 상향조정안을 핵심으로 한 두번째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영국 정부에서는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오는 5월경 정부 개혁안을 완성할 예정이다.

 

그간 존 휴턴 연금 노동부 장관은 연금수급 연령 상향조정은 불가피 하지만 연금제도의 개선이 있어야지만 국민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연금의 날전국 토론은 런던, 뉴캐슬, 버밍엄, 글래스고, 수완시, 발파스트 등 영국 전역 6개 주요도시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들 도시들은 위성으로 연결되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1000여명의 시민들은 시장 조사 연구기관인 <오피니언 리더 리서치>에 의해 나이, 계층, 지역 등을 고려하여 선별, 초청 되었다.

 

이날 토론에서 휴턴 장관은 이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연금 문제의 장기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나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면서 우리는 이 논의에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원하며 이것이 우리가 연금의 날을 개최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 날 연금위원회를 이끌었던 터너 경의 발표를 듣고 영상 설명자료를 시청한 시민들은 질의 응답과 토론시간을 가졌다. 런던에서의 토론은 휴턴 장관이 직접 이끌었으며 그 밖의 도시에서는 연금노동부 차관들과 국회의원 등이 참가했다.

 

토론의 마지막에 시민들은 다양한 정부 대안을 놓고 투표를 벌였으며 이날 가장 주목을 끌었던 연금 수급연령 인상안에 대해서는 52%가 찬성, 34%가 반대표를 던졌다. 연금노동부는 이날 토론 결과를 분석하여 정부의 연금 개혁안을 만드는데 이를 고려할 예정이다.

 

- 2006년 3월 19일 한겨레 기고, 21일 보도

 

보도본: [통신원리포트] 연금개혁, 시민참여 논의로 고비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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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거연령 16세 이상 등 정치개혁 파격 제안 논란

 

라운트리 트러스트 100주년

기념 보고서에 브라운 재무장관

지지 밝혀

 

선거 및 피선거 연령제한 16세이상으로의 하향 조정 등 파격적인 제안을 담은 영국의 한 유서 깊은 재단 100주년 기념 보고서가 27일 발간되어 영국 정치개혁 논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같은 날 영국 유력 일간지인 <인디펜던트><가디언>이 머릿 기사로 노동당 차기 주자이자 재무장관인 고든 브라운이 이 제안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 해 논란은 더욱 거세질 논란이다.

 

진보적인 재단으로 잘 알려진 조세프 라운트리 트러스트의 지원을 받아 구성된 ‘권력 위원회 (Power commission, 의장 헬레나 케네디 경)’는 1년여 동안의 1500여건이 넘는 의견청취, 설문조사, 청문회 등을 거쳐 발간된 보고서, ‘국민에게 권력을 (Power to the People)’을 통해 최근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과 정당가입율을 들어 ‘현 정치체제가 정치를 죽이고 있으며 주요한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영국 정치체제는 서서히 붕괴될(meltdown)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와 동시에 보고서는 최근 G8 정상회담를 겨냥 해 아프리카 지원 확대를 주장하는 초대형 콘서트로 크게 주목 받았던 <라이브 8> 등 시민운동 등에 관심을 기울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정치와 국민과의 간극을 메워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개혁을 위한 각종 파격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이 제안들은 정부 관료의 권력 제한, 국민의 법률 발의 허용, 1인 선거구 중심 선거체제 개혁, 당론 투표 제한, 지방의회로의 권한 대폭 이양, 개별 정당 후원 만 파운드 (2천 만원) 제한, 언론 소유권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제, 관료의 로비스트, 기업인 만남 기록 및 공개 등 광범위한 개혁안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개개의 투표권자가 후원 희망 정당을 표시한 기부표를 제출하면 그 정당에 3파운드(5천원)의 국고 보조가 주어지는, 투표권자 기부표 제도 (voters vouchers system) 등 새로운 제도 제안도 눈에 띈다.

 

그 중 특히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처하기 위해 제안된, 선거 및 피선거 연령 16세 이상으로의 하향 조정안은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보고서 내 설문 조사에서도 약 국민80% 16세는 선거에 참여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가디언><인디펜던트>에서 블레어를 이을 노동당 유력 차기 주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지지하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이 안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들 신문은 브라운 재무장관은 학교 내 시민교육과 병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 안을 지지하면서 다른 보고서의 제안에 대해서도 ‘이는 국민들의 권한을 증진시키고 다음 선거를 위한 정부 내 논의를 진전시킬 결정적인 기여’라며 긍정적 의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최근 전국 순회를 통해 정치개혁 구상을 가다듬은 브라운 재무장관은 또한 지역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역합의제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국민 참여방안 등 헌법적 수준의 정치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 2006년 2월 27일 한겨레 기고, 28일 보도

 

보도본: [통신원리포트] 영국 선거권 나이 “16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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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무부 보고서, “강경 테러정책이 극단주의 부추겨”

반테러법 비판… “정책 ‘부당성’이 더 큰 위협 불러”

 

“영국 테러 대책이 영국 이슬람을 극단주의로 이끄는 핵심 요소다.”

 

테러 용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최장 90일 동안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애초의 ‘반테러법안’이 반인권적이라는 비판 속에 영국 하원에서 부결된 데 이어 10일 내무부 자문그룹까지 토니 블레어 정부의 반테러법안 같은 테러 대책이 되레 테러 위협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7·7 런던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이 자문그룹은 이날 낸 보고서에서 정부의 지나친 테러 대책이 오히려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젊은이의 사회참여, 교육, 지역 공동체 지원 등 7개 분야의 위원회로 구성된 이 자문그룹에는 상원의원부터 대중가수까지 다양한 영국 내 이슬람 주요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100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서방 외교정책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이 ‘극단주의적 충동’을 촉발한다고 지적했다. 블레어 정부는 그동안 테러와 이라크 전쟁과의 관련성을 부정해 왔다.

 

보고서는 이어 특정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를 불법화하는 현재의 반테러 정책은 오히려 이들을 ‘지하화해 미래에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일어나지도 않은 테러”에 대한 공격과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는 권한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또 극단주의 무슬림 웹사이트, 서점, 단체 등에 대한 요주의 목록을 만드는 것 역시 “영국 외교정책을 비판하거나 무슬림의 정치적 단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레어 총리는 구금일수를 28일로 수정해 통과된 반테러법안에 따라 2개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를 불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테러찬양죄’ 신설에 대해서도 “아랍어나 이슬람 용어에 대한 보안당국의 무지로 세계 이슬람의 자결권 운동에 대한 합법적인 지지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테러찬양죄 조항은 반테러법안의 상원 표결을 앞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내 자생테러의 근본적 방지를 위한 이슬람 사회와 영국 정부의 장기적인 협력을 위한 첫걸음으로 주목되고 있는 이 보고서는 이슬람 사회의 영국 주류사회로의 참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무부 블리어스 국장은 보고서의 정책 비판에 대해 “이는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난감한 부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11일 한겨레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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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전쟁항의', 총리, 각료 줄사과

- 한 고령 노동당원 전당대회에서 이라크전 항의하다 쫓겨나

- 쏟아지는 비난 끝에 총리, 각료 줄사과 후 전당대회 복귀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항의하는 고령의 노동당원을 강제로 쫓아낸 것에 대해 비난이 거세지자 당수이자 총리인 토니 블레어를 비롯한 당지도부와 정부각료들이 줄줄이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사건은 노동당 전당대회 셋째날인 지난 수요일, 외무장관인 잭 스트로가 연설 중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언급할 때 일어났다. 82세로 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한지 57년 되는 월터 울프강씨가 넌센스라고 소리쳤고 뒤이어 안전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다. 그의 출입증은 압수당했으며 다시 전당대회장으로 들어오려 하자 테러방지법에 근거하여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이에 대한 비난은 당일 전당대회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당 대의원은 발언을 요청하여 잭 스트로우는 많은 경험을 가진 정치인으로 반대의견에 대해 이것보다 더욱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날 <비비시> 방송은 저녁뉴스에서 이 것이 노동당이 토니 블레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동당원이었던 사람을 다루는 모습이다라는 멘트와 함께 울프강씨가 강제로 들려 쫓겨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목요일 아침자 주요 신문들도 이를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이 고령의 당원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테러방지법을 사용한 것을 두고 그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야당 지도부에서도 비난이 잇따랐다. 보수당 당수선거에 출마한 데이비스씨는 시민의 자유와 안보가 혼돈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자유민주당 대표 휴스씨는 이번 사건에 대한 노동당의 태도는 권위주의적이었다고 비난했다.

 

이미 당일날 노동당 의장이 사과했지만 이같이 비난이 거세지자 당수이자 총리인 블레어까지 직접 나섰다. 그는 각 방송 목요일 아침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안전요원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을 다루는데 서투르다. 향후에는 보다 적절하게 훈련 시킬 것이라고 사과와 해명을 거듭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이 목요일, 울프강씨의 출입증은 되돌려졌으며 그는 다른 당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전당대회장으로 돌아왔다. 당 부사무총장, 외무장관이 사과했고, 또한 전당대회 마무리 연설에서 존 레이드 국방장관이 다시 공개적으로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37년 나치 치하 독일에서 탈출해 그동안 핵무기 반대운동을 벌여왔던 전쟁중단연합 회원인 울프강씨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침략과 같은 우리의 큰 잘못과 달리 작은 잘못 하나가 바로 잡혀졌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센 항의를 몸소 접하고 다음 선거전에 사퇴할 것임을 말한 바 있어 사임시기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런던 테러와 함께 사그라 들었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사임시기에 대한 언급 없이 지나갔지만 그의 앞길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 사진설명: 이라크전에 대해 항의하던 한 고령의 노동당원(왼쪽아래)이 안전요원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사진출처: BBC 웹사이트)

 

- 2005년 10월 1일 한겨레 송고, 보도시기 놓쳐 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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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지지 발언이 반역죄?

영국 검찰, 이슬람 성직자 3명 처벌 검토하자 논란

 

영국 검찰이 공개적으로 런던 테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법무장관 골드 스미스 경과 켄 맥도날드 검찰총장이 이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현재 조사대상으로 알려진 인사는 ‘알-무하지룬 운동’이란 이슬람단체 창설자인 오마르 바크리 모하메드와 아부 이자딘, 아부 우자르 등 3명의 이슬람 성직자들이다. 검찰은 현재 이들의 언론 인터뷰, 연설, 설교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형제가 폐지된 영국에서 반역죄는 최고형인 종신형도 가능한 범죄다.

 

모하메드는 테러 계획을 알더라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어 왔다. 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영국군에 대한 무슬림의 공격을 지지해왔다. 모하메드는 지난 6일 영국을 떠나 현재 레바논에 머물고 있지만 “정부가 막지만 않는다면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 무죄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구라바의 대변인인 이자딘은 <비비시2> ‘뉴스나이트’ 프로그램에서 “런던 테러는 사람을 깨우는 커피향이었다”고 말했다. 알-무하지룬 회원이었던 우자르는 같은 프로에서 “영국이 우리를 위협하지 않았을 때 무슬림들은 ‘안전의 서약’을 받아들였었지만 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성전의 깃발이 올랐다”고 말했다. 영국내 주류 무슬림 단체들은 이들의 발언이 “진정한 이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며 이들을 비난해 왔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반역죄 적용은 큰 논란을 빚고 있다. 반테러법을 심사하고 있는 카릴리 경은 “이들에게 전시에나 적용되는 반역죄가 적용된다는 것은 경악스런 일”이라고 비판했다. 모하메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추드리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반역죄를 적용하려 한다”며 “이는 그 자체가 반역”이라고 비난했다.

 

- 2005년 8월 9일 한겨레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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