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거주민 무상의료 서비스 NHS, 오해와 진실, 개혁과 함의

다음 글은 한국노동연구원의 청탁을 받아 국제노동브리프에 기고한 글입니다. 인용시에는 아래 서지정보를 참고하시어 최종 출판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보영 (2008) 영국 전 거주민 무상의료서비스 NHS의 현황과 우리나라 개혁 모델로서의 함의. 국제노동브리프 6(5).

 

사용자 삽입 이미지

NHS 선택 웹사이트. 환자들이 각종 건강정보를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간 비교도 할 수 있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건강보험에 대한 이슈가 뜨겁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전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관련한 의사협회의 질의에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당선 후에도 보건의료 부분에 있어서는 공공 의료 강화보다는 의료 산업화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료기관이 생긴다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의무가입으로 유지되는 ‘전국민 건강보험’체계는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개봉한 마이클 무어 감동의 새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공적 의료보험체계가 없는 미국의 상황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체 인구의 15% 가량은 민간의료보험조차 가입되어 있지 않아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윤의 동기가 강한 민간의료보험회사들은 조그만 서류상의 잘못이나 신고 되지 않은 과거병력을 찾아내어 보험급여를 거부하는 일이 속출한다. 이런 폐해로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공공 의료보험은 민주당 후보들의 단골 공약인지 오래지만 지난 클린턴 정부도 강력한 민간보험사들의 로비에 막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건강보험 역시 부침을 겪고 있다. 전국민 건강보험 30여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장성은 2006년 현재 64.3%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노무현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한 결과이지만 그 반대로 낭비를 줄이기 위한 의료체계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아 건강보험 적자역시 불어나고 있다. 특히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행위별 수가 체계는 각종 의료 검사, 시술 하나를 더 할수록 수가를 더 받게 되어 한편으로 과잉 진료에 취약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건강보험 당국과 의사간의 개별 시술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시비를 낳게 하고 있다. 또한 민간의료기관의 비중이 80%이상이 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병원 간 선택을 할 수 있는 아무런 객관적 기준을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 환자는 환자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불만은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해결하기 위한 개혁 방향으로 의료 산업화와 민영화가 그 한편에 있다면 다른 쪽 한편엔 무상 공공의료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은 영국의 국가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이하 NHS)이다. 하지만 영국의 NHS를 얘기하자면 심지어 의료나 사회정책 전문가조차도 ‘환자들이 순서 기다리다가 죽어간다더라’, ‘의사들이 불만이 많아 모두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더라’라는 식의 루머성 근거들을 그대로 믿고 아예 논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도대체 NHS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운영되고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취약한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보완해 가고 있는지, 현재 신노동당 정부는 어떤 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대안으로서의 함의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NHS의 무상의료서비스, 오해와 진실


2차 세계대전 직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근거한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으로 표출되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노동당이 이를 거부했던 전쟁영웅 처칠을 누르고 집권하였다. 영국의 현재 전거주민 무상의료서비스 NHS는 1948년,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NHS는 지금도 총 1,300만 명의 인력을 거느린 단연 유럽최대 규모의 독특한 공공중심의 무상의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영국에서 통상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resident)이면 의료상의 이유로 따로 돈을 지출할 일이 거의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NHS의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모든 의료서비스는 완전 무상으로 제공된다.


예외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는 외래환자의 약제비, 검안, 치과치료 등이지만 일정액으로 제한되어 있다. 외래환자의 약값은 한번 처방당 약 1만 원가량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만성 질환등으로 자주 약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등록하여 연간 약 18만원 정도 수준에서 제한없이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16세 이하 아동, 18세 이하 재학생, 임산부나 출산 후 12개월 이내인 산모, 특정 만성질환자나 중증 장애인, 공공부조 수급권자 및 저소득층은 이마저 면제를 받는다. 검안의 경우 약 3만 원가량, 치과치료의 경우 경중에 따라 건당 2만원에서 8만원 가량 부담하게 된다.


모든 영국 거주민은 자신의 지역의원(General Practitioner, 이하 GP)에 등록하게 되어 건강상 어떠한 문제나 걱정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전화로 간단히 예약하여 의사를 볼 수 있다. 1차 의료기관인 이 GP에서 각종 건강 상담부터 간단한 시술까지 무상으로 제공 받을 수 있으며 만약 보다 전문적 검진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2차 의료 기관인 병원(hospital)에 의뢰된다. 병원으로 의뢰되면 각종 검진부터 수술까지 가능한 모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며 병원 내 모든 서비스는 약제비, 식사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된다. 의복, TV, 전화 등이 예외인 정도이다.


현재 신노동당 정부의 지속적 투자와 개혁을 통해 그동안 NHS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대기기간(waiting list)의 문제는 상당부분 진전이 되었다. 대부분 GP의 경우는 예약한지 이틀이내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2007년 8월 현재 GP내에서 치료를 받을 경우 76%가 18주 이내에 완료되고 있다. 병원으로 의뢰되는 경우 의뢰되는 시점부터 치료 완료까지 56%가 18주 이내에 완료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모든 치료를 18개월 이내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4개월 반 정도에 해당하는 이 기간은 길어 보이지만 최초 진단으로 의뢰 받은 후 세부 검진을 거쳐 수술 일정을 잡고 수술을 완료하기까지의 기간임을 생각해보는 그다지 긴 기간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해는 죽어가는 환자도 대기기간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다는 식의 ‘루머’이다. 영국에서 누구든 응급한 상황일 경우 응급실을 바로 이용할 수 있으며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면 대기 없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오히려 대개 영국 언론에 등장하는 1년 가까이 기다렸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사례들은 바로 이러한 응급 상황 때문에 특별히 생명에 지장이 없는 환자들의 수술날짜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경우들이 많다. 일상적인 경우, GP에서도 아이의 건강 문제 등 긴급한 우려가 고려될 경우에는 예약 당일 의사를 볼 수도 있다.


두 번째로 흔하게 NHS에 대해서 말할 때 듣는 얘기가 ‘의사들이 모두 외국으로 나간다더라’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그 사정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영국으로 워낙 많은 수의 외국 의대생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배경이다. 매년 영국 의사 수련과정에는 1만여 명의 외국 의대생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반 이상은 수련과정을 마치고 의사가 된 후 4년 이내에 영국을 떠난다. 2007년 전문의 수련과정의 경우 15,5000명 정원에 28,000명이 지원하였으며 그중 45%가 유럽경제구역(EEA) 밖의 외국 의대생이었다. 그 결과 오히려 영국내 의대생 1,300여명이 수련을 받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러 최근 영국 국무부(Home Office)에서는 외국인 의료수련 지원에 대한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NHS의 구성과 운영


앞서 언급되었듯이 NHS에서는 1차 의료와 2차 의료간 구분과 분업이 분명하다. 주로 GP가 담당하는 1차 의료는 일상적인 건강 상담, 가벼운 질병 진단 및 치료에서부터 예방접종, 금연 지원 등 광범위한 보건정책 수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물론 보다 전문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2차 의료기관으로 의뢰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역할이다. GP는 주로 일반의와 간호사 등 의료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민간 진료팀이 소유하고 운영하며 NHS와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이 1차 의료 체계는 NHS의 근간을 이루어 대체적으로 각기 관할지역과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거주민들은 주소지에서 가장 가까운 GP에 등록을 한다.


2차 의료는 주로 NHS 병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응급 치료(elective care)와 응급치료(emergency care)를 담당한다. 비응급치료는 1차 의료 기관으로부터 의뢰된 의료서비스로 계획에 따라 전문의료 인력에 의해 제공되는 검진, 시술, 수술 등을 말하는 것이며 응급 치료는 사고나 상해 등으로 긴급한 치료가 필요할 경우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NHS 병원은 주로 공공의료기관으로 병원 운영기구인 NHS 트러스트(Trust)가 NHS와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NHS 트러스트는 또한 병원 내 의사, 간호사, 물리 치료사 등 의료 전문 인력과, 관리자, IT 전문가 등 비의료 인력 등의 고용주이기도 하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인정받은 NHS 트러스트는 재정과 운영에 있어 보다 많은 자율성을 행사하는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1, 2차 의료기관을 비롯한 해당 지역 의료서비스와 보건정책을 총괄하는 기구가 바로 기초건강보호 트러스트(Primary Care Trust, 이하 PCT)이다. 보통 한 PCT가 평균 인구 170,000의 지역을 포괄하며 GP 등 1차 의료기관과 NHS 트러스트 등 2차 의료 운영기관과의 계약을 맺는 주체이다. 따라서 PCT는 NHS 전체 예산의 80%를 담당할 정도로 NHS의 중추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잉글랜드 지역 내에 330여개의 PCT가 있으며 각 PCT는 지역 주민 건강 욕구에 대한 실사, 1, 2차 의료서비스 배치 및 계약을 통한 위임, 지역 사회 전반적 건강 수준 향상, 모든 주민의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권 보장, 주민의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의견 청취 및 반영, 지방 정부 및 민간 단체와 지역사회 장기요양 서비스 등에 대한 협력 보장 등에 책임을 지고 있다.


PCT의 상급 기관으로 10개의 전략건강기구(Strategic Health Authority, 이하 SHA)가 있다. 하지만 NHS의 중추를 PCT가 담당하고 있는 만큼 SHA는 주로 보건부와 NHS 서비스 간의 매개 역할을 맞으며 주로 NHS의 서비스에 대한 전략적 방향과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다. 즉, 지역 내 PCT를 모니터 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정보 기술 전략 등 지역내 보건의료 서비스 발전을 위한 계획 개발, 의료 인력 확보와 훈련 등 보건의료 서비스 자원 관리, 암이나 심장질환 서비스 개선과 같은 정부 핵심 정책을 NHS를 통해 실현하도록 하는 역할 등을 담당하고 있다.


NHS 조직의 정점에는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가 있다. 보건부 장관은 의원내각제인 영국의 다른 장관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중 1인이 총리에 의해 임명되며 국민의 건강증진, 질병 예방 등 포괄적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보건부는 전반적인 NHS에 대한 관리감독 뿐 아니라 NHS의 전체적인 전략적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암, 심장질환, 정신 보건 등 국가 정책상 우선순위 영역을 비롯하여 각 서비스 영역에 국가서비스기준(National Service Framework)과 같은 서비스 질적 향상에 대한 국가적 기준을 설정하며, NHS가 이같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보장하고, 지역 전략 기관인 SHA, 의료기관 규제기구인 보건의료위원회(Healthcare Commission) 등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담당하고 있다.


NHS의 재원은 일반 조세에서 조달된다. 연간 예산 규모는 120조원에 이른다. 이 예산의 80%는 각 지역별로 PCT에 지역별 인구와 욕구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배분된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가중 균등할 공식(weighted capitation formula)이며 이에 따라 각 PCT당 목표 재원이 설정된다. 이에 따라 PCT는 계약을 맺는 각 병원과 GP 등과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 공식은 자원배분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Resource Allocation)에 의해 정기적으로 재검토 된다. 이 목표 재원에서 초과 지출 하거나 미달하는 PCT에 대해서는 보건부가 사안에 따라 개입하게 된다. PCT와 각 의료기관과의 계약은 보통 일괄 계약(block contract)으로, 포괄적으로 규정된 서비스에 대해 그 총액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구체적 비용을 추적하기 위해서 환자 중심 정보 및 비용 산출 시스템(patient-level information and costing system)이나 성과 중심의 배분 시스템인 결과에 의한 급여(Payment by Result) 등이 시행되고 있다.


최근 NHS 개혁과 함의


신노동당정부는 1997년 집권이래 NHS를 가장 우선적 정책 중 하나로 설정하고 보건의료서비스의 효과성과 효율성 증진, 서비스의 질적 향상 등을 위한 과감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중 그 거시적 방향과 관련하여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시장화(marketisation)'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을 기반으로 한 NHS의 성격 자체의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것이 ‘민영화(privatisation)'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민영화가 아예 서비스의 책임 주체를 민간으로 이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장화는 그 책임은 공공이 지고 있으되 그 공급과 운영에 있어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료서비스에 전달방식에 변화가 있을 뿐 NHS가 민간 기업에 팔리거나 대체되진 않는다.


시장화 개혁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민간 업체를 NHS 서비스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는 민간 자본이 NHS 병원 건립 등에 참여하는 민간재정계획(Private Finance Initiative, 이하 PFI)에서부터 직접 NHS 서비스의 공급자로 참여하는 민간치료센터(Independent Sector Treatment Centre, ISTC) 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두 번째는 공공 NHS 기관에 독립적 책임 운영, 상호 경쟁과 선택 등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재정 절감 대책으로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NHS 트러스트별 독립 채산제,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확대, 환자의 선택권 확대 등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화 개혁이 반드시 NHS의 효율성을 증가시켰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PFI의 경우 민간 자본을 동원하여 대규모 병원 건립이 다수 이루어졌지만 공공 예산에 의해 건립하는 것에 비하여 오히려 각종 컨설팅, 재정 운용 비용(finance cost), 자본 비용(capital cost) 등 민간 자본 동원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경우에 따라 건립비용의 약 40%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개별 NHS 트러스트가 목표 재정에만 제한하여 예산을 운용하게 한 독립 채산제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NHS 재정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트러스트별로 재정 절감을 위해 응급실을 없애는 등 서비스가 악화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건의료위원회와 같은 중앙 규제기관을 통하여 각 의료기관별로 엄밀한 평가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상호간 경쟁을 촉진시킴으로써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이루어내고, 환자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확대함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에 있어 환자의 발언권을 높이는 등의 성과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NHS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대기기간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어 낸 데에는 병원별 평가와 공개와 같은 강력한 수단이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는 NHS 선택 웹사이트(http://www.nhs.uk/)와 지역 도서관을 통하여 각 병원별로 대기기간, 병원 내 감염, 서비스 만족도 등을 포함한 종합 평점이 별점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각 전공 분야, 질병별로 대기기간, 입원기간, 치료환자 수, 재입원 비율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환자들은 예전에는 GP에서 상급 병원으로 의뢰 될 경우 해당 지역병원만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같이 투명하게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내 3~4개의 NHS 병원과 전국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병원 및 NHS과 계약된 민간 병원 중 치료 희망 병원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개혁 역시 그 효과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으며, 한편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민영화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국 정부의 개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공공의료가 반드시 관료적이고 독점적인 구조일 필요는 없으며,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실질적인 ‘시장’의 효율성은 오히려 공공의료에서 더 보장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보통 효율적인 기제로 이해되고 있지만 의료서비스 같이 특히 소비자가 합리적 정보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왜곡될 가능성이 도리어 크다. 하지만 현재 영국의 개혁과 같이 권위 있고 객관적인 정보를 정부가 알기 쉽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이와 같은 왜곡을 최소화 시키고 합리적 선택을 촉진함으로써 실질적인 의료서비스의 질적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우연치 않게도 좋은 대조를 보여주는 민간 중심 의료모델을 가진 미국과 공공 중심 의료모델을 지닌 영국의 사례는 무엇이 우리가 국민의 건강과 효율성을 위해서 추구해야할 방향인가에 대한 상징적 답을 미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적 보험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미국은 1인당 총 의료비 지출은 영국의 두 배가 넘든 데다가 정부 예산 중 보건의료 지출 비중도 16.1%인 영국보다 더 높은 19.2%에 이른다. 하지만 기대 수명, 영아 사망률, 출산 사망률 등 주요 보건의료 지표는 모두 영국과 비슷하거나 뒤쳐진다. 단순히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눈앞에서 치워보자는 식의 해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국민 건강의 증진을 위해서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다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나 공공의료로의 개혁 방향을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62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09/11 23: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 사회도 무상의료화가 꼭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개인병원들을 생각하면 한국의 로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더군다나 요새 의료민영화 이야기 나오는 거 듣다 보면 정말 뒤로 넘어갈 것 같지만..;
    보건소를 중심으로 체제를 만들어가면서 20년 정도 투자하면 우리 사회도 훌륭한 무상의료국가? 공동체? 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2. ffffff
    2008/09/22 09: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세요. 좋은 자료인 것 같아서 제 블로그에 퍼가겠습니다.^^

[서평] 제3의 길과 신노동당, 오독과 베끼기를 넘어

책 표지 사진@인간사랑

기든스 저, 김연각 역,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인간사랑, 2007

영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만 하더라도 나에게 제 3의 길이니, 신노동당(New Labour)이니 하는 것들은 그냥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쯤일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신노동당이 집권한 영국의 현실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영국 정치와 정책에 대한 나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결국 영국에 대한 나의 논문 주제도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정치사상 영역까지 확장되는 등 신노동당의 존재가 지난 5년간의 나의 유학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물론 미리부터 밝혀두지만 그렇다고 내가 제3의 길과 신노동당의 열렬한 신봉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처음에 마냥 신기했던 그들의 정치와 정책방향도 수년간 관찰과 연구를 하면서, 그 한계 역시 목도하게 되어 이젠 그걸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제 3의 길을 주창하여 신노동당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안서니 기든스의 신서,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은 당연 남다른 의미로 다가 온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의미는 나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부쩍 영국식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늘은 것도 사실이다. 새롭게 헤쳐모인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직접 영국 사례를 거론하며 제3의 길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지향한다고 선언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도 말기에도 제3의 길의 한식구격인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의원은 이 개념을 가지고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책도 펴냈다.

하지만 이 들이 과연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신노동당은 그냥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90년대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맞서 새로운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낸 매우 정교하게 짜인 정치사상일 뿐만 아니라 그 일관된 논리와 원리는 지난 10여 년간 신노동당 정부 정책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있으며 이는 실제로 공공 서비스와 사람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다.

손학규 대표가 신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이야기 했지만, 글 쓰는 현재 총선 공식 선거운동까지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논란이 되어 왔던 ‘대운하’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어떠한 정책적 이슈를 만들거나 제기한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학계에서 논의가 된 ‘사회투자국가’는 더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거론된 ‘사회투자국가’의 논의 수준은 의문의 대상이다.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도 책에서 무슨 언변을 펼쳤던 간에 의료보호나 국민연금 등 그가 장관 시절 정책은 당면했던 복지 쟁점들에 대한 그의 대책이란 그 혜택을 줄이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보면 수사적인 유사점 때문에 자주 동종으로 취급받는 대처리즘에서의 복지와 사회투자국가에서의 복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3의 길이 글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대처가 표방한 신자유주의도 아닌 ‘제 3의’무엇인 것도 아니다. 신노동당은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노동당 정부의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고, 부정한 적도 없다. 오히려 핵심은 그 정신을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맞춰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노동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구노동당(Old Labour)은 구체적으로 따지면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애틀리(Attlee) 정부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래서 대처에게 정부를 뺏긴 6~70년대의 윌슨(Wilson) 정부와 카라한(Callaghan) 정부이다.

영국식 제3의 길을 마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표방하는 이른바 ‘개혁세력’이나, 옛 노동당이 추구했던 사회 정의에 대한 배신쯤으로 취급하는 ‘진보’쪽의 해묵은 비판 역시 이 점을 흔히 소홀히 하고 있다. 이 책에도 1장에 서술했지만 지난 신노동당 10년 집권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경제는 영국 현대사 사상 최장 안정 성장을 이뤘으면서 대처시절 상당부분 손상되었던 무상의료 등 공공 정책을 복원시켰을 뿐 아니라 대기기간 등 고질적 문제들 까지도 상당 수준으로 해결 해온 것이 사실이다. 아동 70만 명을 포함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 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기든스의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위치하고 있다. 즉 10년간의 신노동당의 성과와 한계를 들여다보면서 10년 전과는 또 다른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쟁점들에 대하여 새로운 혁신의 방향과 구체적 정책 대안들을 새로운 총리가 되는 (그래서 현재 영국 총리인) 또 다른 신노동당의 대표주자인 고든 브라운에게 보내는 고언 형식의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든스가 시의성 있게 가볍게 쓴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고민과 논의 깊이는 상당한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그런 면이 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점은 철저하게 영국적 상황, 그리고 책이 출판된 그 시점에 매우 충실하게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영국 정치 상황과 정책적 쟁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경우 오독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런 이 책의 약점은 번역을 통해 더욱 두각 되기도 한다. 몇몇 구절과 개념들에 대한 오역은 영국 정책에 대한 역자의 이해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번역 상 문제는 영국의 무상의료서비스 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건강보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NHS는 일반 조세를 기반으로 무상의료제도로 일반의원과 병원뿐 아니라 각종 보건 정책 기구들을 모두 포괄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공적 재원 수단으로 주로 한정되어있으며 보험료 납입에 의해 수급자격이 주어지는 사회보험방식인 우리나라 건강보험과는 개념부터가 전혀 다르다.

또 보건의료 부분에 대한 구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재단 병원(foundation hospital 또는 foundation trust)은 NHS에 속한 병원 중 평가가 우수한 병원을 중심으로 그 운영기구(trust)에 사설 병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율권과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NHS에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노동당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없이 번역이 되다보니 이런 시장적 성격을 고든 브라운이 약화시켰다(water down)는 말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전혀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경우도 있다. 교통정책(transport policy)이라고 하면 무난했을 법한 단어를 ‘수송정책’으로 번역한 것도 대중적 공공서비스로서의 원래 의미가 아닌 무슨 물류정책쯤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자의 영국 정책 쟁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정치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양해는 조금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와 영국 간 ‘정치’개념 차이를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즉, 이 책 자체는 새로운 수상에게 어떻게 성공적 정치를 해서 노동당이 또 집권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를 조언한 매우 ‘정치적’인 책이지만 내용은 정책적 논의로 빼곡히 차 있다. 이는 기든스가 일부러 정책 정치를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내용을 채운 게 아니라 이미 영국 정치에서는 정책에서 정치적 승부가 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 산실인 영국 정치가 보여주는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 정치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책이 주는 최대의 미덕은 그 역동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적 고민과 제안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고민은 물론 비단 영국적 현실에 국한하지 않은, 진보의 혁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대안을 고민하는 한국 독자가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공공(public)'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기하고, 보증국가(ensuring state, 본 책에는 ‘확신을 주는 국가’로 번역)의 개념을 제시하는 ‘4장 공공 서비스: 사람을 맨 앞에 두기’와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의 개념을 보여주는 ‘6장 생활양식 바꾸기: 새로운 의제’가 아닌가 싶다.

대처정부는 공공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민영화 시키거나 시장적 경쟁 요소를 도입한 것은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지만 일정부분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 독점 복지 모델의 문제점을 집은 것이기도 했다. 즉 그 당시 공공 서비스들은 대단히 관료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시민들의 요구는 종종 무시당하거나 이유 없이 주구장창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에 복지 감축으로 공공 서비스는 줄었어도 서비스 공급과정에 있어 국가의 독점적 지위를 깨뜨림으로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만족도는 높아진 사례들이 있다.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무엇이 진정 ‘공공성’인가에 대한 재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물린 보증국가라는 개념에서 국가는 공공 서비스 공급에 있어 더 이상 독점적 주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진정 효과적이고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보증하는’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이 구체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적극적 복지 역시 시장 기능 실패에 따른 사후적 개입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복지가 되어야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개인 책임과 선택권을 강조하는 복지 축소논리와 닮은 듯하다. 하지만 기든스가 제시하는 적극적 복지 개념은 개인의 책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적합한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장애인의 경우 가능한 사회에 참여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립성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율성을 꺾는 방식을 벗어나 한 개인에게 동원되는 공공 재원 통합해 개인 통장처럼 따로 계좌를 만들어 개인이 스스로 독립적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 예산제(Individual budget)같은 정책이 적극적 복지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딛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희망과 대안을 찾아 제시하기 위한 개혁 진영과 진보진영의 노력으로 점점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나도 영국 유학생활을 어떻게 하게 되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다른 사회를 깊숙이 체험하고 공부하면서 발견하게 된‘다른 사회에 대한 가능성’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다른 사회’가 영국도 아니고 그 ‘다른 사회’를 위한 길이 ‘제3의 길’도, ‘신노동당’인 것도 아니다.

나는 우리사회의 대안을 찾는데 있어 다른 나라에 주목할 때, 그 나라에서 제기되는, 그래서 그 나라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그 ‘무엇(what)'이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특정 정책이었던 어떤 정치사상이었던 간에 말이다. 오히려 그 ‘무엇’을 이해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작 얻어야 할 것은 ‘어떻게(how)'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떨어진 결과물만 달랑 물고 들어와 그 나라 성공사례를 권위삼아 써먹어 보려는 시도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 나라의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어떤 원리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기반을 통해 그 대안이 도출 된 것이며 또 그 결과물이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실천되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어떤 점들이 어떻게 문제가 되어 한계로 들어났는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의 제대로 된 함의를 찾는 다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이 책과 같이 다른 나라의 고민을 들여다 볼 때 항상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시민과 세계>에 기고하여 4월 12일 13호에 게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도 축약본으로 게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61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04/26 15: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특히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이 부분은 많이 공감하게 되네요. 대처 정부가 기여한 바에 대해서도 동의하고요. 특히 유니버셜테스팅이라는 개념은 괜찮은 것 같아요. 결국은 그마저도 정치가 동원되기는 하지만요.
    • 2008/04/26 22: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공감하시며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원칙은 지키되 변화하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연해지고, 그래서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실에서 쉽지만은 않고 그러다가 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지만 말입니다.
  2. 라인
    2008/05/29 14: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서평을 읽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 비록 영국 실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영국, 때 아닌 선거열기에 후끈했던 정책대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메론의 반격! 지지율 동률을 보도한 가디언 5일자

영국에 아직 현 고든 브라운 총리임기가 2년정도 남았건만 때아닌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었다. 결국 일요일 브라운 총리가 조기선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해 근 한달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같은 때아닌 선거 논란은 총리가 언제든 선거를 여왕에게 요청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의 독특한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열기는 지난해 블레어 말기 내내 보수당 새당수 카메론에게 뒤쳐지던 노동당 지지율이 고든 브라운 새총리 등장이후 줄곧 앞서자 이 분위기를 틈타 얼른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이 내내 제기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 들어 노동당과 정부 고위 정치인 사이에서 조기 선거설이 심상치 않게 흘러나오자 언론의 관심은 '언제 선거냐'에 쏠리기 시작했다.

얼핏 대단히 불공정하고 이상한 선거제도지만 이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아무도 없다. 오히려 발끈 할 것 같았던 보수당 측에서는 '할테면 어서 해라'라고 되레 강공을 펼쳤다. 소문만 흘리지 말고 정정 당당하게 나서서 얼른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다. 이같은 양당간의 접전은 전당대회 시즌에 맞춰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전당대회 시즌에 흘러나온 조기선거설에 달아오른 정책경쟁

전당대회. 우리나라에서야 흔히 잔뜩 흥을 돋우고 시끌벅적한 하루치기 행사를 연상하지만 여기서는 가히 전당정치의 꽃이라 할만 하다. 수백명의 대의원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며칠동안 매일같이 다양한 주제와 정책영역에서 토론하고 담당 정치인의 연설이 이어진다. 때로 당내 논란이 되는 사안은 표결에 붙여져서 당 지도부와 반대 결론이 나오는 일도 종종 있다. (이번에 노동당에서 이를 없애고, 정책차관과의 개별 면담과 당 선거정책 표결 등으로 대체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당대회에서 지난 한해동안의 정당 활동이 결산될 뿐만 아니라 향후 1년동안 굵직한 아젠다가 설정되고, 주요 추진 정책들이 발표되기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이어지는 장관(의원 내각제에서는 다수당 국회의원이 장관이므로)과 예비 장관(집권당이 아닌 경우도 집권당 장관에 대응하는 예비 장관들이 포진해 있다)의 연설이 그 역할을 하며 그 백미는 당수(집권당의 경우 총리) 연설이다. 이 연설은 다음날 종합지의 첫머리 기사를 장식 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난 달 25일, 포문을 먼저 연 것은 총리로서 전당대회 첫 연설을 한 고든 브라운이었다. 이 때 고든 브라운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주거, 치안, 보건의료 부분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 보따리를 쏟아냈다. 주거 부분에서는 ∆ 1997년 대비 2010년까지 집소유자 200만명 증가, ∆ 10개의 새로운 생태마을 건설을 약속했고, 치안부분에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예방을 강조하면서 ∆ 최근 심각성을 더해가는 총기범죄를 막기위한 경찰의 검문권한 강화를 예로 들었다.

노동당 새총리 고든 브라운, 전통 보수당 의제 선점으로 선공

또한 보건의료 부분에서는 ∆ 병원내 감염 감축을 위한 연내 병원 청결 계획수립 ∆ 병원 감독관을 두배로 5000명으로 증가시키고 기준미달한 병원청결업체 계약무효권한을 부여 하는 등 현재 문제점을 대처함과 동시에 ∆ 47세에서 73세까지 유방암검진 확대, ∆ 지역 보건소(GP) 접근권 확대와 모든성인을 위한 건강검진으로 보건의료서비스 개인화를 새로운 서비스 강화 방안으로 내놓았다.

그동안 신노동당 정부에게 비난의 초점이 되어 왔던 대외 정책 부분에서는 ∆ 이라크와 아프칸에 안보, 정치적 화해, 경제재건 추진, ∆ 다푸어 사태 정의 실현 등을 강조했다. 이미 외무장관이자 신노동당의 차기주자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밀리반드는 자신의 연설에서 '왜 세계 무슬림들이 영국에 등을 돌리는지 지난 10년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다'라고 수차례 강조하면서 이전 블레어와는 외교정책에 있어 분명한 선을 그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브라운은 자신의 연설에서 특이하게도 '보수당'이나 당수 '카메론'을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보수당이 전통적으로 강한 치안부분이나 카메론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보건의료 부분에 새로운 강력한 대책들을 쏟아냄으로서 그 다음주에 예정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카메론이 설 땅을 선점해 버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힘을 받았는지 전당대회 이전 4~5%를 앞서던 브라운 지지율은 40%를 넘기면서 가장 크게는 보수당 당수 카메론과의 격차를 11%로 벌려놓았다.

보수당 젊은 당수 카메론, 원고없는 한시간 격정 연설로 대대적 반격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어진 주말에는 브라운이 선거일 결정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방송과 신문을 장식했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도착한 데이비드 카메론이 '반격(fight back)'을 선언하며 오히려 조기 선거를 발표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단호한 모습으로 연단에 오른 카메론은 장장 한시간에 걸쳐 원고 한장 없이 열정적인 연설을 펼쳐 그 으름장이 허장성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카메론은 보수당의 전통영역을 선점하려 했던 브라운의 정책들에 대해 '나는 좌와 우를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브라운의) 낡은 정치를 벗어나 신념에 의한 정치를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를 풀어놓았다. 우선 보수당 전문 영역인 조세 영역에서 ∆ 상속세는 백만장자(약 자산 18억 이상 소유자) 이상부터만 적용 ∆ 첫 주택구매자에게 인지세 면제 등을 통해 주거부분까지 포괄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더불어 가족가치를 복원하겠다며 ∆ 결혼가정에게 세금공제 혜택 확대, 자녀 양육을 위해 유연한 근무시간 등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감세 정책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감세분은 환경관련 조세로 대체할 것임을 여러차례 이야기 한바 있다. 이번 연설에서도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했다. 그리고 보건과 교육 영역에 있어서도 많은 시간을 할예하면서 불필요한 행정절차 간소화를 통해 효율화 시키고 복잡한 규범보다는 전문적 역량을 강화시킬 것임을 역설했다.

결국 선거발표 안 한 브라운 1패, 진짜 진검승부는 누가 통합적 비전을 제시하는가에

카메론의 열정적 연설과 자신감 넘친 모습이 통했는지 지난 금요일자 뉴스에서는 다시 3%차로 줄어든 지지도 수치들이 일제히 보도 되었다. 가디언의 조사에서는 심지어 노동당과 보수당이 38%로 동률의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각 당의 전당대회가 주목을 받는 만큼 전당대회 기간과 직후 해당 정당 지지율 상승 현상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4~5%의 다시 전당대회전 격차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고든 브라운이 조기 선거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모양상 선거도 하기전에 브라운 촐리가 카메론에게 1패를 당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연이은 전당대회로 벌어진 불꽃튀는 정책대결은 보는 이로서는 이미 100일도 안남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보다도 흥미진진했다.

물론 현재의 두 정당 간 대결은 아직 진검승부에 다다르진 않았다. 블레어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브라운도, 이에 도전하는 카메론도 아직까지 정책 나열 수준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비전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 곳 언론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향후 언제 선거가 치루어지던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누가 확고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과 통합적인 정책을 제시하느냐가 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치수준에서는 아직 꿈에 불과한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은 심도있는 분석과 객관적인 비교를 충실하게 제공해주는 가디언이나 타임즈 같은 고급지(quality paper, 선이나 데일리 미러 같은 여성의 살색이 곧잘 뒤덥는 이런 신문은 대중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종합일간지의 보도 수준은 대충 이곳 대중지에 견줄만 하다)와 BBC나 채널4 뉴스 같은 방송뉴스들이 있기에 또한 가능한 것일 것이다.

브라운이 망신당한 사연은? (클릭)


- 2007년 10월 7일 오마이뉴스 기고, 8일 '으뜸'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영국 총리, 칼도 못꺼내고 보수당에 1패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8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7/10/07 21: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물론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치수준에서는 아직 꿈에 불과한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은 심도있는 분석과 객관적인 비교를 충실하게 제공해주는 정론지(quality paper)와 방송뉴스들이 있기에 또한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한국 언론을 이렇게 만든 것도 유권자겠지만 정론지라면 선도하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 전통이 오랜 영국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최소한 상식은 통하는 언론이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영국에서 본 블레어 4년, 블레어를 말하다

- 블레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 AP=연합뉴스


블레어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3일 채널4에서 방영된 '특별한' 다큐멘터리 <토니 블레어의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 of Tony Blair)>은 블레어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생생하게 불러들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The State We're in)>이라는 책을 써서 이해당사자주의(stakeholderism)를 주창해 초기 신노동당(New Labour)과 블레어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윌 휴턴(Will Hutton) 전 <가디언> 편집장이 블레어 전 총리와 집권 마지막 100일을 동행하면서 '블레어 10년'을 짚어본 다큐멘터리였다.

총리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끼친 언론인과 총리의 허심탄회한 만남이란 것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만남의 성격에 맞게 보건, 교육,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블레어 10년' 집권 후 정치사상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오간 것도 다른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이었다. 윌 휴턴도 세간의 비판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질문했고 블레어도 그 비판에 대해 공격적인 반론을 펼쳤다.

블레어의 영국에서 보낸 4년

2003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블레어가 총리였으니, 난 블레어 집권 후반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셈이다.

한국에는 '블레어'하면 무슨 노동당의 배신자쯤으로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오기 전까진 어설프게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직접 블레어의 영국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지금 난 블레어가 정치에 대한 내 사고 자체를 뒤집어놓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블레어의 정치적 방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새로운 사회적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의제를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 전체 정부가 체계적 전략에 따라 각 부분마다 일관성 있는 정책적 실행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해가는 이들의 정치력은 예전에 한국에서는 전혀 목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준의 것이었다.

특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대처 때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국가무상의료서비스(NHS)와 관련, 유럽 평균 이하였던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현재 모든 지역 의원(GP)에서 이틀 안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NHS 최대 문제로 꼽히던 대기 시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또한 '우리 세대에서 아동 빈곤을 없애버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블레어 정부는, 아직 그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그 전략에 따라 여러 해 동안 정책적으로 노력한 결과 60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고질적이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잡센터플러스'라는 고용 전략의 핵심 기관을 지역마다 배치하고 신고용협약(New Deal)이라는,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대상집단별 고용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그 후에도 낮게 유지했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시장정책에 바탕을 두고 처음으로 전 성인고용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노동당 정부는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실업률을 높이지 않았다.


▲ 지난달 10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27일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세지필드 선거구의 트림든 노동당 클럽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정치에 대한 사고 자체를 변화시킨 블레어의 정치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영국 내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신노동당 집권 기간 동안 3분의 1 정도(35%) 낮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심장질환 관련 지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반시설과 서비스 확대를 비롯해 직접적으로 사망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로, 노동당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다.

이 모든 주요 전략과 정책을 블레어를 필두로 한 신노동당 세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이들은 국민을 복지 급여에 의존하게 하기보다는 고용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통해 노동급여를 보장하는 노동연계 복지 전략을 채택했다. 아울러 결과적 평등보다는 모든 이를 위한 기회(opportunity for all)를 주창하면서 교육정책에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이들의 핵심 전략은 정책으로 실행됐고 더 나은 의료, 더 나은 고용, 더 나은 교육 등으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결국 영국은 블레어의 10년을 거치며 더 나은 곳이 됐다. 블레어를 끊임없이 비판했던 <옵저버>(<가디언> 일요판)지도 전면 사설을 통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노동당 비판자였던 <가디언>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도 블레어를 다룬 특별판 칼럼에서 같은 말을 남겼다.

총리로서 임한 마지막 대정부 질문(Prime Minister Question Time, 매주 수요일 1시간 동안 총리와 국회위원들 간에 진행되는 문답 시간)이 끝나고 블레어가 퇴장할 때, 기립박수를 보낸 노동당 의원들을 따라 보수당 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의 영국 의회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이 장면은 '통 크게 일어나 함께 하자'고 손짓한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 덕분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발전적이었던 10년을 이끌었던 총리에 대한 의회의 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시장주의 맹신과 이라크 침공의 과오

물론 블레어 정부의 전략에는 비판할 거리가 많이 있다. 블레어는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축소에 열을 올렸던 대처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를 공공 부문에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공공영역의 시장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효율화로 이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은 공공서비스 예산의 전폭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자부심인 NHS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수가 오른 데 비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자본계획(PFI)에 따라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병원을 사상 최대 규모로 증설했지만, 민간자본에 연 예산의 20~30%를 수십 년 동안 환급함으로써 결국 공공자본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고 이 같은 예산 부담은 서비스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 총리. ⓒ Whitehouse



뭐니뭐니 해도 블레어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이라크였다. 아무리 블레어가 빈곤률과 실업률을 떨어뜨려도, 나라를 잘못 이끈 지도자란 오명은 어딜 가나 끝까지 따라다녔다. 사회 자체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인의 고통은 영국 내에서 블레어가 어떤 업적을 남겼든 간에 씻길 리 없다.

윌 휴턴이 이 대목을 묻자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된 지금 어떤 국가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벌일 때 다른 문명국가들은 이에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후세인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현재 더 나은 상황이었겠냐고 블레어는 반문한다.

'개입'에 대한 이 같은 블레어의 신념은 집권 초기 '윤리(ethical) 외교'를 주창할 때부터 드러났다. 또한 이전에 보스니아·코소보·동티모르·시에라리온 등에 개입한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은 블레어 자신을 과도한 개입주의로 몰아갈 법도 했다. 특히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무장단체를 몰아냈던 시에라리온에서 블레어는 아직도 영웅이다.

흔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들 하지만 블레어에겐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셈이다(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블레어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오히려 부시보다 더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미국에서 설득력 있게 설파한 것에 고마워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같은 신념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깔려있다. 외국의 무력 개입이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뿌리깊은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의 씨앗이 됐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 나라의 복잡한 상황을 외국에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훈련된 군대의 무력을 활용해 안정된 정치상황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모순이다.

중동특사 블레어의 모순,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블레어가 이제 중동특사로 활동한다고 한다. 최근 중동을 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 평화협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마스를 서구 국가들이 배제하고, 그 때문에 생긴 수많은 갈등 끝에 이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타운동의 수반 아바스만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도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아무리 블레어를 비판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블레어의 업적과,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딛고 신구교도 공동정부 구성과 평화 정착을 이뤄낸 블레어의 정치력은 블레어가 아예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 대정부 질문 시간에 북아일랜드 공동 정부의 첫 총리가 블레어의 중동사절 활동에 희망을 품는다고 직접 이야기한 장면도 그러했다. 그저 개인적으로 블레어가 너무나도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온 그곳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그래서 이라크전의 과오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 2007년 7월 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당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블레어 시대가 끝난 뒤의 블레어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6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한국에서 과장된 '철의 여인' 신화

- 영국 보수당도 벗어난 '대처', 한국에선 환영?

 

 

▲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 Margaret Thatcher Foundation
참 흥미로운 일이다. 정작 대처가 당수였던 영국 보수당은 대처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오히려 국가 무상의료 시스템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 건강 서비스)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겠다는 카메론이라는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대처 이후 지난 10여 년간의 암흑기를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선주자 사르코지가 대처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애쓰더니 이젠 우리나라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이미지 차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 느낀 것은 대처의 신화가 한국에서 무척 과장되었다는 점이었다. 영국 사람과 이야기해 보면 대처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서비스의 기반이 대처시절로 인해 매우 심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대처에 이 가는 영국인 쉽게 찾을 수 있어

이는 비단 복지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처 시절 전폭적인 민영화 정책 끝에 (결국은 그 뒤를 이은 보수당 메이저 수상 때) 민영화 됐던 철도의 경우, 최악의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안 지켜지거나 취소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열차표를 당일 날 사려고 하면 10만원 20만원이 우습다. 그나마 서비스가 나아진 것은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나 대처 집권 막바지에는 지방정부 예산까지 통제하여 공공 지출을 줄이려는 집착에 인두세 성격의 불공평한 지방세를 강제로 도입하자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나 대처는 1992년 영국 국민에게서 '쫓겨났다'.

그럼 경제는 나아졌을까? 대처 집권시기였던 1979년, 위기의 원인이던 인플레이션은 8.4%, 실업은 130만명이었던 반면 대처 집권 말기였던 1990년, 인플레이션은 10.5%, 실업은 200만명에 다다라 오히려 악화되었다.

경제를 살린다며 공공 서비스를 망쳐놓고는 경제조차 살리지 못했으니 대처 시절을 악몽처럼 기억하는 영국인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선거 때 노동당의 이라크전 정책 실패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한 전략적 투표, 즉 보수당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해 보수당에 투표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러자 노동당은 런던 도심에 대처의 캐리커처가 담긴 선전물을 뿌리고, TV엔 대처를 겨냥한 광고를 내보냈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남편이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전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어제 선택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내용의 광고였다. 한마디로 그러다가 다시 대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영국 국민을 '협박'한 셈이다. 물론 이는 노동당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대처 시절이 영국 국민 기억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처 수상은 처음으로 3번 연속 총선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수치를 보면 그 당시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대단한 지지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처가 당수로 처음 선거에서 이기고 집권한 1979년 득표율은 43.9%로, 이는 2차 대전 이후 보수당의 5번째 승리였지만 득표율은 그 중 가장 낮았다.

79년 대처 정부 등장 때 득표율은 역대 보수당 집권 중 최저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12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위기의 대한민국! 대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997년 현 노동당 정부의 첫 집권 때도 유사한 득표율을 얻었지만 다수당 의석차(Majority, 다수당 총 의석수와 나머지 당 의석수 합계 간 격차)로 따져 보면 대처가 처음 얻은 의석차는 44석에 불과했다. 노동당이 97년에 획득한 178석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처 시절 얻은 최대 의석차인 143석(1983년, 포클랜드 전쟁 후)도 현 노동당 정부가 두 번째 선거(2001년)에서 얻은 166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은 보수당 3연속 승리의 주역은 대처 수상 자신이라기보다는 지리멸렬했던 야당인 노동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패배 후 내전(Civil war)라고 불리는 심각한 노선 갈등에 빠져들었던 노동당은 노동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갈라졌다. 그런가 하면 선거에서 제시된 정책집(Manifesto)은 '세계에서 가장 긴 유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었다.

현재 영국 정치에서 아무도 대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92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선거 승리 전망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전폭적인 세금 인상에 해당하는 복지 확대안을 내세우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승리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수당은 10년여간 집권 가능성조차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 그 반대의 색깔을 분명하게 내세우면서 신노동당의 이미지를 차용한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국가 축소 주장한 대처가 국가 책임 방기로 위기인 한국에 맞을까?

지금 그렇다면 국가역할 축소를 주장했던 대처가 현재 우리나라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양극화, 사교육비 폭증, 보육 대란, 부동산 대란, 비정규직 확산 등등은 모두 국가가 역할을 방기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무엇보다 그 당시 대처정부가 축소했다는 공공지출 수준도 현재 우리나라의 열악한 수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또한 대처 시절에도 복지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박정희정부처럼 대처 정부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워서 영국 경제를 살린 것도 아니다. 대처 수상은 단지 국가 소유 기업을 팔아 치우고, 국민임대주택을 팔아치우는 등 과도하게 비대한 국가를 축소하는데 집중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현재 대처를 우리나라에서 찾는 집단들은 주소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셈이다. 그들이 찾는 대처에는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과장된 신화가 있을 뿐이다.

 

- 2007년 3월 12일 오마이뉴스 기고, 13일 메인탑으로 보도 (당일 인기기사 2위까지 랭크 ㅋ)

 

보도본 보기: '대처' 말하면 이를 가는 영국인 '대처' 벤치마킹 혈안된 한나라당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3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BC 누른 '채널4뉴스'엔 특별한 것이 있다

- 생동감과 역동성 넘치는 뉴스로 '올해의 뉴스진행자상' 등 휩쓸어



▲ 로얄 텔레비젼 소사이어티 저널리즘상을 휩쓴 채널4 뉴스팀
ⓒ 채널4 뉴스
지난 22일 영국 내 방송 저널리즘의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로열 텔레비전 소사이어티 저널리즘상(Royal Television Society journalism award) 시상식 이후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갈렸다.

세계적 명성의 BBC 뉴스는 카메라맨 단 한 명의 수상에 그친 데 반해 ITN이 제작하는 채널4 뉴스는 최고의 국내·해외 저널리즘을 비롯하여 올해의 뉴스 프리젠터(진행자) 상 등 굵직굵직한 5개의 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영국 생활 4년째, 꽤 오랜 기간 채널4 뉴스의 애청자였던 나로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방송 뉴스도 이들의 형식을 좀 빌린다면 좀 더 역동적이고 내용 있으면서 흥미로운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던 터라 이번 기회를 빌려 이들의 독특한 뉴스 진행 방식과 저널리즘을 소개해 볼까 한다.

두 개의 뉴스 데스크로 분리해 뉴스의 역동성 살려

채널4 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두 개로 분리된 뉴스데스크다. 대부분 방송 뉴스가 하나의 중앙 데스크에서 한 명 또는 두 명의 진행자가 진행하는 형식과 달리 채널4 뉴스는 주요 뉴스를 심도 있게 전달하는 중앙 뉴스 데스크와 기타 뉴스를 다루는 보조 뉴스 데스크로 분리되어 있다. 이 두 데스크가 서로 분리된 역할에 따라 주고받는 진행 방식은 전체 뉴스 프로그램의 역동성을 살려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방송 뉴스의 주요 뉴스는 비슷한 형식의 몇 개 꼭지를 통해 전달된다. 반면 채널4 뉴스의 중앙 데스크를 통해 전달되는 주요 뉴스는 리포트·인터뷰·토론·분석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그 중 특히 도드라지는 부분은 주로 생방송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다.

대부분의 주요 뉴스에서 정부 장ㆍ차관과 같은 뉴스의 당사자, 또는 시민단체나 이해집단 관계자, 관련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스튜디오 내에서 또는 대형 화면에 연결되어 실시간 인터뷰가 이루어진다.

실시간 인터뷰를 통해 뉴스의 생동감은 물론이거니와 관련 당사자 또는 관계자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직접 들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논쟁적 사안은 양쪽 관계자를 모두 스튜디오로 불러들인다. 생방송 뉴스에서 이렇게 당사자를 직접 출연시키는 데는 당연히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들을 다루는 진행자들의 숙련된 솜씨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킨다.

▲ 채널4 뉴스 인터뷰 장면
ⓒ 채널4 뉴스
말의 진검승부를 보는 듯한 생생한 인터뷰

올해의 프리젠터 상을 받은 존 스노우(Jon Snow)를 비롯한 메인 진행자들은 인터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해박한 이해력으로 인터뷰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할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질문을 연타로 날려 대상자에게 분명한 답을 하게끔 유도하는 솜씨는 뉴스의 긴장감과 흥미를 높인다.

물론 인터뷰 대상자로 자주 등장하는 국회의원 장ㆍ차관(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는 장ㆍ차관이 모두 국회의원이다)들도 만만치는 않다. 확실한 근거와 논리로 무장한 이들은 날카로운 공격을 쉴 새 없이 받아친다.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가 거짓으로 드러난 후 이루어졌던 진행자 존 스노우와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 간의 인터뷰였다. 분명한 잘못의 인정을 받아내려는 스노우와 이를 방어하는 블레어 간의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은 마치 말이 칼이 되어 서로 부딪치는 진검 승부를 보는 듯했다.

서로 잘 짜인 점잖은 인터뷰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가끔 '왜 저런 수모를 당하면서 인터뷰에 임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불리한 사안에서조차 직접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생방송 인터뷰에 임하는 매력일 것이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 사람을 보여주다

▲ 채널4 뉴스의 중심 진행자 존 스노우
ⓒ 채널4 뉴스
채널4 뉴스가 뛰어난 또 다른 측면은 논쟁적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매우 심도 있게 전달해 준다는 점이다. 특히 이란 핵위기가 높아지기 시작할 무렵 다른 뉴스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반응을 그냥 보여주는데 그친 반면 채널4 뉴스에서는 중심 진행자인 존 스노우를 이란에 파견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이란의 분위기뿐 아니라 언론·여성·사회 현안 등 이란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살벌한 핵무기 논란 뒤에 자칫 잊히기 쉬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 기획은 이번 시상식에서 스페샬리스트 저널리즘 상을 받기도 했다.

이라크전 보도에서도 폭탄 테러가 몇 번 일어나고 몇 명이 죽는다는 매번 반복되는 뉴스를 넘어서 그 속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새로운 이라크에 희망을 품고 돌아갔던 영국 망명 이라크인 의사가 후세인 치하보다 더 일상적으로 유린당하는 인권을 보고 다시 이라크를 떠나면서 독백조로 들려주는 이라크 현실은 사회적 붕괴상황이 한 사회의 가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뛰어난 뉴스 리포트였다.

우리나라 방송 뉴스들이 시청률을 의식할 때면 흔히 자극적인 소재나 이용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미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너무나 뻔한 뉴스의 틀에 질려가고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채널4 뉴스는 뉴스의 흥미와 생동감을 높이면서 동시에 질적으로도 다른 차원의 뉴스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덧붙이는 글 -----------------------


채널4는 최근에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빅브라더를 방송하는 바로 그 채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채널 이미지와 정치적 지위에 상당한 타격을 입긴 했다. 하지만 시사부분에서 채널4 뉴스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심층시사 프로그램인 디스패치스(Dispatches) 등은 영국내 어떤 공중파 채널보다 뛰어난 명성을 지니고 있다.



- 2007년 2월 23일 오마이뉴스 기고, 25일 메인탑으로 보도


보도본 보기: BBC 누른 '채널4뉴스'의 인기비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3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장애인이 '특별한' 존재인가

[영국의 지방정부 ③] 장애인 복지 덕 보는 영국시민들

 

몇 달 전 일이다. 한 정부 위원회에서 일하는 선배의 부탁을 받고 영국내 장애인 복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 사회정책 연구소에 있는 관련 연구원과 인터뷰를 했을 때였다.

나는 요청된 질문에 따라 한참 장애인 '특수'교육이니 '특별' 직업훈련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 영국인 연구원은 약간은 의아한 투로 되려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왜 자꾸 무슨 '특별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는가.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과연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편협한 생각 벗어나지 못한 나

▲ 요크대학에서 버스를 타고 있는 학생들. 요크에는 대다수의 버스가 저상버스로 되어 있어 장애인 뿐 아니라 유모차 끄는 부모나 전동 휠체어를 타는 노인들까지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 김보영
다소 공격적이었던 이 질문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대해 장애인은 아무래도 직업능력에 있어 비장애인과 다른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내용으로 겨우 답변을 했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앉아서 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 같은 것에 대한 집중교육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둘러대기에 가까운 답변이었다. 그러자 그 연구원 대답은 이랬다.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면 비장애인들도 다니는 컴퓨터 교육시설에서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장애 때문에 같이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 장벽을 없애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 아닌가."

결국 나는 사회정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장애인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다른 '분리된 존재'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계속 대화를 해가면서 그 가장 큰 원인은 나 스스로가 장애인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그래서 나와 다름없는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 오기 전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재미교포 2세 학생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모국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던 중 기억에 남는 말은 "거리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 였다.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영국 구족화가 엘리슨 래퍼씨도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은 그저 우연일까?

유모차 끄는 부모나 전동 휠체어 모는 노인이 즐겨 이용하는 저상버스

영국에서 장애인을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단지 길거리에서 뿐만 아니다. 그동안 방문했던 공공기관이나 학교에서 비장애인과 똑같이 일하고 있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정도라면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감히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장애인 복지서비스는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직접적인 대인 보조 서비스와 중앙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수당 및 고용서비스로 나뉜다. 예를 들어 엘리슨 래퍼씨가 이야기 했던 활동보조인 서비스 같은 경우는 지방정부 서비스에 속한다. 지방정부 사회서비스과의 사회복지사에 의해 직접 서비스가 제공될 수도 있고, 지방정부로 부터 돈을 받아 장애인 스스로가 보조인을 직접 고용할 수도 있다.

또다른 지방정부 관련분야는 교통이다. 요크의 시내버스 대부분은 저상버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장애인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저상버스 덕을 보는 것이 장애인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유모차를 끌고 시내를 나가는 부모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들이 나가는 노인들이 저상버스를 즐겨 이용하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2인용 유모차도 여유롭게 끌고 다니며 시내를 활보하는 이곳의 부모들과 아이를 들쳐 업고 힘겹게 버스에 오르는 우리나라의 부모 모습은 참으로 다른 것이었다. 특히 구부정한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천천히 걸음을 떼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이, 마치 작은 자가용처럼 전동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몰고 다니며 버스를 이용하는 이 곳 할머니의 모습에 겹쳐 서글프게 떠올랐다.

▲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공공서비스'라는 등식이 가능할까? 요크 시내 분수대에 앉아 지방정부가 주최한 지역 축제의 거리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연금 생활자들
ⓒ 김보영
국가폭력과 공공질서를, 공공선과 국익을 헷갈리는 한 변화가 있을까

지금까지 3편의 기사를 통해 돌봄 서비스, 지방세, 장애인 서비스 등 세 분야에 걸쳐 나의 경험을 통해 본 영국 지방정부 모습에 대해 살펴 보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단편적일 수는 있지만 영국인들의 일상에서 지방정부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그 일면을 보는데 큰 부족함은 없었다 생각한다.

가장 큰 차이를 느낀 것은 '정부'라는 존재에 대한 기본 개념이었다. 중앙정부도 그렇지만 지방정부를 이야기 하면서 이들의 머리속에 "정부=공공서비스"라는 등식이 자리잡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수당이 정부 축소를 이야기하던 노동당이 정부 역할 확대를 이야기하던 그것은 바로 각각 공공서비스 축소와 공공서비스 강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부하면 무슨 규제나 통제부터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지방정부의 서비스하면 지하철에서 등본 뗄 수 있게 해주는 것 등이 고작인 게 현실이다. 민주화된 지가 10년이 넘었다는데 정부의 개념은 경찰국가, 개발국가의 논리에서 한치 앞을 나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화려한 개발공약과 복지공약이 선거 때마다 등장한들 피부로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정부가 우리의 문제를 공공의 이름으로 해결하는 공공서비스의 주체로서 자리잡기 전까진 선거 후 다시 통제자의 위치를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방정부던 중앙정부던 공공서비스의 주체로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아직도 나가기 싫은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는 국가폭력과 '공공질서'를 동일시 하고 공공선 보다는 실체도 불분명한 국익과 개발논리가 앞서는 국민들에게는 언제나 '통제자'로서의 정부가 어울릴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 심각한 문제로 대두
최근 영국 지방선거에서 비춰 본 지방정치 현주소

의회정치의 산실이라는 영국정치에는 그럼 큰 문제가 없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특히 얼마전 있었던 잉글랜드 지역 지방선거에서 보였듯 36%가량의 저조한 투표율을 특히 영국 정치의 매우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저명한 조세프 라운트리 트러스트의 지원으로 1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지난 2월 발표된 '국민에게 권력을'이라는, 영국 권력구조에 대한 조사보고서에서는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영국 정치는 붕괴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계속 떨어지는 저조한 투표율과 정당가입율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지방정부 역시 대부분 의원내각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런던 등 몇몇 대도시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별도로 선출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조차 없어 정당득표와 의석수가 꽤 차이 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소수정당의 진출은 매우 힘들게 되어 있다.

게다가 신노동당 등장 이후 계속되고 있는 노동당의 보수화는 유권자의 참여동기를 더욱 흐리는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보수당 새 당수인 카메론 역시 중도로 과감하게 궤도를 수정, 양당간 차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노동당 인사가 창당한 리스팩트(RESPECT)당이나 영국민족당 등 좌우 소수정당의 수는 여전히 소수지만 의석수가 꽤 늘어난 것도 이번 지방선거의 특징이 되었다. / 김보영

 

- 2006년 5월 19일 오마이뉴스 기고, 5월 25일 메인탑 보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2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이지연
    2009/04/20 01: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 잘 읽고 갑니다. 장애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글이였습니다. 영국의 장애인 복지제도에 대해 보고서 작성중이었는데 도움 많이 됐습니다. 혹시 인용구절이 있으면 출처 밝힌 후 주석 추가하겠습니다. :)

세금 고지서가 너무 친절한 거 아니야?

[영국의 지방정부 ②]투명한 세정은 기본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지방정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됐지만 바람과 정쟁이 난무하고 공약이라곤 선심성 개발공약만 부각되는 상황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요크에서 3년째 거주하며 경험한 지방정부의 모습을 공유함으로서 지방정부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지방세 고지서에 동봉된 안내자료들. 15쪽 분량의 지방세 안내서(가운데), 신청서가 붙어 있는 지방세 감면 안내서(왼쪽), 북요크셔 소방 예산및 지방세 부과분 안내(오른쪽 위), 북요크셔 경찰 예산및 지방세 부과분 안내.(오른쪽 아래)
ⓒ 김보영

"여보, 지방세 고지서가 날라왔던데"
"뭐? 우리는 학생 가족이라 안내도 되는데…."


청소부터 강의까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뛰어들어야할 만큼 넉넉하지 못한 유학생활 형편이라 냉큼 고지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황급히 뜯어 내용을 훑어보니 올해치로 부과된 세금은 1000파운드(약 170만원)가량이었다. 그러나 친절히도 바로 그 밑에 '학생거주자' 명목으로 그 금액이 도로 공제돼 총액은 0파운드였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세금 고지서 말고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함께 동봉된 지방세 관련 각종 안내 자료들이었다.

지방세 고지서인지, 자선단체 후원 요청서인지...

그 중에서도 15쪽짜리 세금안내서가 가장 눈에 띄었다. 표지에 크게 표시된 주요 목차에는 '지방세에 대한 설명', '고객 서비스', '가치있는 지출', '서비스 개선' 등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각종 할인과 수당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는 페이지를 안내하는 표시가 하단의 빨강색 바탕에 표시되어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지방세에 대한 설명' 코너에는 지방세 책정 방법, 할인대상, 불만이 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에 대한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고객 서비스'에는 마치 자주 묻는 질문난처럼 예상되는 질문과 답이 채워져 있었다. 어떻게 지방세를 내느냐부터 할인 신청방법, 걸리는 시간, 이사시 문제 등과 보다 상세한 이의제기 방법까지 간단 명료하게 설명돼 있었다.

'가치있는 지출' 코너는 어떻게 예산이 쓰여지는 지에 대한 한편의 보고서였다. '주민 1인에게 주당 약 10파운드(약 1만7000원)가 쓰인다'는 내용의 굵은 안내문으로 시작된 이 보고서에는 학교, 복지서비스, 주택, 교통, 취업, 여가, 환경 등 각 분야마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예산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 예산이 증가한 부분은 어디이며 얼마가 증가했는지, 예산이 절감된 부분은 어디이며 얼마나 절감된 것인지가 각각 표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작년의 총세입과 세출, 그리고 올해 예상수입과 예산도 표로 잘 정리돼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비스 개선' 코너는 지방정부의 주요 중점 사업과 각종 성과에 대한 소개였다. 지방세율 전국 순위, 지방정부 평가 지표, 지역학교 성적 평가치, 복지서비스 제공 건수 등 20여개 항목의 구체적 평가 수치들이 사회보호, 환경, 주택, 문화 등 항목 별로 잘 정리돼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수치들을 제시하면서 작년 한해동안 이전과 비교해 개선된 점은 물론 개선되지 못한 점도 솔직히 밝히면서 필요한 개선 사항까지도 밝혀놓았다는 점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꼼꼼하게 이 세금 안내서를 살펴보다 보니 지방세 한푼 안내서 안도했던 심정이 약간의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게 세금을 내라는 고지서 인지 아니면 자선단체에서 후원을 부탁하는 요청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지역민 배려하는 영국의 지방정부

▲ 지방세 안내서에 실려있는 지출내역 그래프. 사회복지 서비스(Adult Social Service), 교육 및 아동복지 서비스(Education & Children's Service)가 지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 김보영

놀라운 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저소득자나 노약자가 혜택을 못 받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별도로 신청서가 붙어있는 공제 및 할인 신청 안내 팜플렛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요크시가 속해있는 북요크셔(우리나라로 치면 '도'개념)의 경찰청과 소방청의 작년 지출과 올해 예산, 그에 따른 세금부과분, 중점 사업과 증감분 원인에 대한 설명이 담긴 브로셔는 별도였다.

또 더 자세한 내역은 지역 도서관에 비치 되어 있다는 안내와 함께 홈페이지에는 예산 내역뿐 아니라 예산 검토를 위한 시민위원회 활동 및 검토 내용까지 올려놓았다.

물론 이 곳 거주민들이 이런 안내자료들을 모두 세세하게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민을 대하는 지방정부의 기본적인 태도다. 이런 친절한 자료들을 받아보면서 적어도 세금 낼 때 내 돈 도둑질 한다는 기분은 안들지 않을까. 여기에는 지방정부가 지역주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시민단체들이 지방자치단체장 판공비 내역을 공개 받기 위해 소송까지 걸어야 했던 한국의 지방정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국 지방세
지방세 문제로 대처수상 물러나기도

영국의 지방정부가 지방세 청구에 공을 들이는 데에는 솔직히 지방세가 영국에서 매우 민감한 쟁점 중 하나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국 지방세는 소득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또 거주지에 대해서도 소유주냐 세들어 사느냐에 상관없이 사는 집의 가치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이처럼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지방세 부과방식은 공공지출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대처 정부에서 비롯되었다. 대처정부가 지방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중앙정부 교부금을 줄여도 지방정부가 지방세율을 올려 공공 지출 수준을 유지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해 지방세에 인두세 부과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영국인들이 아직도 그 악명에 치를 떠는 '폴텍스'(Poll Tax)였다. 이 제도가 시행된 90년에 런던에서 2만여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 전국적으로 폭력시위가 확산되자 결국 '철의 수상' 대처는 물러나고 말았다.

그 후 인두세 방식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소득이나 재산에 기반하지 않는 지방세 부과방식은 계속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 2006년 5월 16일 오마이뉴스 기고, 22일 메인탑으로 보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2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지방정부가 병든 노부모 돌본다

▲ 우리에게 지방정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국인에게 가장 가고싶은 영국내 관광도시로 꼽히는 요크시의 모습.
ⓒ 김보영
5·31 지방선거 공식 선거전 막이 올랐다. '강풍', '오풍' 등 각종 '바람'의 영향으로 선거열기가 일찍부터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울, 경기 등 몇개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저조해 보인다.

하기야 보통사람들 머릿속에 지방정부하면 부패, 아니면 멀쩡한 보도블럭 다시깔기, 주민등록등본 떼러가는 동사무소 정도가 떠오르는 게 전부니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역할은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을 살펴보면 개발관련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환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정부가 지역주민에게 가장 쉽고 확실하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집값, 땅값을 올릴 수 있는 개발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궁금하다. 왠 '박정희 시절' 사고방식이냐고 타박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지방화 시대가 도래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도 지방정부에 대한 기본 개념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지방정부란 원래 그런 것일까? 영국의 사례를 한번 들여다 보자.

한국의 지자체와는 너무 다른 영국 지방정부

내가 살고 있는 요크라는 곳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주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곳으로 얼마전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의 한 국책기관 연구원이 영국 지역사회의 '돌봄' 서비스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요크대학의 연구원 인터뷰차 방문한 것이다. 필자는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터라 인터뷰 주선 및 통역을 맡게 됐다.

인터뷰 전 연구원과 한국의 돌봄 서비스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가족 중 만성질환자에 대한 돌봄 서비스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혼자'사는 '가난한' 노인에 국한된 이야기고 '간호 방문 서비스' 같은 경우는 한달에 두번 정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만약 가족 중에 누군가 지속적인 간호를 필요로하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는한 보호자는 생업을 포기하고 꼼짝없이 환자곁에 묶여 있어야할 상황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영국의 상황은 다르다.

"여기서는 집안에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어도 지방정부 사회복지사와 합의만 잘 되면 얼마든지 직장 유지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네?"


한국에서 온 연구원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영국 연구원이 들려준 얘기는 이랬다.

그는 본인 부모님이 최근에 건강이 악화돼 인터뷰가 끝나면 부모를 보러 가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요크에서 남쪽으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지역에 사신다. 그래도 연구원으로서 계속 활동하고 부모님 곁을 비울 수 있는 것은 지방정부 사회서비스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덕분이었다.

도우미의 하루 방문 회수는 자그만치 네번. 아침 7시 방문에서는 환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옷을 갈아 입혀주고, 아침을 차려준다. 다음 오후 1시 30분 두번째 방문에는 환자에게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홍차나 간단한 음료를 만들어 제공한다. 세번째로 오후 4시에는 설겆이 등 간단한 집안 청소를 하거나 간단한 간식 거리도 만들어 준다. 마지막 밤 9시 방문에서는 환자가 잠자리에 들도록 도와준다.

노약자가 거동을 약간이라도 할 수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비용 부담도 형편에 따라 차등

▲ 요크시에서 주최한 바이킹 축제에 참가해 바이킹 전투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어린이들.
ⓒ 김보영
특히 그 부모님이 사는 지역은 서울 강남처럼 부유한 지역이 아니다. 이 지역은 폐광 지역으로 대표적인 영국내 소외지역 중 하나다. 그럼에도 지방정부의 사회복지 서비스는 우리가 부러워할만한 수준이다.

또 자녀 2명 모두 전문직 종사자여서 연구원의 부모는 특별히 가난한 처지도 아니다. 이정도 수준의 돌봄 서비스는 모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인 서비스인 것이다.

그래도 각 지방정부의 서비스 수준은 지역마다 차이가 일부 있다. 하지만 각종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 정도 수준의 서비스는 평균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서비스가 무료는 아니다. 지방정부는 일정 이용요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요금 수준은 서비스양에 따라서가 아니라 별도의 재정평가를 통해 수용자의 부담능력에 따라 부과되고 있다.

요크시의 예를 들면 1인당 복지서비스 예산이 한화로 연간 40만원 정도이고 교육이나 환경 등 모든 지방정부 공공서비스를 고려하면 연간 1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세부담은 중간층의 경우 연간 200만원 정도다.

또 지방정부의 소관은 아니지만 만약 의료 행위가 포함된 간호가 필요할 경우 영국 무상의료제도(NHS)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영국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대처정부부터 지금 신노동당 정부까지 가족내 책임을 강조하는 통에 지역사회 서비스가 위기"라고 했지만 한국 사람의 귀에는 그런 '투정' 그저 엄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개발만 외치는 한국의 지방정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 서비스의 확대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영국은 대단한 복지국가? 서유럽에서 '꼴지'

그렇다면 영국은 대단한 복지국가일까?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아직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에스핑 엔더슨의 복지국가 분류법에 따르면, 영국은 복지국가 중에서 가장 복지수준이 낮은 국가군인 ‘'자유주의국가'에 속한다. OECD 통계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요즘 많이 듣는 국민부담율(국내총생산 대비 조세와 사회보장분담금 비율)에 따르면 영국은 37%정도로 스웨덴(약 53%) 등 사민주의 국가는 물론 프랑스(약 45%)나 이탈리아(약 43%) 등 다른 유럽국가들 보다 낮은 편에 속한다. 물론 한국(약 23%)보다는 훨씬 높다.

지출면에서도 국내총생산 대비 총 사회복지지출이 약 22%정도로 프랑스 (약 28%), 이탈리아 (약 25%), 그리스 (약 24%) 보다 낮다. 역시 한국(약 8%)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제 상황은 어떨까. 복지국가는 경제불황과 실업에 시달린다는 보수언론의 선전과는 달리 영국은 10여년째 안정성장을 계속 하고 있으며 2006년 1월 현재 실업율도 5%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3.5% 안팎인 우리보다 높긴 해도 실업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수준은 아니다.

 

- 2006년 5월 14일 오마이뉴스 기고, 19일 메인탑으로 보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1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비비시, 엉뚱한 '가이' 생방송 인터뷰

지난 8일 비비시 뉴스24에서 애플 컴퓨터와 비틀즈 음반회사인 애플사간의 상표권 법정 분쟁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접견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뉴스와이어리스닷컴 편집자 가이 쿠니씨. 그는 접견실안 텔레비전을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뉴스화면에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엉뚱한 사람이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 있었던 사람은 가이 고마씨. 콩고대학을 졸업한 그는 비비시 방송국에 구직차 면접을 보기 위해 왔다가 ‘가이’씨를 찾는 피디의 부름에 뉴스 스튜디오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생방송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까지 면접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고마씨는 진행자가 ‘뉴스와이러리스닷컴 편집자’라고 소개하는 말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놀라는 표정까지 생생하게 방송되고 있었다.

당시 비비시 뉴스24 생방송 화면 면접차 방송국에 왔던 고마씨가 자신이 엉뚱하게 출연한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그는 차분하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 BBC

오늘 법원 판결에 놀라지 않았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매우 놀랐다’는 고마씨의 답변으로 시작된 그의 인터뷰는 진행자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현장 리포터로 돌리기 전까지 1분 30초가량 계속되었다.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와 음반산업 문제에 대한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서 ‘어디에서나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는 취지의 솔직한(?) 답변을 비교적 침착하게 이어갔다.

이 뉴스화면이 나간 직후에 현지 언론에서는 고마씨를 택시운전사라고 일제히 오보를 하기도 했다. 어떤 언론에서는 가이 쿠니씨의 택시요금을 받으러 왔다가 엉겁결에 끌려갔다고 보도하는 등 각종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고마씨는 비비시에 면접차 왔던 구직자임이 밝혀졌고, 이 사건 덕분에 엉뚱하게 출연했던 비비시 뉴스24를 비롯하여 주요 공중파 방송국의 간판뉴스 프로그램인 채널4뉴스 등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인터뷰를 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난 15일 비비시 대변인은 시청자에게 혼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공식 사과했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 번역본이다.

진행자: 가이 쿠니씨는 테크놀로지 웹사이트인 뉴스와이어리스 편집자입니다. (고마씨의 당황하는 표정) 안녕하십니까?

고마씨: 안녕하십니까?

진행자: 오늘 판결에 대해 놀라셨나요?

고마씨: 매우 놀랐습니다. 이 판결이 나에게 떨어졌고 ... 왜냐하면 저는 그것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제가 왔을 때 그들은 다른 것을 얘기했었고 그리고 제가 왔습니다. 그래서 매우 놀라웠던 것이죠 어쨌든 ...

진행자: 매우 놀라운 일이죠. 그렇죠?

고마씨: 네 맞습니다.

진행자: 비용문제를 포함해서 생각할 때 이제 사람들이 더 많이 온라인에서 내려받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마씨: 사실 어디를 가시던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웹사이트에서 그들이 원하는 어떤 것이던지 내려받기 하시는 痼?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 어 ... 이것은 발전을 위해 훨씬 좋은 일이고 ... 어 ...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고 쉽게 얻고 그래서 그들이 찾는 다면 더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사람들이 웹사이트에 가서 음악을 내려받는 것이 정말 음악 산업을 발전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마씨: 그렇습니다. 사이버 카페 어디를 가서나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나 인터넷에서 무언가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진행자: 매우 감사합니다.

 

- 2006년 5월 17일 오마이뉴스 기고, 메인서브로 보도

 

보도본 보기: 비비시 엉뚱한 전문가 생방송 인터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보롱이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idea.borongs.net/trackback/118056051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사회, 정치, 정책, 영국에 대한 늘 신선한 보고서 :: 더불어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며 영국땅에서 사회정책 공부 중인 김보영의 글과 생각과 자료들의 모음 by 보롱이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0)
세상 이야기 (70)
영국 이야기 (29)
학술 자료실 (49)
Total : 188,184
Today : 1 Yesterday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