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이 귀금속 가게면 ‘좌파’는 채소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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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진보신당이 명동에서 벌인 "대국민 감사 인사와 진보신당 입당 캠페인" 모습. 지금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이름 타령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다. 사진@진보신당


안타까운 총선결과는 뒤로 하고 몇몇 언론들의 판에 밖힌 전망과는 별개로 진보신당에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논의가 곰비임비 일어나고 있다.

아직 자체 내에서 뚜렷한 일정이나 방향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니 벌써 어떻게 진전될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역사에 의미있는 작업일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큰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논의는 뜬구름 잡는 담론 다툼 같은 기존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과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별 근거없이 서로의 과거의 우상들이나 갖다 들이대며 누가 원조이니 정통이니 맛골목 순대집 다툼같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신당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말들 속에 이런 우려가 전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당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레디앙에도 "
'진보당'은 귀금속 가게 이름이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에 글이 실렸다. 하지만 내용은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재미있지 못했다.

'진보'나 '좌우'에 대한 의미에 대한 주관적 주장에 처음의 반이상을 할애하더니, 진보라는 것을 내세우면 10%에 불과한 '구역'에 갇히는 것라고 했다가, 또 당 이름에 '초록'이나 '사회'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피해야

생태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선명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까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여론 조사에서 진보, 중도, 보수가 통상 서로 30% 내외 나타나는 현실에서 '진보'라고 하면 10% 속에 갇히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다시 국민들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을 상징하는 '초록'이나 '사회'같은 단어를 당명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홍기표는 진보와 보수는 낡은 개념이어서 버려야 하고 '좌우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와 보수는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라면 좌우라는 개념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좌우라는 개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것이 기원이다. 결국 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안정적이어서 형평이냐 효율이냐, 증세냐 감세냐 같은 뚜렷한 해법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나는 왜 필자가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통 그런 개념들과 보수와 진보도 똑같이 연결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진보나 보수나, 좌파나 우파나 상대적이긴 마찬가지이고 현재적으로 논의되는 서로 상대적인 해법과 서로 연결되는 것에도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지금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뿐이어서 이런 '단어'에 집착하는 논의가 소모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보나 좌파나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일 뿐

당명을 지을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서구에서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발달해 왔지만 해방후 좌우대립이 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졌던 우리 역사에서는 부정적인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제 논의가 자유로와지자 좌우파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주로 쓰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언론들은 특정 대상에 감정적 비난을 가할 때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좌우대립의 기억과 반공주의를 자극하는 의도적인 단어 사용이다. 그것이 졸지에 노무현 정부가 족보도 없는 '좌파'가 되어버린 슬픈 사연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론조사 등 국민의 정치적 입장을 묻는 설문에는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단어가 현실적 정치구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족적 소수정당이 아니라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제도권 대중정당을 꿈꾸는 진보신당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한 것은 오히려 다행인 것이다. 그 다음 '진보'라는 것에 실질적인 가치를 연결시키는 것은 진보신당의 몫이다.

다시말해 진보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이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인 것이지 '진보'라는 단어를 바꾸고 안바꾸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미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서 구체적인 의석으로 얻진 못했어도 이후 '지못미' 열풍 등 총선 전후의 언론의 주목 덕에 벌써 의미있는 지지율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그토록 목말라 했던 인지도 자체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진보신당의 논의는 서민의 고통에서 시작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신당'이라는 임시정당 냄새가 나는 것을 조금 고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라는 단어까지 빼버리고 완전히 다른 당명으로 바꾸자는 것은 총선과정에서 힘들게 얻는 인지도조차 버리고 보자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럼 총선 전 왜 힘들게 창당해서 선거에 참여했는가.

정말 '진보의 재정립'을 위해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 왜 이런 소모적인 일을 벌이라고 강변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지금 수준의 인지도라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당력을 낭비해야 할 것인가.

전국단위 중앙정치 투표율이 과반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대중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7대 총선과 비교하여 총 유권자수 대비 득표수를 계산한 각 정당의 실질 득표율을 보면 범보수계열의 득표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범진보계열로 분류되었던 정당들은 반토막이다. 즉, 대중이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제도권내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곧 그동안 범진보진영의 주류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와 거리가 멀었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파산이자, 진짜 진보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던 과거 민주노동당의 패배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진보신당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단 급하게 '그릇'부터 만들었다면 이제 부터 그 그릇을 넓혀가면서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이 환멸을 느낀 그 지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부동산 거품 등 서민들이 고통받고 한숨짓는 바로 그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뜬구름잡기를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 하자

그러면서 또한 현재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현실적인 답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에 뿌리박고 진전되어야 뜬구름잡기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진보든 좌파든 보편적 인권, 평등한 사회, 생태적 삶 등 근본적 가치와 현재적인 실질적 의미를 연결지어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 처럼 '진보'냐 '좌파'냐 '초록'이냐 '사회'냐 같은 대중들의 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표면적 단어부터 따지는 시비는 건설적인 논의 방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름 딱지 붙이기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제도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왜 그 짓을 자꾸 또 하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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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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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3의 길과 신노동당, 오독과 베끼기를 넘어

책 표지 사진@인간사랑

기든스 저, 김연각 역,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인간사랑, 2007

영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만 하더라도 나에게 제 3의 길이니, 신노동당(New Labour)이니 하는 것들은 그냥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쯤일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신노동당이 집권한 영국의 현실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영국 정치와 정책에 대한 나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결국 영국에 대한 나의 논문 주제도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정치사상 영역까지 확장되는 등 신노동당의 존재가 지난 5년간의 나의 유학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물론 미리부터 밝혀두지만 그렇다고 내가 제3의 길과 신노동당의 열렬한 신봉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처음에 마냥 신기했던 그들의 정치와 정책방향도 수년간 관찰과 연구를 하면서, 그 한계 역시 목도하게 되어 이젠 그걸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제 3의 길을 주창하여 신노동당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안서니 기든스의 신서,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은 당연 남다른 의미로 다가 온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의미는 나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부쩍 영국식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늘은 것도 사실이다. 새롭게 헤쳐모인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직접 영국 사례를 거론하며 제3의 길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지향한다고 선언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도 말기에도 제3의 길의 한식구격인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의원은 이 개념을 가지고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책도 펴냈다.

하지만 이 들이 과연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신노동당은 그냥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90년대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맞서 새로운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낸 매우 정교하게 짜인 정치사상일 뿐만 아니라 그 일관된 논리와 원리는 지난 10여 년간 신노동당 정부 정책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있으며 이는 실제로 공공 서비스와 사람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다.

손학규 대표가 신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이야기 했지만, 글 쓰는 현재 총선 공식 선거운동까지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논란이 되어 왔던 ‘대운하’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어떠한 정책적 이슈를 만들거나 제기한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학계에서 논의가 된 ‘사회투자국가’는 더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거론된 ‘사회투자국가’의 논의 수준은 의문의 대상이다.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도 책에서 무슨 언변을 펼쳤던 간에 의료보호나 국민연금 등 그가 장관 시절 정책은 당면했던 복지 쟁점들에 대한 그의 대책이란 그 혜택을 줄이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보면 수사적인 유사점 때문에 자주 동종으로 취급받는 대처리즘에서의 복지와 사회투자국가에서의 복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3의 길이 글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대처가 표방한 신자유주의도 아닌 ‘제 3의’무엇인 것도 아니다. 신노동당은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노동당 정부의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고, 부정한 적도 없다. 오히려 핵심은 그 정신을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맞춰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노동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구노동당(Old Labour)은 구체적으로 따지면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애틀리(Attlee) 정부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래서 대처에게 정부를 뺏긴 6~70년대의 윌슨(Wilson) 정부와 카라한(Callaghan) 정부이다.

영국식 제3의 길을 마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표방하는 이른바 ‘개혁세력’이나, 옛 노동당이 추구했던 사회 정의에 대한 배신쯤으로 취급하는 ‘진보’쪽의 해묵은 비판 역시 이 점을 흔히 소홀히 하고 있다. 이 책에도 1장에 서술했지만 지난 신노동당 10년 집권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경제는 영국 현대사 사상 최장 안정 성장을 이뤘으면서 대처시절 상당부분 손상되었던 무상의료 등 공공 정책을 복원시켰을 뿐 아니라 대기기간 등 고질적 문제들 까지도 상당 수준으로 해결 해온 것이 사실이다. 아동 70만 명을 포함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 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기든스의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위치하고 있다. 즉 10년간의 신노동당의 성과와 한계를 들여다보면서 10년 전과는 또 다른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쟁점들에 대하여 새로운 혁신의 방향과 구체적 정책 대안들을 새로운 총리가 되는 (그래서 현재 영국 총리인) 또 다른 신노동당의 대표주자인 고든 브라운에게 보내는 고언 형식의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든스가 시의성 있게 가볍게 쓴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고민과 논의 깊이는 상당한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그런 면이 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점은 철저하게 영국적 상황, 그리고 책이 출판된 그 시점에 매우 충실하게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영국 정치 상황과 정책적 쟁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경우 오독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런 이 책의 약점은 번역을 통해 더욱 두각 되기도 한다. 몇몇 구절과 개념들에 대한 오역은 영국 정책에 대한 역자의 이해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번역 상 문제는 영국의 무상의료서비스 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건강보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NHS는 일반 조세를 기반으로 무상의료제도로 일반의원과 병원뿐 아니라 각종 보건 정책 기구들을 모두 포괄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공적 재원 수단으로 주로 한정되어있으며 보험료 납입에 의해 수급자격이 주어지는 사회보험방식인 우리나라 건강보험과는 개념부터가 전혀 다르다.

또 보건의료 부분에 대한 구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재단 병원(foundation hospital 또는 foundation trust)은 NHS에 속한 병원 중 평가가 우수한 병원을 중심으로 그 운영기구(trust)에 사설 병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율권과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NHS에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노동당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없이 번역이 되다보니 이런 시장적 성격을 고든 브라운이 약화시켰다(water down)는 말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전혀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경우도 있다. 교통정책(transport policy)이라고 하면 무난했을 법한 단어를 ‘수송정책’으로 번역한 것도 대중적 공공서비스로서의 원래 의미가 아닌 무슨 물류정책쯤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자의 영국 정책 쟁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정치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양해는 조금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와 영국 간 ‘정치’개념 차이를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즉, 이 책 자체는 새로운 수상에게 어떻게 성공적 정치를 해서 노동당이 또 집권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를 조언한 매우 ‘정치적’인 책이지만 내용은 정책적 논의로 빼곡히 차 있다. 이는 기든스가 일부러 정책 정치를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내용을 채운 게 아니라 이미 영국 정치에서는 정책에서 정치적 승부가 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 산실인 영국 정치가 보여주는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 정치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책이 주는 최대의 미덕은 그 역동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적 고민과 제안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고민은 물론 비단 영국적 현실에 국한하지 않은, 진보의 혁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대안을 고민하는 한국 독자가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공공(public)'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기하고, 보증국가(ensuring state, 본 책에는 ‘확신을 주는 국가’로 번역)의 개념을 제시하는 ‘4장 공공 서비스: 사람을 맨 앞에 두기’와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의 개념을 보여주는 ‘6장 생활양식 바꾸기: 새로운 의제’가 아닌가 싶다.

대처정부는 공공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민영화 시키거나 시장적 경쟁 요소를 도입한 것은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지만 일정부분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 독점 복지 모델의 문제점을 집은 것이기도 했다. 즉 그 당시 공공 서비스들은 대단히 관료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시민들의 요구는 종종 무시당하거나 이유 없이 주구장창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에 복지 감축으로 공공 서비스는 줄었어도 서비스 공급과정에 있어 국가의 독점적 지위를 깨뜨림으로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만족도는 높아진 사례들이 있다.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무엇이 진정 ‘공공성’인가에 대한 재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물린 보증국가라는 개념에서 국가는 공공 서비스 공급에 있어 더 이상 독점적 주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진정 효과적이고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보증하는’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이 구체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적극적 복지 역시 시장 기능 실패에 따른 사후적 개입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복지가 되어야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개인 책임과 선택권을 강조하는 복지 축소논리와 닮은 듯하다. 하지만 기든스가 제시하는 적극적 복지 개념은 개인의 책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적합한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장애인의 경우 가능한 사회에 참여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립성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율성을 꺾는 방식을 벗어나 한 개인에게 동원되는 공공 재원 통합해 개인 통장처럼 따로 계좌를 만들어 개인이 스스로 독립적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 예산제(Individual budget)같은 정책이 적극적 복지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딛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희망과 대안을 찾아 제시하기 위한 개혁 진영과 진보진영의 노력으로 점점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나도 영국 유학생활을 어떻게 하게 되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다른 사회를 깊숙이 체험하고 공부하면서 발견하게 된‘다른 사회에 대한 가능성’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다른 사회’가 영국도 아니고 그 ‘다른 사회’를 위한 길이 ‘제3의 길’도, ‘신노동당’인 것도 아니다.

나는 우리사회의 대안을 찾는데 있어 다른 나라에 주목할 때, 그 나라에서 제기되는, 그래서 그 나라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그 ‘무엇(what)'이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특정 정책이었던 어떤 정치사상이었던 간에 말이다. 오히려 그 ‘무엇’을 이해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작 얻어야 할 것은 ‘어떻게(how)'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떨어진 결과물만 달랑 물고 들어와 그 나라 성공사례를 권위삼아 써먹어 보려는 시도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 나라의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어떤 원리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기반을 통해 그 대안이 도출 된 것이며 또 그 결과물이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실천되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어떤 점들이 어떻게 문제가 되어 한계로 들어났는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의 제대로 된 함의를 찾는 다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이 책과 같이 다른 나라의 고민을 들여다 볼 때 항상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시민과 세계>에 기고하여 4월 12일 13호에 게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도 축약본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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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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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특히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이 부분은 많이 공감하게 되네요. 대처 정부가 기여한 바에 대해서도 동의하고요. 특히 유니버셜테스팅이라는 개념은 괜찮은 것 같아요. 결국은 그마저도 정치가 동원되기는 하지만요.
    • 2008/04/26 22: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공감하시며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원칙은 지키되 변화하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연해지고, 그래서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실에서 쉽지만은 않고 그러다가 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지만 말입니다.
  2. 라인
    2008/05/29 14: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서평을 읽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 비록 영국 실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보수 지배? 진보 분열? 지금 이런 것이 정말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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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개표가 완료된 10일 새벽 여의도 한나라당사 상황실의 종합상황판에 한 당직자가 당선이 확정된 후보 이름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남소연
한나라당

총선 이후 언론이며 논객들이며 저마다 총선 이후 정국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10년 진보 체제에 대한 심판"이라느니, "장기 보수 지배체제의 등장"이라느니, "진보정당이 분열 탓에 대가를 치렀다"느니, "향후 민주노동당이 진보 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느니 다양한 관점에 다양한 전망들이다.


하지만 서로 의견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당장 드러난 의석수와 득표수같은 수치들에 기대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작 우리 사회와 우리 정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진단을 찾아 보기 어렵다.


왜 투표율은 대표성에 의문을 가질 정도로 과반 이하로 떨어졌는지, 왜 아무런 쟁점도 없는 이상한 선거가 되어 가는지, 10년 만에 일어난 행정권력에 이은 입법권력의 교체에도 왜 이렇게 분위기는 그 이전의 권력교체와는 다른지, 이런 질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에 가려 실종되었다.


낮은 투표율과는 다르게 개표방송 시청율은 높았다는 뉴스가 들린다. 정장 사람들에게는 이제 정치란 정말 자신의 삶과는 별 상관없는 안방극장 드라마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친박연대'같은 코미디 같은 정당이 득표를 할 수 있는 이유도 투표 행위조차 죽어가는 드라마 주인공 살리라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는 안방 드라마로 전락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삶속에서 부딪치는 사회 문제란 점점 그 도가 넘어가고 있다. 당장 오르고 있는 물가도 일시적인 상승이 아니라 그 뒤엔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인도와 중국의 급성장 등 굵직굵직한 변화들이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신용 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침체는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주기적 침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소로스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되어온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 자체의 위기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에너지 위기, 기후 변화는 또 어떤가. 국내 언론들이 국제 문제에 소홀한 사이 이미 여러 번 식량과 식수 대란,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 석유의 급속한 고갈 등 치명적이고 암울한 위기에 대한 전망들이 다양한 근거들과 함께 출현하고 있다.


이런 위기들이 당장 어떤 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이러한 깊이조차 가늠하기 힘든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심각한 경제 혼란을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들어 있다. 세계는 그렇게 점차 불안해지고 있다.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투표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투표소

내부는 어떤가. 이미 최근 환율파동은 현재 우리나라가 얼마나 외부 충격에 취약한지 보여주었다. 현 정부는 70년대 독재시절 때도 잘 통하지 않던 관 주도 물가통제를 해법으로 내놓는가 하면 위기관리도 모자랄 이 때에 6% 성장론에 묶여 금리인하, 각종 규제완화 등 도박성 경제정책들을 쏟아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의 복지수준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사회 동질성으로 인해 그나마 유지되던 사회통합은 바닥에서부터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다. 97년 경제위기 때부터 심화하기 시작한 양극화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확산된 비정규직, 각종 고용 불안으로 일반적인 가계의 수입구조는 매우 불안해졌으며 최근 물가 상승은 고용의 상당수를 흡수하던 자영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나마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서 믿음이 있던 교육은 치솟는 사교육비로 인해 더이상 사회통합 기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속된 말로 이젠 있는 놈이 더 공부도 잘하고 없는 놈은 죽다살아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이는 현실 삶의 어려움이 자식에 대한 교육으로 해소되던 통로도 상실되고 있음을 뜻한다.


안팎에서 벌어지는 '위기'들... 탈출구는?


이렇게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전례없이 '있는 놈'과 '없는 놈'이 분리되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이는 전례없는 사회 계층 간 갈등이나 적대감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이러한 분리현상과 심리적 박탈감이 결부될 경우 어떤 새로운 사회 문제로 표출될지는 솔직히 가늠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지난 10여 년간 민주화되었다는 정치조차 이렇게 심각해지는 삶의 어려움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점들을 몸소 체험하였다. 그래서 점점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욕구가 제도 안에서 정치적으로 표출되는 길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 지방선거도 보궐선거도 아닌 전국단위 중앙정치 선거 투표율이 과반 이하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 쟁점도 의미있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몇석을 더 얻고, 박근혜가 무슨 발언권을 가지고, 민주당이 얼마나 선전을 했고 따위의 일들은 우리 사회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말 그대로 '정치연예' 뉴스거리에 가깝다. 안 그래도 다가오는 위기를 더욱 부채질 하는 현 정부가 그 '삽질'을 얼마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3월 8월 자양동 골목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도너츠를 사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물가인상

정작 문제는, 점증하는 사회 위기에 대한 해법은커녕 인식이라도 하고 있는 현실 정치세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획득해 봐야 보수지배체제는커녕 현존하는 무력한 한국 정치 전체와 함께 빠르게 몰락해갈 가능성이 크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과 깊이의 사회 위기 앞에서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국 제도정치 전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급증하는 사회 불만과 욕구가 제도 정치로 표출되는 길이 상실되고 만다면 그 통제하지 못하는 혼돈과 불안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현재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없이 폭력적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는 범죄들이 어떤 전조일 수도 있다.


뜬구름 잡는 담론이 아니라 포괄적 대안을 찾아라


진보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단순히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넘어, 더욱 크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담론 수준에 그쳐서도 안 되지만 개별적인 진보적 정책들의 나열로 그쳐서도 안된다.


현재 우리가 처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냉철히 파악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분석을 거쳐 핵심적이고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방향과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부터 차근히 다져나가며 정치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이다.


정작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이런 것이다. 단순한 몇 석과 특정 정치인의 발언권이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마저 그런 습관적이고 표면적인 논의에 머무르는 한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의 암울한 전망은 점차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2008년 4월 11일 오마이뉴스 기고, 12일 '으뜸' 기사로 보도

보도본 보기: '정치연예 코미디' 속에서 진실을 보자

*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 썼던 아래의 글을 다시 정리해서 기고한 것입니다.

2008/04/10 - [주저리 주저리/적어본 생각들] - 총선 후, 이제 정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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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반대론자의 치명적 모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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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 개들의 비참한 모습을 담긴 사진을 내세우며 개고기 반대운동을 하는 동물보호 단체의 시위. 그러나 이들의 반대운동의 이 개들의 법적 보호를 불가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시가 식당에서 취급하는 개고기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일제히 실시한다고 하자 동물보호단체들은 개고기 합법화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개가 인간의 반려동물이라고 주장하며 식용은 안될 말 이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에서 개고기가 불법인 만큼 엄격하게 단속하라는 것이다.

또 그들은 개고기를 먹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들을 때 마다 조금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여전히 저급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나는 동물권 운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개고기 반대 운동 같은 것에 집착하는 이른바 '동물보호'운동은 매우 편협하고 저열한 논리수준에서 발전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선 그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개고기 먹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다? - 극우 인종주의자들 논리만 답습

개고기가 불법화된 것은 1984년,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였다.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서양인들에게 거슬릴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그 배경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개고기가 국제 망신이라는 논리를 들이댄다.

그래서 이에 반박하는 사람은 개고기는 우리 문화라며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민족주의 까지 주장할 필요도 없다.

이미 서구 사회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입장은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그 기본적인 입장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다. 즉 다른 문화가 인권, 민주주의 등 기본적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무엇을 먹느냐'를 가지고 어느 민족이 미개하다느니 열등하다느니 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종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다는 이유만으로 미개하게 보인다며 창피하다고 하는 개고기 반대론자의 논리는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물론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나는 영국인들이 개를 애완동물로서 얼마나 각별히 생각하는지를 알기에 나서서 우리나라 개고기 먹는다 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물어본다면 솔직히 대답해준다. 때로는 이들이 감정적으로 싫어할 수는있다.

하지만 어느나라에서 무엇을 먹느냐는 것을 가지고 잘못되었네 마네 하는 것이 스스로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들이 더 잘안다. 어려서 부터 인종주의가 무엇이고 얼마나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배워왔기 때문이다.

혹여나 그런 것을 가지고 미개하다느니 했다가는 이들이 매우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인종주의자(racist)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잘알기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누가 공개적으로 누가 미개하냐 열등하냐를 얘기했다가는 법적문제에 까지 걸릴 수 있다.

따라서 행여나 누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하면 창피해 해야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인 것이다.

그럼 가끔 외국 방송에 한국 식용 개들의 비참한 모습이 방송되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그것은 개를 먹는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기본적 동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물론 이를 핑계로 은근히 인종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방송의 선정성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사실 식용개들이 아무런 공공기관의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 것은 개고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도 아직 불법으로 되어 있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개는 반려동물? 동물보호 한다면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발상

그리고 개고기를 반대하는 주요 논리중 하나가 개는 인간에게 가장 가깝고 충직스러운 반려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보호를 주장하며 개고기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가장 치명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소나 돼지, 닭들은 무엇인가. 개만큼 인간에게 가깝지 않아서? 즉 이들은 동물보호를 주장하면서 그 논리는 보편적 동물권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서구사회에서도 동물권 운동이 매우 보편화 되어있다. 하지만 이 동물권 운동은 말그대로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지 인간의 호불호에 따라 이 동물은 먹으면 안되고 저 동물은 먹어도 별 상관없는 그런 인간중심적 논리가 아니다.

따라서 서구 동물권 운동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동물들이다. 그래서 그 동물이 인간과 가깝던 멀던 인간의 이름으로 동물이 무수히 희생되는 동물 실험을 반대 운동이 현재 그 핵심이다.

그 보편적 동물권에대한 운동은 영향력이 꽤 커서 바디샵같은 업체에서는 공개적으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 까지 하고 있다.

이들 동물권 운동이 육식 자체에 공개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을 본적은 없다. 원래 잡식성인 인간이 육식을 하는 문제를 건들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물론 동물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개 채식주의자이긴 하지만 육식 반대운동을 공개적으로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이들이 타겟으로 삼았던 것은 식용 동물이 불필요하게 학대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살아있는 가축을 장거리 이동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졌었고 지금 현재 불법화 되었다.

이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개가 인간의 애완동물이라서 개보호 운동만 유독 활발하다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흥미로운 부분이다.

개고기 합법화 반대? 오히려 이들이 개학대 방조하고 조장

개고기 반대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진에는 지나치게 비좁은 철짱에 꾸역꾸역 처박혀있는 개들의 모습 등 끔찍한 모습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주장한다. 개고기를 먹는 결과라고.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개고기를 반대하느라 오늘도 현실적으로 수없이 사육당하고 도축당하는 개들를 합법적 보호의 틀로 집어넣지 못하게하는 개고기 반대론자의 책임도 부정할 수 없다.

개고기를 먹는게 창피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것이 애국이던 매국이던 개고기를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그것을 독재시절도 아니고 정부가 억지로 막을 수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먹는 사람도 안전하게 먹고 사육과 도축의 대상이 되는 개도 적절한 위생과 복지를 허용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의 현실을 무시한 반대운동 덕에 여전히 개고기는 불법으로 남아있어 그 대상인 개들은 공적 관리와 보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최근에 영국 등 유럽연합은 닭사육 기준을 강화해 닭에게 충분한 운동공간 등 적절한 복지 환경을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제정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유럽에서도 공장식 사육으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빽삑하게 들어찬 창고식 사육장에서 자신의 오물과 동료들의 시체를 밟아 가며 자라는 현실이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이 문제에 대해서 동물운동가들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법적으로 최소한의 복지를 닭에게 제공하는 것이 법으로 강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모두 이미 닭고기가 합법화 되어있어 법의 테두리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개고기가 계속 불법이면 사육당하고 도축당하는 개들에게 이런 법적 보호의 여지는 전혀 없다. 개고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계속 불법적인 상태로 놔두면 지금 공공연하지만 아무런 보호도 못받고 비참한 상태에서 사육당하고 도축당하는 개들을 보호할 공적 장치가 전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고기 반대가 오히려 자신들이 그렇게 아낀다는 반려동물의 공공연한 학대를 오히려 방조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반려동물 운운하는 이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개들의 학대를 방조하고 있다는 이런 현실을 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차라리 개고기를 법적 테두리에 집어넣고
모든 가축에 대한 보편적 동물권 운동을 모색하라


서울시는 현재 법적 가축에 속하지 않은 개를 출산물가공법상 가축으로 집어넣는 것을 건의 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식용상 위생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식용으로 사용되는 개의 공적 규제장치인 법적 테두리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동물보호 단체들이 식용 개의 유통, 도축 과정에서 동물권 보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길 뿐더러 이는 사육의 문제에 까지 발전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 혜택은 비단 인간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개만 보호하려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현 동물 보호 운동의 한계를 넘어 모든 가축에게 보편적으로 그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그뿐인가. 덕분에 그동안 서로 적에 불과했던 개고기 애호가 들도 적합한 먹거리를 제공받게 된다. 동물보호 운동과 육식가들의 윈윈지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서구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닭과 같은 가축의 기본적 동물권을 보장하려는 운동 덕분에 결국 공장식 사육으로 비정상적인 비만닭 일변도였던 닭고기 시장에 보다 적합한 사육환경에서 적당히 운동을 하면서 자란 건강하고 질좋은 닭고기가 공급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동물권 운동가들은 이런 양질의 고기를 돈을 더 주고서라도 더 많이 소비하도록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여전히 개고기는 단속하면 된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 전두환 시절도 아니고 국민 건강에 대한 위험같은 객관적 이유없이 단지 개고기가 그들에게 혐오스럽다는 매우 주관적인 논리로 국가가 국민의 기호까지 통제하기를 요구하는 역시 극우적 사고의 말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발 이러한 유아적이고 저급한 논리에서 벗어나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잘 보고 배워서 21세기에 맞는 제대로된 동물권 운동으로 거듭나길 진정으로 바라는 바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동물권 운동의 극단에는 동물 실험 과학자 차에 폭탄을 설치하고 기니피그 업자 장모의 무덤을 파헤치는 매우 극단적 행동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전철을 밟아서도 안되겠지만 말이다.


댓글에 대한 몇가지 답변

우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논쟁적인 주제라 반응이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정도까지 일지는 몰랐습니다. 꾸벅... (-.-) (_._)

평소에 생각이라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혹시 내가 뭘 모르면서 떠드는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동물보호운동에 큰 관심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그냥 개고기 반대 운동에서 드는 생각을 쓴 것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한편에는 댓글을 통해 내가 모를 수 있었던 논리들도 접한다면 좀 제대로된 논쟁이 되겠다 싶은 기대도 있었는데 지금 이 답변을 쓰는 현재까지는 좀 실망스럽습니다.

가장 많이 제기된 반론들을 들며 간략한 답변을 하자면...

개고기는 우리 전통이 아니다? -> 지금 전통이냐 아니냐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현재 적지않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떤 통계를 내미시는 분들이 있는데 지금 단속 대상이되는 수백개의 식당이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개고기는 항생제가 많고 매우 비위생적이다? -> 오히려 합법화를 주장하는 근거인것 같은데요.

개고기는 건강에 해롭다? -> 과도한 육식이 해롭다는 얘기로는 말이 되어도 개고기를 먹으면 무슨 병에 걸린다더라는 어거지식의 주장은 좀 황당합니다.

개고기를 합법화하면 산업화해서 규모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 글쎄요.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많지만 님들 처럼 극히 혐오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대형 업체들이 개고기 사업에 뛰어들어 상품화시키는 식의 산업화는 별로 걱정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개고기는 합법화된들 현재처럼 거리 식당을 통해 판매가 되겠지요. 어차피 현재도 단속이 거의 유명무실한 만큼 합법화 한들 소비가 급격히 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합법적 테두리에서 관리가 되는 만큼 비용이 늘어나 개고기 가격이 올라가 결과적으로 소비가 줄수도 있죠.

개고기 반대운동으로 모든 동물권도 향상될 것이다? -> 한편 일리가 있을 법도 하지만 저는 여전히 개를 다른 가축과 분리시키려는 개고기 반대운동이 어떻게 전체 가축의 보편적 동물권과 연결될 수 있는지 전혀 납득할수가 없습니다.

개고기를 가축으로 하면 공장식 사육으로 갈수밖에 없어 엄청난 학대가 자행될 것이다? -> 그럼 지금 공장식 사육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괜찮고 개만 안된다고요? 차라리 개를 그 가축의 테두리에 넣고 친숙한 개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축산물가공법을 개정하던 다른 법을 촉진하던 전체 가축을 그 비참하다는 공장식 사육에서 벗어나게 해야하는 것 더 효과적인 것 아닙니까? 물론 공장식 사육을 줄인다면 이 과정에서 결국 고기의 질은 좋아질 수있지만 그만큼 가격이 올라갈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안도 생각해봐야겠지만 말이죠.


물론 제가 댓가도 바라는 것 없이 측은지심에 버려진 동물을 보살피는 동물보호운동가의 노력까지 평가 절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단지 동물보호운동이 대중 운동으로서 성장하려면 스스로의 논리를 좀 발전시켜 좀더 건설적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개고기 반대운동에 묶여 발전없는 모습을 지적한 것입니다. 앞으로 좀더 생산적 토론 기대합니다.

p.s: 글 속에서 육식가와 동물권 운동의 윈윈 사례로 얼마전 영국 공중파 중 하나인 채널4에서 대대적으로 방영되었던 영국의 닭고기 관련 캠페인을 링크 걸어 놓습니다. 동물보호운동하시는 분들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네요.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까를 보여주지 어느누구도 닭먹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하진 않는 군요. 닭고기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수둑룩한 나라에서 말이죠.
휴의 치킨 런: 닭 공장식 사육 실태를 고발하고 보다 인간적 사육이 가능한지 직접 운영해본다. http://www.channel4.com/video/hughs-chicken-run/
제이미의 닭만찬: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가 직접 초대한 저녁 만찬. 거기에서 직접 제이미는 닭사육 실태와 도축과정 등을 보여주며 어떻게 닭 소비문화를 바꾸어서 닭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모색해본다.
http://www.channel4.com/food/on-tv/jamie-oliver/jamies-fowl-di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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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고기 예찬론

    2008/04/16 11:24
    삭제
    얼마전 말복이 지나면서 한 애견인의 개고기 금지론을 들었다...그 애견인은 어떻게 그 사랑스러운 개를 먹을수 있느냐 하며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무진장 열을 올렸다..[뭐 개고기가 이렇게 생겨나는줄 아나보지?]몇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개고기 먹는걸 반대하는 당신은채식주의자여서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냐고 꼭 묻고 싶다.여기서 잠깐... 로버트할리와 이다도시가 방송에 나와서 한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이다도시 : 개를 어떻게 먹어요.. 아우...
  2. 박지성 개고기송과 '한국인 치와와 구워먹으려다' 프랑스야후

    2008/04/16 12:04
    삭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http://www.ManUtd.kr)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7호골을 넣은 박지성의 친필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경품으로 걸고 홈페이지 내 '팬존'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여해 보시죠! 박지성의 3월2일자 리버플과의 경기에서 환상적 헤딩골과 도움으로 '박지성'응원가가 경기장내에서 퍼졌습니다. 그런데, 박지성 응원가의 내용이 본 포스팅에 관계된 부분이 있기에 재포스팅하여 글을 올리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3. 싸나운 개에게 엉덩이를 보여주면 개가 좋아한다?(실험)

    2008/04/16 12:05
    삭제
    웃긴 동영상입니다. ㅋㅋㅋ
  4. 개고기 합법화 법안 통과될까?

    2008/04/16 21:47
    삭제
    "한국은 개를 먹는 야만적인 나라", 우리나라를 규정짓는 대외 이미지 중에 하나 입니다. 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정말 바꾸기가 힘든가 봅니다. 외국에서 살던지 여행하던지 아님 외국인을 만나던지 한번쯤은 언급되는 대화의 주제이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살만한면 방송이나 미디어에서 한국을 소개하며 꼭 한번은 건드리고 갑니다. 캡쳐(C)4월3일자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시드니 대표적 일간지인 시드니 모닝 헤럴드 지난주 4월3일자, 서울시에서 개를 가축화 하는 방안..
  5. 개고기 반대론자를 위한 변명

    2008/04/18 07:30
    삭제
    별로 이슈가 될 것 같지 않음에도 사회적으로 치열한(..

원나이트 스탠드인지 진지한 관계 바라는지 얼굴에 다 써있다?

2008/04/13 00:29

나에게 접근하는 이사람, 그냥 오늘밤 어떻게 해보자는지 아님 정말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지 얼굴 보면 안다? 영국 모어4 뉴스(More4 News)에서 보도한 영국 더햄 대학(Durham University)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렇다.

사람들이 이성의 어떤 얼굴에 호감을 갖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꾸준히 연구해온 이 심리학 연구팀은 일시적 성적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과 장기적이고 진지한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의 얼굴 형태를 따로 조합해 보니 서로 다른 얼굴의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음 사진은 각각 남녀 얼굴의 예이다. 한번 잘 지켜보고 남성의 경우는 여성의 얼굴 A, B중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지, 여성의 경우는 남성 C, D 중 어느쪽이 마음에 드는 지 한번 골라 보기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다른 얼굴 중 남성의 경우는 일시적 성적관계를 선호한다는 여성의 얼굴을 대체적으로 더 많이 선택하고 여성의 경우는 장기적이고 진지한 관계를 선호한다는 남성의 얼굴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것이 각기 성의 다른 관계에 대한 선호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즉, 남자는 본래 일시적 성적 관계에 대한 선호가 높고 여자는 보다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이 바로 그런 다른 특성을 무의식 중에 잡아낸다는 것이다.

그럼 한마디로 남자는 다 늑대고 여자는 보다 인간적이라는 건가?

어떤 이들은 이와같은 실험및 연구결과들이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과학 자체에 대한 신뢰에도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아무튼 어떤 얼굴이 더 마음에 드는지 골랐다면 자신도 그런 구분법에 속하는지 한번 체크해 보시라. (재미없게 정답부터 미리 보진 마시고...)


그럼 골랐다면.... 여기를 클릭!



이런 특징이 정말 잘 구분될 수 있다면 바람둥이들이 좀 힘들어지지 않을까?

어떤가? 본인도 연구에서 밝힌 그런 유형에 들어맞았는가?

보도 원문을 보시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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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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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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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하고 비슷하네여

우리사회가 보수화? 보수정당 실질 득표율 변동 거의 없어

투표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 및 기타 보수 정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함에 따라 우리 사회가 보수화 되었다는 전망을 쏟아놓고 있다. 정말 그런가? 그런데 분위기는 왜 이렇게 썰렁한가. 당장 드러나는 의석수에 가려진 진실을 들여다 보기위해 중앙선관위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을 해보았다.

인물 등으로 다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지역구 투표를 제외하고 정치성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정당투표만 가지고 한번 따져보도록 하자. 우선 투표인 수를 기준으로 17대와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정당 성향별 득표율을 보면 아래 그래프와 같다.(실제 정당득표 합계가 아닌 총투표인수로 계산하여 실제 비례대표 득표율과는 차이가 있음)

의석수로 반영된 상대 득표율에선 보수세력이 약진한듯 하지만...


보수세력은 17대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자민련, 18대에는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를, 개혁세력은 17대 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18대 때 통합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을, 진보세력은 17대 민노당, 18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총투표자 대비 정치 성향별 각 정당 득표율 합계 추이

17대 때보다 18대 선거에서 16.23%가 빠진 개혁세력과 4.37%가 감소한 진보세력의 몰락도 눈에 띄지만 반면 18.52%가 증가하여 57%를 차지한 보수세력의 약진도 눈에 들어온다. 과연 우리사회 보수화를 이야기 할만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는 낮은 투표율에 의한 착시현상이 들어있다. 결국 선거의 결과 의석수로 나타나는 이 득표율이란 상대당을 찍은 다른 표에 비해서 자기 표가 얼마나 많았나를 따지는 상대적 득표율이다. 즉, 실제 절대적인 지지세가 얼마나 늘었는지와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지난 17대 때 60%에 비하여 46%로 급감했다. 그만큼 낮은 투표율에 의한 선거의 대표성 문제와 더불어 민심 왜곡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바닥 민심 반영하는실질 득표율에선 개혁진보 몰락에도 보수 지지 거의 변동 없어

그렇다면 이를 고려하여 과연 각 정치 세력의 실질 득표 추이를 보기 위해 전체 총 유권자수를 기준으로 다시 득표율을 계산해 보면 결과는 어떨까. 아래의 그래프는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18대 선거에서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몰락은 총유권자 대비 득표율이 17대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 보수세력이 정작 추가로 확보한 득표수준이란 매우 초라한 수준으로 드러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총 유권자수 대비 정치성향별 각 정당 득표율 합계 추이


즉, 보수세력이 200석이상 이라는 절대 의석을 차지 압승(?)은 개혁진보세력에 대한 실망과 환멸의 결과 투표율이 떨어져 나타난 철저한 어부지리인 셈이다. 선거 결과가 제도권내 개혁과 진보 정치세력이 몰락한 것을 보여주긴 해도 그것이 '보수화'되었다는 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결국 보수세력이 확보한 지지기반이라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는 탄핵 역풍이 몰아치던 시절에서 고작 3%를 확장하는 데 그쳤다. 보수세력은 진보개혁세력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승인받는데에는 실질적으로 완전 실패한 것이다.

보수지배? 최악이었다는 탄핵 역풍때 비해 실질 득표율 고작 3% 증가

다시 말해 우리사회가 보수화가 된 것이 아니라 제도 정치권 내 개혁세력 및 진보세력이 정치적 지지를 상실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보수세력은 이런 호재에서도 거의 자신의 지지를 확장하지 못했다. 보수 주도체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기에는 매우 민망한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총선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논란이 있던 정책 밀어붙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금감한 투표율 속에 감추어진 진짜 민심은 보수세력을 주도세력으로 승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의석수만 믿고 무리수를 두다간 보수세력의 정치적 생명만 단축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장기지배체제라느니 하는 것은 현실은 보지도 못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이러한 가려진 진실은 개혁, 진보세력이 무엇을 반성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의미 있는 함의를 제공한다. 보수화 되었다고 거기에 편승하다간 같이 망한다는 얘기다.



[참고]17대, 18대 국회의원선거 정당 정치 성향 별 득표 분석 표

 

17

18

증감

각 정당 득표수

보수1

        7,613,660

        6,421,727

 

보수2

            600,462

        1,173,463

 

보수3

                         -

        2,258,750

 

개혁1

        1,510,178

        4,313,645

 

개혁2

        8,145,824

            651,993

 

진보1

        2,774,061

            973,445

 

진보2

                         -

            504,466

 

유권자수

      35,596,497

      37,796,035

 

투표자수

      21,581,550

      17,415,666

 

투표율

60.63%

46.08%

 

투표인수 대비 득표율

보수

38.06%

56.58%

18.52%

개혁

44.74%

28.51%

-16.23%

진보

12.85%

8.49%

-4.37%

유권자 대비 실질 득표율

보수

23.08%

26.07%

3.00%

개혁

27.13%

13.14%

-13.99%

진보

7.79%

3.91%

-3.88%

* 17대 정치성향별 정당 분류
보수정당: 한나라당(보수1), 자민련(보수2)
개혁정당: 민주당(개혁1), 열우당(개혁2)
진보정당: 민노당(진보1)
* 18대 정치성향별 정당 분류
보수정당: 한나라당(보수1), 선진당(보수2), 친박연대(보수3)
개혁정당: 민주당(개혁1), 창조한국당(개혁2)
진보정당: 민노당(진보1), 진보신당(진보2)


- 2008년 4월 13일 프레시안에 기고, 14일자로 보도

보도본 보기: "국민들은 보수의 손 들어준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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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3 08: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굉장한 자료군요!! 퍼가서 마구 돌리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 2008/04/13 16: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CCL에 표시된 것 처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금지를 조건으로 얼마든지 이용 가능합니다.

총선 후, 이제 정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란나라를 보았니... 과반을 확보한 한나라당, 그러나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폭탄을 혼자 다 끌어안게 되었다.


다시 습관처럼 언론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석 숫자를 따지면서 열심히 정국 전망을 하고 있다. 과반도 안된 총선 투표율에는 '민주주의 위기'라는 형식적 수사만 붙이고 말았을 뿐이다.

다들 총선이 쟁점도 이슈도 없는 이상한 선거라고들 했다. 출범 100일도 안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벌써 급격하게 떨어진 가운데 공천 혁명 바람까지 일으켰던 민주당에게 돌아간 성과는 많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결국 보수정당끼리 나누어 먹었다. 친박연대니 하니 정치인지 장난인지 구분도 안되는 정치 행태에도 그들은 도합 200석이 넘는 의석을 휩쓸었다.

숫자를 따지는 언론은 보수중심의 정치권력의 재편이라고 진단하고 나섰다. 탄핵 역풍으로 도래했던 진보중심 정치가 뒤집힌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과반도 안되는 투표율에 민주주의적 대표성에서 부터 흠집을 안고 시작하는 이 보수 중심 정치에는 예전에 있었던 무언가 변화에 대한 바람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자기 세상이 다시 찾아왔다고 흥분하고 있을 보수 정치인 나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실제 이번 선거로 보수세력은 완벽하게 다가올 폭탄들을 혼자 꼼짝없이 다 껴안게 되었다.

오늘의 '압승'은 내일의 '재앙'이 될 가능성이 매우 짙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답답해 지는 이유는 그 재앙이 보수세력에게만 그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절망의 정치

우리 현대사가 부침을 많이 겪긴 했어도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래도 안정된 사회를 구축해 왔었다. 6~70년대에는 독재의 그늘 밑에서도 우리사회는 전반적으로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이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아래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로 보상을 받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간에 걸친 두자리수 경제성장은 독재로 인한 소외와 자유 억압의 문제를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는 정도 였다.

8~90년대 어느정도 물질적 풍요가 달성된 이 후로는 그동안 억압되었던 소외와 정치적 사회적 자유의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경제적 상황아래 집합적인 사회적 욕망은 이 방향으로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기대는 80년대 말 대규모 민주화 운동과 90년대 단계적 민주정부 이양과정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사회는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97년 경험한 IMF 경제위기는 실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은 그 이전과 문제의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경제 개발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진전되었던 사회적 욕망에 대한 실현 주기가 일단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어느정도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의 획득으로 이제 더욱 나아간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는데 되려 상당수 사람들에게 그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이 주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위기 극복에 대한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형성이 되었었고, 정부는 4인 가족 100만원 소득은 보장하겠다는 말로 유명했던 기초생활보장법 등 복지의 제도적 확장으로 어느정도 응답하였다.

또한 신용카드, 대출 촉진 등을 이용한 단기적 부양책으로 체감경기를 올려놓아 여전히 새로운 기대에 담긴 사회적 욕망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은 본격적인 문제가 점점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삶의 질의 향상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양극화는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노동인구의 반을 넘은 비정규직 문제 역시 날로 심각해 지고 일반적인 직장도 불안정해져 가계수입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었다. 그 반대로 일반 가정 가계 지출은 폭증하는 사교육비로 점차 심각하게 압박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7~80년대식 관료사회의 지배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는 개별적 개혁 지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정치와 거의 연결 시키지 못했으며 그 결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 사회적 위기에 전혀 의미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체감하는 삶의 질과 박탈감이 날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정부로 표출되었던 새로운 삶의 질에 대한 기대는 점차 분노와 실망으로 변해갔으며 그것은 이미 지난 대선으로 나타났다.

과거 회귀적 결과를 빚은 지난 대선은 그 이전 대선과 같은 사회적 기대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 필요없고 경제는 살리겠지'하는 자포자기적 투표 행위에 가까웠다.

혹자는 이를 철저한 계약적 투표라고도 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 듯 당선 후 이렇다할 성과는 보여주지 못한 채 영어 몰입교육 등으로 사교육을 부채질 하는 등 불안감만 높이자 지지율은 기다릴 것도 없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것이 지금 총선이었다. 새 정부에 대한 급격한 지지 철회가 상대당인 민주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 민주당 집권에 대한 체감이 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즉,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사회적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 아니 대안의 부재로 표출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겐 총선이 더이상 의미가 있는 것일 수가 없다. 선거가 자신의 삶과 별 관계가 없다는 반복적 학습이 된 국민들은 선거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계니 친박연대니 여야 중진들의 빅매치니 하는 정치연예뉴스들은 말 그대로 안방극장의 드라마 이상의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쟁점도 이슈도 살리가 없다. 그냥 사람들은 정치를 봐도 드라마 보듯하는 인식 이상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뢰와 폭탄이 즐비한 우리사회 현 상황

하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은 상황은 정말 만만치 않다. 우선 경제위기의 경우 위아래 안팍으로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엄습해 오고 있다. 당장 세계에서 신용위기로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암울한 경제 전망은 아마 베이징 올림픽 후에 제대로 그 위력이 나타날 것으로 국내외에서 많이들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바이오 연료, 중국과 인도의 소비 급증으로 인한 각종 곡물, 유제품 등 식품가격 상승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은 완화되기는 커녕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안그래도 악화된 우리나라 고용상황에 치명타를 안겨 줄 가능성이 크다. 식품가격 상승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은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주어서 기형적으로 유지되었던 자영업의 고용 흡수 효과를 급격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인한 불안안 고용시장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 최장 시간을 자랑하는 장기노동과 맞벌이 등으로 어느정도 생활 유지를 할 수 있으면서 낮은 자영업으로 인한 서비스 가격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각종 가사노동) 비용과 시간 또한 상쇄 받을 수 있었지만 식품가격 상승은 이같은 고리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영업으로 인한 고용 흡수 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의 삶에도 단순 인플레 이상의 타격을 입힐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은 아직 그 깊이 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70년대 같이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의 조정으로 인한 위기가 아니라 달러화로 상징되는 그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해석들은 지금 다가오는 위기 상황이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피크 오일설(석유 최대 생산 시점이 지났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은 산업혁명이후 가장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에 비하면 가장 세계 정치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기후 변화 문제는 아직 불확실한 위기측에 속한다.

외부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사회적 욕망의 정치적 표출 경로가 차단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인 새로운 이행과정을 생각해 볼때 그 심각성은 매우 커진다.

즉,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을 지나면서 이전 사회 계급구조의 물적 기반이 거의다 붕괴되었엇다. 이러한 배경이 결국 최근까지, 경제수준에 비해 세계적으로 최악으로 평가 받는 열악한 분배구조나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어느정도 유지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던 셈인데 점증하는 양극화가 이런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급증하는 사교육비가 결국 일반 가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어느정도 사회 계층간 간극을 심리적으로나마 무마시켜 주었던 교육 제도의 의미마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교육의 일반화는 '용'은 커녕 '생존'을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을 치루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예전에 자식에 대한 교육의 열정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긴 것이었지만 이제는 자식을 생존 시키기 위한 절박한 의무 이상이 되지 못해 자식 교육을 통한 희생적 삶에 대한 보상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새롭게 계급화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전통적 의미의 생산수단 소유여부로 따지는 옛날의 그 '계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단 경제적 소득 뿐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에서의 소외까지 결부되어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의 붕괴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그동안 부자든 아니던 모두 한국 공동체의 일원이며 서로를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욕망이 정치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은 매우 혼돈스럽고 위험한 형태로 변질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구조의 전환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제도와 결부되어 '연착륙'으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간 또는 개인과 사회간의 격렬한 충돌로 표출되는 '경착륙' 또는 심할 경우 '사회적 붕괴현상'까지 경험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요즘 점점 문제가 되고 있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형 범죄, 어린이 등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 등으로 시작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더욱 심각해지만 예전에는 별로 생각지 못했던 수준의 폭력과 범죄가 단순히 불안감을 넘어 일상적 위험으로 넘어오게 될 수도 있다. 거리에서 이유없이 총맞아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되는 남미 일부국가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제까지 정치적 집단적 의사 표현이란 노조나 사회단체 등에 의해 '조직'된 집회와 시위정도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에서 비조직적이고 극단적으로 폭력적 형태인 폭동과 약탈이 출현할 수도 있다.

사회적 위기 가속화시키는 정부와 대안없는 야당

 이미 현 정부는 이렇게 심화되어가는 상황에대한 대처 능력은 전혀 없을 뿐더러 가지고 있는 대책이란 족족 상황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을 몇달 채 되기도 전에 적나라 하게 보여주었다.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사회집단간 합의를 바탕으로한 위기관리체제를 준비해도 모자를 판에 가능하지도 않은 6% 경제 성장 수치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는 이명박 정부 머리에는 이자율 인하, 규제완화 등 각종 도박적 정책들만 즐비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민영화등 그나마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무장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안그래도 급속하게 다가오는 '경착륙'의 충격을 더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서민들이 위기상황에 맞는 충격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는 얘기고 이는 사회적 붕괴 현상을 더욱 극적으로 출현하게 만들 수 있다.

 총선으로 집권세력으로 등장한데 이허 입법기관까지 장악한 보수 세력은 점증하는 사회적 불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혼자 다 떠맡게 될 것이다. 누가 발목을 잡는다느니 하는 핑계거리마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어느정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발전하기 힘든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다른 표출경로도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대 야당인 민주당, 소위 '개혁세력'은 그 대응능력의 바닥을 노무현 정부에서 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싹수마저도 전혀 보여준바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개혁세력의 최대치가 노무현 정부 정도라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치명적 한계는 명사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데에 있다.

즉, 자체의 개혁적 '색채'만을 가지고 어떤 사회적인 근본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세력 기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구 유럽사회가 전후 복지국가로서의 체제개편을 이루어 낼때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세력 기반이 진보정당을 통해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었던 그런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개혁세력'이라는 정치 집단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어떤 사회문제에 대한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떤 혁신적인 안이 아니라 어느정도 '색채'를 내면서 기존 질서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어설픈 타협안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이런 한계는 현재와 같은 근원적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 전형적 예를 보여준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 였다.

그렇다면 그래도 의미있는 의석수는 확보한 민주노동당은 어떨 것인가. 그 한계역시 지난 국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금 총선에서의 기반을 바탕으로 재창당을 포함한 혁신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장악해온 자주파 인사들이 하는 얘기의 핵심이란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하자'는 정도가 고작이다. 80년대에 묶여있는 그 사고는 재야 운동권과 제도권 정당의 역할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책임있는 정당 인사는 최근에 '개방형 경선'을 민주노동당 개혁안의 핵심인 것 처럼 이야기 했다. 개방형 경선이 구민주당에서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명사정당으로서 대중적 기반이 없는 한계를 그런 일종의 '편법'을 통해 보완하는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출발부터 대중정당으로 시작하여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당원제도를 갖춘 민주노동당에서 개방형 경선을 '개혁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가 기존 정치권과 무엇을 어떻게 차별하고자 했는지 하는 기본 문제와 방향의식 까지도 상실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유의미한 의석수 확보는 이런 수준의 '내부 혁신파'의 발언권을 높여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진보신당, 진짜 큰 그림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것은 뚜렷한 사회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자 하고 그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정확히 잡혀있는 진보신당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의 원내 진출 실패는 내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최소한의 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세력으로서의 운신의 폭이 협소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출발은 철저히 밑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지역을 다져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그것이 정공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얘기한 이러한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으로 확보해 놓고 있는 실력있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현실정치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아온 대표 정치인, 그리고 현장과 호흡했던 활동가들을 포괄하면서 실무 연구 인력까지 보강된 '진보 대안 위원회'같은 사업을 생각해 봄직하다.

당연히 이런 논의는 담론에 그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정말 몇년에 걸쳐 수회의 논의용 보고서와 연구보고서를 거쳐서 우리사회의 위기 현상황과 핵심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는 것에서 부터,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그에 이르는 전략적 방향과 실현가능성있는 전략적 정책 프로그램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강령수준의 비전수립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명분과 담론만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세력 재편을 주도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또 그 논의 결과 생산된 단계적 정책들을 하나하나 지역사업으로 부터 현실화해내고, 동시에 중앙정치를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잠재적 실력을 입증 받을 수도 있을것이다.

진보신당은 책무는 단순히 명분상 '진보세력'으로서 한국 현실 정치에 자리잡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안전벨트도 없이 위기로 치닫는 한국사회에 그래도 남아있는 현실적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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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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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의 최대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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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제
    최동규 / 정치평론가 이번 총선은 보수진영이 압승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수의 과반을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편하게 해줄 수 있도록 국민이 ‘견제론’ 보다는 ‘안정론’을 지지한 결과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현상적 분석이다. 내용은 반대이다. 이번 총선은 안정론을 지지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선거가 아니라,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영남의 맹주는 박근혜 한나라당은 영남이 최..
  2. 찝찝한 18대 총선 :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2008/04/1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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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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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다가오는 내일이 참으로 걱정되는군요. 그냥 흘러가라고 두기에는 이번에는 정말 너무 위험한듯 합니다.
  2. 2008/04/10 15: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트랙백을 따라 왔습니다. 이번선거로 진보세력이 새로운 재편 논의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심도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암스테르다머
    2008/04/11 00:5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외부의 위기 상황, 한국 사회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하게 표출될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밑줄 쫙 긋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이 보여준 것 같은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정치에 사람들이 붙으면 됩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닫힌 정당이 아니라 열린 정당, 다양함을 인정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정당을 만들어야죠. 현대의 군주는 정당이란 명제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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