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시대의 끝, 블레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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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까지... 끝...
"And that is that... the end"

그의 10년 총리직의 마지막 날, 마지막 주간 국회 대정부 질문(Prime Minister Question time, 매주 수요일 1시간씩 수상 출석하에 갖는 대정부 질문 시간, 광범위한 정책 이슈가 제기되고 여야간 격렬하고 역동적인 토론이 오간다. 영국 정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시간), 토니 블레어의 말그대로 마무리하는 그의 발언 끝은 약간 흐려지면서 떨렸다. 지난한 10년의 세월을 많은 아쉬움 속에 끝내는 복잡한 심경이 섞여있는 듯. 울듯 했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말 많았던 그의 집권 10년, 그 만큼이나 그의 고별식은 길고 길었다. 첫번째 선거에서 신노동당 2인자 고든 브라운과 첫 집권 후 양도하겠다는 밀약이 있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는 끝내 두번째 선거 승리후 쭉 다우닝 10번지(10 Downing Street, 총리관저 주소로 수상 권력의 상징)에 머물러 있다가 세번째 선거까지 치르고 겨우 다음 선거전에 물러나겠다고 약속, 그러고도 여러 홍역을 치르고서야 작년에 겨우 1년 내에 그만두겠다고 약속, 지방선거를 앞두고 곧 사임 날짜를 발표하겠다고 약속, 지방선거 참패 후 겨우 한달뒤 물러나겠다고 약속, 그러고서 이제야 그 마지막 날을 맞이 한 것이다.

블레어는 2003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때 부터 수상이었으니 거의 그의 집권 기간 반을 그의 영국에서 보낸 셈이다. 영국 사람들은 장장 10년 동안 그의 정부아래서 지냈다. 한 수상이 10년이상(최장 기록은 대처로 장장 11년!) 집권을 할 수 있는 것도 의원 내각제(다수당 당수가 수상을 지내는) 특징이지만 선거도 없이 (다수당 당수 선거로) 한나라의 수장이 바뀌는 것도 다른 민주국가에서 드믄 영국 정치의 특별 이벤트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블레어 하면 무슨 노동당의 배신자 쯤으로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는데 과연 이들의 정치력을 직접 목도하고도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연코 말하건데 새로운 사회적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아젠다를 정치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화 시켜서 정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계적 전략에 따라서 각 부분마다 일관된 정책적 실행을 통해 제시된 목표들을 달성시켜 나가는 이들의 정치력은 우리나라의 정치를 '정치'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특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대처때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국가 무상의료시스템을, 유럽 평균 이하였던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모든 지역 의원(GP)은 이틀안에 진료를 받게 하는 등 NHS 최대 문제로 꼽히는 대기기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또한 '우리세대 안에 아동 빈곤을 없애버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실제로 설정하고 그 전략에 따라 수년간 정책적 노력의 결과 6십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 시켰다. 고질적이었던 실업 문제는 전국적으로 잡센터플러스라는 '노동연계복지' 전략의 핵심 기관들을 지역마다 배치시켜 '신고용협약(New Deal)'이라는 대상집단별 장기적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율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렸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시장정책을 바탕에 깔고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노동당 정부는 최저임금수준을 지금도 매년 상당한 수준으로 인상시켜 현재 시간당 최저 임금이 우리돈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물가가 우리의 2배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실업율에 영향없이 이정도는 상당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영국내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였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율을 신노동당 집권기간 동안 1/3 이상(35%) 떨어뜨린 것에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심장질환 관련 지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반시설 및 서비스 확대를 비롯 직접적으로 사망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정책을 꾸준히 실행한 결과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렸던 것인 셈이다.

이 모든 주요 전략과 정책은 블레어를 필두로한 신노동당 세력(New Labour)의 주도아래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노동연계복지(Welfare to work), 노동급여보장(Make work pay), 모두를 위한 기회(Opportunity for all) 교육우선정책(education, education, education)등 신노동당의 정치적 핵심 아젠다가 실제 정책화 되어 실제적 변화로서 실현되었고 이는 국민들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민주화된 정부의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관료들의 포로가 되어 권위주의와 별반 차별없는 정책들을 아무 생각없이 반복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군사독재 시절에 낭독되던, 관료들이 써준 판에 밖힌 담화문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읽고 있는 모습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볼수록 부러운 모습이다.

영국은 그의 10년간 더 나은 곳이 되었다. 그를 끊임없이 비판했던 옵저버(가디언 일요일판)지도 전면 사설을 통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신노동당 비판자였던 토인비(가디언 칼럼리스트)도 그의 업적을 다룬 특별판 칼럼에서도 역시 같은 말을 남겼다. 오늘 마지막 대정부 질문이 끝나고 퇴장하면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노동당 의원들을 따라 보수당 의원도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수백년의 영국 의회역사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이 장면은 통크게 일어나 함께 하자고 손짓한 보수당 당수 카메론 덕분이기도 했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발전적이었던 10년을 이끌었던 수상에 대한 의회의 경의이기도 했던 셈이다.

물론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의 전략은 많은 비판 거리를 가지고 있다.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서 국가 축소에 열을 올렸던 대처와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원리를 공공 부분에 공격적으로 도입함으로서 시장체계의 공공에대한 우위를 인정한 셈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효율화를 가져왔을지는 모르지만 지나친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은 전폭적인 지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자부심인 무상의료서비스(NHS)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에 대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결과에 따르면 보수가 오른데 비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간자본계획(PFI)에 의해 민간 자본을 끌여들여 화려한 병원들을 사상 최대로 증설했지만 매년 민간 자본에게 연예산의 2~30%를 수십년간 환급함으로서 결국 공공 자본 비용 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서비스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블레어를 가장 수렁에 빠뜨린 것은 이라크 였다. 오늘도 두명의 영국 병사의 시신이 영국으로 인도되었다. 대량살상무기라는 거짓된 공포로 나라를 전쟁으로 몰고 간 것은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그가 빈곤율을 떨어뜨리고, 실업을 떨어뜨려도 나라를 잘못이끈 지도자란 오명은 어딜가나 끝까지 따라 다녔다. 사회자체가 붕괴위기에 치닫고 있는 이라크인의 고통은 국내에서 그가 무슨 업적을 남겼던 씻겨질리 없다. 왜 그가 그랬는지는 신노동당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여전히 가장 강력한 조언자인 안서니 기든스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니 그 속을 누가 알랴.

그런 그가 이제 중동평화 사절로 활동을 한다고 한다. 최근 중동을 피로 물들게한 그 주 장본인이 평화협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여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마스를 서구국가들이 배제하고, 그로인한 수많은 갈등 끝에 이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타의 아바스만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두개의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도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제아무리 블레어를 무어라 그래도 누구도 부인할 수 있는 그의 업적, 북아일랜드 왕실-공화파 공공 정부 구성과 평화 정착을 이루어낸 그의 정치력은 아예 그가 쓸모없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 대정부 질문 시간에서 북아일랜드 공동 정부의 첫 총리가 직접 중동 사절 활동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 또한 그러했다. 개인적으로 그가 너무 오랜 기간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온 그곳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그래서 이라크의 과오를 어느정도 씻을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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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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