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변절은 신념이었다
한미FTA가 기어이 타결됐다. 개방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둥, 새로운 통상시대가 열렸다는 둥 장밋빛 수사들이 쏟아진다. 몇 천억이니 몇 조니 벌써 우리 손에 금은보화가 들어온 양 큼직한 숫자들이 언론에 난무한다. 그러나 기실 산업별 전망들을 찬찬이 살피다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숫자들이 튀어 나왔는지 그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최대 수혜 분야가 자동차와 섬유라지만 오히려 <블름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실질 수혜자는 이미 미국 내 공장에서 수출차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현대가 아닌, 미국에서 생산한 차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데 혜택을 누릴 도요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는다. 대부분의 원사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섬유분야에서는 달랑 5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중국산으로 취급받아 FTA에 따른 혜택도 못 받을 전망이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서는 이런 당장의 손익계산 보다 더 큰 뜻이 있는 듯 보인다.
주요 외신에는 볼 수 없는 한국 언론의 장밋빛 환상
노 대통령과 정부관계자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한미FTA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미국과의 적극적 결합을 통해 우리사회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대국 일본과 적극적 결합을 통해 우리도 일본처럼 될 수 있다던 친일의 논리, 바로 그것이었다. 동시에 대통령 선거 때도, 탄핵 때도 노 대통령의 우군이었으나 지금 배신에 치를 떠는 사람들을 볼 때 일제 강점기, 소위 민족주의자들을 따르다가 그들의 변절에 치를 떨던 우리네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전 출간된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를 보면서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변절'했다고 말해왔던 그 친일파들도 스스로의 논리에서는 변절이 아닐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즉 개화파들이 일본의 철학자에 의해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자신의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소위 '민족개조론자'들의 최종 결론은 '내선일체' 즉, 일본과의 합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미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 논리인 양육강식의 철학을 받아들인 그들은 일시적으로는 우리도 '강자'가 되자면서 계몽운동이니 실력양성 운동이나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강자가 되긴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땐 강자와의 결합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겉으로 보면 용납될 수 없는 '변절'이지만 그것은 그들 철학 속에서는 신념에 따른 '선택'일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을 배신한 민족개조론자들과 민주주의를 배신한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이 이전에 마치 진보의 표상인 것처럼 떠올랐던 것은 민주화 운동 당시 인권 변호사의 경력이었다. 그리고 지역감정 해결을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알았던 그 결단력이었다.
노 대통령의 민주화 경력은 그가 나은 사회를 위해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거기까지였다. 자신이 싸워왔던 권위주의와 지역감정을 없애는 것까지가 목표였다.
그 빈 공간을 채운 것은 미국이었다. 권위주의가 해체되다 못해 공공의 영역까지 해체되어버린 살벌한 경쟁의 세계, 그래서 살아남은 자가 화려한 독식을 즐기는 세계의 이상이 그의 빈 철학을 채웠다. 국가는 그 경쟁의 공간만 잘 만들어 주고 너무 잔인하지 않을 만큼 패자들만 챙겨주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철학은 노 대통령이 FTA 타결 후 대책과 관련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지자들이 보면 변절이요 배신이겠지만, 민주주의의 형식적 완성에 집착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역할을 제도적 민주주의 보장과 시장제도 확립에만 제한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철학과의 결합이 자연스러운 결론인 것이다.
그 결합 속에 미국식 시장제도를 완벽히 이식시키는 것을 정권의 사명처럼 여기는 생각은 스스로에게 모순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었고 그래서 그는 특유의 결단력으로 추진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도 없다.
일제 말기 소위 민족주의자라고 했던 친일파들은 결국 우리네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모는데 앞장섰다. 그들 스스로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확신범들이었지만 민족의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앞장설 만큼 스스로 병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병든 눈에서는 망해가는 일제의 마지막 발악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병든 친일파의 눈에 일제 최후의 발악이 안보였던 것처럼...
민주화 경력을 자랑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신념을 추진하면서 기초적 민주주의 절차조차 무시하고 기본적인 정보부터 봉쇄한 채 철저하게 독단으로 일관했다.
그가 그렇게 닮고 싶은 미국도 다양한 이해집단의 수많은 논의와 압력을 뒷심으로 두고 협상할 때, 노무현 정부는 다른 목소리에게는 기본적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마저도 간단히 짓밟아 버렸다. 그만큼 그의 민주주의도 그렇게 병들어 버린 것이다.
미국과의 완전한 결합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강한 신념에 사로잡힌 그의 눈에는 그동안 미국과 FTA를 체결한 개발도상국 중 선진국 된 나라가 단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시장이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단 하루의 중국발 주가폭락이 세계경제를 크게 흔들리게 만들었었다. 그 원인은 정작 중국이 아니라 중국발 쇼크가 미국의 거품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세계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었다는 것은 가디언, 타임즈 등 세계 주요 언론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자신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도 잊은 채 자신의 독선적 신념에 따라 달려가는 대통령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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