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합니다'
지난 21일로 80세가 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차분한 분위기를 요청한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국민들의 축하를 받으며 ‘감동적인’ 생일을 맞았지만 동시에 여왕 사후 영국 왕실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생일 날, 윈저성을 나선 여왕은 직접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2천여명의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여왕은 이미 이 날까지 2만여 카드와 17천여개의 이메일 축하메세지를 받아 개인 메시지를 통해 이에 ‘감명 받았다’며 ‘이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카드와 메시지를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1953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후, 이미 유럽 왕실 중 최장기간 집권했으며 영국 역사상 64년 집권한 빅토리아 여왕의 기록도 무난히 깰 것으로 보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차대전 이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왕실을 굳건히 지켜왔다.
즉위 몇 년 후 여동생 마가레트의 이혼남과의 결혼을 단호히 반대해 무산 시키는 등 여왕은 강한 보수적 도덕성을 고집해왔다. 그 덕에 여왕은 집권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불미스런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지만 자식들의 실패한 결혼들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 위기를 돌파한 중심에 역시 여왕이 있었다.
92년, 연이은 왕자들의 결혼파탄에 이은 윈저성 화재로 인해 거액의 복구비용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왕실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여왕은 전격적으로 자발적인 세금납부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왕의 가장 큰 위기로 여겨지고 있는 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 때 역시 이례적으로 여왕이 직접 방송에서 추도사를 발표, 위기를 면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여왕은 80세 생일 맞아 <아이티브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왕실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는 등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생일을 보도하는 영국 현지 언론에는 여왕 사후에 대한 우려 역시 제기 되고 있다. 여론은 여왕 외 왕실 그 어느 누구에도 여왕에게 만큼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데일리메일> 왕실출입기자인 제임스 위테커씨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여왕이 살아있을 때는 왕실은 모든 일이 순탄하겠지만 그녀 사후까지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유력일간지 <가디언>은 이날 실은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자. 그리고 그녀가 갈 땐 이 우스운 제도도 묻어버리자’란 칼럼 제목을 1면 윗단에 크게 올렸다.
2차대전후 영 제국이 붕괴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왕실의 실질적 위상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은 더욱 현실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지만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분리되어 있는 나라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물론 과거 제국의 영광을 품고 있는 영연방 국가의 상징이자 구심으로서 실질적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자체 의회를 갖게 되는 등 분권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유럽통합이 진행되면서는 영국 국민의 여왕의 ‘신민’으로서 지위와 유럽연합의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충돌하고, 영연방의 지위가 불분명 해지는 등 왕실의 실질적 위상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영국 하면 당연히 여왕이 떠오르고, 영국 국민은 모든 지폐와 동전에 새겨진 여왕 얼굴을 자신들 어머니보다도 자주 본다지만 21세기에 존재하는 왕실의 운명은 보이는 만큼 순탄치는 않은 것이다.
- 2006년 4월 22일 한겨레 기고, 지면에서 밀려 비보도
'발표글 모음 > 영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BC 누른 '채널4뉴스'엔 특별한 것이 있다 (0) | 2007/02/25 |
|---|---|
| 비비시, 엉뚱한 '가이' 생방송 인터뷰 (0) | 2006/05/18 |
| 영 여왕 80세 생일 축하 속, 사후 우려 (0) | 2006/04/28 |
| 새 시민참여 모델? 영국, ‘연금의 날’ 전국 토론 (0) | 2006/03/21 |
| 영국, 선거연령 16세 이상 등 정치개혁 파격 제안 논란 (0) | 2006/02/28 |
| 영국 경찰, ‘유전자 등록’ 인종차별 논란 (0) | 2006/01/10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