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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모음/세상 이야기 2006/04/19 19:56 by 보롱이

[반론] '정당 없애자는 주장'은 정치의 경향성을 제도화 하는 것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갈 데까지 가나보다. 유력 인터넷 신문에 민주정치의 근간인 정당을 없애자는 주장이 버젓이 실리니 말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민주화된 이후에 새롭게 축적되어온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독재 시절엔 저 독재만 없애면 진정한 정치가 꽃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정당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리고 잃어버린 희망과 쌓여온 불신 끝에, 그 대상을 차라리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의 대상을 눈앞에서 치워버린다고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면적인 눈가림이 근본적인 문제를 더욱 썩게 한다. 고태진 기자가 쓴 18일자 기사 '말 많고 탈 많은 정당, 차라리 없애자'에서 정당을 없애자고 한 주장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관련기사 - [고태진 칼럼] 많고 탈 많은 정당, 차라리 없애자



정당의 기본 역할에 충실한 정당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

현상에 집착하다보면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기 쉬우니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자. 정당이란 본래 의회 민주주의 핵심이다. 사회에 대한 대안과 방향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정당을 형성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생산하고, 이를 가지고 선거를 통해 경쟁한다. 그리고 지지를 받은 만큼 의회에서 발언권을 부여받거나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그 대안을 실현한다.

그럼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위에서 말한 정당의 근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그 역량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는 정당이 아직 단 하나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 정당은 우리 사회에 대한 서로 다른 근본적인 진단과 서로 다른 가치 그리고 서로 다른 목표에 따른 전략과 정책을 가지고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독재를 옹호하고 현재도 기득권을 옹호하는 경향성, 과거에 민주화를 주장했고 개혁을 주장하는 듯한 경향성이 있을 뿐이다.

민주화는 됐으되 민주화된 이후 사회에서 서로 무엇을 어떻게 추구할지 제대로 정립된 바 없기 때문이다. 선거때 마다 묻혀있던 지역감정이 꿈틀대는 이유도 그런 말초적인 요소 이외에 정당간 별다른 선택의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 그 자체를 바라보고 정치판에 모여드는 사람이 대부분인 근본적인 이유도 정치적 권력 이외에 정치에 뛰어들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결이 문제가 아니라, 대결 '내용'이 문제다

고태진 기자는 끊임없는 대결구도가 정당정치의 문제라고 했지만, 문제는 대결이 아니라 그 대결의 내용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공공선을 지향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입장을 가지고 그를 구현하는 정책을 중심에 놓고 대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에서의 대결은 서로 다른 가치와 입장 차이가 불분명해져가는 상황에서 서로간의 정치권력 기득권을 놓고 싸우게 되니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대결이 아니라 제한된 권력을 놓고 싸우는 이전투구를 벗어나질 못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주화된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꾸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정당이 지향하는 지향과 가치가 체계화된 사상이 없다보니 선거용 입바른 공약 이외에 사회적 목표와 전략이 담긴, 정당의 정치적 지향을 건 진짜 정책이 없다. 그러다보니 결국 집권 후 대부분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그간 국가정책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관료이다.

민주화된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것은 민주화 경력으로 보유하고 있는 개혁적 '경향성'일 뿐이다.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지금 목도하고 있다시피 이 '경향성'마저도 불분명 해지고, 실질적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관료와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정부는 점점 보수화되어 간다.

결국 예전에 독재를 옹호했던 정당이 집권하던, 민주화를 주장했던 정당이 집권하던 간에 실질적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경향성'은 수렴되어 간다. 이에 따라 국민은 가장 핵심적인 정치참여 행위인 선거에 대한 의미가 상실되고 차별성이 없는 정치인들간의 권력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갈수록 두드러져 현재와 같은 불신은 극에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관료에 의해 좌우되는 정부, '개인'이 바꿀 수 있나

그렇다면 정당을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고태진 기자는 인재풀이 넓어지고 개개인의 소신에 따라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하고 있다시피 준비된, 뛰어난 몇몇 인물이 정보와 기술을 독점한 관료 등으로 공고화된 권력을 인수받는다 해도 통제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만무하다. 결국 정당을 없애자는 것은 현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아예 제도화 시키자는 것일 뿐이다.

양극화, 고령화, 개방화 등 각종 사회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우리 정치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에 맞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목표와 가치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전략과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진짜 '정당'이다. 같은 뜻과 지향을 가진 인물을 모으고, 이를 정치권력의 장에 진출 시키고, 체계화된 지향과 비전, 그리고 정책을 지원하여 구체적으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대로 된 '정당'이다.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마치 이상주의자의 주장처럼 들린다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정치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된 정당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회정치가 제대로 발달된 나라에서 서로 다른 사상과 지향, 대안을 가지고 정당끼리 경쟁하고 집권을 통해 국가를 전면적으로 개혁한 예는 과거든 현재든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진짜 정치를 원한다면 정당을 없애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신의 뜻과 가까운 정당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새로운 정당이 정치 과정 속에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를 촉구할 일이다. 바른 결과를 위해서는 바른 대안이 필요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쇠뿔을 바로잡는다고 비틀다가 도리어 소를 죽이는 이유는 그러다가 소가 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 2006년 4월 19일 오마이뉴스 기고, 메인서브로 보도

 

보도본 보기: 문제는 '진짜 정당'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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