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선거철인가 보다. 각종 순위다툼에 대항마니 하며 경마식 선거 중계가 슬슬 시작되더니 이번엔 또 메가톤급 공천비리가 터지고 ‘경악할 만한 비리’니 벌써부터 폭로전의 조짐이 보인다. 공천비리의 경우, 예전에는 쉬쉬 넘어갔을 법한 것을 오히려 더 큰 악재를 피하려 스스로 터트리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정치환경이 엄격해진 것이리라 자위하지만 선거 시작 전부터 인기니, 이미지니, 비리니, 이런 것들이 선거를 한껏 뒤덮는 모양이 모두들 그렇게 고대한다는 ‘정책선거’는 애초부터 그른 듯한 분위기다.
‘이미지 정치’라고 매일 얻어맞던 강금실, 오세훈 서울시장 예비 후보가 얼마 전 각각 정책 발표, 비전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보도를 보면 그들이 발표했다는 정책이나 비전은 간데없고 공천비리 파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만 채워져 있다. 그들이 애초 무슨 목적으로 기자회견을 한 것인지 몇 사람이 알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입바른 정책선거에 대한 갈망, 정작 문제는 무엇일까
‘정책선거’에 대한 입바른 갈망은 때마다 반복된다. 서로 할 말들은 있다. 정치인은 정책해봤자 언론은 관심 없다하고 언론은 본래 정책이 없으니 그렇다 하거나 정책 말해봤자 국민이 관심 없다한다. 그렇다면 정말 그동안 선거 때 정책이란 없었던 것일까? 그건 또 사실이 아니다. 각 당 공약집을 보면 각종 정책이 빼곡히 차있어 무엇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도 일일이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문제는 그런 공약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람들의 삶이 그로 인해 어떻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당최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첫째는 정책이란 것들이 좋은 말들이 나열된 백화점 일 뿐, 무엇부터 얼마큼 실현 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는 커녕 일관성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과연 실현될 것인가 부터가 미지수라는 것이다.
예전 대통령 선거때 노무현 대통령의 소위 약발이 있었던 공약 중 하나는 보육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는 노무현이 키우겠습니다’는 발언은 상징적으로 보육이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될 듯싶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정책이 없지는 않다 쳐도 여전히 우리나라 보육이 세계 최저 출산율을 자랑할 정도로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별반 변화가 있는 듯하지 않다. 결국 그 말도 모아놓은 ‘좋은 말’ 중 하나였을 뿐이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국가자원을 획기적으로 투자 할 의지도, 솔직히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것이지 이러한 예는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왜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사상과 전략, 실현 능력 없는 정책은 공허한 말잔치일 뿐
첫째는 사상과 전략의 부재다. 정책이란 좋은 것 모아놓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 그의 실현을 위한 자원이 필요하고, 따라서, 제한된 자원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우선적인지를 따진 자원의 재배분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우리사회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고,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어떤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가 들어차 있는 사상과 전략이 없이 이러한 과정이 가능할리 만무하다. 새로운 변화와 위기가 닥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 우선순위와 전략을 다시 세워 기존 씀씀이부터 재조정할 생각은 안하고 국민에게 손부터 벌리는 꼴이, 양극화 해소한답시고 ‘증세’논쟁을 한들 씨알이나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둘째는 정책 실현 능력의 부재다. 정책을 아무리 늘어놔 봐야 권력 잡아 들어가고 나면 실질적인 정보와 정부 운용에 대한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관료의 포로가 되고 로비의 희생양이 되어 갈팡질팡 하는 모습은 이제 뻔 한 절차가 되어 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탁월한 지식과 이해력으로 ‘준비된’ 대통령이라 그나마 집권 반은 버텼다하고, 그마저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 후 바로 몇 달이 가지 않아 관료에게 권력이 넘어가 버렸다는 얘기가 횡행한다. 어차피 사상이나 비전도 그리 구체적이거나 확고하지 않았으니 그다지 지킬 것도 없었던 것이 솔직한 사실이다. 괜스레 말만 ‘개혁적’이니 오른쪽에서 얻어맞고, 관료나 로비에 의해 정책은 항상 우회전이니 그땐 또 왼쪽에서 얻어맞는다. 정치인으로서 그보다 최악의 선택이 또 있을까 싶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인공 하천 하나 옴팡지게 잘 파놨다고 이명박 시장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다. 그 도심 휴식 공간의 거대함이 사상과 전략을 통해 본질적으로 제시되고 실현되어야 할 삶의 변화를 뒤덮었고, 과거 그의 보스를 닮은 무대뽀 추진력이 정책실현 능력으로 비춰진다. 어쨌건 그동안 현 국가 권력이 맨 탈권위 타령만 하느라 사회적 변화와 위기상황에서 작동해야할 공공의 권위마저 상실해가는 차에 국민에게 ‘공공 권력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확실히 보여준 셈이 아니었던가.
정책으로 살아 숨쉬는 사상과 전략을 제시하라
다시 말해, 듣기 좋은 정책만 시리즈로 늘어놓는다고 진짜 선거,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정책이란 구슬들을 어떻게 하나로 꿰어 완성된 모습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사상과 비전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즉, 정책으로 살아 숨쉬는 사상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백날 정책 기자회견을 해봤자 기자는 물론 국민들도 그래서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것인지 당최 그림이 보이질 않고, 결국 말초적인 비방과 폭로만 선거를 뒤덮을 뿐이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를 보더라도, 여당 예비후보가 아직도 민주화 됐다는 지가 언제인데 그 그릇에도 내용을 못 채워놓고 ‘참여’와 같은 또 다른 그릇타령부터 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정치인의 심각한 직무유기조차 제대로 깨달은 듯 해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OECD 최장 노동시간에 먹고 살기도 바쁜 국민에게 자신들이 차린 것도 변변한 것 없이 맨날 참여하라고만 하니, 무엇이 거꾸로 되도 한참 거꾸로 됐다.
기존 정당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외치는 ‘사회주의’는 강금실이 ‘보라색’으로, 오세훈이 ‘녹색’으로 내세우는 이미지와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명확한 비전과 전략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의 ‘사상’ 역시 그저 그의 특이한 브랜드에 그칠 것이다.
물론 애초에 정당부터 제대로 된 사상과 전략을 갖추기 위한 장기적 투자는커녕 발상조차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후보가 이를 갖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제발 누구라도 이번엔 좀 선거다운 선거의 단초라도 보여줘, 지푸라기라도 좋으니 희망 좀 가져보자.
- 2006년 4월 16일 인터넷 한겨레 필진네트워크를 통해 기고
보도본 보기: [필진] 선거, 정말 정책이면 되는 걸까?
'발표글 모음 >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 정치인이여, 진짜 정치를 생각하라 (0) | 2006/11/08 |
|---|---|
| 문제는 '진짜 정당'이 없다는 것 (0) | 2006/04/19 |
| 선거, 정말 정책이면 되는 걸까? (0) | 2006/04/18 |
| 당신들 하룻밤 술값에 양심을 팔까? (0) | 2006/04/04 |
| 모두가 패배한 '황우석 논란'... 윈윈할 수 없었나 (0) | 2005/12/05 |
| < PD수첩 >, 줄기세포 연구 '걸림돌' 47%-'기여' 44% (0) | 2005/12/01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