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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항

발표글 모음/복지 이야기 2005/01/20 02:07 by 보롱이

안녕들 하시었는가. 지난 기사, <김근태 장관의 맞짱과 국민연금 개정안>에서 약속했던 대로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국민연금 개정안의 나머지 쟁점을 집어보기에 앞서, 지난 기사의 반응 속에 또다시 등장한 국민연금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살짝쿵 짚어주고 넘어가야 되겠다.

 

 

요것만큼은 헷갈리지 말자. 내로라하는 소위 '선진국'에서도 국민연금은 골치아픈 문제이니 늦기전에 폐지하자 어쩌고 하는데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날로 심각해져가는 '고령화'란 말이다. 즉, 평균수명 연장과 출산율 저하로 노령인구가 날로 증가하니, 이들을 부양할 비용을 개개인에게 더 지울 것인가 아님 사회, 국가, 기업 등 사회공동체가 공동으로 분담할 것인가가 논란의 핵심이란 말이다.

 

국민연금이란 제도는 고령화에 대한 비용을 사회공동체가 분담하는 하나의 '체계'인 것이고, 따라서 분담을 선택하는 나라는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반대로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서의 방향을 선택할 경우에는 국민연금의 급여를 깎거나 사적연금 비중을 더욱 키울 것이다. 물론 이 양쪽 방향에서도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폐지'하려는 어떠한 주장이나 시도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도 당연한 것이, '고령화'란 파고가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둑을 얼마나 더 높게 쌓을 것이냐, 누구의 돈으로 쌓을 것이냐를 가지고 왈가불가 할 수 있어도, '씨바 골치 아프니까 둑을 그냥 없애버려'라고 하는 정신 나간 작자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울 나라의 경우 그 '고령화'란 파고가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할 만큼 만만할까? UN에서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가 7%가 넘어가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를 넘기면 고령 사회(aged society), 20%를 넘기면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로 정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8.7%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이대로 가다간 2019년에는 고령사회로, 2026년에 20%를 넘겨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 고령화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에는 늦게는 프랑스가 115년, 짧게는 일본이 24년이 걸렸지만, 울 나라 19년을 예상하고 있으며,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는 많게는 영국이 44년, 일본이 12년을 예상하고 있는데 반해 울나라, 단 7년 만에 돌파해 줄 예정이다.

 

손자 손녀 이뻐해 주실 할부지, 할무니 늘어나는 게 뭐 그리 문제냐고? 글치, 늘어나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근데 문제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65세 이상은 공식적으로 노동에 의한 소득이 중단되는 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 돈이나 굴리며 살 수 없다면 어떻게던 자식한테 손 벌릴 수밖에 없다. 돈 벌 수 있는 자식세대(생산가능인구)와 노인 비율이 2004년 현재는 8.2명 이지만 초고령사회인 2030년에는 2.8명이다. 즉, 지금은 사회 전체적으로 8.2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하면 되지만, 2030년에는 2.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부담이 폭증하는지 감이 오는감?

 

그럼 지금 우리네 세대는 얼마나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자식 세대가 등골 빠지지 않게끔, 그리고 우리 스스로 노후에 눈치 보며 비참한 생활을 안 하게끔 잘 준비하고 있는가?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공적연금제도를 제외할 때 노후준비가 전혀 없는 사람이 64%에 달한다. 물론 나머지도 그 준비가 충분한 거냐 아니냐를 따지면, 것도 알 수 없다. 예금적금을 노후를 위해서 붇는다는 사람은 일단 다 제외한 통계니 말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있어서 다들 안심하고 준비를 안 하는 것일까? 국민연금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감을 고려한다면 그건 큰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럼 국민연금 제도에서 제외되어 있는 현재의 우리네 할부지, 할무니들의 생활은 어떠하신가. 통계청 가구소비실태조사에 의하면 2000년 현재 60세 이상 노인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49만원, 지출은 40만원 수준이다. 전체 평균이 97만원 소득에 82만원 지출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절반수준이고, 2004년 기준 최저생계비가 1인 가구일 때 37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혼자 사는 울나라 할부지 할무니들(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전체 65세 이상 노인의 16%)이 '평균적'으로 가난에 허덕인다는 것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외치는 이 나라의 현실이다.


(이 정도 돈으로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려면, 얼마 전에 있었던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 카페에서 확인하시라.
http://cafe.naver.com/hopeup.cafe)

 

2인 이상 가구라고 좀 날까? 도시가계조사에 의하면 2004년 2/4분기 현재 65세 이상 노인가구 중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3만 원으로, 그 외의 가구 평균 소득 280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 역시 4인 가구 최저생계비 수준일 뿐이다.

 

자, 함 이 상태에서 그냥 국민연금 없애 버리고 초고령화 사회 맞이해 볼까? "난 걱정 없고 딴넘들 상관 없으니 그냥 폐지해 버려" 한다면, 이기적인 소리 이상도 아니며,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니 다 없애 버리자는 것 또한 신세에 대한 한탄이거나 절박한 심정의 소리일 순 있어도 합리적인 주장으로 내세우기에는 무책임한 우격다짐 이상이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이건 노후 대책이 안 된 노인들이, 그리고 이들의 부양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자식들이 고통을 당하고 끝나는 문제 또한 아니다. 노인 비율이 대책 없이 급증할 수록 그에 대한 자녀세대의 부담이 급증하고, 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갈 수록 소비지출은 정체되며, 그에 따라 내수시장은 침체되고, 따라서 경기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비자금을 세계적으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비축해 놓은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를 없애자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는가.

 

이래도 연금 없애버려야 하신다는 분, 살포시 저 위에 있는 '뒤로' 버튼을 클릭해서 보다 흥미로운 기사들 찾아 읽으시고 나가시면 되겠다. 아래에 계속 될 이야기들은 짐작하다시피 국민연금을 어떻게 잘 개혁해서 좋은 연금제도를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괜한 시간 더 낭비하실 필요는 없으시다. 그럼 나머지 분들에게, 살짝쿵 짚어주겠다는 것이 길어진 것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이제 약속했던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민주노동당안(案) 등장, 그리고 복지부의 장난?

 

먼저 그간의 상황을 좀 살펴보고 넘어가야 겠다. 그렇다고 무슨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잘 알다시피, 국회는 귀신 씨라낙 까먹는 짓거리들로 여전히 국민들 울화통에 불을 지르며 지구 온난화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을 뿐으로, 국민연금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어떤 실질적인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단, 변한 것은 상정되어 있는 개정안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국민연금기금운용기구설치등에관한법률(이하 기금운용기구법)'과 국민연금 개정안을 한 세트로 하여 현애자 의원의 대표발의로 상정했고, 한나라당에서 윤건영의원 대표발의로 기초연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개정안을 상정했다.

 

따라서 당 기사에서 비교할 개정안은 정부가 발의한 안(이하 정부안), 유시민 의원 대표 발의안(이하 유시민안), 현애자 의원 대표발의안(기금운용기구법 포함, 이하 현애자안)이 되겠다. 나머지 개정안들은 매우 부분적인 것이어서 포괄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위의 세 안에 한정했다. 어? 그럼 한나라당 안은? 본 우원 한나라당이 미워서 한나라당 안을 뺀 것이 아니다. 이유는, 별로 추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을 재원으로 기초연금을 일정 수준에서 온 국민에게 제공하고, 그 위에 보험료에 기반한 비례연금제를 얹히는 이원 연금제는, 현재와 같이 430만에 달하는 국민이 연금제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되어 있는 상황에서 특히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근데 문제는 이를 한나라당에서 발의했다는 데 있다. 세금을 재원으로 하니 한나라당안대로만 해도 2005년에 6조원으로 시작, 2030년에는 92조에 이르는 등 기초연금에 필요한 추가 세금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이거 한나라당이 뭐 국민연금 개정안 내야하기는 하고, 뭔가 획기적인 걸 낼라하니 내게 된 것 같은데, 평소 세금 깎기에 쌍심지를 켜던 태도를 볼 때, 이런 천문학적 세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할 가능성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 대선 때, 보험료를 기반으로 한 기초연금제를 제시할 때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겠으나, 딴나라에서 좋아하는 '사상전향' 한번 하지도 않고 이렇게 갑자기 방향을 180도 틀어버린 안을 내놓은 것을 보면, 제대로 검토들이나 하고 사인들을 하셨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보험료로든 세금으로든, 이름은 기초연금제니 아마 똑같은 것으로들 아셨나보다. 실상은 그 철학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을...).

 

자 그럼 각설하고, 우선 현애자안에서는 지난 기사에서 다루었던 국민연금 기금운용 문제에 어떠한 대안이 들어있는지 들여다 볼까? 우선 '기금운용기구법'이라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제시한 것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실제 그 내용에 있어서도 유시민안보다 훨씬 더,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즉, 유시민안에서는 가입자대표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위원회 아래 독립적인 사무국을 갖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에 두는 것으로 하였으나, 현애자안에서는 아예 독립시켜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유시민안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이전에는 가입자대표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운용에 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개정안에서는 '독립적으로 수행한다'는, 매우 애매한 표현으로 얼버무렸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현애자안에서는 '심의 의결한다'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용자, 노동자, 농어민, 소비자, 시민단체 등 가입자 대표들이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되겠다.

 

정리하자면,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있어서 가입자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성과, 정부부처로부터의 독립성, 기금운용의 전문성 등을 모두 고려할 때, 특히 민주성과 독립성을 개무시하고 있는 안이 정부안, 이를 고려하고 있는 안이 유시민안, 이를 매우 강력하게 관철시키고 있는 안이 현애자안, 요렇게 되겠다. 그럼 하늘이 두쪽 나도 국민의 뜻에 반하지 않게 연금기금이 쓰여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김근태 장관이 선택할 안은? 당근 현애자안이 되겠다.

 

게다가 김근태 장관의 발언 이후, 서둘러 개최된 당정청 협의에서 나온 합의안은 민간 중심의 독립기구에서 기금운용을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민간 중심의 독립기구? 이건, 관리공단내 기금운용본부를 설립하자는 유시민안보다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자는 현애자안에 더욱 가까운 대안이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최근 이와 관련한 복지부 의견서를 보면, 김근태 장관의 선언이나 당정청 협의의 결과와는 '전혀' 상관없이, 복지부는 여전히 정부안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부안은, 민간 중심의 독립기구는 커녕 기금운용에 있어 경제부처의 입김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안이다. 그럼 복지부가, 장관이고 청와대고 당이고 상관없이 그냥 지들 꼴리는 데로 따로 노는 꼴에 다름 아니라는 건데,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근 해명하는 사람도 없다. 이게 무슨 콩가루냐.

 

김근태 장관은, 자신의 선언이 정치적 쇼가 아니었다면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장관은 장관대로 인기발언하고, 복지부는 복지부대로 정부안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건 국민들 상대로 장난치겠다는 말밖에 안된다. 김근태 장관, 지금 장난 놀자는 거야? 그런거야? 아님 행동으로 잠 보여 봐라. 제발...
 

  더 내고 덜 받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더 내고, 덜 받고... 현 정부안은, 지난 6월 한창 '국민연금 8가지 비밀'로 촉발된 불만이 들끓던 시절,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국무회의에 통과되면서 가뜩이나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었다. 즉, 정부안은, 보험료는 2008년부터 5년마다 1.38%를 인상, 2030년에 15.9%까지 인상하고, 반면 연금급여액은 40년 가입시 현행 60%에서 2005년에서 7년에는 55%, 2008년 이후에는 50%로까지 깎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거 누구 염장 지르자는 거냐? 여기에도 다 설명은 있다. 즉, 처음 도입 당시, 내는 돈은 적게 또 받는 돈은 너무 많게 설계되어 있고, 노령화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어 연금 재정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 지금 현재대로 유지할 경우 2047년에는 기금고갈이 발생하고, 2050년에는 자녀세대가 부담해야 할 30%에 이르게 되지만, 정부안대로 고칠 경우, 2070년에도 기금 고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깎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를 마치 욕을 먹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내리는 구국의 결단인양 얘기하는 모양도 본 바가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선 정부안대로 고칠 경우에는, 애초 국민연금의 목적이었던 국민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상실된다는 데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현행대로라도 40년을 가입했을 경우, 평균적으로 소득대비 6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실제 평균 가입기간은 19년에서 22년으로, 결국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30% 내외로 떨어진다. 이를 근거로 계산하면, 1인당 연금 수급액은 40만원 수준으로, 최저생계비를 살짝 넘긴다. 물론, 현재 국민연금 시행 전임에도 노인 1인 가구 평균소득이 40만원 선인것을 감안하면, 실제 노인 총소득은 연금수급액을 훨씬 상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걸 또 50%까지 내린다면, 이건 노후소득 보장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떡하나, 그럼 자식세대한테 30%에 달하는 보험료를 부담시킬꺼냐 하겠지만, 현재 정부안의 근거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발전위원회의 인구장기추계에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름대로 통계적 근거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산출했겠지만, 이에 따른다면 2070년에는 2002년 현재 3천 2백만명에 이르는 생산가능인구(18세~64세)가 1천 7백만으로 거의 반토막이 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거 상상이 가나? 이게 현실화 될 경우 사회적, 경제적 충격이 과연 어떠할지를...

 

또한 2050년이라고 해도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후의 일이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이면 한국전쟁이 끝났을 무렵이다. 과연 그 당시에 지금의 사회모습을 털끝만치라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를 생각해 보면, 정부안의 근거가 되는 '장기추계'라는 것은 얼핏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이것만을 맹신해서,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본래 국민연금 기금의 기능을 잃어버린 개정안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어쩌라고? 결국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험료, 특히 급여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의 선택의 문제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미래의 인구감소나 인구장기추계를 유일한 과학적 근거인 양,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리는 구국의 결단인 양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노후소득보장을 더욱 중시하는 선택을 한다면 굳이 그렇게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깎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것만이 연금재정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연금을 깎기보다는 출산율을 높일 수 있도록 아동복지와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퇴직 후에도 적절한 일자리나, 다른 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이고,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1.17명, 인구가 현상 유지되려면 2.1명이 되어야 한다.)을 고려하면, 연금개정보다는 오히려 이에 대한 대처가 더욱 시급하다.

 

그럼 다른 개정안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유시민 안에서는 보험료는 더 안올리는 대신 연금급여액을 깍는 것은 정부안과 동일하다. 정부안보다는 관대하나, 노후소득보장 기능의 유지를 선택하기 보다는, 당장의 반발을 고려해 보험료를 안올리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좀 조삼모사같다는 것이 흠이다. 정부안과 유시민안에서 모두 보험료와 급여수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균형이 유지되도록 조정한다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현애자안에서는 보험료도 안올리고 급여액도 안 깎는다. 세 안 중에서는 가장 관대하게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또한 단서조항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재정균형과 함께 국민의 부담수준 및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여 조정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수급권 제한 문제와 약자에 대한 고려

 

이래도 못받는다 저래도 못받는다 하여, 지난 봄 국민연금 파동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수급권 제한 규정 등은 이번 개정안들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그 밖의 규정들에서 바뀐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주요 내용들만 함 정리해 보았다.

 

중복급여조정 :

현행대로는, 국민연금과 함께 다른 급여에 대한 권리가 있을 경우 하나만 선택할 수 있어 지난 국민연금 파동때 가장 많은 불만을 샀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안의 경우, 두 급여 다 본인에 의해 보험료가 납부된 것일 경우 한가지만 받을 수 있게 했지만, 유족연금의 경우 20%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현애자안의 경우, 유시민안과 비슷하지만 유족급여에 있어, 일정비율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하기보다는, 2개 이상의 급여가 최저생계비에 도달할 때까지는 선택하지 않은 급여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즉, 자신의 노령연금과 유족연금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개를 합쳐도 최저생계비가 안된다면 둘 다 전액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하나만으로도 최저생계비가 넘는다면 하나의 급여만을 선택할 수 있다. 일률적으로 하기보다는 저소득층 보호에 더 초점을 맞춘 안이 되겠다.

 

재직자 노령연금 :

현행대로는 60세 이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더라도 소득이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경우, 일률적으로 60세에서는 연금의 50%로 시작해서 64세에는 90%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현애자안의 경우는 연령에 상관없이 총소득이 최저생계비와 비교해서 최저생계비의 1.5~2배인 경우 연금액의 90%, 3.5배 이상인 경우는 연금의 70%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역시 일률적인 기준으로 수준을 정하기보다는 소득이 적은 사람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더 맞춘 안이다.

 

연금 크레딧 :

유시민안과 현애자안에서는 '연금 크레딧'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등장하고 있다. 연금급여 수준이 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이가 비교적 크게 나는 것을 고려하여, 출산 등으로 불가피하게 연금가입기간이 줄어들 경우 일정기간을 법으로 보충해주는 것을 말한다. 유시민안의 경우 연금가입기간 계산시, 둘째 자녀부터 1자녀당 12개월씩 추가해주도록 하고 있으며, 현애자안의 경우 모든 첫째 자녀부터, 그리고 입양자녀까지 1명당 12개월씩 연금가입기간에 추가시키도록 하고 있다. 주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출산율 제고까지 고려한 조치인 듯 하다. 현애자안에서는 군복무기간에 대해서도 가입기간을 추가해 주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군 입대년도의 표준소득월액(전체 가입자의 소득수준을 등급별로 정한 금액)의 최저 수준을 소득으로 인정해 국가부담으로 급여계산에 산입시키도록 하는 더욱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군복무는 국가가 국민을 강제 고용한 것으로 그 기간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금생활자와 이혼한 경우 :

연금생활자와 같이 사는 배우자가 이혼 할 경우, 분할 연금을 따로 받게 되는데, 현재는 재혼하면 그 지급이 정지된다. 이것을 조정하여 정부안, 유시민안, 현애자안에서 모두, 재혼할 경우에도 계속 지급이 되고, 스스로 연금을 또 받게 될 경우에도 이 두가지를 합산해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애연금 :

현행대로는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처음 진료를 받은 뒤 2년 뒤에 다시 장애진단을 받아야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정부안과 유시민안은 그 기간을 1년 반으로 단축하고 있고 현애자안은 1년으로 단축시키고 있다.

 

수급권 보호 :

원래, 연금을 받을 권리를 양도하거나 압류당하거나 담보잡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유시민안에서는 여기에다가 지급된 급여의 압류까지 금지시킴으로써 연금생활자의 권리에 대한 보호를 더욱 강화하였다. 현애자안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금관리공단이 압류를 막도록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한다는 조항까지 삽입하였다. 제아무리 신용불량자라도 연금 가지고 노후는 보장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읽다보면 좀 복잡한 내용들이 있어 머리 복잡할 줄로 안다. 간단히 정리하면, 정부안보다는 유시민안이 이런 저런 제한 규정에 대해 좀더 관대하게 고친 경우고, 현애자안은 유시민안보다도 더 관대하거나 저소득층에 대한 고려가 더욱 강하게 들어가 있다.

 

이걸 가지고 어느 게 더 좋다하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힘들다. 제도의 속성상 누군가 혜택을 더 많이 보게 되면, 누군가에게 돌아갈 돈이 줄어들거나 국가의 부담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역시 사회적 합의에 의한 선택이다. 즉, 좀 일부가 혜택을 더 보더라도 이런 저런 제한 규정을 그냥 완화시킬지, 아니면 약자보호를 중심으로 완화시킬지, 아니면 아예 완화시키지 말지는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금 크레딧의 경우,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첫째자녀든 둘째자녀든 다 크레딧을 제공할 것이요, 출산율 제고효과에 더 초점이 있다면 둘째자녀부터 부여할 것이요, 징병제에 따른 국가책임을 강조한다면 군복무자에게도 크레딧을 부여할 것이다. 물론 각각의 선택마다 그에 따른 연금재정과 국가재정의 부담은 차이가 크다.
 

  사회적 합의, 말은 좋은데 말야...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란 주장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다. 지금 모두가 평등해지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도 아니요, 모든 것이 개인에게만 맡겨지는 자유주의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보험료를 올리느냐 마느냐, 급여를 깎느냐 마느냐,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느냐에 대해 무슨 정답이 딱 부러지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부터 저기까지 그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있으면, 여러 가지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범위 안에서 하나의 지점이 선택되어 지는 것이다. 그 과정이 잘 이루어진다면, 어떤 결론이 내려지던 누굴 죽이네 살리네하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 말은 좋다. 그런데 뭘 어떻게? 본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제도는 정치다. 여기서부터 암담해 진다.

 

원래는, 정치판 내에서 이러저러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각자 대변하는 이러저러한 정당들이 나오고 이들끼리 '말로' 박터지게 싸우다가 결국 서로 각 계층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결론을 도출해내거나 각자의 정책을 내걸고 선거라는 장을 통해 결판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목도하건데, 정책은 고사하고 몸을 던져 진짜 '몸으로' 싸우는 게 우리네 정치의 현실이다. 야당은 일단 정부 흠집내는 일이라면, 이게 자기네 정체성에 맞던 안 맞던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고 나중에 빨갱이네 사회주의네 그냥 갖다가 끼워 맞춘다. 여당 역시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자기 정체성에 맞던 안 맞던 일단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반대하는 야당에 육탄전을 불사한다. 행정부와 국회의 권력분립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작태들을 연발하면서, 이젠 국민들이 안겨 주었던 국회의석 과반수도 그냥 다 까먹게 생겼다.

 

정책 하면 다 말은 좋다 한다. 언론은 언론대로, 이렇게 몸으로 싸우는 흥미진진한 액숀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책이 눈에 보이느냐고 하소연 한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정책 맨날 시간투자해서 뭐 해봤자 그냥 막말 한마디면 그리로 우루루 몰려간다고 하소연 한다.

 

이러한 가운데 정작 국민생활에 직접 연관이 되는 각종 정책은, 공개된 '정치'라는 장이 아닌 관료들의 책상머리에서 거진 결정이 다 나버린다. 그나마 정치적으로 공방이 이루어지는 극히 드문 쟁점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낸 안대로 국회에서는 한 글자 안고치고 그냥 통과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가끔 정기국회가 끝날 무렵, 신문 한 구석에 통과된 법률안에 대한 간단한 해설 기사가 실리는 경우를 본 적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정치권에서 공방이라도 이루어졌던 법안을 발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내용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들이지만, 그냥 관료들이 책상머리에서 자기 판단대로 적어 올린 법안 상당수가 그대로 입법화되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사회적 합의가 가당이나 하겠는가. 뭐가 좀 공개되고 쟁점화가 되어야 입에도 오르내리고, 이런 저런 의견도 쏟아져 나오고 그런 가운데, 이게 좋네 저게 좋네하는 말들이 오갈 것 아니냔 말이다.

 

뭐 정치권엔 그렇다고 치자. 원체 정치권에서 희망을 찾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 그래도 묵묵히 자기할 일을 하고 있는 곳이긴 하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들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나, 믿을 것은 여론의 힘밖에 없는 이들이 눈에 띄는 활동만 반짝 주목받고 마는 풍토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갖기란 정말 어렵다.

 

이 시점에서 지적하고 싶은 곳은 언론이다. 기존 언론도 그렇다고 치고, 특히 진보매체를 자처하는 인터넷 언론들... 뭐 그동안 새로운 언로를 열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정치과잉인 것 또한 사실이다. 정책관련 기사야 전문가의 기고로 채워진다. 전문가는 전문가지 기자가 아니다. 전문가의 글은 일반적으로 읽기에 퍽퍽하고 한계가 있다. 이런 저런 의견과 입장들을 취재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기자다. 그런데 정치관련 뉴스를 담당할 사람은 많아도, 정책적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 있는 기자가 한명이라도 있던가.

 

인터넷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클릭수를 쫓아다니다 보니 기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흐르게 되어 찌라시들을 닮아가는 모습을 솔직히 완전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찌라시들을 닮아갈 수록 참신성은 떨어지고, 참신성이 떨어질 수록 새로웠던 매체의 매력도, 존재의 이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존 찌라시들과의 차별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기껏 시민단체 집회기사나 열심히 단순전달 해준다고 그게 차별성이 되는가.

 

 

딴 데 쳐다보지 마라. 개개인 하나하나가 매체가 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는, 스크롤 압박 견디며 끝까지 읽은 바로 너그 어깨에 미래가 있다. 어디 함 명랑사회 같이 잘 만들어보자. 졸라.

 

2004년 12월 20일 딴지일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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