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폐지' 주장을 곱씹다
- 대부분 '개혁으로 해결 충분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9일 광화문에서는 70여 명이 모여 촛불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단체는 이를 조직적인 운동으로까지 만들겠다고 나선 상태. 인터넷에 올라온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글들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 주장 근거의 대부분이 ‘개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들은 주요 인터넷 사이트와 안티 국민연금 사이트의 토론방 등을 통해 수집했다. 그 중 가장 빈도가 높고, 국민연금 반대자들 가운데서 가장 공감을 많이 사고 있는 주장 네 가지를 간추려 분석해 보았다.
1. "가압류로 고통 주는 국민연금 폐지하라"
– '효과적인 구제절차 마련'이 현실적 해결 방안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글에서 그 근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국민연금 체납에 대한 가압류로 피해를 당한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수입도 없어 살기 어려운데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압류를 당한 사연 등이 다른 네티즌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지역가입자 중 실제 압류 집행을 한 경우는 1.8% 정도에 그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제도 자체’의 문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강남, 서초, 송파 등 고소득층 밀집지역 체납자가 전체 체납자의 47.6%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모두 ‘생계형 체납자’는 아니다. 부유층의 ‘양심불량형 체납자’도 상당수 끼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가압류는 당사자에게는 당장 생계를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이용이 쉽고 효과적인 구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구제 절차나 이용 방법은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당장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해결이 너무 멀다.
2. "지금 먹고 살기도 벅찬데, 노후보장은 무슨"
– 자녀세대 부담 덜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 필요
그 다음 많이 등장하는 논리가 '현재 살기가 어려운데 국민연금이 무슨 소용이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말이다.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높은 불만이 제기되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경기침체이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적지 않은 돈이 국민연금으로 지출되고 있어,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그러나 오히려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미래에 대한 대비가 더욱 부실해져 지금 세대의 노후는 더욱 불안해 질 수밖에 없음을 감안한다면 국민연금은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즉, 지금 세대를 방치했을 경우 30~40년 후 이들이 노인 인구가 되었을 때 다음 세대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먼 미래에 어디서 갑자기 돈이 불쑥 솟아나와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세대를 사회가 감당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고려하면 국민연금제도는 지금 세대의 노후보장 방패막이기도 하지만 자녀세대에 대한 보호막이기도 하다.
3. "강제가입 웬말이냐, 내 노후는 내가 준비"
– 개인연금이 국민연금의 기능 대신할 수 없어
강제가입 규정 역시 가장 많은 불만의 대상 중 하나. 내 노후는 내가 준비하는 데 왜 강제로 가입시키느냐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준비한다는 주장은 위의 주장과 모순된다.
강제가입 규정이 있는 것은 사회보험으로서 이를 거부하는 고소득자의 이탈을 막아 ‘사회적 위험분담 장치’로서 기능하기 위함이다. 물론 현재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워 당장 한 푼이 아쉽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고소득 지역에 체납자가 절반 가까이 몰려 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해 준다.
또한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이 강제가입에 기반한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을 대체할 수도 없다. 국민연금이 국가가 ‘노후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사회보험’으로 운영해 적정 급여 수준을 납부한 돈과 관계없이 유지할 수 있다.
반면 개인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 중 이를 운영해 수익금에서 모집 비용, 기업 이익 등이 빼야 하는 데다, 30~40년 후에는 떨어지는 화폐가치도 고려하지 않아 실제 수급액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연금은 웬만큼 많은 돈을 내지 않고서 ‘노후보장기능’을 담당하기 힘들다.
물론 개인연금이 아닌 부동산 투자 등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 서민들이 평생 벌어 자기 소유의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는 일반적으로 말하기 힘든 측면이 크다.
4. "소득 재분배도 없는 국민연금이 무슨 사회복지제도?"
–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분담'이 주요 목적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국민연금이 사회복지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돈 장사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사회보험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 따른 것이다.
누구나 사회복지제도로 생각하는 사회보험인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도 고소득층의 돈이 저소득층으로 흘러가는 ‘수직적 재분배’가 없기는 마찬가지. 건강한 사람 돈이 병든 사람에게 흘러가는 등 ‘수평적 재분배’가 있을 뿐이다.
수직적 재분배 기능이 있는 사회복지 제도는 ‘일반세금'에 의해 이루어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이 해당 될 뿐이고, 사회보험은 이보다는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소득중단의 위험을 그 사회 구성원이 나누어 분담해 보호하는 ‘사회적 위험분담'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수입이 평균소득보다 적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납부한 돈보다 많이 타는 약간의 소득재분배 효과 정도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늙어 연금을 타는 이상 절대액은 많이 내는 만큼 많이 타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보험금 납입 상한선이 있는 것. 만약 이것이 없다면 통상 낸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국민연금의 속성상 더 많이 낼수록 좀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어 오히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가는 소득 '역'분배가 될 수도 있다.
단지 현재 월소득 360만 원인 상한선은 9년 전에 만들어져 지나치게 낮은 것이 사실이므로 상향조정을 정부에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원인
이처럼 ‘국민연금 폐지’ 주장은 제도 자체의 문제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정부의 국민적 합의 없는 제도 도입, 연금방식의 전환에 불과한 ‘기금고갈’을 ‘연금파산’으로 보도하는 등 오보를 계속하고 있는 언론 등으로 인한 제도의 근본적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정부는 국민을 정책의 ‘대상’에서 정책의 ‘주체’로 시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언론 역시 단편적인 보도로 오보를 쏟아내기보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심도 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로써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도와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케 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자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에 대해 쌓여온 불신과 불만 때문에 '폐지'를 주장하는 측도 감정적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적 불만 해소'와 '사회적 노후생활 보장대책'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2004년 5월 30일 오마이뉴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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