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명절을 얼마 앞두고 결혼한 한 여성으로부터 남편에 대한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명절 때가 되면 언론에서 주부의 명절 스트레스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가 있다. 그 여성도 결혼 몇 년째 명절 스트레스에 한참 괴로움을 겪던 터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남편과 TV를 시청할 때 주부의 명절스트레스에 대해서 나오는 것은 꽤 반가운 일일 터였다. 그 것을 계기로 자신도 겪는 그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태도에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단다. 남편은 이미 그런 문제는 다 자기도 안다는 듯한 태도로 그냥 넘겨버리더란 것이다. 하지만 그 남편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할수록 정작 자신의 부인이 겪는 심각함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어떤 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때 상대방이 '나는 당신의 반론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있다'는 태도를 보이면 대화는 오히려 꽉 막히게 된다. 자신은 상당히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외곬을 부리면, 그것을 설득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되레 꽉 막힌 벽에 부딪치게 된다. 고집 중에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상고집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나는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가 정말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열린 사고는 없어지고 자기 안의 함정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의아스런 단호함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의 함정'
세상은 많이 변했다. 현재 정부가 이라크전 파병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반전여론이 거세게 이는 것을 보고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러는 것이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고 얘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정부입장에 반하여 반전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고 대통령은 '그것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는 일'이라고 언급한다. 정말 이해심이 뛰어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재 파병문제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정말 평소에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정말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내 개혁파 의원이든 노사모이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파병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어도 노무현의 태도는 전혀 단호함을 잃지 않는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함정'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엉뚱한 일일까?
그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계속 반복한다. 그리고 외교는 단순한 명분과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연 '전략적인 선택'을 모르는 것일까? 많은 한미관계 전문가들은 파병으로 미국이 북핵문제에 있어 우리의도를 존중해 줄 것이라는 발상이 오히려 더 순진하다고 지적한다. 유엔까지 무시하고 전세계적인 반전여론에 거센 저항도 아랑곳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살육전을 저지르고 있는 나라, 이미 강경파들이 정부를 장악해서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몇 백명 파병으로 어떤 태도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경으로 치닫는 미국의 비위를 어설프게 맞춰주다가 한반도 평화를 지지해 줄 수 있었던 더 많은 국제여론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단순한 논리라고 그냥 넘겨버린다. 어쩌면 더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반론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그에게는 지독히 '단순한' 모양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반전여론에 당혹해 하는 아이러니
지난 25일, 파병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본회의를 들불처럼 일어나는 반전여론에 당혹해하며 연기를 제안한 것은 한나라당이었다. 평소대로 본다면 오히려 파병을 팔 걷고 나서서 강행했을 것 같은 한나라당이 오히려 반전여론에 당황해하며 처리 연기를 제안한 것은 참 아이러니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히려 당당했다. 당일 국회 총무와의 만남에서 조속한 파병안 처리를 재차 요구하면서 전략적인 선택을 국민에게 설득하기가 더 힘들다면서 반전여론을 간단하게 설득의 대상으로 규정해 버렸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초기부터 자기안의 함정에 빠진 거라면 우리의 뒷날은 더욱 불안하다.
2003년 2월 3일 오마이뉴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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